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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084 추천 수 0 2013.04.08 15: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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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1-26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9-01-25 http://www.yullin.org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요 4:1-26).

 

Ⅰ.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유대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은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위로는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갈릴리 지방이었고 아래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지방, 중간에는 사마리아 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마리아였습니다. 그 중 사마리아 지역은 원래 이스라엘 왕국이 둘로 나누어져 있던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가 망하기 130여 년 전, 아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됩니다.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동족들을 대적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던 데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수르 사람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외국인들을 그 땅에 거주시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이사시켜서 민족을 서로 섞는 혼인정책을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민족의 동질성을 파괴하고 단합을 저해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혼혈아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사마리아 지방은 순수 혈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사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지방에서 갈릴리로 가고자 할 때에는 차라리 강을 건너 동편으로 돌아서 가곤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버림받은 땅으로 여겨지던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에 우물가에 앉으셨을 때, 물을 기르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마주치셨습니다. 성경은 이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과 성령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Ⅱ. 목마르지 않는 물

 

하루를 위해 물을 기르러 오는 일은 이 여자에게 있어서도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어서 물을 기르고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지 육신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한 동이의 물을 기르러 온 이 여자의 모습 속에서 목마른 그녀의 영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십니다. 희망이 없는 이 여인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오직 예수님이셨고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내게 마실 물을 좀 줄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예수님은 목마르지 않는 물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법한 구약성경의 명백한 은유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종종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영혼의 갈망을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은 성령의 은혜 혹은 은혜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1장에서 사도는 이러한 성경 해석의 맥락에서 말합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이처럼 이 은유는 유대인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보십시오. 그 여인은 계속해서 마른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리적인 물만을 생각하며 예수님께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자연인의 생각이 영적인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절한 예수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관점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에게로 옮겨지지 않고 여전히 육신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아주 많은 것 같아도 마지막에 돌아가면 그 문제는 하나이고 매우 단순합니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굶주림이 깊을수록 음식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목마름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사모하는 목마름이 있는 한 그 사람은 다시 이러한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물, 목마르지 않는 생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에 대한 말씀을 끊임없이 해주시는데도 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령에 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영적인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육신의 문제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개별적인 것들이고 사실 모든 문제의 원천이 자신의 영혼의 목마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핍절하고 부끄러운 영혼 앞에 세워주심으로써, 주님만이 우리의 영혼에 찾아오셔서 고치시는 사랑의 목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심하지 못하고, 영혼의 침체가 너무 오래되어 은혜와 사랑의 목마름조차 잃어버린 성도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성령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고, 사실 지금 느끼는 마음과 삶의 많은 곤고함의 뿌리가 영혼의 문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지만 드디어 그 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되묻던 것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진전이었습니다.

 

Ⅲ 네 남편을 불러오라

 

원래 당시 물을 기르는 시간은 대개 아침과 저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자를 만난 것은 한 낮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볼 때 이 여자는 동네의 여인들과 부딪치기 싫어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온갖 소문과 수군거림의 주체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다시는 물을 기르러 오지 않고 싶은 바람으로 예수님께 물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영생,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생수, 목마르지 않는 물로 대화를 이어가실 때 까지는 여인과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을 향해야 됐습니다. 그런데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씀은 갑자기 그 관점을 이 사마리아 여인으로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 여인은 남편이 없는 여자였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목마르지 않는 물을 얻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문제였습니다. 약속된 성령의 은혜, 하나님과의 교통의 은혜를 누리기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바로 이 죄의 문제입니다.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짧은 진술은 그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좋은 선물,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기분 나쁘게 남편의 일을 꺼내십니까? 나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들추지 마십시오.’ 당시 사마리아 지역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주석가 매튜 헨리 목사님은 이 여자가 창녀임에 틀림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나 바꿔 살았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구약은 이런 남녀를 간음한 여자로 규정합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의 한 마디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둔 고통스러운 과거와 죄에 대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성령 충만한 삶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진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 죄가 방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기에 앞서 죄의 지적을 통해 예수님이 기대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죄에 대한 지적, 지적된 죄에 대한 회개, 하나님의 죄 사함, 성령의 부어주심, 이것이 바로 죄인들이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게 되는 방식에 대한 사도행전의 설명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예수님은 이 가련한 사마리아 여인을 일부로 찾아오셨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였을 것입니다. 이런 여인에게 가장 뼈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이 여자를 부끄럽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지만 끝나지 않는 불행한 처지의 동정 대신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회복을 위해 그 여인이 죄와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결코 정죄하기 위하신 것이 아니라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해서 그 위에 하나님께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의 은혜를 물 불듯 부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의 은혜는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이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우리가 능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그리스도인의 전투적인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은혜를 구하는 것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늘 패배하기만 하는 사람은 성령의 은혜로 무장하여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하는 것이 영광을 돌리는 비결이라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은혜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하고 끊임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복종하게 함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Ⅳ. 결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게 무장되어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위업을 이루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예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눅 2:34).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 깨닫고 자신의 불결을 알게 됨으로써 패배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 때문에 다시 승리하게 되는 비결을 터득하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정결하게 하셔서 충만한 성령의 은혜 안에서 교재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예배 가운데서 진실로 회개하면 주님은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새 삶을 살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언제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온갖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충만한 은혜가 결핍된 채 살아가는 사마리아 여인들과 같은 여러분들을 보시며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삶의 목적도 없이, 방향감각도 상실한 채 하루하루 이어가는 삶은 살아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핍절한 삶을 종식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치는 기쁨 속에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 원하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지금이라도 여러분 영혼에 충만한 성령의 은혜, 결코 목마르지 않는 이 은혜의 섬을 터뜨리고 부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간곡하게 이것들을 부어주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더 교회답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러분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충만한 은혜,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쏟아지던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예전에는 실패했을지라도 새롭게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큰 능력의 은혜를 받고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0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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