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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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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익환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www.telavivchurch.org |
2018년 4월 7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다니엘서 7 하나님의 기쁨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단9:23)
우리는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페이버(favor)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그 인생의 차이를 보게 된다. 다니엘서 1장 9절은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 그는 느브갓네살 왕 앞에 서게 되었고 다른 지혜자들이 하지 못했던 왕의 꿈을 해석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은혜를 입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페이버가 있는 인생의 모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9장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페이버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살펴보려고 한다.
다니엘서 7장 8장에는 다니엘이 본 두 번의 환상에 대해서 나온다. 두 환상에 모두 다양한 짐승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것은 각각 바벨론 제국과 그 뒤에 이어서 나오는 메대 바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환상의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7, 8장의 결론은 세상 나라는 무너지지만 앞으로 인자와 같은 이를 통하여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하나님나라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이 환상을 보고 앓아 눕는다. 그 환상의 내용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 여러 날 이후에 일어날 일이라 도무지 뭔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이 환상을 깨닫게 해주려고 왔지만 다니엘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 그리고 12년의 시간이 지난다. 다니엘에게 가브라엘 천사가 다시 찾아온다. 왜 왔을까?
때는 기원전 538년이다.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메대 바사 제국이 시작된 해였다. 다니엘은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단 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가 읽었던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두루마기 성경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70년을 지내게 된다고 기록했다. 렘 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바벨론에서의 70년이 차면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생활이 끝나고 이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이 말씀을 깨닫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BC 605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다. 그의 나이 14살 무렵이었다. 그리고 BC 538년 포로로 끌려온 지 68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앞으로 2년 뒤면 칠십 년의 시간이 다 차게 된다. 바벨론에서의 포로 기간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다니엘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기도하기로 결심한데에는 예레미야서를 통해 도전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렘 29:12-14,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포로에서 돌이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요구하셨다. 잘못에서의 돌이킴없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니엘이 이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겠구나 결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식인의 날카로운 정세분석이 역사의 흐름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아는 것만으로 역사의 방향을 돌릴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악 때문에 어긋난 역사는 반드시 누군가 그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중보를 요구한다. 그래야 어긋난 역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새로운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중보자다. 기도하는 사람이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라는 중요한 시점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작정을 깨닫고 자신의 민족을 대신해서 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단 9:5-6,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한다. 이어지는 그의 기도를 보면 지난 날 잘못된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가득하다. 그는 주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한다. 단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와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의 회복을 위해 간구했다. 그 때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다니엘을 찾아 온 것이다. 왜 왔을까? 가브리엘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단 9:22-23,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12년 전에 보았던 그 환상을 다시 깨닫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것을 깨닫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해 온 것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이기 때문이다’ (כי חמודות אתה)라고 자신이 온 이유를 다니엘에게 말한다. 히브리어로 ‘하무도트’이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보면 ‘하무드’라고 한다. ‘하무도트’는 ‘기쁨을 주는 자, 보배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눈에 다니엘은 바로 ‘기쁨을 주는 자’였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회복의 역사는 그냥 기계적으로 정한 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알고 거기에 회개하며 반응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다니엘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작정을 알고 가장 먼저 회개하며 반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뻤을까? 하나님은 눈에 다니엘이 너무 이뻤다. 그래서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천사 가브리엘을 그에게 파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작정하신 청사진을 다니엘에게 알려주신다.
자 여기에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이 있다. 하나님 나라는 지식인이나 권력자를 통해 주도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를 통해 진행된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마음 아파하며 무릎 꿇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기쁨이 되는 사람에게 우리는 뭐라도 다 해주고 싶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페이버가 부어진다. 하나님의 페이버가 있어야 우리 인생이 열린다. 하나님의 페이버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에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통계와 산술적인 계산으로 상황을 분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측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페이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다니엘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작정은 무엇인가?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여기 일흔 이레라는 기한이 나온다. 일흔 이레는 히브리어로 ‘샤부임 쉬비임(שבעים שבעים)’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7년의 70번 주기인 490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앞으로 490년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해서 알려주신다. 이제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기간이 끝날 것을 바라며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먼 미래의 일을 알려주신 것일까?
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그것은 분명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하나님나라가 임하고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열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망의 성취가 2년 뒤의 일이 아니라 더 먼 미래인 490년 뒤에 벌어질 일임을 다니엘에게 알려주기 원했던 것이다.
일흔 이레의 기간 동안 벌어질 일에 대해 24절은 이렇게 요약한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죄가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진다.
자 그럼 이 70이레의 기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70이레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언제 났을까?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히브리어로 ‘레하시브 베레바놋 예루살라임 להשיב ולבנות ירושלם’이다. 개역성경은 ‘중건하라’는 하나의 동사로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슈브’와 ‘바나’라는 두 개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슈브는 ‘회복하다, to restore’란 의미고 바나는 ‘건설하다, to build’란 의미다. 단지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도시를 재건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수도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라는 의미다. 이 명령은 역사적으로 BC 457년 아닥사스다 왕 통치 7년에 내린 조서로 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에스라는 이 조서를 받아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재판관들을 세우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읍을 다시 재건한다.
25절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나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합쳐서 69이레다. 이는 483년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조서가 내렸던 기원전 457년에서 483년이 지나면 AD 27년이 된다. 예수님은 BC 4년에 태어나셨고 30세가 되시던 AD 27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이 때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면서 메시아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이다.
단 9: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란 히브리 표현은 ‘예카랏 메시아흐 베에인 로’ (יכרת משיח ואין לו)이다. 직역하면 ‘기름부음받은 자가 잘려지고 그가 없을 것이다’이다. 여기서 카라트(כרת)라는 동사는 ‘자르다, 베다 소멸시키다’라는 뜻이 있다. 고대 근동에서 계약을 맺을 때 짐승을 반으로 잘라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언약을 맺었다. 예수님은 새언약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속죄를 통해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영원한 의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죄가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것’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조건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다니엘이 깨닫게 되기 원했던 내용이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이것은 AD 70년 디도장군이 이끌고 온 로마군을 통해 실현된다.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AD 70년 로마군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무너지고 성전도 파괴된다. 성전의 파괴와 함께 27절에 묘사된 것처럼 구약의 희생 제사는 사라진다.
자 하나님은 왜 이런 먼 미래의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들이 기대한 방식으로 오지 않을 것에 대한 예고였다.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가고 성전이 다시 회복되어서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옛언약이 아니라 새언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메시아가 오셔서 죄를 대속하고 우리를 의롭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됨을 알리시기 위함인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죄는 처리돼야 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의가 부여돼야 한다. 예수님이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다. 그 사실을 믿기 바란다. 다니엘은 구약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대해 알려 주셨다.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페이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다니엘처럼 민족과 공동체의 운명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기뻐하시는 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진행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진행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기쁨이 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경험하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 나눔
1.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을 찾아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2.다니엘이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날 것을 바라며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먼 미래의 일을 알려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용
1.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나의 삶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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