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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news.khan.kr/zT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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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중심을 잘 잡아야지
결심하는 것이
내 하루의 첫 기도이다
걸어가는 일
글을 쓰는 일
사람을 대하는 일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도
중심을 잘 잡아야 넘어지지 않는 법
한 번 흔들리면
계속 흔들린다
한 번 불안하면
계속 불안하다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잘 버티어 낸 것에 대한 감사가
내 하루의 마침기도이다
꿈속에서도
중심을 잘 잡는 법을 연습하여
웃어보는 나의 행복이여
- 2019 ‘연인’ 가을호에서
요즘 우리는 사진을 잘 찍는 수녀님의 안내와 지시에 따라 각자 독사진을 찍습니다. 좀 더 멀리는 12년 후에 있을 수녀회 설립 100주년을 준비하는 뜻에서 가까이는 500명 넘은 수녀들의 얼굴을 좀 더 잘 알기 위해 가족앨범을 준비하는 뜻에서 그룹으로 나누어 찍습니다.
오늘은 꽃과 나무가 정겨운 마당에 의자를 놓고 주로 노약자나 환자 중심으로 찍는데 저도 이 그룹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쩜 미래의 영정(요즘은 장수사진이라고도 하지만)이 될지도 모를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들이 어찌나 즐겁고 정겨운지 모두 녹음을 해 두고 싶었습니다. 걸음도 겨우 걷고 표정도 굳어 있는 환자와 노수녀들을 웃게 만들려고 젊은 수녀들은 마치 돌잔치에 온 하객들처럼 손뼉을 치고 애교를 부려 안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잘 나오기 위해서 중심과 각도를 잘 잡아야 하듯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도 결국은 중심을 잘 잡는 일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집니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중심을 잘 잡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릴 때 신앙이 흔들릴 때 오래된 사랑과 우정이 흔들릴 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이고 지혜가 아닐는지요.
지난해 두 무릎을 수술하고 한동안 걸을 수가 없을 때는 중심을 잡고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병실 복도에서 걸음 연습을 하는 저에게 ‘허리를 세우고 똑바로 걸어보세요!’ ‘중심을 잘 잡아보세요’ 의사는 늘 그렇게 말했지요.
수녀원 입회 이후 가장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중심을 제대로 못 잡은 이들이 ‘다른 길도 있다’고 저를 마구 흔들었을 때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그 힘이 어찌나 센지 하마터면 유혹에 넘어갈 뻔했습니다. 지금은 수도원을 떠나 모두들 각자의 길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도 있지만 그때 길을 바꾸지 않고 초심으로 버티어 낸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말을 잘못 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를 만들지 않는 것, 어느 자리에서나 중간 역할 잘해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심을 잘 잡는 일일 것입니다. 곁에 있는 가족 친지 이웃을 골고루 사랑하는 일, 일터에서 맞이하는 다양한 손님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일, 일상의 시간들에 감사하며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이것이 곧 중심을 잘 잡는 일이라고 여기며 오늘도 기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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