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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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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8.11.4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
구원과 변화
눅19:1-10
당신은 예수 믿고 변화되었습니까? 얼마나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 믿고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변화되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다면 반드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화는 성도의 당연한 의무이며 특권이며,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는 유명한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사람이 구원받으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신 목적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1절)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꼭 여리고를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길을 통해서도 예루살렘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리고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신 것은 바디매오와 삭개오를 만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연히 여리고에서 바디매오와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리고에 가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를 찾아오시고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삭개오
복음서 기자들 중에 누가만 삭개오에 대한 기사를 기록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으며,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2절)
여리고는 팔레스틴 각지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으며, 길르앗을 비롯한 요단 동편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의 통관세를 받는 큰 세관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에 있던 이 세관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장은 로마의 권력을 업고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리들은 로마에 바쳐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습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매국노로 여겨 경멸했습니다. 특히 세리들을 창기들과 함께 묶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들로 여겼고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며 부자였습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리였고 부자였던 청년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삭개오도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이며 부자였던 삭개오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구원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가 바로 그런 좋은 예였습니다. 그는 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겼던 세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과연 삭개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
삭개오는 여리고에 있던 큰 세관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유대인들에게 경멸을 당하면서까지 이 일을 한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삭개오는 돈을 많이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었지만 삭개오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돈이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교훈과 이적들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삭개오는 예수님 제자 중에 세리 출신이 있다는 말도 들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그렇다면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면 은혜를 입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꼭 한 번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열일을 재껴두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3절)
삭개오는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죄책감과 허무함,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게 될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으로 미리 달려가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4절)
유대인들에게 점잖은 어른이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삭개오처럼 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세리장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에게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삭개오가 얼마나 간절히 예수님 만나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마침내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올라가 있던 나무 아래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삭개오는 예수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게 된 삭개오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또 다시 그는 벽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5절)
예수님께서 어떻게 삭개오를 아셨을까요? 그 누구도 예수님께 삭개오에 대해 알려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과 공허함을 알고 계셨으며,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의 갈망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삭개오를 만나 구원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며, 내 마음속의 생각까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간절히 사모할 때, 우리의 안타까운 형편을 가지고 주님께 나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얼마든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기를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나무 아래 오셔서 이렇게 삭개오를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불러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말씀입니까?
주님을 영접한 삭개오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했습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6절) 자신을 부르시고, 죄인인 자신의 집에 오시겠다는 예수님 말씀을 들었을 때, 삭개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을 보고 수군거리며 비난했습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7절)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기와 함께 가장 악하고 추한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과 음식을 먹거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에 함께 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수군거리며 비난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급하게 나무에서 내려와 크게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삭개오가 얼마나 감격하며 기뻐했겠는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 손가락질하며 멸시하는 삭개오의 집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날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시고 복음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삭개오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으며, 돈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함이 완전히 채워졌습니다. 삭개오는 그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변화
주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삭개오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8절)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자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앞에 언급된 청년 관리는 큰 부자였는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여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누구의 것을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본래 율법은 남의 것을 거짓으로 빼앗거나 착취했을 때 오분의 일을 더해서 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레6:2-5) 그런데 삭개오는 오분의 일이 아니라 네 배로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삭개오는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의 노예였습니다. 오죽하면 세리장이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자기의 소유를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오시자 그는 넉넉하고 사랑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며 섬기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삭개오는 죄를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였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는 그의 마음속을 탐욕과 세상적인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주인이 되십니다. 그 결과 그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이 변화됩니다. 이렇게 나타나는 변화야말로 그 사람이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 당신의 모든 것이 다 변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옛 성품과 옛 모습과 옛 생활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구원을 다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선포
이렇게 변화된 삭개오에게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수군거리며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수군거리며 비난하던 사람들은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 구원받을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던 삭개오는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충격을 받고 놀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아들’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들은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온 세리와 죄인들을 변호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눅15:1-3) 삭개오가 바로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였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구원받은 당신은 변화되었습니까? 삭개오처럼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옛 사람의 모습과 성품과 가치관과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 것에 집착하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을 깨닫고 기꺼이 가난한 이웃을 돕습니다. 누가는 구원과 자기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일관되게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입은 성도는 마땅히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형제를 돌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형제 돕기를 좋아하고 힘씁니까?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즉시 결단하고 구원받은 자답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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