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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큰 잔치

다니엘 이동원 목사............... 조회 수 2663 추천 수 0 2010.05.25 23:58:55
.........
성경본문 : 단5장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지구촌 교회 

주    제: 종 말 론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5장

 

논    지: 우리의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

 

설교요약

1.고고학으로 밝혀진 성경의 권위

2.위기에서 하나님을 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벨사살

3.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은 하나님 이시다.

4.성경 연구는 삶의 변화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5.우리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개역 단 5:1 벨사살왕이 그 귀인 일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4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7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 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8 때에 왕의 박사가 다 들어 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 9 그러므로 벨사살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10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 왔더니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13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입어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 지금 여러 박사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로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능히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17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찌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18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21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무리로 다니엘에게 자주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니라 30 그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본문 1절에 등장하는 벨사살 왕은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벨사살 왕> 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이 벨사살 왕의 정체에 관해서 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논쟁의 발단은 일반(세속) 역사 책을 뒤져 보면 바벨론 역사 가운데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도대체 벨사살 왕은 누구인가?”

 

다시 확증된 성경의 권위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권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바로 이 벨사살 왕이 역사 속에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니엘서 전체를 역사적 정확성이 결여된 책이라는 진단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혹은 성경의 명백한 교리를 뒤집는 불경건한 신학자들의 노름이 역사 속에는 항상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선언이 신학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1854년 영국의 J.G. 테일러라는 사람이 고고학자 팀을 이끌고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고고학 탐사를 하는 가운데 고대 바벨론어로 새겨진 글귀 하나를 발견했습다. 그런데 그것은 나보니도스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세 명의 왕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첫번째 왕은 메로다크 왕으로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었습니다. 메로다크는 2년 정도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느부갓네살 왕의 사위에 의해서 암살당합니다. 가족끼리 빚어진 비극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이후 두번째 통치자는 네글리사 왕입니다. 이 사람은 4년쯤 통치를 하다가 물러났으며 네리글리사의 아들인 라바쉬말드크가 이어서 왕위에 등극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9개월밖에는 왕위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네번째  통치자, 그러니까 곧 바벨론의  마지막 통치자가 바로 나보니도스였습니다. 이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족끼리 복잡하게 얽힌 것이지요. 나보니도스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은, 자기도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합법적인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에서였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벨사살이 바로 나보니도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1854년에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비로소 증명되었습니다. 비록, 왕위에 오른 일이 없는 벨사살에게 어떻게 왕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가 있느냐는 문제가 남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나보니도스의 통치 시기는 주전 556년부터 539년까지입니다. 주전 539년은 바로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해입니다. 나보니도스는 전쟁을 많이 한 왕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그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전쟁을 했습니다. 전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자연히 해외 원정을 많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해외에 나가서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왕은 도대체 누구에게 통치권을 위임했겠습니까? 아들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즉, 나보니도스 왕이 해외에 출정 가 있는 동안 실제적으로 바벨론을 통치했던 사람은 그의 아들 벨사살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를 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 북한에, 위대하신 아바이 수령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이 두 사람이 통치자로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통치자가 둘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된 바벨론 제국의 멸망 직전에도 나보니도스 왕은 새롭게 일어나던 메대 바사 제국과 북아랍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패전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보리시파라는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이것은 그리이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증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메대 바사의 마지막 도전이 드디어 바벨론 제국에 임하여 왕궁에까지 적들이 쳐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다니엘서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을 뒤집고 나아가 성경이 얼마나 권위 있는 책인가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본문 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상을 찬양하는 잔치가 한창이던 순간을 기록한 5, 6절을 먼저 보십시오.“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기이한 일을 보고 놀라 벌벌 떨던 왕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 해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7절). 이 <셋째 치리자>라는 단어가 아주 흥미롭습니다.“이것을 해석하는 사람은 세번째 통치자를 삼겠다”왜 하필이면 세번째 치리자일까요? 그것은 나보니도스와 그의 아들인 벨사살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셋째 치리자란 왕의 바로 아래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본문 16절을 보십시오.“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셋째 치리자를 삼겠다>는 말이 또 한번 나옵니다. 결국 세속 역사가가 벨사살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이미 성경이 정확하게 이 왕의 정체에 관해서 증언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세속 역사에 벨사살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고 성경의 위대한 권위와 정확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주전 539년10월, 바벨론 최후의 날에 흥겨운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미 메대  바사의 다리오의 군대는 바벨론 궁중을 포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5장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1절). 적군이 쳐들어오면 전쟁 준비를 해야지 왜 잔치를 벌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나의 왕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벨사살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벨사살은 자기 나라를 수호하는 신들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바벨론 궁중의 성벽은 굉장히 견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벨사살에게는 <설마 누가 성벽을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셋째,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제 아무리 적군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까딱없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벨사살은 그날밤 굉장한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셨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殿)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器皿)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하필이면 유다가 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지고 온 기구들을 잔칫상에 대령하게 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3,4절). 벨사살은 바벨론의 우상 신들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5절). 자기 나라의 최후를 목전에 둔 급박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모독하며 우상 신들의 축제에 참여하고 있던 벨사살 왕과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궁의 분벽에 홀연히 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벨사살 왕의 범죄

 

물론 1-4절에서 벨사살 왕의 범죄가 드러났긴 하지만 다시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죄를 조목조목 정리하여 그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보십시오.“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22,23절). 이것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지적해 준 범죄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다시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의도적 범죄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고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18-21절). 다니엘은 이렇게 말한 후에 즉시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알고도... ”(22절)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아들>에서 <그>는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은 몇 대 위의 선조라도 전부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벨사살은 조상 느부갓네살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가 징계를 받아 왕에서 쫓겨난 후 짐승처럼 울부짖는 정신병자가 되어 7년 동안 고생했던 일을 알고도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조상의 실수가, 선배의 실수가 계속하여 답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다니엘서를 지배하는 가장 중심되는 사상임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다니엘서 2장21절을 보십시오.“그는(하나님은)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며 한 민족을 흥하게 하기도 하고 쇠하게도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통치자가 실세를 쥐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아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5장21절에서도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똑같은 사실을 다시 선포합니다.“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 이것이 다니엘서의 위대한 역사 철학입니다. 이 사실을 느부갓네살 왕은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뼈아프게 배웠습니까? 7년간 미치광이처럼 들판을 기어다니는, 하나님의 참담한 심판과 징계를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고도 범한 죄이기 때문에 심판이 더욱 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22절).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더 커다란 범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배울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즉,

 

성경공부의 목적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내 삶을 바꾸는 데 두어야 하며 단순한 지식을 위한 성경 연구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식만 늘려 가는 성경공부 만큼 위험한 것은 또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알고도 행치 않는 자들에게 더 큰 심판이 있으리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0,21절). 실제 팔레스타인에 가보면 고라신이라는 마을이 문자 그대로 폐허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은 갈릴리 근처의 고라신과 벳새다 등지에서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도, 주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 의도적인 범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책망의 대상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둘째/교만의 범죄 : 교만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범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천사장이 사단이 된 것도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21절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묘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에는 이 표현이 제일 많이 등장합니다.“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다니엘은 하나님 홀로 진실로 높으신 분이시며 그 누구도 그분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입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다시 한번 보십시오.“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22,23절). 자기 신격화, 이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여기에서 다니엘은 자기 조상이었던 느부갓네살과 똑같은 교만을 답습한 벨사살의 범죄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셋째/우상 숭배의 범죄 :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벨사살이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그릇을 가지고 야훼 하나님을 모독했던 행위의 배후에는 자기 조상을 비웃으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우리 조상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해서 야훼에게 굴복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만은, 아무도 나의 능력과 나의 영광을 초월할 수 없다” 자기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까지도 자기를 높이려는 이 뿌리 깊은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벨사살의 모습을 보십시오.

 

벨사살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야훼 하나님을 모독하고 우상을 찬양하던 바로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았습니다”(5절).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막고 그분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고 있던 벨사살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하나님 자신의 극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무엇을 썼습니까? 그 내용이 2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24,25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전조(前兆)인 것 같은데 글자의 뜻을 통 알 수 없어서 답답하여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다니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다니엘은 세월이 상당히 흘러서 80세는 족히 되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5장을 연구하면서 나이 80세가 되어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 섰던 다니엘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왕은 그 글자를 해석하여 달라고 하면서 별 소리를 다합니다. 우선  세번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뇌물을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16절 이하를 보십시오.“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이에 대해 다니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17절). 다니엘은 황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권세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이었을 따름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하는 일념으로 80년을 살아온 이 순수한 청년. 그는 나이만 들었지 여전히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이 해석을 합니다.“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메네』는 “숫자를 세다”를, 『데겔』은 “저울로 달아 본다”를  그리고 『우바르신』은 “나누다”를 뜻합니다.

 

26절 이하를 보십시오.“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26절).“당신이 얼마 동안 통치할 것이며 얼마 동안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한 나라와 문명의 연한(年限)을 정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27절).“저울에 달아보니 당신은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았을 때 당신은 도저히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이것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베레스>의 복수형이 “우바르신”입니다. 즉, 이것은 바벨론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메대 바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심판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동안에 벨사살 왕은 이미 초죽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의 최후를 보시기 바랍니다.“그 날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절). 이것이 메대 바사가 일어나고 바벨론이 넘어지던 순간입니다. 벨사살이 열었던 잔치는 문자 그대로 멸망의 잔치였던 것입니다. 이 교만한 왕에게 멸망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서서히 오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한순간에 다가옵니다. 잠언서 기자의 증언처럼 “악인에게는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합니다”(잠 6:15).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영광은 눈깜짝할 새에 무(無)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이래로 바벨론 제국의 최후는 성경에서, 인류 역사의 최후의 모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인류 역사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바벨론 제국의 패망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1절 이하를  보십시오.“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1,2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이 세상의 모습은 진정 바벨론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商)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3절).“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 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9,10절). 한순간에 무너지는 인류의 바벨탑의 운명을 묘사한 극적인 장면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두가지

 

첫째로,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이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다스리십니다. 나를 세우고 나를 폐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3절에서 다니엘 선지자가 벨사살에게 선포한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누가 당신의 호흡을 주장합니까? 이 순간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십시오. 우리는 내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은 자꾸만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서 다니엘은 벨사살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 것을 죄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호흡하게 하시고 살아 움직이게 하시며 나로 인생의 작정된 길을 걷게 하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이란, 삶의 중심에 나를 놓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놓느냐 하는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부패성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싶어합니다. 내가 영광을 받고 내가 내 삶의 초점이 되고 나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 할 전쟁터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나로 호흡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자 애써야 합니다.

 

벨사살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마시고 해야 할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했을 때 그들의 잔치는 멸망을 부를 잔치가 되었습니다.“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바울은 같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성찬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멸망의 큰 잔치 이렇게 종말을 대비하라”“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29절)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먹고 마신다는 이야기를 왜 했겠습니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삶의 모습이 바로,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먹고 마셔야 합니까?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정치도 하고 장사도 해야 할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를 위하여 먹고 마시고 욕심을 낼 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이 “마지막 잔치”의 진정한 메시지인 것입니다.“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25절).“제게 주어진 인생의 남은 날을  당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언제나 당신이 제 삶의 중심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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