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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눈을 뜨면 30년을 함께 한 아내의 미소가 있는 하루는 행복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습관처럼 듣는 아침 찬송을 몇 곡 들으면서 시작되는 하루는
새로운 감동이 됩니다.
아침에 읽는 성경은 보이지 않은 하루의 일과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줍니다.
고향을 느끼게 하는 된장찌개와 김치 하나로 아침 식사를 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 감사하고,
몇 몇 가정, 곧 목사의 위로가 필요한 작은 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시작하는 하루는
새로운 행복의 시작입니다.
어느 하루도 목사 됨의 행복을 느끼지 않은 날이 없이 목양의 세월 23년은
그렇게 오늘도 또 하루의 행복이 됩니다.
가난했었기에 오늘의 넉넉지 못함도 넉넉함이 되고,
병약했기에 오늘의 불편한 몸도 강건함의 축복으로 느껴지며,
외로웠기에 때로는 혼자라는 허전함도 늘 누군지 모르지만 함께 라는 기쁨이 되고,
수 없이 지쳐 쓰러진 날이 있었기에 오늘의 힘든 시간도 또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며,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 가운데서 목놓아 울어도 울어도 찾아와 위로하는 이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오늘도 외로움이 아닌 사랑으로 시작되는 하루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마음의 불행을 떨쳐 버릴 수 없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소유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예수님 한 분으로 남은 생애를 오직 감동으로 살았던 것처럼 행복한
하루는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한 것임을 새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정신 없이 달음질 해 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조금만 더
단순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한번 더 돌아보는 삶의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풍경은 흘러간다, 그림을 볼 시간이 없다.
소리가 흐른다, 음악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말이 흘러나온다, 대화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인간성은 사라진다."
그렇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살아감에서 인간성의 메마름보다 절박한 불행은 없습니다.
느낌이 없고, 감동이 없고, 그래서 행복을 모르는 삶이라면
이미 그 생활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풍경에서 그림을 볼 수 있고,
흐르는 소리에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너와 나의 대화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함에서 경험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단순화시키는 것입니다.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더 가지려는 복잡함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복잡함, 곧 소유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부자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내게 있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더 가지려는 복잡함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단순함을 가질 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빨리 가려하지 말고 조금은 천천히 가는 삶의 행보,
그러면 미처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때 감동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몸부림하는 복잡함에서 조금은 일을 줄이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30분이라도 더 가질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할 때 인간관계는 훨씬 아름다움으로 엮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하루의 행복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5-17)
기도를 마치고 습관처럼 듣는 아침 찬송을 몇 곡 들으면서 시작되는 하루는
새로운 감동이 됩니다.
아침에 읽는 성경은 보이지 않은 하루의 일과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줍니다.
고향을 느끼게 하는 된장찌개와 김치 하나로 아침 식사를 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 감사하고,
몇 몇 가정, 곧 목사의 위로가 필요한 작은 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시작하는 하루는
새로운 행복의 시작입니다.
어느 하루도 목사 됨의 행복을 느끼지 않은 날이 없이 목양의 세월 23년은
그렇게 오늘도 또 하루의 행복이 됩니다.
가난했었기에 오늘의 넉넉지 못함도 넉넉함이 되고,
병약했기에 오늘의 불편한 몸도 강건함의 축복으로 느껴지며,
외로웠기에 때로는 혼자라는 허전함도 늘 누군지 모르지만 함께 라는 기쁨이 되고,
수 없이 지쳐 쓰러진 날이 있었기에 오늘의 힘든 시간도 또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며,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 가운데서 목놓아 울어도 울어도 찾아와 위로하는 이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오늘도 외로움이 아닌 사랑으로 시작되는 하루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마음의 불행을 떨쳐 버릴 수 없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소유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예수님 한 분으로 남은 생애를 오직 감동으로 살았던 것처럼 행복한
하루는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한 것임을 새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정신 없이 달음질 해 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조금만 더
단순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한번 더 돌아보는 삶의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풍경은 흘러간다, 그림을 볼 시간이 없다.
소리가 흐른다, 음악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말이 흘러나온다, 대화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인간성은 사라진다."
그렇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살아감에서 인간성의 메마름보다 절박한 불행은 없습니다.
느낌이 없고, 감동이 없고, 그래서 행복을 모르는 삶이라면
이미 그 생활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풍경에서 그림을 볼 수 있고,
흐르는 소리에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너와 나의 대화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함에서 경험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단순화시키는 것입니다.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더 가지려는 복잡함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복잡함, 곧 소유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부자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내게 있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더 가지려는 복잡함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단순함을 가질 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빨리 가려하지 말고 조금은 천천히 가는 삶의 행보,
그러면 미처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때 감동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몸부림하는 복잡함에서 조금은 일을 줄이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30분이라도 더 가질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할 때 인간관계는 훨씬 아름다움으로 엮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하루의 행복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5-17)
댓글 '1'
--- 어 떤 고 백 ---
처음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에 당신을 믿게 되었지만
이제는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믿고있습니다.
당신 없는 나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나에게 눈물과 아픔을 각오하라고 하셨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고통도 행복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다짐 주셨건만
내게는 사랑과 소망 그리고 행복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전에는 세상과 멀어질까봐 근심했지만
이제는 당신과 헤어질까 두려워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나보다 더 소중한 의미입니다.
처음엔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이 나를 만족시켰지만
이제는 당신이 내게 주신 사랑으로 황홀할 뿐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의 방황은 필요 없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대로 살기를 소원했지만
지금은 당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이젠 당신이 나를 버리신다해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내 과거의 모든 것은 당신의 십자가 위에서 사라졌으니까요.
영원히 나에겐 당신이 전부이며 유일입니다.
당신이 내게 주신 행복은 소리 없는 바람처럼 내 몸을 감싸고
단 한번에 마셔버린 뜨거운 차처럼 나를 불타게 합니다.
처음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에 당신을 믿게 되었지만
이제는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믿고있습니다.
당신 없는 나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나에게 눈물과 아픔을 각오하라고 하셨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고통도 행복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다짐 주셨건만
내게는 사랑과 소망 그리고 행복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전에는 세상과 멀어질까봐 근심했지만
이제는 당신과 헤어질까 두려워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나보다 더 소중한 의미입니다.
처음엔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이 나를 만족시켰지만
이제는 당신이 내게 주신 사랑으로 황홀할 뿐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의 방황은 필요 없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대로 살기를 소원했지만
지금은 당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이젠 당신이 나를 버리신다해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내 과거의 모든 것은 당신의 십자가 위에서 사라졌으니까요.
영원히 나에겐 당신이 전부이며 유일입니다.
당신이 내게 주신 행복은 소리 없는 바람처럼 내 몸을 감싸고
단 한번에 마셔버린 뜨거운 차처럼 나를 불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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