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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1)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83 추천 수 0 2020.01.08 14:43:14
.........
성경본문 : 눅5:31-3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31-32.

 

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찬송가를 힘 있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시면 입으로는 찬송이지만 속으로는 기도가 있어요. 그러면 감화성이 돼 나옵니다. 그럴 때에 자기 속에 하나님 앞에 부정적인 것은 고쳐지기 마련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찬송 부를 때에 웃거나 장난치거나 그건 아니다. 하나님 앞이다. 찬송 부를 때는 다같이. 그럴 때에 이제 감화성에서 나오는 거기에서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소리의 강약이 감화성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음악가들이 하는 기교성이 문제가 아니라 감화성에서 나오는 멀고 가까움이 하나님께로 호소하는 기도, 참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속에서 감격되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찬송을 주신 것은 우리 신진대사에 또는 정신면에 모든 것을 확 풀어버리는, 속의 것을 다 나가게 만드는 어떤 그런 게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예배로 통해서 우리를 온전케 만드는 여러 가지 정신 사상 응어리진 것. , 그 찬송 부르실 때에 내게도 내게도하면서 눈물 흘린 사람 있어요? 참 이거 누가 지었는지 가사도 좋거니와 찬송가가 기교가 별로 없으면서 상당히 매력 있는 찬송가네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일반적으로 볼 때에 이 말씀이 맞지요? 의사는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필요해요?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에게 필요하다. 아프지 않다면 의사가 필요 없지요. 안 그래요? 아프지 않는데 나 좀 고쳐주십시오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있습니다. 뭐냐? 본인은 못 느끼는데 의사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상당한 유능한 의사지요. 유능한 의사다. 누구든지 아픈 것을 느낄 때는 의사에게 가게 되는 건 당연한 거요. 신체에 대한 병을 고치려고 해도 전문적인 의사가 필요하더라. , 전문적이지 못하면 이게 그만 사람이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된다거나 그런 일이 벌어진단 말이요. 사실 의사라 그럴 때는 전문이다 하는 요건 전제를 두고 가는 거거든요? 근데 말하자면 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기침 정도하니까 그냥 감기약만 자꾸 지어주다가는 이게 큰일 난단 말이요. 그래서 사람의 신체의 병을 고치는 면에서도 전문의가 필요하다. 전문의라야 된다. 그래서 이게 뭐 조그마한 피부병도 웬만한 약국에 가서 물어봐도 안 되고 이러면 전문의를 자꾸 자꾸 찾아가지요? 그래요. 전문의를 자꾸 찾아가요.

 

근데 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병이 어떤 피부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구나요런 것도 더한다면 상당히 더 전문의가 될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듭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정신적인 병은 더더욱 그러하다. 말하자면 열이 나서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플 때는 어떤 거요? 여러 가지 증세가 나오지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머리가 아픈 거. 그런데 정신적인 병은 그런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거와는 별개다. 별개문제.

 

더 올라가서 영의 눈을 가지고 감지하는 하나님의 이 진리본질에서 이탈된 사망적인 넓은 길로 가는 사상과 정신병은, 그러니까 넓은 길로 가는 세상 넓은 길은 사망 길이거든요? 넓은 길로 가는 이건 신앙 영의 눈을 가지고 보는 정신병이란 말이요. 이게. 쉽게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넓은 길로 간다면 요건 영의 눈을 가지고 보는 신앙사상 면에서의 병이란 말이요. 이해갑니까? 그걸? 그래서 넓은 길로 그렇게 가면 이게 벌써 정신 사상 면에서는 병들었으니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는 회개하지 않으면 이건 불 보듯 빤한 거다. 결과는 나오는 거다. 결과는 나와 버려. 생명 길로 좁은 길 가는 자는 잘 산다, 못 산다그걸 보는 게 아니고 결과는 어떻게 되겠구나요걸 보는 거라. 예수님이 그런 눈을 가지고 보신단 말이요. 성령의 눈은.

 

일반세계에서나 이방종교계나 세상육적으로 가르치는 인간 인본주의로 가르치는 거짓된 종들과 지도자들은 그런 면에서 전혀 모른다. 알 길은 없고 모르는 거다. 모르는 거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그럴 때에 어느 복을 중점적으로 말하느냐? 세상 복이란 말이요. 물질에 관한 복. 이런 식으로 말해버린단 말이요. 그게 넓은 길이다. 그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거야 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그 말하게 되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데려다가 성경의 복을 당신이 해석해 보십시오하면 , 잘 먹고 잘 사는 이런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그 해석을 하게 된단 말이요. 예수님이 그 해석이냔 말이요? 그건 아니잖아요. 복 있는 사람. 사람을 두고 말하는 거요. 사람을. 뭘 많이 가졌기 때문에 세상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할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세상 것을 많이 가졌고 안 가졌고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말한단 말이요. 사람 자체.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요렇게도 생각해봐요. 지질이 가난한데도 마음씨가 고운사람 있습니까? 그렇지요? 마음씨가 고운사람 있어. 부잣집 아들이 막돼먹으면 그 재산을 물려줄 수가 없다.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 줄 거다. 그런데 또 소유적으로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 못 된 사람이 있습니까? 많이 있지. 사람이 이게 문제다. 사람이 복 있는 사람, 복이 없는 사람.

 

그런데 이게 참 그 어떤 분들은, 내 귀가 붙었어요, 축 늘어졌어요? 내 귀가? 붙었는지 늘어졌는지 몰라요? 늘어진 귀는 저기 부처 귀처럼 귀가 아주 한 짐 되겠더구먼. 늘어진 게 쑥 요렇게 되면 뭐가 있다? 복이 있다. 나는 붙어버렸으니? 허허허. 세상은 그렇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보는 거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는 질적으로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데 이 고통을 못 느끼고 있구나.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은 그들에게도 해당되고 온 인류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31, 32절 이게 온 인류에게 해당된다. 인류라면 우리 모두 다 들어가 있어. 그들은 알지 못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감각 병도 있지요? 사람에게 희한한 병도 많아요. 정말 의사도 모르겠고 원인도 모르겠고 그런 병이 인간에게 많이 있다. 어떻게 알겠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룰구원 차원에서 오각의 오감성 영감성적으로 느껴오는 것을 많이 종류 별로 많이 느껴보라고 그런 거 저런 거 우리에게 다 가르치고 보여주고 있구나.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자들이 무감각이요. 무감각. 육신의 물질에 관한 것은 이해타산이 바짝 하고 월급 적게 준다고 데모나 하고 육신의 감각적인 이해타산적인 면에 아주 빠삭하지만 영적 차원에서 전혀 무감각이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더 무섭고, 눈에 안 보이는 실상적인 면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고. 기독자들 속이 그렇다면 이건 정말 참 하나님의 심판이 볼 보듯 빤한 거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예수님의 지식은 산 지식. , 말만이 아니라 살리는 지식. 한 번 살려놓으면 영원히 산 지식. 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지만 병든 지식. 병든 지식. 눈은 떴으나 눈을 감았다고 그랬지요? ‘소경이로다그랬지. 예수님과 단일 되는 의는 아니더라. 예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의하고 이건 질이 똑같은 거지요? 그들의 의는 이질적인 의이다. 그러니까 고침을 받아야 할 지식들이다 그 말이요. 지식에도 고침을 받아야 돼. 말하자면 잘못알고 있는 그 지식을 옳은 지식으로 대체하면 그 사람은 지식 면에 구원을 얻었다 그 말이요. 병들었을 때 병이 나았으면 그 사람은 병에서 구원을 얻은 것처럼 그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을 가만 놔두면 죽지요? 건져놓으면 구원 아니요?

 

그런데 이 구원이란 용어가 성경 속에 아주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온전을 다 부분적마다 말씀을 하고 있어요. 이 바리새인들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그 지식은 병든 지식이다. 그 지식으로 자꾸 가르치니 사람이 이게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종교활동은 아주 활발해지는데 속에 든 지식은 이건 완전히 썩어 뭉그러진 거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성경지식이나 바로 알고 있느냐? 이것도 문제요. 참말로 문제요. 그래서 지식적으로 틀어진 거 잘 몰라요.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된 우리의 온전에 관한 그 사상으로 들어가 있는 이걸 이 지식을 모르면 성경구절 아무리 갖다 써도 쓰는 사람의 소원 목적은 그 개념은 딴 데 있다. 성경구절 많이 외운다고 해서 믿음 좋은 거냐? 그건 아니에요. 사람 만들어지는 거하고는 또 달라.

 

우리 목사님들, 이 진리지식 체계신앙 조직신앙 지식적으로 달달달?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은 또 따로 있다. 자칫 잘못하면 네가 바리새인 짝 나버린다. 그러니까 성경은 어디까지나 구구절절이 나한테 들어가 있어요. 나부터 먼저 보고 잘못된데 있나 없다 먼저 타전을 하고 고치고, 그 다음에 조심스럽게 이제 바로 세우는 것. 사람을 바로 세우는 것. 지식적으로 바로 세워야 돼. 먼저. 그 다음 사람 만들어지는 것은 그 다음 오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알게 하는 것. 지식적으로.

 

그 다음에 이제 옳은 지식을 가지면 써먹어야 되는데 지식과 반대로 나가면 얻어맞는 거고. 이게 예수 믿어서 하나님에게 얻어맞나, 안 맞나그것만 노리고, ‘가난해지나 뭐 우환이 오나, 안 오나그런데 신경 쓸 것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람을 바로 세우는 데만 나가라. 그러면 이기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고. 바로 안 돼 있으면 그냥 넘어지는 거야. 넘어졌다가 또 일어나야지. 옳은 지식가지고. 그런데 머리로는 지식으로 잘 들어가 있지만 만들어진 것만큼 이제 적용이 돼 나간다. 모르면 그나마도 적용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오래 예수 믿어도 인간적인 사고방식 가지고 일반적인 사고방식 가지고는 적용은 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믿음으로 되는 게 아니다. , 거기에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붙게 되고 그래요. 이제.

 

예수님은 어떤 자들을 부르러 왔다고 그래요? 의인? 죄인?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그랬어요. 그럼 죄인은 뭐가 죄인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이 볼 때에 죄인이 어디 있어요? 죄인? 일반 세상사람들에게 지금 죄인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어디 있다고 그러겠어요? 감옥 속에. 그렇지요? 그럼 감옥 속에 없는 일반적인 죄인도 있습니까? 그렇지요. 도둑질해서 법에 안 걸리게 살살 해먹는 그것도 있을 거라고. 그럼 기독교에서 기독교인들보고 지금 죄인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어디 있다고 그러겠어요? 안 믿는 사람들하고 거의 대답이 같거나 안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또 그럴 거란 말이요. 그럼 너는 의인이냐?

 

의인이다. 죄인이다이거 껍데기 보고 말하는 겁니까, 속 보고 말하는 겁니까? 속이지. ‘고구마가 맛있다. 맛없다하는 것은 그 알맹이를 먹어보고 맛을 아는 사람이 말하는 거지요? 껍데기 보고 이거 맛있다. 맛없다.’ 그 어떻게? 맛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이유가 이제 붙게 되지요. ‘사람 좋다. 나쁘다하는 것도 속 중심으로 말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 좋다. 나쁘다하는 것도 일반적으로 봤을 때에 일반적으로 그저 무난하면 사람 좋다고 그러지요? 보통 그냥. 근데 이제 너무 까탈스러우면 에이, 그 사람 못 쓰겠다그러고, 욕 잘하고 싸움 잘하면 에이, 그 사람 나빠그러는 거고.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람을 보고 좋다. 나쁘다하는 것은 누구 기준을 가지고 그게 들어가야 돼요? 하나님 기준.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을 좋다. 나쁘다하겠어요? 예수 믿고 안 믿고 그걸 따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는 질을 가지고 따진단 말이요.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질대로 안 들어가 있을 거고, 문제는 믿어도 세상 질이 들어있단 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질을 가지고 하면 믿고 안 믿고 이건 말할 필요가 없고, 질로 따지게 되면 누구든지 여기는 정확하게 들어가게 된단 말이요.

 

죄인은 죄지은 자가 죄인입니다. 그럼 악인은? 악행을 한 자가 악인이지. 그럼 그러면 악인이요, 악인이 아니요? 선인, 선하다, 선한 사람이다, 선을 행한 사람, 또 하나님의 선으로 질적으로 만들어진 사람, 질이 선한 사람이다. 그래, 그러나 성경대로 우리가 보자고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는데, 예를 들면 불교인들은 오면서 가면서 만나면 서로 이렇게 하지요? 이렇게 합장하지요? 이제? 그럼 참 선하게 보여요, 악하게 보여요? 선하게 보이지. 선하게 보여. 그 모습이. 어떻게 보통 사람 다 그러냐 그 말이요. 안 그렇거든? 근데 주먹 쥐고 우쒸하면 악하게 보인다 그 말이요.

 

그러면 두 손 모으고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두 손 모은 거 보고 선하게 보느냐 그 말이요? 그건 아니잖아요. 기독교인이나 이방종교인이나 믿고 안 믿고 간에 하나님의 본질로 닮아져 있지 아니한다면 그건 악한 거다. 또 죄적인 거고, 본질에 맞지 아니하면 죄를 짓게 돼 있고 악을 행하게 돼있단 말이요. 악을 행하면 죄인이지. 일반적으로 양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죄지었다고 봐요, 안 지었다고 봐요? 죄 안 지었다고 보지? 교인들도 생각하기를 사람에게나 종교적 행위로서 다 잘했으면 하나님 앞에 죄지었다고 봐요, 안 지었다고 봐요? 안 지었다고 보지.

 

그런데 하나님 앞에 질적으로 이게 안 됐으면 하나님은 의인이라고 봐요, 죄인이라고 봐요? 죄인이라고 본다. 그 면에 이해가 가겠습니까? 그걸 알아야지. 안 그러면 일반사람들이 그런 말하는 개념으로 그런 소원 목적으로 다 전락하고 말아. 성경이라는 게 하나님 말씀이라는 게 인간 말하고 똑같지 뭘. 하나님의 말씀 구구절절이는 하늘의 뜻을 담아 하늘의 질을 담아 신령성으로 이게 들어가 있단 말이요. 하나님 말씀 들으면 신령성으로 사람이 만들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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