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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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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익환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www.telavivchurch.org |
2018년 3월 17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다니엘서 4 참된 경외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단4:34)
신앙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펼쳐가시고자 하시는 하나님나라를 주목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그곳에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잘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면 하나님은 그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내 인생의 주변인이 될 뿐이다.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나를 위해 사는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가? 그것은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이다. 오늘 우리는 철저히 자신을 위해 살아왔던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던 교훈을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다니엘서 4:29-30절은 느부갓네살 왕의 독백이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한 문장에 ‘나’라는 단어가 다섯번 쓰였다. 자기애로 가득한 고백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제국은 내 능력과 나의 권세로 세웠다.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인생의 주어는 그 자신이었다.
그는 행복했을까? 자신의 왕궁을 새로 짓고, 도시 전체에 튼튼한 이중 성벽을 세우고,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서는 공중정원까지 만들어 준 그였다. 이쯤 되면 아무것도 부러워할 것 없이 제국의 모든 행복만 누릴 법하다. 그러나 그는 밤마다 나쁜 꿈에 시달린다. 단 4:4-5,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5]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그는 또다시 다니엘을 불러 자신의 꿈을 해석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꿈에서 본 것은 땅의 중앙에 있는 한 큰 나무였다. 그 나무는 높이가 하늘까지 자라고 열매는 만민이 먹을만큼 많이 열려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한 순찰자가 내려온다. 명령을 내린다. “나무를 베라. 열매를 헤쳐라. 짐승과 새를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루터기만 남겨라. 그것을 들풀 가운데 두라. 그 그루터기는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날 것이다.” 왕은 선명하게 자신의 꿈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그 목적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단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사실 느부갓네살 왕은 행복하지 않았다. 바벨론 제국에 대한 염려로 가득했다. 자신이 세운 제국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불안으로 가득했기에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 것이다. 바벨론 제국은 이웃 나라들을 칼로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다. 금신상을 세워 놓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해야 제국의 안정이 유지되는 나라였다. 자발적인 복종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기에 언제나 왕의 자리는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꿈에 나온 그 나무가 곧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꿈에서 그 나무에 일어났던 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왕이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일곱 때를 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다니엘의 말을 들어보자. 단 4:25-26,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안위가 왕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말한다. 왕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회복해야만 그의 나라가 다시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의 주어가 바뀌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왕에게 하늘의 뜻을 전한다.
단 4: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이 말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공의를 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죄를 범했음을 알 수 있다.
바벨론은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세워졌기에 힘 있는 자가 군림하는 제국이었던 것이다. 크고 강한 것을 숭배했기에 힘없고 가난한 자들은 대우 받지 못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하늘의 순찰자에 의해 감찰된 바벨론의 죄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자리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의 업적을 자랑하는 자리도 아니다.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는 자리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하늘에 순찰자를 두신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세우기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것은 힘의 우위를 가진 자들이 세우는 제국이 아니다. 사랑과 공의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다. 이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눅 6:20)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난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의 길을 가셨다.
빌 2:6-11절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왕의 길을 가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이루는 길이었다. 힘없고 가난한 자도 소외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이 나라는 자발적인 순종과 경배가 이루어지는 나라다.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며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나라다. 하나님은 스스로 가장 낮은자리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셨다.
반면 하나님은 높은 위치에서 스스로 자긍하며 자기숭배에 빠졌던 느부갓네살 왕을 낮은 곳으로 끌어 내리신다. 단 4:30-31,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결정대로 일곱 때를 추락한 인생으로 산다.
단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본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에게 총명이 돌아오며 왕권도 회복하게 된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권세를 찬양한다. 단 4:34-37,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하나님은 제국의 왕에게 이 세상의 진정한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셨다. 느부갓네살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자기숭배라는 잘못된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인간은 자신이 경외하는 것에 지배 받는다. 돈을 경외할 때 돈의 지배를 받는다. 성공을 경외할 때 권력의 사다리의 지배를 받는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여지없이 다른 우상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우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이 우선으로 여겨지는 시대이다. 사람을 위한다는, 인간의 권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과 질서마저 부정하는 시대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이 점점 더 적어지는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왕국과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먼저 구한다. 하나님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이루어줄 조력자에 불과하다.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더 경외하는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예수님이 가신 참된 왕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 구원의 목적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선민의식에 빠져 이방의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힘과 영예가 주어졌을 때 한없이 부패하고 타락했던 중세 교회의 역사를 우리는 안다. 힘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그것을 가진 자의 눈을 멀게 하는 위험이 있다. 힘은 군림하고 자기 영광에 도취되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기초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힘은 자기 영광을 위해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이 크건 작건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는 요즘 힘있는 자가 한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본다. 잘못된 자기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추락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다. 추락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아가 원하는 잘못된 욕망을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빌 2:12절에서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힘을 나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려는 자아의 깊은 갈망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거짓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역사와 우리 인생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향해 참된 경외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은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취할 수도 있고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만이 남는 것이다. 바라기는 한 번 뿐인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 한 분을 경외하며 그분을 섬기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 나눔
1.느부갓네살 왕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의 삶과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2.꿈에서 느부갓네살왕에게 하늘의 순찰자가 전한 말을 무엇입니까?
•적용
1.자기를 숭배하게 하는 이 세상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2.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드려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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