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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548 추천 수 0 2018.10.26 2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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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1:18-22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4월 22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21 너는 나를 따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18-22)

 
누군가를 따르는게 쉬워진 세상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버튼을 누르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따르는 팔로워가 된다. 그 사람을 따르는데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지불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팔로윙을 취소할 수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하신다. 팔로워가 되라는 초청이다.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갈릴리 해변에 있던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것일까?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의 첫 팔로워가 된다. 그리고 이어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팔로워가 된다.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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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은 좀더 자세히 그들이 따르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갈릴리 호숫가에 두 척의 배가 있었다. 어부들은 아침무렵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갈릴리 어부들은 보통 밤에 고기를 잡는데, 밤을 새며 그물을 내렸지만 그 날은 잡은 것이 없었다. 그 때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셨다. 그리고 호수가에 있던 무리를 향해 가르치셨다. 호숫가에서의 예수님의 설교는 그들이 처음 들어본 내용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전문 어부에게 비전문가가 지시를 한 것이다. 시몬이 대답한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물을 내린 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고기를 잡은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진 것이다. 시몬은 다른 배에 있던 동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배는 야고보와 요한의 배였다. 결국 두 배에 잡은 고기들이 가득 차게 되었다. 시몬도 놀라고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어부 인생에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시몬은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 회개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에 그들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팔로워가 된다. 모든 것을 버려둘 만큼 예수님에 대한 놀람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3년이 지났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십자가를 선택한 예수님을 더이상 따르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은 다 조용히 도망갔다. 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사실을 세 번이나 공개적으로 부인한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부인하자 닭이 운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한다. 지금도 베드로 통곡교회에 가면 근처에 닭을 키우는 집이 있다.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모른다.


베드로의 자괴감이 어땠을까? 매일 한번 이상 닭이 울어댈 때마다 베드로는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예수님의 제자였다. 다른 제자들은 그의 열심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자신의 신변의 위협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세번이나, 그것도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베드로의 제자로서의 삶은 끝이 난다.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자존감은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에 무덤에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했지만 다시 그 앞에 제자로 설 면목이 없었다. 베드로는 그대로 낙향했다. 다시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갔다. 거기서 하릴없이 예전에 하던 고기잡이를 했다. 다른 제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시 갈릴리로 모였다.


시몬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름이 나오지 않은 다른 제자 둘까지 모두 일곱명이 그곳에 있었다. 여기서 베드로는 ‘나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사람 낚는 어부’에서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 간 것이다. 그들은 밤에 배에 오른다. 그러나 그날 밤 아무 것도 잡지 못한다. 약속이나 한듯 갈릴리 호수의 모든 물고기들은 그들의 그물망을 철저히 피해간 것이다.


날이 새어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닷가에 오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물으셨다. “없어요.” 그들이 대답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거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밑지는 셈치고 그들은 다시 그물을 던진다. 그러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다. 그 때 요한이 베드로에게 “저 분 예수님이야’라고 말한다. 그러자 성질 급한 베드로는 육지에서 9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호수로 뛰어내려 호숫가에 계신 예수님께 달려간다.


육지에 가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도 좀 가져오라고 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세보니 153마리였다. 요한복음은 왜 굳이 이 숫자를 기록한 것일까? 하나 재미있는 해석이 있다. 이 숫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단어에는 숫자값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히브리어 ‘브네이 하엘로힘(??? ??????)’의 각 단어 숫자값을 더하면 153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제자들이 낚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얘들아 너희가 낚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야. 너희는 사람 낚는 어부지,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란다’ 어쩌면 이 숫자에는 예수님의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인지 알기 때문에 당신 누구냐고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예수님은 빵을 제자들에게 주셨고 생선도 나눠주셨다. 자기를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친히 불을 피워 생선 바베큐를 해주신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힐링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식사는 조용하게 이루어졌지만 제자들은 아마도 자꾸 목이 메이는 식사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물어보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나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시몬이라고 부르셨다. 시몬은 ‘들음, 갈대’라는 뜻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듣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갈대와 같다고 한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흔들렸던 베드로를 원래 그의 이름으로 부르셨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자신이 흔들려서 실패한 사람은 깊은 자기 정죄감이 있다. 흔들리고 넘어진 자신이 용납되지 않기에 겉으론 웃고 있을지 몰라도 속으론 깊은 자기정죄감으로 괴로운 것이다. 원죄의 굴레 아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 연약함의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시 베드로 못지 않게 흔들리고 넘어짐을 경험하는 갈대와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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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어떻게 자기 연약함의 문제를 극복했을까? 사실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그를 세워주고 싶으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첫 팔로워가 되었을 때 하신 약속처럼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길 원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전히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해주셨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신 것은 “너 나 세 번 부인했지”라고 따지시는 게 아니었다. 너는 연약했지만 지금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길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부인했던 횟수만큼 질문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 예수님의 마음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넘어졌는데, 나는 주님을 배반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나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주님을 향한 마음이 크구나’ 그는 그 사실을 알고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용서와 회복의 체험은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열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열정, 자기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님께 사랑 받고 있고 나도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꺼이 다시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을 위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신다. 요 21: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이 여기서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이 말이 베드로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더이상 십자가 앞에서 멈추는 따름이 아니다. 남들이 십자가를 지우는 그 순간까지 따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남긴 편지를 보면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벧전 1:13-15,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는 AD64경 네로 황제의 치하에서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로마제국에서 임박한 박해를 앞두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변함없이 주님을 따를 것을 권면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죽음을 예언하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그 비장한 순간에 베드로는 갑자기 모양 빠지는 질문을 한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베드로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요한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던진 질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끝이 십자가형이라는 말에 다른 제자 요한의 운명도 궁금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 21:22,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각 사람에게는 그만의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자 이제 ‘너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그것은 먼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초청이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을 찾아 먹이고 돌보라는 부탁이다. 그것은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기까지 버림받고 고난당함을 감당하라는 초대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값싼 은혜를 약속받는 길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값비싼 댓가가 요구되는 길이다. 본 회퍼 목사님은 말했다. “십자가는 불운과 가혹한 숙명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속 때문에 생기는 고난이다. 십자가는 우발적인 고난이 아니라 필연적인 고난이다. 십자가는 자연스러운 생활 때문에 겪는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다가오는 고난이다.” 그리고 그는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라고 말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값싼 은혜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는 자가 되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너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상관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네 사명의 길을 가라는 초대다. 우리 각자의 사명은 다 다르다. 비교할 필요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누구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기준이다. 세상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주를 떠나도 나는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초대다. 그러면 나머지는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다시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세상 방식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낚는 어부에서 다시 내일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생활인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당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신 것이다. 이 말은 실패한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초청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를 초청하신다.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나를 따르라.’ 이 예수님의 초청에 믿음으로 클릭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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