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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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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우리는 이질이 아닌 본질로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실상자요 본체다. 이 본체 속에는 본질이 들어있다. 이분은 보이지는 않으나 모든 것이 이분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특별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격자로 지음받은 인간은 인간으로서는 완전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에 비춰보면 이질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어서 하나님의 본질로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지혜지식자요, 만능의 능력자요, 창조자요, 무한자이신데 이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다 주길 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고, 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자랑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것에 욕심을 내게 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하나님의 것을 다 받으면 한 마디로 예수님처럼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거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생활 속에는, 모습 속에는, 성품 속에는, 손발이 움직이는 모든 것 속에는 하나님의 것이 들어있는데, 이분이 성육신으로 오신 것은 같은 인간인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는 게 전제되어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을 덧입는 것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덧입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온전을 덧입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듯이 질적으로 인격 면에서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이나 도덕성이나 능력성을, 즉 썩지 않고, 시간에 변동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불타지 않는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 믿음, 이 정신, 이 실력을 가지면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거다. 그래서 ‘본질적인 신앙’이란 시간에 따라 변질되지 않고, 진동되지 않고,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영원히 가는 소원 목적을 가진 것을 말한다. 이게 다 하나님의 거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는 것은 시종일관이라는 거다. 우리의 신앙이 이래야 한다. 우리가 썩지 않는 거, 불타지 않는 거, 시대에 따라 변동 변질되지 않는 거, 죄와 세상에 물들지 않는 정신과 소원 목적을 가지면 본질적인 신앙을 가진 거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입으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예수 믿는 신앙이다.
현재 자기가 어리석고 미련하면 모든 면에서 축소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입으면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창조적인 사람, 정복적인 사람, 능력적인 사람, 전투적인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 사상이 산 것을 인정해주신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것이 없으면 자기가 자기를 다스릴 수 없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고, 인도할 수 없고, 오히려 잡아먹히고, 이용당하고, ‘예 예’하며 고개 숙이고 종노릇 하게 된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니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을 가지면 어디를 가든지 산다. 테레비를 보면 도시에 살던 사람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산속에 들어가서 만족하며 사는 것을 본다. 이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만물을 이용 사용 활용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하다못해 쓰레기를 버릴 때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사용 이용 활용성이기 때문이다. 재주가 좋은 사람은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다가 뭣도 만들고 뭣도 만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늘의 지혜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주위의 것은 전부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능의 능력자요 지혜자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사람들보다 더 전투적이고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건 없이 게으르고 물러터지고 누가 갖다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믿는 정신이 아니다. 변화를 못 받은 거다.
자식들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섬겨야 한다. 그런데 자식이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부모를 섬기는 교육이 내려가지 않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섬길 줄 모른다. 주위에서 이런 일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못 알아보는 거다. 이건 자기 교만이고 자기 주관으로 사는 거다. 자기도 많은 사람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고마움을 모른다면 짐승만도 못한 거다.
아닌 말로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자자손손 물려줘도 남을 정도라면 예수를 믿었겠느냐? 예수를 믿기는커녕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죄만 짓다가 벌써 죽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워낙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의 생활을 보고, 마음을 보고, 활동을 보고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닫는다.
우리는 사람 속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일부러 고생 쪽으로 내려가서 겪어보는 것도 좋다. 왜냐? 그래야 자기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모르고 어른이 된 사람은 세상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 그러니 제 잘난 맛으로 산다. 이것은 교만이다. 사람은 그만큼 배우면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이 좋아야 하는데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성이 차단된다. 이런 걸 알게 하는 게 성경이다. 교회다.
세상은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예수를 믿고 안 믿고 간에 자기가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모나고 비뚤어지고 잘못된 성격이나 성질을 고쳐야 다른 사람과 관계가 무난하게 된다. 우리 믿는 사람도 그래야 만이 안 믿는 사람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다. 이 안에는 자기의 실력을 키우게 하는 게 들어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하기를 힘쓰라’고 했으니 지금까지 전도를 받지 못해서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는 게 세상인데, 이 세상을 이용 사용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은 학교에서 배운다. 그러나 사람을 아는 지식은 세상에서는 못 배운다. 세상은 사람을 바로 알게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 없다. 사람을 바로 아는 지식은 오로지 교회에서만 배울 수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진리본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해야 하는데, 교회에서 이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런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이것을 모른 채 교회에 다닌다면 뭐 하려고 예수를 믿는 거냐?
교회에서 사람을 깨닫게 하는 것을 안 배운다면 우상을 믿는 것과 똑같다. 나도 옳은 종들로 통해 이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우상을 섬기는 식으로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니까 잘못 가르친 목사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분도 진리본질을 모르니 그렇게 가르쳤고, 나도 모르니 ‘이게 진짜인가?’ 하고 그 가르침을 따랐으니 그 세월이 원통하다는 거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예수 믿은 게 속아왔다면 그 원수를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게 아니라 못난 자기에게 갚아라. 이제부터라도 진리본질로 들어가는 게 원수를 갚는 거다. 그래야 사람이 달라진다. 안 그러면 예수를 믿어도 인격 면이 자꾸 부끄러워진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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