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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별해야 한다]
(마가복음 13:1-13)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신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대부분의 신자는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잘못 아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는
일어날 일과 해야 할 일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1. 저절로 일어날 일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저절로 일어날 일이 여러가지 있다.
첫째, 성전의 운명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면서 말했을 때
주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막 13:2,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본질만 남는 방향으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본질과 상관없는 것 중 대표가 '성전'이다.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주님께 직접 가르침 받았던 제자들조차
성전이라는 건물과 성전을 구성한 돌에
감탄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아마 성전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자랑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었다.
건물인 성전과 신앙은 별로 상관이 없어서
기필코 무너지고 말 것인데,
이 말씀은 참 성전이신 주님의 죽으심을 예언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후에 이 화려한 성전은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둘째, 이단과 전쟁과 기근
마지막 때가 되면 강력하게 나타날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고
전쟁과 기근이 도처에 생기는 것이다.
(막 13:6-8, 새번역)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8]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진통의 시작이다.
이단과 전쟁과 기근과 지진 등이 일어날 것인데
진통의 시작일 뿐 아직 끝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를 향하고 있다는 징조임에는 분명하다.
셋째, 복음
복음 전파는 마지막 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막 13:10, 새번역)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될 때는
많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막 13:9, 새번역)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어려움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전파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마지막 때의 중요한 징조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마지막 때가 오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를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명령문이 아니라 미래형이다.
신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삶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
2. 해야 할 일
건물로서의 성전이 붕괴되고
자연스럽게 성전 신앙이 없어지고
재난 소문이 일어날 것이고
복음이 전해질 것이다.
이건 세상이 마지막을 향하면서
저절로 또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들이다.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들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고,
그건 그저 징조라고 판단하면 될 일이다.
건물로서의 성전 신앙이 붕괴되고
이단의 창궐하고 재난의 소문이 들려오고
그 와중에도 복음이 전해지는 상황을 보면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
그러면 그런 징조들을 볼 때
신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주님이 명령문으로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막 13:5-6, 새번역)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중요한 첫번째 일은
속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또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때일수록 이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속아 넘어가는 것은
단지 이단만이 아닐 수 있다.
멀쩡하게 정상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 중에도,
그 교회를 운영하는 목회자 중에도
교인들을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마지막 때일수록 많을 것이다.
마지막 때일수록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대부분
누군가 자신의 신앙을 세워줄 '사람'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세워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방향으로 세워야 한다.
사람 (주로 목회자)의 도움을 받되,
그 도움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세워가는
자발적인 신앙인이 되어가야 한다.
끝까지 누군가를 의존하는 신앙으로 남는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둘째, 걱정하지 말아라
두번째 해야 할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막 13:11, 새번역)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걱정할 일들이 차고 넘치게 생기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사람들에게 끌려가기까지 했는데
어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는 비결은 단순하다.
성령이 지시하는 말을 하면 된다.
그런데 성령이 지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쉬운 듯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주체가 내가 아니라 성령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말해주셔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만약 성령이 말해주시지 않는다면 낭패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건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일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된다.
걱정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평소에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삶이어야
그 날에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걱정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건 평소에 성령의 음성을 듣는
매일의 삶일 때 가능한 것이다.
셋째, 끝까지 견디라
(막 13:13, 새번역)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은 견딤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적으로 광신적인 삶을 살아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선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는다.
진리와 복음을 가진 사람의 삶은
누군가의 지지와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박해와 미움을 받기도 한다.
이유 없이 박해와 미움을 받는 중에도
끝까지 견디는 것이 신자의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견딤'의 삶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참기만 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속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3. 비결
어떤 비결이 있을까?
속지 않으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고
걱정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알아야 하고
끝까지 견디려면 십자가를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이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가르침을 듣고
그래서 삶의 중심에 말씀을 두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 간다면,
헛된 것들에 속지 않는 분별력이 생길 것이고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담대한 삶이 가능해질 것이고,
말씀과 함께 끝까지 견디는 삶도 가능할 것이다.
다른 비결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신자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4. 이 시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져서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마지막 때의 징조의 일부가 타나나고 있다.
이단이 얼마나 헛된 일을 하는지,
얼마나 악하게 사람들을 호리는지가
코로나 19로 인해 드러나게 되었고,
신자들에게는 건물로서의 성전에 의지하는 신앙을
한 순간에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건물이 성전이라고 믿었던
그 헛된 믿음에 철퇴를 맞고
비틀거리는 신자와 목회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신자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세워가지 않으면
위험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
생각지 못한 때에 갑자기 임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신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건 속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건물로서의 성전 신앙을 믿고
건물을 화려하게 만들어 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말씀을 알지 못해서 이단에게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간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경을 몰라서,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끝까지 견디고 버틸 힘이 전혀 없는 교인이
얼마나 많은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때에라도 이제 정신을 차릴 때다.
건물에 집착하는 신앙을 벗어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전이라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누군가 화려하게 설교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그 과정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고 누리는
참된 말씀의 사람으로 세워져 갈 결심을 해야 할 때다.
5. 나는?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예배당에 갈 수가 없고
학교도 갈 수가 없고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는
무서운 상황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이 두려운 상황을 맞이했는데
나는 일반신자가 아니라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은 이때까지 어떤 목사도 해 본적이 없는
심각하고 새롭고 놀라운 결정이어야 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을
일순간에 중단하는 일이었다.
질병으로 인한 생명의 위험으로 인한 것이니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성도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기에
성도 전체 카톡방에 의견을 물었다.
성도들은 전부 예배당 예배를 중단하자고 하셨다.
문제는 목사인 나는 예배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목사로서 내가 강조하고
성도들을 훈련시킨 것이
일상에서 자신의 처소에서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게다가 가까이에 있는 친한 목사님이
온라인 실시간 예배를 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의논하고 온라인으로 예배하자는 결정이 나자말자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나는 준비될 수가 있었음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실제로 성도들에게 얼마나 예배다울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성도들 대부분은
온라인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내일이면 온라인으로 말씀묵상 세미나를 진행한다.
이런 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믿어서
참석자가 많든 적든 진행하려 했다.
이런 때일수록 신자는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서
스스로 신앙을 지킬 뿐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성장하고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온라인 말씀묵상 세미나에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하셨다.
말씀을 스스로 묵상할 갈망을 가진 신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아직도 온라인에 서툴어서
예배할 때마다, 또 온라인으로 세미나를 할 때마다
연습을 많이 한다.
연습할 때마다 한 가지씩 새롭게 배워간다.
온라인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이 시대의 복음 전파의 도구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통해서라도
이 중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도구를 통해서 성도들이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도울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아내가 유치원 방과후 교사를 하고 있는데
개학이 미뤄지면서 무기한 무급휴직이 되었다.
모두가 어려운 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이 상황에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래서 이 시대를 분별하고 견딜 뿐 아니라
오히려 이 시대에 더 신앙이 성숙해가는
나의 성도들과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윤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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