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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530 추천 수 0 2017.08.04 23: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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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1:1-7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36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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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시는 하나님

창 21:1-7,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 2017년 6월18일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언급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 후손이라는 사실을 입에 달고 삽니다. 신약성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 1: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믿음을 설명할 때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무런 혈연적인 관계가 없는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을 겁니다. 그중에 한 가지만 성경 퀴즈 방식으로 말씀드릴 테니, 답을 찾아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몇 명의 부인을 통해서 몇 명의 자식을 낳았을까요?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내의 하녀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고, 아내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얻었고, 아내 사라가 죽은 다음에 다시 결혼한 그두라를 통해서 여섯 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총 여덟 명입니다. 이 명단에서 여자들은 빠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자녀들 중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대를 이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가부장적 관점에서 역사가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인공이고 사라는 보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거꾸로 사라의 입장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결혼하고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시아버지인 데라가 아들 아브라함과 자부 사라, 그리고 자기보다 먼저 죽은 아들 하란의 아들, 즉 손자 롯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이민을 떠나게 될 때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행이 네 명입니다. 그중에 여자는 사라 하나였습니다. 시아버지 데라는 일찌감치 상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이 사라에게 녹록치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그런데다가 사라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들 네 명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시아버지가 죽습니다.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원인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나야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사라는 남편과 남편의 조카 롯을 따라 남쪽으로 옮겨 가나안의 세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 그곳에 머물다가 먼 이국땅에서 죽습니다. 그녀의 운명은 모질다면 모질고 행복하다면 행복했습니다. 한 여자로서 감당해야만 했던 몇 가지 에피소드가 아브라함과 사라 서사에 나옵니다. 그 중에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라에 얽힌 에피소드 세 가지


1) 그녀의 남편 아브라함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긴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특히 남편의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비슷한 경우는 많습니다. 남편이 믿음 생활은 잘 하는 거 같은데, 부부로 살기에는 못마땅한 점이 있는 경우입니다. 창 12:10절 이하에 따르면 큰 가뭄이 들자 아브라함은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미모가 뛰어난 여자라서 애굽 남자들이 눈독을 들일 텐데 자칫 내가 그들 손에 죽을지 모르니 당신을 누이 동생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해야겠소.’ 당시 사라의 나이는 70세 내외였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미모에 이방 남자들이 마음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어쨌든지 아브라람이 말을 듣고 사라는 ‘당신, 남자가 되어서 뭐 그리 겁이 많은가요. 나를 누이라고 하면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를 달라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응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애굽 왕은 사라를 궁으로 끌고 갔고, 오라비인 아브라함을 후대했다고 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개입해서 사라와 아브라함은 몸을 보존했고, 애굽 왕에게서 큰 선물을 받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만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창 20장에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이 다시 벌어집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이긴 했지만, 이미 결혼한 부부였는데도 누이라고 한 건 위기를 벗어나려는 일종의 꼼수였습니다.

 

2) 사라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아버지 데라를 따라서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시작해서 하란을 거쳐 세겜에 정착한 다음에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가임 시기도 지났습니다. 사라는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법으로 아브라함의 대를 이을 생각을 했습니다. 씨받이를 들이는 겁니다. 마침 자신에게는 하갈이라 이름 하는 이방인 여자 몸종이 있었습니다. 사라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니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는 하갈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어야겠습니다.’ 좋은 날짜를 잡아서 남편과 하갈이 잠자리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임신에 성공하자 하갈은 주인 여자를 무시했고, 사라는 참지 못해서 하갈을 쫓아내다시피 구박을 했는데, 하갈은 가출했다가 깨닫는 바가 있어서 다시 주인집에 돌아와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로 붙였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고, 사라 나이는 76세였습니다.

 

3) 이렇게 늙어가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가 된 어느 날 나그네 세 사람이 이들의 집에 들렀습니다. 이 나그네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천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손님 대접이 끝나자 나그네들은 아브라함에게 뜻밖의 말을 합니다. 일년 뒤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밖에서 그 말을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 18: 11). 천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이제 사라 이야기는 21장으로 이어집니다. 사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임신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도 믿지 못한 채 실소를 터뜨렸고, 사라도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실제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들 이름을 이삭으로 붙였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백 세였고, 사라 나이는 구십 세였습니다. 사라의 한이 이제 다 풀린 겁니다. 6,7절이 사라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경험


이런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서 사라처럼 웃을 수 있게 합니다. 자식이 없어서 한이 맺혔던 여자가 늘그막에 한이 풀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성경에 몇 군데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임신이 안 되었고, 남편의 다른 아내는 자식을 낳았습니다. 한이 맺혀 성전에 가서 서원 기도를 드린 다음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도 늙을 때까지 아기를 갖지 못하다가 친족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임신하기 여섯 달 전에 임신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만이 아니라 다른 고대 문헌에도 나올만한 흔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라 이야기는 오해될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특별해서 가임기가 끝나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적적인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90세 먹은 여자가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아닌 방식으로도 임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래에 의학 기술이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발전하면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난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사라 이야기가 전해지던 3천 년 전에는 말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서기자가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무조건 믿어야 할까요?


저는 사라의 이삭 출산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입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나이는 별로 정확한 게 아닙니다. 창 5:25절 이하를 따르면 무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기 시작해서 계속 아이를 낳다가 969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사라의 90세 나이도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애굽으로 잠시 피신 갔을 때 애굽 남자들이 사라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길 당시의 사라 나이가 70세 전후였다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란이 불규칙한 걸 끝난 것으로 오해했다가 나중에 임신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기는 하지만, 요즘도 60세 넘은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종종 전해집니다.


사라의 이삭 출산 이야기의 핵심은 90살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경험입니다. 즉 자신들이 살아있는 것은 마치 90살의 사라가 아기를 낳은 것처럼 기적적인 것이었다는 고백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소수 민족으로 살던 애굽 시절,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생활,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영토 분쟁, 주변 제국에 의해서 시달리던 왕정시대,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한 멸망, 그리고 다윗 왕조의 완전한 해체 등등의 시절을 거쳤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같은 작은 나라는 대개 주변 강대국에 흡수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이 축적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라 이야기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지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90세까지 자식을 낳지 못한 사라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백척간두와 같은 실존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숨을 쉬는 것도 기적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지구의 산소가 다 사라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해서 남북한 모두 끝장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할 거라는 판단이 100% 확실하면 북한은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할 것입니다. 국가 사이에도 그렇고, 개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우주의 차원에서도 우리의 생존은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은 것처럼 기적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알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되고,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그런 일반적인 것 말고, 뭔가 더 확실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나를 사랑하고 돌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확실한 증거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애틋한 마음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묶여 있으면 성서가 실제로 말하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는 증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시각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이 특별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설령 이삭을 낳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사라를, 그리고 남편 아브라함을 돌보시는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라는 거기까지는 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라는 이복동생인 이삭과 놀고 있던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린다고 생각해서 남편에게 요구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잔인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모자는 광야에서 죽을 뻔 했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설교 본문이 끝나면서 즉시 이어지는 걸 보면 성서기자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한계를 암시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운명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으나 아직은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평생 목사로 산 저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방식으로 보면 목회에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를 두 번 개척했고, 중간에 미자립 교회를 2년 여 동안 잠시 맡았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교회를 맡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쪽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해서 하나님이 저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목회에 시간을 많이 쏟지 않고 살아온 덕분에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고, 책을 쓰거나 번역하고 신학생 가르치는 일에 더 시간을 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목사들을 그분의 방식으로 돌보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목사들이 우리의 예상과 다른 하나님의 방식을 실제로 깨닫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공연한 일에 매달리면서 열광하거나 그걸 이루지 못할 경우에 자책하고 자학하게 됩니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비슷한 운명으로 살아갑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가장 철저하게 돌보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오늘의 제3독서는 예수님이 몰려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연민입니다. 그 하나님의 연민이야말로 참된 위로이자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요즘의 언어감각으로 말하면 그것이 곧 힐링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돌보심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사라는 오래 임신하지 못하다가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불임부부들에게 큰 기쁨입니다. 큰 위로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위로는 곧 시들해집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또 다른 갈등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면서 삶이 피곤해질 수 있고, 대통령이 되면서 불행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삶에서 반복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 삶의 능력입니다. 십자가 처형과 같은 저주스러운 상황에 떨어진 인생도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근원적인 위로는 없고, 더 근원적인 기쁨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평생 불임으로 마음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은 사라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기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걸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작동방식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그런 익숙한 방식으로만 인생을 대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심지어 실패로 보이는 것까지 모두 하나님의 위로이자 돌보심이라는 사실을 영혼의 깊이에서 깨닫고 감격스러워 할 것입니다.


댓글 '1'

코리도라스

2017.09.23 19:41:00

정용섭 목사님의 설교는 평범치 않은 성경해석과 관점으로 인해 제가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종종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자유분망한 해석으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곤 하시네요. 물론 정목사님이 이 사이트에 들어와 저의 댓글을 보실리도 없고 그 분이 저보다 성경지식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도 부인 할 수 없지만, ' 여러분은 90세 먹은 여자가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정목사님이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죽은자가 3일만에 살아나는건 믿으시나요?' 라고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성경의 기록을 이건 허구고 과장된것이며 저건 사실이고 당연한 것이다라고 분별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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