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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661 추천 수 0 2010.02.03 18: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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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3:26-3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4·04·04
우리는 이제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금요일에는 주님의 고난을 주제로 한 영화를 한 편 감상할까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라는 이 영화는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성경에 충실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너무나도 큰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에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기 때문입니까?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께 대해서 이렇게 연민의 정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골고다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따라왔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여자들이 주님을 보고 울었습니다. 그녀들은 고난당해 탈진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울었으며, 그렇게 의로우셨던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실 것을 생각하면서 애통해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여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고난당하신 주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이후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최후의 영적인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마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결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는 동안에 제자들은 피곤해서 곤하게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고난과 고민과 아픔에 조금도 동참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 후 주님께서는 평온하고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승리하셨습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겟세마네의 기도 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후 주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들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갔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대제사장은 밤에 공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신 말씀을 꼬투리 삼아 신성모독죄로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날이 밝자 그들은 예수님을 이끌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로 갔습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인들에게 사형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의 사형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헤롯에게로 보냈습니다. 헤롯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만나본 후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무죄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석방하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하게 했습니다. 이 채찍질은 너무나도 잔혹한 것이어서 채찍질을 당하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이렇게 채찍질을 하게 한 이유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시켜 석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손에 넘겨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뺨을 치면서 희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골고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
  
당시 십자가에 처형될 죄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소까지 운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하여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주님께서는 지난 밤 겟세마네의 기도 이후 계속해서 끌려 다니시며 심문을 당하셨으며, 채찍질을 당하셨고, 군병들에게 희롱을 당하셨기 때문에 완전히 기진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가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채찍에 맞아 찢긴 등과 가슴의 상처는 말랐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하여 가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시면서 골고다로 가셨던 길을 사람들은 고난의 길(Via Dolorosa)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이렇게 모진 고난을 당하셨으며,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시면서 골고다로 가셨던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주님께서 이렇게 계속해서 쓰러지셨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처형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마침 옆에서 구경하며 따라오던 한 사람을 붙잡아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26절).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서 현재 리비아의 트리폴리(tripoli)입니다. 당시 그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였으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가는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침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 누가의 기록은 시몬의 두 자녀가 당시 잘 알려진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갑자기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마도 구레네 시몬은 마지못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까지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하신 말씀들은 시몬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서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기 때문에, 루포의 어머니는 그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족들은 초대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시골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우연히 군병들에게 붙잡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이 그와 그의 가족들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간 일이 시몬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이렇게 복된 일입니다. 당시에는 그 일이 황당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그 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거나 손해를 당하게 될 때 원망하며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일은 우리에게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 고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우는 무리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아 돌로로사를 따라 가고 계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며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가슴을 치며 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27절). 특히 많은 여자들이 주님을 따라오면서 울었습니다. 우리는 이 여자들은 평소에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절에서 주님께서 이 사람들을 가리켜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들은 주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따라오면서 이렇게 울었을까요?
  예루살렘에서는 사람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이 일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들어 함께 따라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종종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사람들을 위해서 울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마취성 음료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면도 이와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이었으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던 분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큰 고통을 당하시면서 골고다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이제 곧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것을 생각하고 이 여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심으로 가슴을 치며 울었던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을 동정하여 울면서 따라오는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예수님께서는 극단적인 고통을 당하고 계셨기 때문에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불쌍하고 안타깝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미리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고난을 기꺼이,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이 고난을 통하여 수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난이 끝난 후 주님은 승리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 영광의 자리에 다시 않게 되실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53:10-11)
  그러므로 사람들이 주님의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겨서 슬퍼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으며, 단지 주님을 억울하게 처형당하는 사형수로 보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며 울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다가올 환난
 
 주님께서는 그 이유를 29-31절에서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날을 바라보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때 임하게 될 환난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한 사건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신앙을 고집하며 로마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로서는 이 지역이 가장 골치 아픈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체납된 속주세 대신 성전의 보물창고에서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했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폭동이 일어났으며, 로마와 유대의 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66년에 일어났는데,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73년에 마사다 요새에 들어가 저항하던 사람들이 모두 자결함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전쟁에서 유대인들 110만 명이 사망했고, 10만 여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시 예루살렘에 얼마나 비참한 일이 벌어졌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전쟁과 그로 인한 환난을 바라보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차 예루살렘에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환난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징조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 오게 될 심판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비참한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결단코 이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날에 멸망당할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6-17)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인간의 죄악과 완악함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31절의 푸른 나무는 무죄하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마른 나무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고 의로우신 분이었는데 우리의 죄 때문에 그토록 모질고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결단코 마지막 심판의 무서운 환난과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고난당하신 주님의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하여 흘리는 눈물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흘리는 눈물을 원하십니다. 그러한 눈물이라야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무서운 심판과 환난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것도 바로 이것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한 주간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그 모든 고난을 기꺼이 당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에 우리의 마음이 녹아져야 할 것입니다. 나의 죄악된 모습을 통회하며 눈물 흘리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안타까운 우리 형제와 이웃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갈 것을 결단하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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