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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901 추천 수 0 2020.04.15 1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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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6:31-3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31-34.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먼저 대접을 하라고 그랬거든. 먼저 대접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있어요? 대접 받고 싶다? 먼저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그 말이요. 그런데 대접을 사람들은 주로 받는 쪽을 좋아하니까?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다면 사람도 사람 나름인데 어떤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싶으냐?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어떤 직위의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대접을 해주면 좋겠느냐 그 말이요. 대접받고 싶은 거. 사람이란 속에 그게 있어야지? 대접하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고 그러면 관계성은 안 이루어져요. 나쁜 것을 주고 나쁜 것을 받으면 나쁜 관계가 이뤄지는데, 최고의 좋은 것을 주고 좋은 것을 받는다면 최고의 좋은 관계가 이뤄지는 거 아니요? 맞잖아요?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고 갔습니까? 어떤 대접을 받고 갔습니까? 받는 위주였습니까, 주는 위주였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주시려고 왔어요, 받고 싶어서 왔어요? 주시려고 왔습니까? 그럼 어떤 대접을 주고 갔습니까, 하고 갔습니까? 그럼 문제해답은 이미 나와 있지요? 그렇지요?

 

우리는 어떤 대접을 해야 훗날에 어떤 대접을 받을까? 먼저 대접하는 입장에 있어야 훗날에 그 대접이 나한테 돌아올 텐데. 예수님은 그거 다 말씀하고 계시는 거거든요. 대접을 받는다면 어떤 종류의 대접을 받고 싶으냐? 영적인 것이냐, 육적인 것이냐? 영적인 면으로 대접을 받고 싶으냐, 육적인 것으로 받고 싶으냐? 예수님의 것은, 예수님은 영 위주 영인을 위해서 대접을 하고 갔습니까, 육적인 것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까? 못 받고 갔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이게 지금 이 말씀이 인간의 어떤 도덕성적인 그런 개념을 가지고 그런 소원성을 가지고 많이 풀 거예요. 틀림없어. 이 성경이 그거냐 그 말이요. 일반사람들 대접할 줄도 모르고 대접받을 줄도 모르고 그런 겁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 땅에서 다 이게 해야 되는데 할 수 있는 건데 알면서도 안 한다거나 못한다거나 그걸 말씀하는 게 아니에요. 순전히 하늘의 것을 하늘의 뜻을 가지고 인간의 것을 갖고 와서 깊은 것을 캐내도록 말씀하시는 거라 그 말이요.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면에서는 아무 것도 못 받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으로 생각한다면 육적인 것은 자동적으로 쓰임이 되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들어 놓으신 것은 영적인 것을 주고 싶어서 이 세상물질을 만들어서 표면적으로 껍데기로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섬겨라하는 것도 거기에는 시간적 활동적 또는 그 물질적 봉사적 이런 게 다 들어있는 거는 하나님께서 다 만들어 놓으시고 너에게 더 최고의 것을 주마이렇게 하나님이 다 준비를 해 놨어요.

 

마음이 가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물질은 자동적으로 쓰임이 되잖아요? 그건 자동화지요? 자동화 되는 것을 법칙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요. 마음이 문제지요. 일반적으로. 신앙적으로 보면 영적인 마음 영인성장을 위해서. 대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닫아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고통스러워요. 마음이 가난하다. 없어서 가난한 것도 있고 닫혀서 없는 것처럼 닫힌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은 참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고, 참 사람 사는 맛이 안 나겠구나. 그러니 이웃이 없어. 친구가 없어. 성도들끼리도 교제도 없어. 하나님인들 좋아하겠냐?

 

많은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관계성을 가지라고 만들어 놓았는데 물질도 줬는데 관계성도 못 가지고, 그럼 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요? 세상사람들의 혜택을 입으면서 어떻게 살아요? 자기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들이 왜 그 모양이냐? 왜 그래. 써먹지 못할 공부는 왜 해. 안 그래요?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 정서적인 면에 문제가 있다. 이거. 귀신은 공부 잘한다고 해서 안 들어가는 그거 아니에요. 사람이 정서적인 면에 문제가 있으면 그건 귀신의 바람을 금방 타버려.

 

대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거지로 있으면 무시하는 대접을 받게 되고, 온전한 성품을 갖고 있으면 존경의 대접을 받습니다. 맞습니까? 분별을 못하고 있으면 무식한 대접을 받지요, 어리석다고 대접을 받고,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나서면 건방지다고 대접을 받고, 자기 분수를 아는 겸손한 자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으냐? 어린아이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냐? 어른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냐? 도둑들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냐? 신분이 높은 분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냐? 내가 어떻게 돼 있어야 고차원적인 질 높은 대접을 받겠느냐? 세상 이방인들에게 세상적인 대접을 받고 싶은지, 예수님에게 천국에 대한 대접을 받고 싶은지? 어떤 대접을 받고 싶어요? 자기가 질이 낮으면 질 낮은 대접을 받고 싶다고 그럴 거고요. 분명히. 질이 낮은지 높은지 그것도 모르는 거지요. 질이 높은 사람이라야 질 높은 대접을 받고 싶은 거지. , 임시성적 대접보다 영원히 가는 대접. 그렇다면 내가 먼저 대접을 해야 된다. 먼저 대접을 해라.

 

어떤 대접을 하고 싶어요? 그게 또 있거든? ‘그 사람이 이게 깨닫지를 못해서 깨닫지를 못해서 그런 거냐그런 게 있고요, 남에게 대접하는 것도. 없어서 가난해서 대접을 그 정도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고요, 몰라서 그런 거. 있어도 사람이 모르면 남에게 대접하는 것이 질이 아주 낮아요. 있어도 모르면 그래요. 주로 그런 사람은 욕심이 많이 들어있어. 또 마음이 없어서. 또 너무 인색해가지고 이제 또 질 낮은 대접하는 이런 것도 있고. 사람의 상태가 여러 가지야. 이유야 없어. 사람마다의 사는 분수가 있어요. 생활정도의 분수 그런 것을 잘 생각을 해라. 그리고 그 뭐요? 부모들에게 대접하는 것.

 

대접이 뭐요? ‘내가 대접합니다하고 하는 겁니까? 최고의 좋은 대접을, 하나를 드리더라도 최고로 좋은 거. 그런 마음을 가져라 그 말이요. 그래야 참 복을 받는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하기야 자기 몸에 전염병이 있거들랑 주지도 말고. 병 있는 사람은 주지 말아요. 혼자 살아요. 남에게 병 옮기지 말고, 전염하게 하지 말고. 그 목사님들 모임에도 그렇고 우리 여기도 각자 도시락 가만 생각해 보니까 처음에는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서로 막 그랬거든. 큰 그릇에 국을 이렇게 해서 같이 뜨기도 하고. 그저 조금 건강에 신경을 쓴다면 국자 갖다놓고 작은 그릇 줘가지고 퍼먹으라고 그러고.

 

가만 보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뭐 A형 간염 B형 간염도 있다며? C형 간염은 없나? 그건 모르겠어. 어쨌든 전염성을 가진 그런 게 있어요. 믿음으로 하면 뭐 하나도 안 걸리면 좋겠는데 다 믿음으로 하느냐 그 말이요. 그래서 감염적인 게 있다. 많은 사람 모이는데 특히 그렇다. 그러니까 식당에 있는 사람은 늘 삶아야 되고 소독을 해야 되고 그런 게 있단 말이요. 가만 봐서 , 이거 안 되겠다. 도시락을 각자 싸가지고 오도록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으냐 그 말이요. 좋지요? 좋아요. 그리고 전염성이 있거들랑 남에게 손을 주지도 말고 자기 스스로 그건 알아서 해야지 뭐. 받는 사람이 너 병 있어, 없어?’ 하고 물을 수도 없는 거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대접을 하고 싶어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아무 것도 대접을 못합니다. 그렇지요? 교회성도의 세계는 주거니 받거니 대접이 있는 세계인데 서로가 최고의 것으로 높이는 대접이더라. 높이는 대접을 받고도 그 가치를 모르고 무시하고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높이는 대접을 못하게 되니 결국 그 사람은 질 낮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구나. ‘대접을 꼭 받는다그렇게 손으로 주고받는다고 그렇게 생각 말고 사람을 대우한다는 말 한 마디에 그게 다 들어있단 말이요. 그러면서 그 사람은 높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돼버립니다.

 

사람이란 마음을 다 가졌는 고로 주면 좋아하고 최고의 값비싼 것을 주면 더 좋아하지요? 사람이란 마음이 그런 게 다 있단 말이요.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실천을 못하고 인인관계 연관관계에서 구원을 맺지 못하고 가는 수밖에 없구나. 혼자 예수 믿고 혼자 먹고 마시고 살다가 혼자 죽는구나. 그 뭐요? 산천초목을 보면서도 짐승의 세계를 보면서도 자기 존재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번식시켜놓고 가지 않던가? 안 그래요? 그런데 이게 번식상태를 가만 보면 가시나무는 왜 그렇게 번식을 더 잘하지요? ? , 온 밭이 가시나무이면 그 어떻게 취급을 해야 돼요? 불살라 버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면 선을 심고 의를 심고, 의와 선이 옳은 것이 확정되어 가도록 이웃에다 심고 형제에다 심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심고. 그게 대접이에요. 최고의 좋은 거. 제일 좋은 거. 최고의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물질을 사용해야 관계성을 가질 수 있지. 차타고 가면서 껌 하나가 건너가도 어디 가십니까하고 대화가 됩니까? 껌 하나 줘도? 우리 인간은 연관구원을 맺어라 그 말이요. 그래야 그게 세상 사는 게 재미가 있지.

 

여행을 할 때 혼자 가는 게 재미있습니까? 고독을 잘잘 씹어가면서? 혼자 가는 게 재밌어요? 다른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 대화를 하고 먼 길도 먼 줄 모르고 빨리 갈 수도 있고. 혼자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 모르긴 해도 앞으로 치매현상을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아. 이러다가 내가 치매 걸릴라. 허허. 속이 항상 어두워가지고 밝지를 못하고 치매라는 벌레가 들어가서 뇌를 쑤셔놓고 집도 못 찾아오고 사람도 못 알아보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되나?

 

, 요즘 저기 찬송가 테이프도 많이 나왔잖아요? 틀어놓고 들으면서 자기도 같이 따라 부르고. 사람이 노래가 음악이 있어야지. 희로애락의 그 오각의 오감성의 느낌이 있잖아요? 그거 표현 못하면 뭐요? 짐승하고 다른 게 뭔지? 자기가 조금만 서운하면 그만 싹 오그라지고. 나팔꽃이 해만 비취면 싹 오그라진 것처럼. 해가 비취면 확 피면 얼마나 아름다워요? 근데 해만 돋으면 싹 오그라져요. 어떻게 야무지게 오그라지는 건지 한 번 오그라지면 못 펴요. 그걸로 떨어지는 거지. 나팔꽃이 해뜨기 전에는 그래요. 밤에는 뭐 내 세상이라고 나팔 밤새도록 불어. 사람 없는 데서 밤새도록 불어. 해만 비취면 싹 오그라져요.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연관관계성이 있기 때문에.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자기가 병들면 병원에 빨리 달려가야 될 것 아니요? 그럼 병원의 의사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거?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인인관계 바로 맺지 못하고 항상 마음속에 마귀의 시험이 걸려 있어가지고 전혀 은혜를 못 받는 겁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기쁘잖아요? 마음이 기쁘면 이게 나오지요. 속에 있는 게 바깥으로 나오지요? 바깥으로 나오게 하려고,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손발도 만들어놓고 눈 코 입 다 만들어 놓은 거요. 속에 든 건 바깥으로 나와요. 속에 병들면 피부에 뭐가 나오고 그러지요? 맞잖아요?

 

나는 대접을 못하고 안 하면서 대접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닌지?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신령한 최고의 것으로 우리에게 대접을 다 하고 갔었습니다. 우리도 대접을 할 자들입니다. 최고의 것으로. 그리고 그 날에 가서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든지 대접을 하든지 여기는 사람의 신분과 성품을 잘 모르고 한다면 큰 실수를 당하거나 또는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지혜가 필요하지요. 남에게 고상한 인격적 대접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내가 남에게 고상한 인격적 대접을 해야 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높여주는 대접을 해야 된다. 높여주는 대접. 우리가 만들어진 것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됐으니 그 분에게 영광 돌림이 마땅하지요.

 

우리 부모님들, 어린 아기 대우 잘 해야 돼요. 대접 잘 해야 돼요. 무슨 말이냐? 훗날을 생각을 해서 하나님의 최고의 말씀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대해라. 그 정신을 가지고 대해라. 그러면 자녀들이 그 정신으로 살아날 거 아니요? 최고의 고차원적인 정신으로 올라갈 거 아니요? 사람이 돼질 거 아니냐 그 말이요. 그러면 훗날에 부모가 늙어질 때에 그 아이는 커서 부모에게 대접을 잘 할 거 아니요? 안 그래요? 그런데 어린아이들에게 키 높이 교육이라고 어린아이에게 , 그렇습니까? 잡수시렵니까?’ 뭐 그러면 어린아이에게 그게 최고의 대접인줄 알아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그렇게 해서 자라나면 어떻게 되겠어? 조금만 커 봐요. 부모를 막 부려먹으려고 그러지. 부모를 아나? 모르지요. 어른을 몰라봐요.

 

개는 개만큼 길러야지. 개는 방에 키우는 게 아니고 개는 마당에서 키우는 거지요. 땅에서 키우는 거. 이불 위에서 키우면 어떻게 되겠어? 어느 집사님 집에 가봤더니, 권사인가? 개를 방에서 키우는데 내가 가는 날인데 개가 그 날에 그 권사 베개에다가 똥을 한 무더기 싸놨어. 참 이게 내가 볼 때는 정상이 아니다. ‘이거 귀신들렸구나.’ 그러니 방안에 냄새 안 나요? 엄마들이 애기 젖만 먹여도 젖비린내가 나는데 개가 그 방안에서 살면서 개 냄새 안 나요? 속으로 요건 개털이 폐 속으로 들어가서 숨을 막아야 된다.’ 저는 그런 저주는 잘 해요. 그런 병들게 하고 있거든. 얼마나 냄새나고 추잡하고 더럽고 돌아다니면서 오줌을 싸는지? 정말 더러워. 정말.

 

개 좋아하는 사람은 이거 조심해야 돼요. 사람보다 더 좋아해요? 요건 개 귀신 들리기 쉽습니다. 명심하세요. 그 개 없으면 밤에 잠을 못 잘 거요. 개 귀신 들리기 쉬워. 그러니까 사람보다 개를 더 사랑하니까 개만 건드렸다 그러면 사람에게 신경질을 확 부리니 그게 정상이냐 그 말이요. 그게 정상이냐? 귀신 들리는 것은 정신의 작용이요.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그러니까 성도들끼리만 사랑하지 말고 죄인까지 사랑해보라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사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죄인은 첫째는 선악과 먹은 죄인, 두 번째는 이룰구원을 알지 못하고 주를 믿는 죄인. 이룰구원을 알지 못한다면 그 면에서 죄인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하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귀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죄인을 어떻게 하는 것이 귀중히 여기는 것일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형 대행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우리를 살려주셨고 우리를 귀중히 여겨주었습니다. 귀중히 여겼으니까 그와 같은 사역이 나오지요. 왜 그렇게 하셨나? 그것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구원목적이 있기 때문이요. 구원목적이 없으면 안 그러시지요? 우리 역시 죄인들을 사랑해야 함은 그들도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음을 알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교훈을 주어 참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죄인들을 사랑함이요 귀중히 여김이 되는 겁니다. 이해됐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참 사랑은 아닙니다.

 

참 사랑은 인간을 존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 그래서 신령천국의 누림이 전제가 돼 있다는 것. 그래서 전도의 방편 그리고 교훈의 방편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니 형제를 얻는 것이고, 그렇게 되니 사랑 충만자 영능의 실력이 된다는 것이지요. , 그런 유익과 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 괜히 하는 말씀은 아니요.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원수를 사랑한다 함은 주님의 사랑을 모르면 원수사랑은 못합니다. 안 됩니다. 할 수 없다 그 말이요. 선대한다는 것은 좋게 대해준다 그 말이지요? 근데 죄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이것은 세상 일반적인 선대이더라. 그러나 너희들은 그런 선대는 아니라 그 말이지요? 안 믿는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희는 그런 선대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예가 있습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까? 그런 격언이 있습니까? 내가 선하게 대해주면 상대도 나에게 선하게 대해준다 그 말이지요? 좋은 말로 하면 저 쪽에서도 좋은 말이 나온다 그 말이겠지요? 그것은 세상 보통 상식이요. 세상에서 말하는 보통 상식. 그렇게 하는 것은 누군들 못하겠느냐 그 말이요. 그것은 특별한 것도 아니니 칭찬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칭찬받을 선대는 무엇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요. 이것이 칭찬받을 선대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누구로부터 칭찬인가? 사람들의 칭찬을 말하는 거냐, 아니면 하나님의 칭찬을 말하는 거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원수사랑은 하나님의 법으로 하나님의 아가페로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가페가 아니면 원수사랑은 할 수가 없다. 안 되는 거다. 인간 대 인간사랑은 또는 원수사랑은 그 사랑의 결과의 효력은 없습니다. 인간 대 인간원수가 됐는데 여기는 아무리 사랑해도 효력은 없다. 효력이 있다면 잠깐 이 세상이겠지. 그러나 아가페로 이 원수를 사랑한 자는 자기에게 또는 어쩜 타에게도 그 효력은 있는 거다. 영원히 있는 거다.

 

원수사랑 해 보았습니까? 그러면 원수를 사랑한다 할 때 유교에서 부모를 사랑하라. 공경하라있잖아요? 일반적으로 부모공경 또는 부모사랑은 어떻게 하는 거지요? 일반적으로 일반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겁니까, 부모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겁니까? 부모가 좋아하는 대로. 그러니까 술 좋아하면 술 사드리는 게 공경이지요? 그 술 먹고 어디 길바닥에서 어떻게 되든지. 담배 좋아하면 또 담배 사드리는 거고. 그렇지요? 그러면 이제 시골 부모님들은 이웃집에 가서 우리 아들이 사왔다고 외제담배 한 번 피워보라 그러고 맛있다 그러고. 외제담배가 맛있나? 한국담배는 인삼 들어갔지요?

 

그래, 그런 것처럼 원수사랑을 한다면 원수의 마음에 맞도록 하는 것이 원수 사랑인가, 아니면 인간 내 마음에 맞도록 기준을 세우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원수사랑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하는 것이 이게 원수사랑이냐? 누구에게 맞추어서 하는 것이 원수에게 선대 즉, 잘 대해주는 것이냐 그 말이요? 누구의 것을 가지고 사랑을 하는 것이 이제 잘 대해주고 사랑하는 거냐 그 말이요? 자기 것? 상대 것? 하나님 것? 고렇게들 생각해 봤어요?

 

교회에서 원수사랑 원수사랑얼마나 부르짖습니까? 근데 어떤 원수사랑을 강조했지요? 맞아죽으라 그러지. 맞잖아요? ‘맞아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 미워하지 마라.’ 보통 그러잖아요? 안 그래요? 왜 맞아? 난 안 맞아 죽을래. 피해서 도망가지 뭐하려고 왜 어떤 몸인데. 살아서 빨리 복음을 전해줘야지. 막다른 골목은 있게 되지요. 예수 믿는다고 원수사랑 한다고 괜히 맞아주는 거 사람 우스워요. 왜 도망가야 되느냐? 내가 맞아죽으면 저 사람이 감옥가거든. 그러니까 저 사람을 감옥 안 가게 하기 위해서 내가 도망가야지. 맞잖아요? 그 해석 좋잖아요?

 

그게 누구 방법이냐? 요게 다윗의 방법이거든. 다윗을 잡으려고 얼마나 풀어서 했느냐? 근데 다윗은 잘 도망을 다녔거든. 죽이려면 죽일 수 있어요. 이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잖아요? 근데 안 죽였잖아요. 사울 왕이 다윗 자기를 죽이게 되면 이 다윗의 입장에서,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그렇게 생각 가지고 천국에 가서 그 때 그 상황 마음을 말하면 틀림이 없을 거라. 그러니까 이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윗이 도망을 다녔다. 그 참 아주 이게 참 최고의 고상한 거요. 다윗이 사울 왕을 또 잘 대해준 거요. 그거. 이 하나님의 참 아가페를 모르면 그런 해석은 안 나와요. 그런 마음을 우리가 늘 가지고 있으면 참 좋습니다. 싸움은 덜 일어날 거고 그만큼 편할 거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선대를 하셨느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비뚤어지고 잘못된 것도 안 가르쳐 주시고 썩고 불타질 것을 욕심내고 있다가 심판 받고 멸망 받아야 할 우리를 그냥 가만히 보고만 계셨든가 그 말이요. 예수님이? 우리가 욕심 부리는 거 다 들어주시고 그렇게 대해주심이 잘 대해주심인가? 베드로가 주님을 생각하고 사랑해서 말한 끝에 무슨 말 했지요?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붙잡혀서 죽는다. 그리고 삼 일 후에 살아난다그러니까 살아나는 그건 얼른 생각이 안 나고 붙잡혀서 죽는다고 하는 그것부터 얼른 생각나잖아요. 그러니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얼마나 간절한 마음입니까? 그런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잘 대해줬습니까? 주님이 베드로를? 잘 안 대해준 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 잘 대해준 거요. 아주 자극제로. 사단의 짓이고.

 

또 밤에 풍랑이 일어나서 고생을 한 것인데도 제자들을 향하여 밤에 건너편으로 가라.’ 이것이 제자들에게 좋게 대해주심인가? 빤하게 알면서. 벳새다광야에서 떡 나눠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그 말이요. 떡 먹여주고 물고기 먹여주고 그것만 좋게 여기는 겁니까? 가룟유다에게 마귀라그러고,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했다하시는 이것도 좋게 대해주는 겁니까? 나쁘게 대해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는 거지. 그 말하는 것도 최고의 좋게 대해주는 거다. 회개할 기회를 주는 거다. 어떻게 보면. 말하자면 결과가 좋으라고 하신 말씀입니까, 결과가 나빠지라고 하신 말씀입니까? 좋으라고. 그러니까 좋게 대해주심이다. 근데 우리 인간은 그걸 생각을 잘 못할 거라.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주님기준을 생각을 하면서 말하는 자도 그래야 되겠고 듣는 자도 그러면 아, 이게 참 은혜가 되는 건데 자칫 말하는 사람도 상대를 미워라그러고 듣는 사람도 네가 내 말했지.’ 그렇게 하면 은혜가 어떻게 돼요?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했든 어떻게 대해줬던 결과가 좋으라고 영원히 좋으라고 하신 겁니다. 주님이 타락된 인간의 기준대로 잘 대해 주신 거냐? 만약의 경우에 타락된 원수의 기준대로 잘 대해주었다면 영원히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없지 않는가?

 

, 선대는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선대를 한다 그 말이요. 그래서 잘 대해준다 함은 일반적 마음이 아닌 영원 궁극적 구원에 뜻을 품은 마음을 가지고 대함이 잘 대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원 궁극적 마음 정신 교훈이 들어있는 거다.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충분하게 이해가 돼요?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받기를 바라지 말고 그냥 주란다. 그러면 칭찬이 있다고 합니다. 없으면 못 주지만 있으면 주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줘놓고 큰 상을 받을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주어야 큰 상이 있겠느냐 그 말이요. 물질은 주는 목적입니까, 받는 목적입니까? 그러면 진리생명의 말씀은 주는 목적입니까, 받는 목적입니까?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물질은 천국복음 운동에 방편적으로 지혜롭게 잘 쓸 것이고, 큰 상은 천국복음 운동에 관한 상이더라. 크다. 큰 상이다. ‘큰 소리다그럴 때는 아, 이건 영적 면이구나. 영적 면. 근데 영적 면이 아주 큰데 그게 안 보여.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무슨 말이냐? 받는 위주와 목적으로만 살지 말고, 목회를 생계수단으로 삼지 말고 생명의 말씀을 주는 목적으로 살아라 그 말이요. 이것을 물질적 목적으로만 말하게 되면 이것은 육운동이 되고 말아요. 세상운동이 돼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게으르고 악한 자들은 이것을 역이용하여 하나님 앞에 더 악한 자로 길러놓는 꼴이 되고 만다. 사회적으로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주는 자로 살라고 하시는데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달라는 자에게 주지 못하고, 주고 싶어도 못 줍니다. 맞지요? 큰 상을 받으려면 생명의 말씀이 솟는 물처럼 생산이 돼 나와야 합니다. 이 신령한 것은 위로부터 주어지지요? 만일 가치 없다고 여기는 자는 자기 고통 심판으로 주어질 것이고, 자기 목숨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제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 그 말이요. 이해됩니까? 근데 이때까지 말씀드렸지만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지요?

 

어떻게 실천 가능해요, 전혀 불가능해요? 인간을 기준으로 세워놓으면 아무 것도 안 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준을 세워놓고 하면 그건 되는 거요. 그런데 게을러서 못 받고 알지를 못해서 못 주고. 그럼 어떻게 할 거요? 물질은 없다고 못 주고 예수 믿어도 깨달은 것이 없어서 못주고. 그럼 예수 믿고 산 보람이 뭐요? 인간의 가치가 있다는 게 뭐요? 안 그래요? 이 말씀은 자꾸 주라 주라그러고 있는데 뭘 줄 거요? 뭐가 있어서 줄 거요? 어떻게 인생을 그렇게 살아요? 무슨 가치가 있어. 사람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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