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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강아지와 호랑이
요한일서 2:1~11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모르고, 상대에 대하여 무지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경험이 쌓이면 하룻강아지는 꼬리를 내리고 줄행랑을 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자신이 호랑이보다 센 줄 아는 강아지들이 있고, 하룻강아지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는 못난 호랑이도 있습니다. 돈키호테처럼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거나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사고에 이런 현상이 스며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일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물론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세상의 겪고 있는 갈등과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힌 이들의 신앙과 사고는 대개 이원론에 기반하는 맹목적 신앙을 소유하여 무지하고 무책임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자신을 과소평가하여 선한 의지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졸장부가 되기도 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되지만 비굴한 것도 잘못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빛’과 ‘어둠’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이 충돌하는데 요한은 ‘하나님과 사귐’이 하나님 다스림 영역이고 그것이 ‘빛’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빛에 거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실제는 어둠에 갇혀있는 경우가 상당함을 지적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요일 2:9 새번역).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요일 2:11 새번역).
노예 문서가 소각되었는데 여전히 자신을 종이라고 생각하는 우매한 사람들이 있고, 태평양전쟁이 끝났는데도 아직도 무인도 동굴에 숨어서 살상을 도모하는 패잔병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냉전 체제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이념으로 전선을 형성하여 증오와 대결을 획책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의와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 시민답게 의연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호랑이는 호랑이다워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워야 합니다.
영원을 부정하고 절대자를 비웃는 패악한 시대에도 하나님의 진리와 평강을 변함없이 추구하며 빛으로 살고자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사랑의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빛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찬송 : 455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https://www.youtube.com/watch?v=z3XkvZOQZOE
2022. 12. 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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