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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과 삼십 사이

마가복음 크리스............... 조회 수 727 추천 수 0 2020.04.27 00: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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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1-11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 


삼백과 삼십 사이

(14:1-1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두개의 숫자가 나와요. 그것은 삼백이라는 숫자와 그리고 삼십이라는 숫자가 계속 우리에게서 생각 날 거예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어쩌면 삼백삼십이라는 숫자 사이에, 오늘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였죠. 한 여인이 다가와요. 그리고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트려 예수님에 머리에 부었어요.(3)

 

성경은 그 향유의 값어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삼백데나리온, 그러니까 현 시세로 말하면, 3천만 원 정도 되는 값어치를 이야기 해 주고 있어요. 여러분, 요즘 3천만 원짜리 향수가 있을까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아주 귀한 것 중에 귀한 것을 드렸다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숫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 그 숫자를 기억나게 하지요. 우리가 읽은 10절과 11절을 보면, 가롯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 제사장들에게 가요. 그들이 넘겨줄 것을 기뻐하고, 가롯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을 하지요. 그 숫자가 얼마라구요? 삼십!!

 

여러분, 그렇다면 은 삼십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은 삼십의 가치는 얼마정도 될까?

 

성경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있어요. 출애굽기 2132절에 보시면, ‘소가 어떤 집에 종을 머리로 받아요. 그래서 그 종이 죽어요. 그 소의 주인은, 죽은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주라고 해요. 그리고 그 소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지요. 은 삼십은 그 당시 종(노예)를 사고파는 가치예요.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할 정도의, ’가장 낮은 가치‘! 종의 몸값 정도로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말해 주지요. 소에 받쳐 죽은 값이 은 삼십이고, 죽은 사람 목숨이 삼십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이후 500여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예수님을 값으로 환산했어요. 소 한 마리 값과 비교해서 예수님의 몸값을 정한 거지요. 그리고 가롯유다에게 바로 그 가격!!, 은 삼십을 제시하게 된 거지요. 그렇게 그 가격을 제시할 때,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아요.

여러분,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을 쓴 저자, 마가의 의도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해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부은 여인과,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가롯유다를 오늘 성경저자는 암암리에 대비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무엇인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여기에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어떤 이에게는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기에도 부족한 존재이구요. 어떤 이에게는 예수님은 몇 푼어치의 돈벌이 수단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요.

 

다시 말하면, 어떤 이에게 예수님은 가장 소중한 존재로 섬김을 받는 대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끝까지 자신을 위한 이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죠. 어떤 이에게는 예수님은 자신을 살리신 생명의 주인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예수님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안에도 분명 있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는 이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는 거예요. 때로는 귀중한 향유를 깨트려 부어 드리는 것처럼, 소중하다고 하는 가치를 깨트려서, 드리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이용당해야 하고, 나를 위해서 그 가치가 책정 되어 팔려야 한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사실 우리는 늘 이 두 사이에 있어요. 어느 날, 그리고 어는 순간, 우리의 고백이, 예수님 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는 것이고, 또 어느 날,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채우기 위해,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이용당하는, 그런 가치로만 평가된다는 것이죠.

 

내 안에 가롯유다의 마음이 있고, 내 안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마음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늘 우리 안에 있는 이 두 가지를 놓고 싸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여인의 마음을 보아야 해요. 그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하고, 그 마음의 중심이 변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이용하는 삼십의 가롯유다가 우리 마음에서 살아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여인이 예수님에게 값비싼 향유를 부어 드렸는데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은 이해가 되세요?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뭔가는 모르지만 하여튼, 너무 예수님께 감사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할 수 있어요. 뭔가 모르지만, 3천만 원의 가치를 예수님에게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는, 뭔가의 감사함이 그녀에게 있었겠구나! 우리는 생각하게 되지요.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마음이 답답하고, 미안하고, 섭섭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의 표출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으로도 부족한 뭔가의 감사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여인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음을 기뻐하신 것 같아요. 예수님이 300데나리온 돈이 비싸서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마음 때문에 기뻐하셨어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어떻게 해요? ’기억하리라말씀하세요.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셨어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기독교는요. ’감사의 종교라고 말을 해요. ’사랑의 종교라고도 하는데, 사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말하고요. 그 한량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표현하는 마음이 감사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감사의 종교예요.

 

여러분,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주어,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아멘. 그래서 그 은혜가 내 안에 믿어져서 감사하지요. 또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선택하셔서, 예수가 믿어지는 은혜를 주신 것을 믿습니까? 아멘. 그 은혜가 내 안에 믿어져서 감사하지요. 또 죽어서 나를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까? 아멘. 그 은혜가 내 안에 믿어지기 때문에, 감사이지요.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에 대한 감사의 삶이 우리이고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감사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러분, 정말 그 마음으로 사시나요? 그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시나요? 정말 내 안에 감사한 그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 생각도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거예요. 정말, 그 사랑에 감사함이 있다면, 여러분은 오늘 향유를 부은 여인이 되어, 그 마음으로 사는 것이죠.

 

예전에 어떤 집사님이 신장 기증을 받았어요. 살았지요. 그런데, 그 신장을 기증하신 분이 자기 이름을 알리지 말고, 익명으로 해 달라고 했대요. 그 집사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그분을 꼭 찾고 싶다고, 만나보고 싶다 했는데, 결국은 만나지 못했대요.

 

그 집사님 평생 기도에는 신장을 기증한 분이 있었어요. 얼굴도 모르고,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신장을 기부한 그 분을 위해 늘 기도하고, 생명을 연장 받은 감사함으로, 늘 베풀며 사는 것이죠.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장기 중에 하나를 이식수술 받았다면요. 저와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요? 장기를 기증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이식을 해 주었다면, 자나 깨나 평생 감사하며 살지 않을까요?

 

우리는 걸핏하면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를 이야기해요. 그런데 정말 그 은혜를 알고 살까?‘ 그 생각을 일주동안 해 보았어요. 정말 그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이 고백을 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저도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위하여 정말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이 되어야 은혜를 아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것이 우리 삶에 진심으로 나와야 될 줄 믿습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이 참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셨어요. 식당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하셨어요. 교회 식당에만 가면, 늘 그곳에 계셨구요. 늘 그 권사님에게는 예배를 드리는 것 외에는, 교회에서 뵈면, 늘 앞치마를 입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권사님~~ 권사님은 남들처럼, 예쁘게 옷 입고 오셔서 예배만 드리고 가고 싶지 않으세요?” 라고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참 근사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평생 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말씀이에요.

 

목사님 제가 진 빚이 많아요. 아직도 갚으려면 멀었어요?” ’아니 권사님이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데...~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회 와서 봉사하시는 구나!“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저 하나님께 빚졌잖아요. 나같이 못난 것, 예수 믿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드릴 것 밖에 없어요. 그래서 교회 와서 앞치마 두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라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빚진 마음으로, 빚을 갚기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드리는 구나!! 저는 그 사랑에 감사해서, 마음껏 향유옥합을 깨트려 드리는 그 여인의 마음이, 그 권사님들을 통해 보이는 것 같았어요. ”~ 그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그 마음으로 헌신하고, 드리는 구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여러분,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계속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300백 데나리온이 되는 향유 옥합을 깨트려 드리는 여인의 마음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지요. ”저는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 그 마음으로 사는 것이, 삼백의 가치를 드린, 여인의 마음으로 사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이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이, 온전한 마음과 풍성한 감사가, 더욱 회복되기를 소망하며,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이 감사가 회복되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우리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신날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우리를 흔드는 삼십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삼십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가롯유다의 삼십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해요. 사실 우리는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 자나요.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죄의 용서이구, 죄에서 해방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구원을 원하지만, 가만히 보면, 죄에서 구원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우리의 구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의 구원이구요. 돈 좀 벌게 해 주십시오.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매사에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자녀들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시면 사업이 잘 되리라! 어쩌면 이런 현세의 복에 구원이 더 많지 않나요?

 

미안한 얘기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인데, 이용하려고만 하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 예수님을 통해서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요. 대부분 감사와 희생이 아니라, 뭔가 잘 되기 위해, 예수님을 찾지 않나요? 물론 이런 것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만, 그것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매어 있으면, 어디까지 가느냐하면, 사업이 잘되면 하나님께 축복받은 것 같고, 아프면 내가 하나님께 뭔가 잘 못해서 그런 것 같고, 자녀들이 안 되면 내가 하나님께 덜 드려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진정 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떤 사람은요 교회가 기업이래요. 그래서 꼭 자식에게 물려 줘야 한대요. 어떤 사람은 교회 건물이 예수님보다 더 좋대요. 우리 교회는 임대 보증금이 35백 만원이지요. 그런데 100, 200억 단위로 뛰면, 예수님 보다 더 사랑스러워 지는 가봐요. 그래서 그 교회 건물을 늘 엎고 다니고 싶대요. 그래서 예수님이 교회에 방해가 되면, 예수님도 제거 대상이 된대요.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삼십의 가치로 놓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나를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고 사는 사람이 바로 삼십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고, 가롯 유다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지요. 아주 큰 것처럼 보여도, 삼십밖에 되지 않아요.

 

그것이 우리 안에도 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삼십을 가졌던 가롯유다의 마지막은 창자가 터져 나와 죽었어요. 그 마지막은 비참한 영원한 죽음이지요.

 

여러분, 우리 안에 이 마음을 늘 생각하셔야, 지울 수 있어요. 이 마음을 인정하고 있어야, 벗어날 수 있어요. 삼백의 마음으로 살 것인가? 삼십의 마음으로 살 것인가? 삼백의 마음이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그것을 복으로 여겨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삼백과 삼십 사이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마음은 삼백의 마음이지만, 내 안에 저 깊숙한 곳에는 늘 삼십의 마음, 가롯유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정말 감사함이 있습니까? 그 삼십의 마음을 날마다 내 안에서 눌러, 삼백의 감사의 마음으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가 감사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도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받칩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삼백과 삼십 사이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마음에 늘 감사함이 넘쳐, 그 감사함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것을 하나님을 복으로 여겨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은혜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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