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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야곱의 물질의 복이 믿음이 좋은 대가냐?

창세기 궁극이............... 조회 수 52 추천 수 0 2022.05.10 14: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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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6: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믿는 사람이 ‘복’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하는 건지, 인간이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하는 건지? 우리가 볼 때 야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은 게 복이냐? 야곱의 믿음이 우리보다 좋은 거냐, 우리보다 못한 거냐, 우리와 같은 거냐? 우리가 성경에서 야곱을 보면서 ‘야곱의 마음이나 우리의 마음이나 똑같구나’ 이렇게 봐야 할 런지, 아니면 ‘우리보다 훨씬 믿음도 좋고, 신분도 좋고, 세상에서 복도 많이 받고, 훌륭하고, 지식도 높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봐야 할 런지?

 

야곱이 기도를 한 대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야곱이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만일 야곱이 기도한 대로 응답을 받지를 못했다면 야곱이 믿음이 있다고 하겠느냐, 없다고 하겠느냐?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야곱의 어느 면을 두고 믿음도 좋고 축복도 받았다고 하는 거냐?

 

야곱이 젊어서 자기의 육신적 세상적인 유익을 위해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삼촌 집에서도 수단을 써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도 했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복을 받고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면으로 살아온 게 야곱 자기가 좋아서 이 길을 간 거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깨닫게 해 주려고, 진짜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의 인도냐? 후자다. 그런데 교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복을 받은 야곱을 보면서 야곱이 믿음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야곱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야곱이 늙어서 신앙이 많이 성장한 후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왕 앞에서 나그네로 고생을 하면서 130년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이 말은 젊어서 자기의 육신적 세상적인 유익을 위해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삼촌 집에서도 수단을 써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도 했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복을 달라고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져서 다리를 절게 된 모든 것들이 믿음이 아닌 헛고생을 한 것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인들이 성경에서 이것을 보면서도 야곱처럼 자꾸 물질에 집착을 하고 있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게 세 분이 믿음이 좋기 때문이냐? 이 세 분은 다 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개인적으로 세 분 중에 한 분의 믿음을 가졌거나 다른 두 분의 믿음을 같이 가졌거나 하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야곱이 얼마나 간사하고 교활하냐? 물질에 얼마나 욕심이 많으냐? 물이 아래로 흐르면 쓰레기가 쌓이듯이 생의 구비구비마다 온통 물욕심이 가득 찬 게 야곱의 일생이다. 그러면 지금의 믿는 자기는 어떠냐?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전부가 인간냄새만 풍기고 있지는 않느냐?

 

믿는 사람들이 누가 기도를 해서 물질의 복을 받으면 이 사람이 믿음이 좋다고 말을 하는데,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냐? 하나님의 온전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물질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냐, 물질을 놓고 기도를 해서 물질을 얻었기 때문이냐? 물질을 많이 얻는 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냐, 하나님의 온전을 입는 게 복이냐? 야곱이 얻은 게 가견적 임시적인 거냐, 영원히 갈 거냐? 야곱이 사람 얻기, 짐승 얻기 운동을 해서 얻은 게 신령계에 속한 거냐, 물질계에 속한 거냐?

 

신령계와 물질계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신령계와 물질계를 주기로 약속이 되어있고, 믿는 우리는 이것을 얻을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을 이 땅에 살면서 시련과 연단을 통해 쌓아가는 건데, 믿는 사람이 이것은 욕심이 없고 썩어지고, 불에 타고, 홍수에 씻겨 내려갈 세상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을 복이라고 하고 있다. 아파트를 받은 게 복이냐? 그러면 이 아파트가 무너져도 복이라고 할 거냐? 물질계에 있는 것은 항상 가라앉고, 무너지고, 썩는 게 전제가 되어있다. 다만 없어질 때까지, 불에 타질 때까지 자타의 구원이 이용하는 것뿐이다.

 

믿는 자기는 무엇을 보고 복이라고 하느냐? 돈 복이 좋으냐, 사람 복이 좋으냐? 물질을 보고 결혼을 했는데 살다 보니 지옥과 같다면 이것은 돈을 복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겪는 거다. 사람에게 있어서 참 복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가는 곳곳마다 복의 기관이 된다.

 

기술자는 기술 하나만 가지고 맨손으로 나가도 이 사람 앞에는 어디에든 돈이 기다리고 있다. 자기가 실력이 있으면 돈을 따라가지 않아도 돈이 자기를 찾아오는 건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하며 물질을 찾아다닌다. 사람 못 된 사람에게 돈이 많으면 이 돈으로 인해 자기도 망하고, 집안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한다. ‘차라리 그 돈이 없었으면 네가 안 죽었을 텐데’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믿는 사람이 이런 일을 자기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면서 왜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복으로 알지를 못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 ‘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구나’ 라고 해야지 지질이 하나님의 속을 썩이고 온갖 술수를 다 쓴 야곱을 들어서 ‘너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로구나’ 라고 하게 살면 안 된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들어가서 라헬의 눈이 예뻤는지 라헬의 눈을 보고 결혼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의 마음을 비교해 보면 누구의 마음이 더 좋으냐? 하나님께서 라헬의 눈을 보고 좋다고 하시겠느냐, 마음의 중심을 보시겠느냐? 라헬이 에브랏에 이르러서 격한 곳에서 아기를 낳다가 죽었는데, 라헬의 일생을 보면 언니 대신 야곱과 먼저 결혼을 했고, 아버지 집에서 나올 때 드라빔을 도적질해서 가지고 나왔고, 언니와의 경쟁의식이 심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니와 라헬에게 자식을 주셨을 때 언니는 자식을 긍정적인 이름으로 지었지만 라헬은 ‘언니와 경쟁을 해서 이겼다느니’ 하는 등 자식의 이름을 살벌하게 지었다.

 

이런 라헬인데도 야곱은 라헬의 예쁜 눈을 보고 레아보다 더 좋아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야곱이 부자가 되면 뭐 하느냐? 물질부자에 욕심을 내다가 절뚝발이가 되었는데,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더라도 돈이 많으면 복이냐, 사람의 성품이 온전해야 복이냐?

 

언니는 어디서 죽었느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묻힌 곳에 묻혔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레아는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쪽으로 쑥 들어간다는 거다. 그러나 길가 밭의 신앙은 세상의 이런 저런 것에 밟히고 밟혀서 딱딱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쪽으로 쑥 들어가지를 못한다.

 

다른 각도로 보면 야곱이 자식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라헬에게 생명의 씨앗을 주었는데도 라헬은 원망 불평이 많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진리생명의 말씀을 주었는데도 원망 불평이 많구나. 자기에게 진리가 온 것은 살 길을 열어주는 건데 말씀을 따라 살려고는 하지 않고 자기의 세상적인 욕심을 이뤄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옳은 게 들어오면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이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세상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미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해야 되겠는데 그러지를 않고 괴롭다는 거다. 자기에게 좋은 게 오면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그러지를 않고 밀어내고 괴로운 이유가 뭐냐? 하나님의 선물이 오는데 이게 왜 괴로운 거냐?

 

성경에서 볼 수도 있고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인데, 믿음이 좋은 부모 밑에서 100% 믿음이 좋은 자식이 나오는 게 아니고, 믿음이 없는 이방인의 부모 밑이라고 해서 자녀가 100%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게 뭘 말해주는 거냐? 한 마디로 각자의 믿음은 각자에게 달렸다는 거다.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건 자기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 이런 저런 이유나 핑계를 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권자이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다’ 라고 말을 하면서 그 분의 의사에 맞추지 않고 제 고집대로 살다가 얻어맞고, 고통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믿음을 올려주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인데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회개를 안 할 거냐? 예수를 믿으면 이런 걸 깨닫고 고치면서 점점 나아져 올라가야 하는데 반대로 내려가고 있다면 얻어맞게 된다.

 

이삭의 경우에 이삭의 제일 좋은 점은 하나님 앞에 번제물로 드려진 거다. 그런데 이삭 스스로가 ‘내 몸을 받아주십시오’ 하고서 번제단에 올라간 게 아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번제물로 바쳐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삭 자기의 몸을 묶어서 번제단에 올리려고 할 때 늙은 아버지를 물리치고 도망을 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고 순종을 해서 올라간 것을 보면 이삭의 믿음도 아버지의 믿음 못지않게 좋은 거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을 향해 3일 길은 가면서 이삭과 몇 마디 말을 했을까?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이삭이 아버지를 향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라고 했고, 아버지는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라고 한 것뿐인데, 이 대화를 집에서 출발을 한 후 며칠 만에 한 것일까?

 

집을 출발해서 아들을 번제물로 바칠 때까지의 3일간의 시간을 죽 늘어뜨려 보면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신앙사상이 이 대화 안에서 보이는 거다. 10대 후반의 나이인 이삭이 집에서 출발을 해서 3일 만에 하나님께 드려진 게 아니라 이삭이 태어나서부터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아온 신앙교육의 결과가 3일간의 여정에 압축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신을 드릴 수 있었던 거다. 3일의 기간 중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에서 이 사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을 보면서 오늘날 믿는 부모들은 어떤 마음이 드느냐?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으냐? 아무리 드리고 싶어도 부모부터가 세상욕심이 가득한 채 믿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부모로부터 세상의 교육을 받은 자식을 받지 않으신다. 자식이 누구의 거냐? 하나님께서 ‘내 눈에 합격이 되게 한 번 길러봐라’ 하고 잠깐 동안 부모에게 맡긴 거다. 그러니 자식을 하나님의 눈에 합격이 되게 교육이 들어가야 한다. 이게 아브라함의 교육이다.

 

부모가 자식을 하나님의 눈에 합격이 되게 기르지 않고 세상 눈에 합격이 되게 기르려다 보니 자식 때문에 부모가 죽어난다. 이렇게 키우면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잘 할 것 같으냐? 어리석다. 성경에서 자녀를 키우는 방법을 배워라. 성경에는 어른 교육, 할머니 할아버지 교육, 어린이 교육, 남자 여자 교육이 다 들어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키운 정신이 어디서 나온 거냐?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한 정신에서 나온 거다. 교육이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행동도 교육이다. 마음전달, 정신전달을 통해 인품이 만들어지는 게 다 교육이다.

 

삼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옳게 쓰지 않고 자기 고집으로 쓰다가 제 명대로 못 살고 이용만 당하다가 죽었다. 머리털을 자르니 힘이 빠져서 눈이 빼였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자르고 살면 반드시 영의 눈이 빼이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나를 요리하게 된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나님을 자르지 말고, 진리를 자르지 말고 영적인 눈을 밝혀야 한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룰구원 차원에서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의 3직을 행해야 한다. 즉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제사장이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선지자가 되어야 하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왕이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적중성으로 걸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제사장이다.

 

성경 속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나쁜 사람을 보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마음에서 정답을 내리고 옳은 길로 가야지 그걸 판단만 하고 있다면 성경의 나쁜 사람이 받은 심판이 누구에게 가겠느냐? 성경을 보고 자기를 고치지 못하면 교만한 자요 멸망의 선봉이다. 은혜를 못 받는다. 성경은 다 자기를 보고 말씀하는 거다. 우리는 이방종교처럼 공을 드리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순간순간 말씀을 따라가는 거다. 이게 이룰구원 면에서 우리의 구원이다. 이걸 무시하면 그 어떤 종교적인 업적을 크게 이룬다고 해도 믿음이 없는 거다. 큰일 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이라서 교회는 무서운 곳이요 두렵고 떨리는 곳이다. 삶의 매 순간순간마다에서의 자기의 생각의 작용성이 무엇에 의해 되어지느냐에 따라 자기에게 상벌이 주어지는 거다. 나침반의 자석이 힘이 약하면 빨리 북쪽을 가리키지 못하고 빙빙 돌다가 간신히 북쪽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성의 힘이 강하면 북쪽을 가리키는 게 빠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훈이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적중이 아니면 교인들의 삶이 갈팡질팡하게 된다. 생각이 정립이 안 되고, 바른 판단이 안 되고, 구별 분별이 안 된다. 이러면 결국은 세상을 구하게 된다. 이건 교회가 아닌 이단자요 거짓 교회다. 이건 하나님의 형벌 안에 드는 거다.

 

목사님들의 세계에서 교인도 조금 있고, 헌금도 먹을 만큼 나오고 하면 처음에 마음을 달이며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들을 돌보고 하던 것이 점점 무뎌진다. 이렇게 한두 해를 보내면서 세월을 이기고 시대를 거스르는 실력이 앞서지 않으면 점점 목회의 힘을 잃게 된다. 목사로서 이렇게 된 것은 처음에 마음을 달이며 열심히 목회를 한 게 하나님의 힘이 아닌 인간 자기의 힘으로 했다는 증거가 되는 거다.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힘은 세상을 이기고, 유혹과 미혹을 이기고, 사망성을 이기고 나가는 힘이다. 목사는 이 힘으로 목회를 해야 하고, 교인들도 이 정신과 사상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이런 정신이 아니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서히 무너진다. 결국은 매 주 교회에 나가고자 하는 마음 대신 안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슬슬 커지게 되고,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주위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 붙들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사건의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사건과 환경은 이룰구원을 깨닫게 하는 거다. 세상만물의 모든 움직임은 성경에서 벗어난 게 없다.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다’는 것은 성경말씀이 잘못된 게 없다는 뜻만 아니라 세상만물의 모든 것에서 우리의 이룰구원을 깨달을 수 있다는 면의 말이기도 하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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