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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로마서 신실............... 조회 수 3754 추천 수 0 2013.08.26 14: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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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2:1-12 
설교자 : 이영화 목사 
참고 : 당진 함께하는 교회 http://tgchurch.hompee.com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로마서 12 : 1 - 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 입니다.  한 조사 기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율이 가장 높은 지역의 순위를 모아놓은 자료가 있었는데 1위는 인천이었고 특이한 것은 2위가 대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충청도분들은 여유 있고 운전을 할 때에도 느긋하실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순위권에 들어가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2위가 교통 사고율이 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빨리빨리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평소에 유순하고 내성적인 분들이 운전대만 잡으시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커피자판기에서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 다음에 커피가 나오는 것을 기다지지 못하고 컵을 꺼내다가 화상을 입는다든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다리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누른다든지 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물론 빠른 것이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위를 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I.T. 산업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성과 사실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도 여기저기서 속도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빠른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할 것인가에 골몰하며 속도에 대한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방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우리가 빠른 것을 추구하며 속도와의 경쟁을 하더라도 그 방향이 잘못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에도 조금만 시간이 잘못 계산되면 전혀 엉뚱한 궤도로 날아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빠른것을 추구할 때에 내 자신의 삶이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한순간에 성자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에 내 성격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을 통한 자기 성찰과 훈련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는 것이지 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한순간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를 나온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조급한 마음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아 교회를 다니는 것을 그만두어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간혹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한 순간에 생겨나기고 하지만 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어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믿음이 없는 것 같고 믿어지지도 않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믿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덧 우리 함께하는교회가 11월이 되면 설립 6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의 일들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흔히 개척을 하였다고 대부분의 관심은 몇분이나 모이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머물다 또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개척이 어려운 때에 그래도 조금씩 성장의 은혜를 경험하며 부흥을 꿈꾸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도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단기간에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은 분명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을 살리는 일에는 분초를 다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어떻게 하든 단기간에 부흥하기 위해 목회의 윤리를 때로는 버리고 수단과 방법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시대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과는 그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비슷한 평행선상에서 같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미세한 차이는 점점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크게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서 그것에 미혹되거나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입니다.  

 

‘육신의 정욕’ 은 말 그대로 우리가 몸으로 행하는 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에 대해 무감각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점점 더 깊고 은밀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도덕과 가치관도 상실되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안목의 정욕’ 이란 눈으로 마음으로 짓는 죄입니다.  요즘 여러분 얼마나 눈으로 짓는 죄가 많습니까? 눈을 떠서 주위를 돌아보면 온갖 세상이 눈과 마음으로 죄를 짓게 합니다.  많이 볼수록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사는 분들이 죄를 적게 지을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생의 자랑인 ‘교만’ 함입니다.  교만함은 주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교만 중에서도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나마 겸손한 사람이지만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사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 가지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고 강하게 명령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초스피드의 시대입니다.  무엇이든지 빠른 것을 추구하며 빠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컴퓨터를 혼자서 다루면서 인터넷에서 자신이 원하는 싸이트를 찾아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이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보면 놀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역기능들이 숨어있습니다.  여러분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내가 가야할 방향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인생을 흔히 전통을 떠난 화살에 비교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도 활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지나고 나면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 빠르기는 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빠른 것만을 추구해 무엇이든지 빨리 얻고자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과연 내 인생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넓은 길, 좋은 길, 편안한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바른 길인가, 최선의 길인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는 말씀처럼 오히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은 세상의 길과는 다른 길임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내가 말씀대로 바로 행하며 살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거절도 해야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고 내 양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포기를 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을 위해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좁은 길로 가는 것이며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분들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이라는 좋은 장비가 있지만 대부분 남성분들은 운전을 하면서 초행길을 갈 때 잘 모르면서도 무조건 묻지 않고 계속 간다는 것입니다.  이정표만보고 감으로 그냥 계속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저의 사모는 계속 옆에서 어디서 세워서 물어보고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보다는 계속 저의 감을 믿고 그냥 가고 싶은 겁니다.  물론 대부분 잘 찾아 갈 때도 있지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데요 그때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차를 멈추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유턴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저는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가고자 할 때 가장 빠른 길은 내가 정확히 알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가는 길만큼 더 빠른 길은 없습니다. 괜히 지름길이 있나하고 알지 못하는 길에 들어섰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또 한가지는 내가 들어선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유턴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냥 고집을 부리고 ‘길은 다 통하니 계속 가면 나오겠지’ 라는 고집으로 계속 잘못된 길을 간다면 시간을 낭비할뿐더러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음을 믿으십니까?  이제까지 내가 예수를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우리의 죄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흘만에 살아나셔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장차 이 땅에 오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바른 길이며 이러한 고백이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라는 말씀처럼 사도 바울의 인생은 이리저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인생의 바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이 바른길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에 결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크게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새롭게 하라’ 는 것입니다.  겔18: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말씀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모든 죄악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죄악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더럽히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의지로요? 훈련으로요? 아닙니다. 오로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에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원하시는 성령으로 날마다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변화를 받으라’ 고 했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나의 모든 좋지 않은 습관과 죄의 모습들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우리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변화에는 두가지의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변화입니다.  

 

이 외적인 변화는 그 사람의 언어가 달라지고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혹시 예수 믿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달라졌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의 변화입니다. 이러한 외적인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철저하게 내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난 이후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내 중심이 아닌 모든 것이 주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고 귀히 여기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주를 위해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물질 또한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변화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은 외적인 변화와 내적인 변화를 함께 입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가운데 날마다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늘 묻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출가한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자식이 출가하면 이제 장성한 어른이며 모든 결정은 자신이 내릴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가 “어머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저건 어떻게 할까요?” 라면서 알면서도 사소한 것이라도 어머님께 조언을 구하면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치 부모님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뢰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에서까지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가장 작은 아이성에서 뜻하지 않은 패배를 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도 그전까지는 항상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께 물었지만 아이성에서의 전투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자신들의 힘만으로 충분히 그 성을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다가 결국 숨겨진 아간의 범죄함으로 인해 패배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아이성과의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었다면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지적하였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어쩌면 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의 훈련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세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참된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왜 공부하니”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 “그 다음에는?” “좋은 직장에 가려구요” “그 다음에는?” “좋은 집에 살려구요” “그 다음에는?” “몰라요”  몇 번만 질문하면 그 마지막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신앙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 어떤 것을 타고 얼마나 빨리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느냐 그 방향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에 분명한 방향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풍조와 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조급해 하지 마시고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방향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 바른 길로 행하시는 주님의 참된 제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6. 2.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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