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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망각

창세기 김진호 목사............... 조회 수 414 추천 수 0 2015.11.28 23:16:47
.........
성경본문 : 창22:18 
설교자 : 김진호 목사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407519 

축복과 망각

(창세기 22:18)

 

2014년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예배

김진호 목사(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22,18

 
하느님이 명을 내렸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 번제물로 바쳐라.”(?창세기? 22,2) 뒤늦게 낳은 귀한 외동아들입니다. 그 아이를 통해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겠다는 하느님의 축복의 장본인입니다.(?창세기? 17,16) 한데 하느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왜 하느님은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아브라함이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일까요? 욥의 친구들은 재앙을 당한 욥에게 그렇게 추궁했습니다. 이런 말이 얼마나 적절히 않은지는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를 떠올리면 충분히 알 수 있겠지요.


다행히 ?창세기?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이 문서의 설명은 ‘더 문제적’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시험’이었다는 것입니다.(?창세기? 22,1) 그렇다면 이 시험의 정답은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느님이 약속한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창세기? 22,17)

만약 하느님의 시험이었다면, 그 시험을 통과해서 신의 축복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당대뿐 아니라 세세손손까지 그 믿음에 대해 칭송한다고 해도(제2성서의 저자들은 아브라함을 그렇게 칭송하고 있지요. ?로마서? 9,7; ?히브리서? 11,17; ?야고보서? 2,21이하), 과연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행복해한다면, 그이는 참으로 비정한 아비이지 아닐까요? 또 그런 명을 내린 신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요즘이라면 신들의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그 신과 비정한 아비를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을 것입니다. 하여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아브라함은 신의 소리가 아니라 ‘악마의 소리를 들은 광신도’였다고 비판해마지 않았지요.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짐을 챙겨 나귀에 싣고, 아들 이삭과 종 둘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사흘을 걸어 신이 명한 모리아 산이 멀찍이 보이는 곳에 도달합니다. 이 산은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바로 그곳이라고 알려진 곳입니다.(?역대기하? 3,1) 이곳에 그는 거기에 종들과 나귀를 두고, 아들과 둘이서 산에 오릅니다.


한참을 가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어쩌면 내내 궁금했을 테지만 아비의 비장한 모습 때문에 감히 묻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비는 대답합니다. “신이 준비해 놓으셨다.” 이 무뚝뚝한 대답이 그대로 그의 마음은 아니겠지요. 필경 속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겠지요.

아무튼 아비는 아직도 그 말을 아들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겠지만, 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준비할 틈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아비는 그 사흘간 처절한 고뇌의 행보를 하면서도 아들 목숨의 존엄함을 위해서는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말씀한 그곳에 도착해서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장작을 거기에 펼쳐놓았습니다. ?창세기?는 그런 다음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고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이삭은 아비의 이 갑작스런 행동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을까요? 죽음의 준비를 전혀 할 기회가 없었던 그가 말입니다. 산을 오를 때 장작을 매고 갔다고 하니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닐 것입니다. 도망칠 수도 있었겠지요. 서기 1세기의 이스라엘계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그때 이삭의 나이가 25세였다고 추정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늙은 아비를 힘으로 제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비는 아들을 혼절시킨 뒤 포박하여 제단에 올려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아비는 칼을 두 손으로 잡고 하늘을 향해 쳐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들은 공포에 찬 눈으로 아비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들과 아비는 그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들은 아비를 향해 절규하듯 비명을 질러댔을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급히 신이 끼어들어 아비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창세기?는 전합니다. 신이 준비한 다른 제물로 제사는 무사히 드려졌고, 신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다시금 약속했다는 말과 함께...


한데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19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도대체 이삭은 어디에 갔을까요? 제사 드리러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아들이 돌아가는 길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무수한 사상가들과 해석가들은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이 구절을 실마리 삼아 ‘이삭의 상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즉 이삭은 돌아오는 길에 없었고, 그것은 이삭이 받은 심한 상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어떤 이는 이삭이 이 사건으로 인해 다리를 절었고, 아비에 대한 분노를 평생 지우지 못하며 살았다는 후일담을 상상해냅니다.


있을 법한 상상입니다. 근데 좀 더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겐 자신의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는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을 수 있고, 그의 이상 행동은 주변사람을 심하게 불편하게 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대의 트라우마 연구들을 보면, 한번 혹은 여러 번의 희생자 체험을 하여 무의식에 깊은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은 자주 공포감과 분노를 조절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주변과의 관계 단절 상황에 놓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또한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간접 희생자’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희생자-가해자의 틀이 사라지고 거의 모든 이들이 희생자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삭이 그런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리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 아비뿐 아니라 어미, 식솔, 이웃,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아우르는 관계의 뒤틀림을 겪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창세기?는 이 사건 직후 사라가 죽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이 사건이 낳은 하나의 부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34년 전 5.18의 희생자들을 떠올립니다. 군사정권은 그들을 폭도 아니 간첩으로 몰아 소탕함으로써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축복의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한편 민주정부들은 ‘5.18광주’의 ‘숭고한 희생자’ 덕에 민주국가가 이룩된 것이라는 축복의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희생자와 축복의 조합을 직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이 서사에서 희생자는 악의 표상이거나 숭고의 표상으로만 묘사될 뿐입니다. 그러나 악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은 대다수 희생자들의 실제 체험들, 그리고 간접희생자들의 고통들은 여기서 망각되었습니다.


이삭도 그랬습니다. 성서 어디서도 아브라함의 순종이 칭송되지만, 그 순간 이삭이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 평생을 좌우했을 그의 상흔, 그리고 그 상흔 때문에 일어난 관계의 단절과 파행, 그로 인한 간접희생자들의 고통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위대한 순종으로 인해 축복이 주어졌다는 바로 그 이야기는 이삭의 상처를 망각하게 했고, 그로 인해 발생했을 모든 고통의 소리들을 침묵하게 했던 것입니다.


5.18 민주항쟁 34주기에 우리는 또 한 번의 대대적인 희생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죽음으로 인해 들려오는 소리들입니다. 실은 5.18 당시에는 그런 소리 자체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5.18을 둘러싼 ‘위대한 소리들’에 감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그 생생한, 날것 상태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함께 고통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에 너무 아프고 너무 화나 많은 이들이 유가족처럼 슬피 애도하면서 그 가해의 체계를 색출하라고 분노하며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누구는 이런 무질서한 소리들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이 소리들이 민주주의를 기사회생시키는 위대한 계기적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빨리 나왔습니다. 아직은 슬피 애도하고 분노하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 무질서가 아직은 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희생자들과 간접희생자들의 영혼을 그 상흔들이 사로잡는 문화가 또 다시 재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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