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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24] 단풍나무 아래서

인기감동기타 이해인 수녀............... 조회 수 163 추천 수 0 2019.12.24 23:46:40
.........
출처 : https://news.khan.kr/MKvH 

Cap 2019-12-24 23-43-36-834.jpg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다

문득 그가 보고 싶을 적엔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마음속에 가득 찬 말들이

잘 표현되지 않아

안타까울 때도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세상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저절로 기도가 되는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합니다


별을 닮은 단풍잎들이
황홀한 웃음에 취해

나의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이여


-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반년 이상 하복인 흰 수도복을 입다가 검은 수도복으로 갈아입는 11월이 저는 참 좋습니다. 김현승 시인이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이라고 표현한 ‘검은빛’이라는 시도 다시 찾아 읽어보며 마음이 더 고요하고 엄숙해집니다. 남쪽이라 단풍나무가 귀한 우리 집 정원에는 제가 눈여겨보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가을이 되면 자주 그 나무 아래 서있길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리 물든 나뭇잎을 좋아하는 건지! 노랗게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을 구경하려고 일부러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얼마전 우리 수녀원에서도 몇 그룹으로 나누어 성지순례를 겸한 가을나들이를 하고 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일 나이 많은 수녀들의 그룹에 들어 거제도에 다녀왔는데 동행하는 모든 수녀들의 모습이 하나의 단풍잎으로 보였습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며 단풍을 보며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어찌나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당장 즉흥시를 읊어보라고 저에게 주문하기에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말도 글도 안 나와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핑계를 대며 자연과의 교감에 더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새파랗게 예쁜 모습으로 일도 열심히 했던 수녀들이 이제는 소임지에서 물러나 청소, 빨래, 설거지 등등 집안일을 도우며 조용히 숨어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더러는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 보호자를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다들 각자의 몫을 사랑으로 물들이며 하나의 단풍잎으로 살아갑니다.


단풍잎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성이란 헛된 욕심을 버리고 혼자만 잘난 체하기보다 남의 좋은 점도 배우면서 공동선을 지향할 줄 아는 겸손의 영성이 아닐는지요.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조금씩 사라져가는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들을 생각해 보며 저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입니다. 그동안 쓴 가을시가 꽤 많지만 독자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며 좋아해주는 시 한 편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이해인의 시 ‘가을편지’에서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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