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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담대함

요한일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729 추천 수 0 2013.02.21 2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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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4:17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44강) 요한일서 4:17 사랑과 담대함

 

<본문>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한일서 4:17)

<설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봄으로서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입니다. 즉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현장은 독생자가 죽으신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과 형편에서 사랑을 찾습니다. 그러니 찾을 수 없고 보지 못할 수밖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좋은 환경, 나아진 형편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오직 진리에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진리는 여러분을 예수님에게로만 이끌어 갈 뿐, 세상에 대한 쓸데없는 소망을 실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 사도가 전하는 다른 복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편한 환경으로 증거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던 분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편한 삶이었던가요? 성공과 출세로 끝났던가요? 오히려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사랑을 빙자하여 나의 유익을 꾀하고 성공과 출세를 요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을 내세우며 사랑을 말한다면 그 모두는 거짓 선지자로 여기면 될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제아무리 가난한 자로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공평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알았기에 세상 것이 있다 없다를 기준 삼아 누군가에게는 고개 숙이고, 누군가에게는 무시함으로 대하는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 아래 거하게 된 신자에게 사도는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17절)고 말합니다.

 

심판 날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염려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심판 날에 대해 아무런 염려도 없습니까? 예전에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아마도 구원에 대한 불안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에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행실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종교 행위부분, 실천 부분을 보니 도저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가 있게 되지만 사도의 말대로 한다면 그러한 생각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있는 것일 뿐입니다.

 

신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바라보고 믿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에게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 값은 사망인데 그것을 예수님이 모두 갚아주신 것입니다.

 

죄 값은 분명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담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이 모두 갚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신자는 이 선물로 인해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말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용서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심판 날이 되어도 사망과 상관이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의미는 ‘나는 죽을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만을 바라볼 뿐입니다’는 고백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용서 아래 있음을 뜻합니다. 용서 아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덮고 있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용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그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과 용서를 말할 때 어떤 사람은 이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고, 용서 아래 있으니 나는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 받는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을 알고 용서를 아는 신자는 사랑과 용서를 자신의 편함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과 용서를 빙자하여 자기 멋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사랑 안에 있기에 사랑에 의해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랑에 의해 다스림 받고 있는 그 증거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사도가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사망에 처한 자신에게 베풀어진 사랑의 원칙이 형제를 향해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용서 받아야 할 자로서 형제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할 자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앎이 진실된 것이라면 여러분은 형제를 비판하고 헤아릴 자격이 내게 없음을 마음 깊이 자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용서를 증거하고, 전달하고, 나누는 것이야 말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인간적 친분이나 친절,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을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에 말씀드린 가인의 얘기를 기억하십니까? 가인은 종교적 형식과 의식은 있으되 하나님의 사랑에 머물지 않은 전형적인 비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을 때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가치가 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 이것이 가인의 잘못됨이었습니다. 가인은 단지 ‘왜 내 것만 받지 않으시는가?’로 분노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이 없는 자에게서는 이런 분노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나는 이렇게 조차도 살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은총을 베푸십니까?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으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나아가서 사랑에 거하십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다스림을 받는 신자는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주님의 입장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입장을 내세울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있으면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면 됩니다. 사랑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멸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은 행함이 없는 자신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아는 그는 참으로 행복자입니다. 사랑 안에서 부족함이 없이 담대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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