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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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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 |
양심
(행24:11-23)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어요. 그냥 양심이 아니구. 양심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선한 양심과 선하지 못한 양심이지요.
그런데 죄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양심의 본바탕은 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하지 못한 양심은 안 가르쳐 줘도, 그대로 우리 안에 있지요.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가만히 내 두면, 나쁜 생각하고, 나쁜 마음 갖고, 부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선한 양심은, 내 의지를 보여야 하지요. ‘아, 이거 이러면 안 되지, 믿는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마치 고개를 흔들고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양심의 소유자 이지요.
그래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나의 본바탕의 양심에 끌려 선한 양심을 잃어버리고, 악한 양심에 끌려 살 때가 있어요.
믿는 사람도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은 더하지 않을까요? 물론 믿지 않아도 선한 양심으로 살려고 노력은 할 수 있는데, 선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 가는 가능성이 더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나의 기준이 되어 붙잡아 주지는 기준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이 의지로 모든 것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본바탕이 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요.
바울을 고소하는 사람보세요.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변호사까지 세웠지요. 그 변호사 이름이 ‘더둘로’ 예요. 더둘로가 사도바울을 고발하지요. 나쁜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가 직접 사도바울을 보지도 아니하고, 그냥 돈 받고 변호해 주는 사람이었지요.
그 고발 내용이 그거잖아요. 이 사람이 온 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문제를 일으켰고, 나사렛 이단의 두목이고, 심지어 성전까지 더럽혔다! 여러분, 그냥 양심은 상관없이, 그는 변호사 일을 한 것 이지요. 돈 되는 일이면, 양심과 전혀 상관없이 일을 한 것이죠.
사도바울을 고소한 사람들을 보면, 과연 이들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한 양심은 있는가? 자신에게 불리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오면, 가차 없이 제거하려는 양심을 가진 자! 그런데, 그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어요)
오늘 사도바울은 법정 앞에 서서 자신을 변론해요. 그런데 그 변론을 우리는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바울을 법정에 세워놓고, 변호사 더둘로는 바울을 인신공격을 하지요. ‘뭐 이단이라고 하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가만히 내 두면 정말 큰일 날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요.
바울의 변론을 한번 볼까요? 바울은 이 ‘악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 더둘로의 고발 사유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해요. 변론할 때 아주 조목조목 말하는 것 한번 보시지요. ‘제가 예루살렘에 올라 온지, 고작 12일 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보아서 선동하고, 그 짧은 시간에 동안 그들을 어떻게 제가 선동하겠습니까?’ 생각 좀 해 보시지요.
또한 그들이 저를 고발했지만, ‘정말 뭐 확실하게 드러나는 증거를 지금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13절) 제가 ‘이단’이라고 하는데, 저는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에 적힌 것을 다 믿는데, 어찌 제가 이단이라고 하는지요.(14절) 그리고요. 저는 유대인과 똑같이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있고, 의로운 사람이든 불의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하리라는 소망을, 유대인들과 똑같이 가지고 있는어요.(15절)
바울은 이렇게 조목조목 말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인신공격을 하지 않아요. 또 베릭스 총독 앞에서도, 어떤 아첨이나,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아요. 자신을 포장할 의도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생각도 없어요. 그저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바를,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고백을 해요. 그것이 16절에 있습니다.(시작) 여러분 이 말은요. “저는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깨끗한 양심(선한 양심)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거지요.
여러분, 바울에게 선한 양심은 무엇일까?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려고 하면, 사람 앞에서도 떳떳해지는 거예요.
바울이 말하는 선한 양심은 바로 그것이지요. ‘내가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그저 내가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예수 믿는 자를 잡아서 옥에 넣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깨달으니,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으로 살려고 하니, 사람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떳떳해 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선한 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내 안에 더욱 있다면, 결코 비굴하고, 아첨하고, 변명하는 인생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주신 그 ’선한 양심‘은 결국, 나를,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사도바울에게 그 힘을 주셨어요. 그 힘에는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힘이지요.
23절 읽어 볼까요?(시작) ㅎㅎㅎ베릭스가 바울의 모든 변명을 듣고, 어 이 재판 문제가 있다! 일단은 연기를 해야 겠다! 말하고, 백부장에게 지시를 내리지요. 바울을 잘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친지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뭐하지 말라고요? (막지 말라고요). 여러분,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이 은혜가 그 가운데에서도 보이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 기쁨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한 양심에 의지하여 버텨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를 주셨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그 은혜를 주신다 하세요. 주를 위한 ‘선한 양심’으로 비굴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하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은혜 줄 테니 너도 그렇게 살아봐!!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아요. 그 의지를 보일 때, 내가 도와줄게, 내가 힘을 줄게, 내가 능력을 줄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 죠수아라는 방글라데시 친구가 있었어요. 그가 한국에 와서 모 신학대학 석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지요. 제가 그렇게 물어 보았어요. “졸업하면 다시 너희 나라로 돌아 갈거냐?” 라고 물어 보았지요. 자기는 돌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 나오면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직업을 찾거나, 한국에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교회를 많이 하던데. “너 그런거 하면 안되냐?” 그랬더니 자기도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생활형편이 이곳이 더 좋고, 살기 편한데, 여기 눌러 앉을까 라는 유혹도 받지요.
더욱이 방글레데시에 있는 부모님이 돌아오는 것을 반대한대요. 여기는 이슬람이 국교이고, 목회하기 힘드니까 목회 안 해도 되니까, 한국에 머물러 있으라고, 들어올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요. 방글라데시 돌아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거죠. 그런데 5년 전인가 그는 가족을 데리고, 모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연락이 왔어요. 안부 전화이지요. 그리고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현재 그는 목회를 엄청 크게 하고 있고, 방글라데시 복음화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요? 마치80년대 부흥을 보는 것처럼...)
그 친구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내가 편안 것에 타협하고, 주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면 나는 결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방글라데시의 삶과 목회는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악한 영의 세력들에게 놀림 받다가 자유함을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들을, 하나님은 기쁨으로 주시고, 행복으로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때 그 안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양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드리니, 하나님이 은혜 주셨다는 간증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마치, 오늘 사도바울에게 세상 양심 바라보지 아니하고,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굿굿히 변론할 때, 하나님이 사도바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친척)들이 그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것처럼, 그 ‘죠수아’ 라는 방글라데시 목사님에게 그 은혜와 기쁨을 주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선한 양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를 위한 선한 양심이 내 안에도 조금이라도 더 있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고 천국 가는데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양심의 거리낌 없이 천국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양심은 내 의지를 보여 줘야 해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야!! 그 양심이 나를 지배해!! 그 믿음으로 난 살 거야!! 고백하면 나가지 아니하면 절대 이겨낼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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