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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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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15절-20절.
15절-16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요? 나음을 받은 문둥병자 그도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리겠지요? ‘네 병이 어떻게 나았느냐?’ ‘예수님이 고쳐주셨다.’ 그 소문이 나가지요? 그 전에 귀신을 내어 쫓아준 자, 귀신 나갔으면 이제 정신이 멀쩡하니까 사람들이 다 좋아하겠지요? 각종 병 고침을 받은 자들. 여러 가지 병 고침을 받은 자들.
사람에게 육신의 병도 많고 이 정신세계에 하나님의 온전에 비하면 선악과 따먹은 그 정신 사상과 소원 목적과 그 가치판단 평가성은 전부는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이고 병든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와 같은 날 때 가지고 온 그 성격 성질 그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을 하려고 그러고, 사람을 판단을 하려고 하고. 이게 병입니다. 그래놓고 이제 시험 들고 얻어맞고. 병이요. 병. 예,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건 전부 병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병 이것은 뭐 병원의 의사들이 고칠 수 있지요? 불가능한 것은 못 고치고.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정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하게 돼 있어요. 자기 스스로 못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게 돼 있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지 못하는 그건 육신이 고스란히 죽는 거요. 그런데 인간이 전혀 고치지 못하는 알지도 못하는 이 영적 세계의 영적 차원에서 보는 병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병이냐? 그런 병을 가르쳐 주려고 눈에 보이는 모든 병자를 동원시킨 겁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못 고치는 것.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런 육신의 병도 인간이 고치다가 고치다가 못 고치는 것은 그건 하나님께로 돌리더라. 인간이 포기를 하든지 고쳐주시면 고쳐주시는 거고. 그냥 포기를 하던지 그대로 죽던지.
그런데 육신이 살아있으면서 이 신령세계의 그 질에서 볼 때에 비뚤어진 거 꼬부라진 거 휘어진 거 삐딱한 거 이건 전부 병인데 인간의 세계에서는 이걸 보는 눈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보시는 눈이고 성령만이 보시는 눈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해서 우리가 영의 눈을 가질 때에 그런 걸 본단 말이요. 그럼 여기 성경에 역사적으로야 몸에 병든 거 정신에 귀신들린 거 이런 거 다 동원시켰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와서 고침을 받거든요. 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통해서.
인간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스스로 생각할 때에 ‘아, 이건 나에게 병적인 생각이구나. 예수님, 이거 고쳐주십시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 자기의 병을 몰라. 병들었으면 분명히 아플 텐데 그 아픔을 느끼지를 못 해. 그 참 이상하다. 육신에 병들면 감기기운만 조금 들어오면 머리가 띵하고 또는 기침이 난다든지 이런 거 있지요? 그건 느끼는데, 오각의 오감성에 병이 안 들면 느껴요. 그 면에 예민한 사람은 잘 느껴.
그래서 너무 예민한 사람은 신앙하고 별 관계없는 그런 사람들, 조금 어쩌면 ‘여기 뜸을 떠야 되겠다. 침을 맞아야 되겠다’ 이런 게 상당히 많지요? 근데 영적 차원을 들어가지 못하니 그 생각도 병이구나. 그 참 왜 그걸 병인 줄 모르느냐, 못 느끼냐 하면 다른 사람들이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자기가 병인 줄 몰라. 그 참 이상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다 잠자는데 밤에 계속 돌아다니면,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쓰레기통 뒤지면서 분리수거 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치우는 것도 아니고 개똥 주우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밤새도록 돌아다니면 그 병이요, 아니요? 병 맞아요? 병이에요. 그러면 낮에 할 일 없이 계속 돌아다니다 밤에는 자고 그럼 그건 병이요, 병 아니요? 그것도 병이지.
성경을 보면 자기가 보여야 한다. 그리고 고치려고 해야 한다. 성격이 모가 났든지 누가 말하면 함부로 그냥 웃음이 헤픈 사람 있지요? 웃을 일도 아닌데 웃고. 그것도 병이요. 밥 퍼놓으면 이게 또 좋게 말하면 ‘에티켓이 없구나’ 그러는 그런 거지만 이게 밥 위로 함부로 넘나들고 그러면 그것도 병이요. 사람이 규모가 없구나. 보통으로 말하면 버릇이 없구나. 그런 거.
영의 눈을 가지고 신앙의 세계의 정신계를 보면 병적인 것이 참 많아. 항상 예배 시작하고 난 뒤에 늘 1분 늦든지 2분 늦든지. 항상. 그것도 병이요. 왜 그럴까? 회사 갈 때도 그럴까? 그럼 회사에서 쫓겨나지. 학교에서 그러면 점수 따요? 담임선생님한테 밉보여서 점수 안 나와. 쫓겨나버려. 참 이상하다. 하나님 앞에는 사회의 어떤 그런 장소보다 더 엄격하면 엄격한 자리이고 우리의 마음을 잘 하나님 앞에 가다듬고 여며져야 할 텐데 교회는 함부로 하는 어떤 그런 그것도 참 병이요.
우리에게 병적인 요소가 참 많아요. 다른 사람들은 참 싫어하는데 자기는 계속 그러고 있어. 이것도 병이요. 그러니까 나는 몰랐는데 다른 사람이 나한테 하는 말을 가만 보니 자기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아, 과연 그렇구나. 고쳐야지. 이게 참 덕이 안 되는구나. 아름답지 못하구나. 고쳐야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분이 안 고쳐주더냐? 고쳐야지. 안 고치면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그런 무리들과 놀던지. 하나님의 집에서는 규례대로 지켜나가는 그게 규모가 반듯하다. 구석구석마다 이게 말씀의 보화가 가득 차있는.
저는 과일 전에 가면 석류, 석류 가운데 쪼개보면 열매 방이 많아요. 방마다 가득가득 차있어. 그 붉은 색깔이 아주 영롱하면서 정말 여자들이 이걸 먹으면 미인이 되겠구나. 그 정신을 먹으면 미인이 되겠구나. 그걸 깨달으라고 석류를 만드셨구나. 그리고 호두는 무엇에 좋다고 그랬지요? 발가락에 좋다고 그랬어요, 손끝에 좋다고 그랬어요, 뇌에 좋다고 그랬어요? 뇌? 왜 그래요? 뇌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것도 참 일리가 있다. 어떻게 뇌처럼 생겼냐? 쪼개면 딱딱한 속에 열매가 좀 동그란데 편안한데 들어있으면 어때. 어째 꼬불꼬불한데 가득 가득 차서 안 나오려고 그러고, 떨어져 버리고, 가루가 돼버리고. 그 참 되게 먹기 힘들구나. 호두 깰 적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참 그래, 일리가 있다. 모양새하며 하는 게 ‘자, 너희들은 요런 면에 좋다’ 하는 그런 모양새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넣어줬구나. 우리에게 일반계시로 깨달으라고.
가득 들어있으면 참 이게 움직이질 않아. 근데 이게 썩었거나 이러면 흔들면 안에서 딸각딸각 합니까? 그래, 사람 어지러운 거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가지 면으로 뇌가 흔들리면 얼마나 어지러울까? 정신이 없다 그 말이요. 무슨 이유로서든지.
예, 예수님의 병 고침은 그것만큼은 알아두어라. 하나님 앞에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그 고침. 영적 차원. 왜 육신의 병만 꼭 고집을 해요. 육신의 병 안 들고 건강해도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는 큰 병든 자가 있다. 비록 몸은 불구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앞에 수종드는 나음을 받은 사람이 있구나. 육신의 병은 임시성이고 영에 관한 것은 영원히 가는 거요. 그 면을 알아두어라. 왜 육신의 병만 고집하냐? 자기 스스로 느껴서 부족한 것을 알고 그 면을 고쳐달라고 그러세요. 그럼 자기가 온전해지고 자기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우리가 일반적으로도 세상에서도 아무리 미스코리아라 해도 정신면에 병이 들어놓으니까 정말 추해지는구나.
각종 병 고침을 받은 자들, 그리고 병 고쳐주실 때에 그 주위에서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목격한 자들. 예, 소문이 잘 퍼져나간다. 잘 퍼져나가는구나. 우리교회도 소문이 잘 퍼져나가요. 우리교인들 중에 ‘어떻고 저떻고’ 하는 그 소문이 잘 퍼져나가요. 알겠어요? 눈 달렸고 코 달렸고 입 달렸고 귀 달렸고 발 달렸고 손 달린 사람들은 다 그게 은연중에 나가게 되고 자기도 은연중에 남의 소문을 말하게 되고 그렇게 돼 있어요. 한 편 조심해야 돼요. 한 편 또 협동이 있고 협조가 있고.
이 사람이라고 생긴 사람은 전부 다 손은 손끼리 또 발은 발끼리 협조 동참이 있어. 자기 몸이 손이 고장 났으면 발이 돕더라. 다른 사람이 손발이 고장 났으면 다른 사람이 또 그걸 돕더라. 그렇게 들어가 있어. 손발을 가지고도 남 어려울 때에 돕지 않는다면 자기가 손발이 고장 나면 누가 도와줄까? 도와주겠어요? 그게 일반적으로 볼 때도 인간의 세계다. 나쁘다가 아니고. 멀쩡해도 나쁜 사람을 돕는 것이 나쁘지? 영의 사람이 일반이치는 일반이치대로 써먹으면 그것도 영적으로 들어가. 육의 생각이 아니고 영적으로 들어가.
그런데 소문이 퍼져나가는데 어떤 소문이 더 잘 퍼져나갔을까? 그게 참 문제요. 어떤 소문이 더 잘 퍼져 나갈까요?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병을 잘 고쳐주신다더라’ 그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하늘나라 복음을 잘 전하신다더라.’ 둘 중에 어느 소문이 많이 퍼져 나갔을까? 오늘날 교회에 되어지는 현상들을 보면 알아. 맞지요? 그러니까 ‘어느 소문이 많이 퍼져 나갔구나’ 그게 있는 거라. 그리고 그 소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느 소문이 귀에 솔깃하게 잘 들어왔느냐? 그게 또 문제요. 그러니까 몸에 병들고 아픈 사람은 그 첫째 소문에 솔깃하겠고. 그렇지 않겠어요? 두 번째, ‘하늘나라 복음을 잘 전하신다더라’ 이건 극히 드물지 않겠는가?
자, 그런데 그건 다 남 소리야. 그렇다면 은연중에 자기도 소문을 듣기도 하고 소문을 내기도 하는데 어느 소문을 자기가 잘 내고 있을까? 그것도 문제요. 그리고 자기가 전하는 소문에 누가 내 말에 귀가 솔깃해질까? 그것도 있는 거요. 맞지요? 그걸 잘 알아라.
이 기독교 신문에도 보면 집안의 경제사정 어려운 거, 뭐 자녀들 애먹이는 거, 꿈자리 사나운 거, 자녀들 결혼문제, 부부간의 문제. 그런 거 많이 있어요. 기독교 신문에 목사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교회 다니면서 그 면을 해결하고자 할 것 같으면 여기 다니지 말고 그런 교회로 나가세요. 예, 그런 교회로 나가셔야 합니다. 제발 그런 교회로 나가세요. 내가 손을 비빌 테니까.
또 그런 소문에 귀가 솔깃해 있으면 슬슬 자기 마음속에서 이상한 것이 와서 자리를 잡아요. 이제 변명이 많아져요. 교회에서 나가는 사람 그냥은 안 나가요. 내가 많이 경험을 했어. 나는 진리 때문에 나왔어. 그 전에 옛날에 스승목사님 만난 뒤에. 그러니까 그 교회 목사님은 암만해도 인간적으로 섭섭한 게 있는 거지. 없지 않지.
좀 자랑을 얘기 할 것 같으면 청년으로서 아주 교회 살림을 다 살다시피 했어. 요즘은 다 전기로 돈으로 다 하기 때문에 별 일이 없어. 근데 뭐 그 때만 하더라도 난로는 나무 때고 그래야 되기 때문에 청년들 데리고 솔방울 주우러 주일날이라도 토요일 날도, 하여튼 나무 없으면 달달 떨고 예배가 되느냐? 그러니까 예배 마치고 주우러 가야 돼요. 그 때어놓고 따뜻하면 다른 사람들이 예배 잘 볼 거 아니요? 그것도 많이 떼니까 다 졸더라고. 그렇게 하니까 목사님이 참 큰 일꾼으로 보는 거지요. 뭐 주일학교 청년들 무슨 구역예배 전도 하여튼 발발 기었으니까. 활동으로. 그러니 얼마나 큰 인물이겠어요.
그런 인물이, 이제 미련한 자랑이에요. 이게. 스승목사님 만나고 나가게 되니까 이유가 이제 생겨.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선배목사님들이 그 어느 전도사를 데리고 와서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집회한다’고 그러니까 ‘결사적으로 막아야 된다. 이건 이단이다’ 그러니까 선배목사님들 스승목사님도 ‘그건 하면 안 된다’ 하고 이제 날 옥상으로 데리고 가서 특식(주-개인에게 교훈)을 먹였어. 믿고 또 사실 그런 거 같고. 오늘날 생각하면 사실 그건 용납이 안 되는 건데, 이제 집회할 때 나는 가지를 않았고. 집회하는 그 강사 전도사가 목사가 아니었지. 돼지새끼들이라고 날 염두에 두고 욕을 되게 한 거요. 근데 그 욕 내가 해당이 안 돼요. 내가 돼지처럼 살아야 그게 저주가 임하지.
그래, 나갈 때는 서운해요 서운해도 물론 목회를 한 후에도 경험한 바 있지만 사람이 나가고 들어가고 하는 것은 목사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느 교회 교인이든 어느 시골에서 올라왔고 서울 어느 교회에서 왔다 갔다 돈다발이 달렸으면 다 도는 거다. 그걸 왜 붙잡으려고 그러나? 그러니까 나가려면 나가라 그 말이지. 일부러 쫓는 거 아니고 나가고 싶은데 나가야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진리가 좋사오니’ 하고 계속 붙어있어서 말씀 받고 커지면 더 좋은 거요. 예수님도 그런 거 같아요. 내 가만 보면.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교회는 큰 제재는 없어요. 그러나 설교에서 이건 장단점과 제재는 다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나갈 때는 반드시 자기 혼자 나가야지 속닥속닥해서 ‘우~’ 해서 데리고 나가네. 이것도 참말로 문제구나. 이건 바르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이건 돼서는 안 될 일인데. 교회 안에 그런 식으로 자라난 교인들이 참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버릇이 들어놓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잘못된 신앙에는 반드시 그 사고방식이 그렇게 들어가 있다는 거.
이 악한 자들은 감옥 속에 들어가면 자기만, 허기야 그것도 아주 의리가 있는 사람은 알아줘야 돼요. 불지를 않잖아요? 근데 어중땡이는 막 물고 들어가요. 다 불어버리고. 나만 억울해서 못 들어간다 그 말이요. 그런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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