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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56 추천 수 0 2024.02.11 09: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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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38-4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38-42: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세상 것을 구하면 안 되는 거냐?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에 너희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으니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이런 걸 구하게 가르치면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가 된다.

 

:에서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께 시험을 칠 때도 이런 문제로 시험을 쳤는데, 마귀의 세 가지 시험 중에 맨 마지막에서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을 한 번만 하면 세상영광을 다 주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것을 부러워했다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절을 한 셈이 되는 거다.

 

교인들이 예수님께 예배당을 궁전처럼 짓게 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냐? 교회는 성도고, 예배당은 건물이다. 교회는 영이 중생된 사람을 말한다. 목적을 예배당을 짓는 것에 두고 구하는 것은 안 된다. 그리고 예배당 건물에 정신을 두게 되면 교인들로부터 돈을 짜내야 한다. 이건 인본주의로 넘어간 거다. 그런데 교인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의 예배당이 비좁아서 큰 예배당을 지읍시다해서 교인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을 해서 예배당을 짓는다면 이건 옳은 거고, 동참한 성도들은 이룰구원이 되는 거다.

 

예배당이던 종교적인 명예영광이던 종교적인 건설을 해 놓은 것은 불에 타버린다. 그러나 참 교회는 불에 안 탄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교회이기 때문에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갔어도 그 불에 타지 않았다. 주님으로 닮아진 것은 불에 안 타진다. 귀신도 불에도 안 타고 물에 빠져도 안 죽는데 주님이 불에 탄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예배당은 짊어지고 천국에 못 들어간다. 주님 닮은 것만 들어간다. 우리가 갈 곳은 신령천국이라서 인간성을 가지고는 들어가지 못하게 때문에 우리를 예수 믿게 하고 변화 부활을 시켜서 신령체로 만들어서 데리고 들어간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령한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의 이치의 설교를 해야 한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로 살자라는 설교를 들으면 몹쓸 사람이 된다. 그러니 이런 설교는 들을 필요가 없고, 그런 것을 구하면 안 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모세가 주신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오늘날도 성경을 보면서 말씀의 이치가 깨달아지면 이건 구원의 주님이 자기에게 온 것이니 이 말씀을 보호하고, 살리고,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하는데 자기의 세상적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이걸 내버린다면 이건 자기에게 온 예수를 죽인 거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들을 보낸 아버지의 뜻은 사람들로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거다. 그러니까 누가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거냐?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100% 나타내야 하고, 아들을 보고 이게 아버지의 뜻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해서 그 뜻을 영접하게 해야 할 큰 책임이 있다.

 

기독교 안의 신앙의 형태를 보면 성문적으로 교리가 다른 교회가 있는가 하면, 교리는 같은데 신앙하는 정신과 마음이 천국을 지향하는 교회와, 세상을 지향하는 교회가 있다. 정통적인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으면 교리는 입에만 가지고 있고 마음은 세상에 붙어 있는 것이라서 여기에는 이룰구원이 되어지지를 않는다.

 

오늘날 신학교나 총회나 노회가 세상적으로 흐르는 곳들이 많은데, 이런 곳에 속한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성경구절을 쓰기 때문에, 예수이름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교인들이 이들이 옛사람 주격으로 된 것인지를 모른다. 오늘날 이런 거짓적이고 이단적인 자들이 기독교의 제도를 타고 교회 인도자가 되어서 교인들을 이질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많다.

 

성경에 예수님을 양의 문이라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은 양의 속성, 주님의 속성을 닮은 것만 드나드는 문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참과 거짓, 영과 육, 천국과 세상, 영원과 임시, 생과 사 등등을 구별 분별하는, 즉 검색을 하는 문이다. 기준이다. 그 무엇이든 주님의 속성이 아닌 것은 주님 앞에서 다 걸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은 주님께 들락날락 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속성과 성품, 인격성, 지혜지식성이라야 통과가 된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예수님의 속성으로 된 문밖에 없다. 주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것이 아닌, 천국의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것이 아닌 세상 것을 주장하고 자랑하고 가지라고 한다면 비유적으로 말을 하면 이는 세상요소의 것을 가지고 교회의 담을 넘어 들어가서 교인들의 충성봉사를 훔쳐가려고 하는 도둑이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의 속성을 닮으면 이게 참 나다. 이게 아닌 세상을 좋아하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예수를 믿는다면 이는 거짓 자기로 사는 거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것을 보지 못하면 불탈 것을 구하게 된다. 한 마디로 세상 것을 구한다. 반면에 예수님의 속성을 가지게 되면 이 속성은 불에 안 타고, 영원한 명예 부귀영광이 되고, 영원한 능력이 되고, 영원한 지혜가 된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당신을 닮은 사람을 찾으러 오시는 거지 예배당을 보러 오시는 게 아니다.

 

오늘날 성경을 바꿔친 성경에도 없는 교리들이 기독교 안에 많이 있다. 이런 교회에 소속이 되거나, 이런 교회에 입장이 되거나,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면 자기에게는 영생이 없다. 이런 신앙은 예수를 엉터리로 믿는 거다. ‘지옥 간다. 천국 간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자기가 출생을 해서 공동묘지에 갈 때까지가 예수님을 닮을 기간이니 이 기회가 다 지나가기 전에 예수 믿는 정신과 목적을 뚜렷이 가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의 본질에 적중한 믿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있느냐? 천국의 것, 신령한 것, 불에 안 탈 것, 영원히 갈 것으로 자기의 실력화로, 자기의 능력화로, 자기의 존귀영광화로 얼마나 시켰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부요자가 되었느냐?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심판 날에 예수님께서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자를 다시 살린다. 이 살리심은 그냥 부활시키려고 살리는 게 아니라 다시는 안 죽을 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요소로 살리는 거다. 이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환난과 핍박을 받고 고난을 견뎌온 것을 보상해 주신다는 뜻이 들어 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고 하는 것은, 첫째는 세상 마지막 날에 변화 부활로 살린다는 거고, 또 하나는 예수 믿으면서 복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낮아지고 낮아져서 아무도 안 알아줘도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다시 높이 올려서 세운다는 뜻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서 이 일을 하는 분인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걸 몰랐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을 속에 들어간 것은 그들의 마지막 날이다. 이 세 친구를 풀무불 속에 넣은 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득세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마지막 때도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상황을 싹 바꿨다. 모르드개도 이런 일을 겪었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 처해져도 주님께서 알아주시고 필연적으로 들어 세우실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이 하나도 잃지 않고 세우신다. 나타나게 한다. 이 약속을 믿느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우리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라는 거다. 이런 소원 목적을 가지면 주님께서 이 사람을 세우신다. 이걸 현실에서 감지할 수 있는 성령으로 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 저 사람이 저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날이 오겠구나하는 게 있는 거다.

 

41-42: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수군거렸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떡을 먹고 살고, 땅의 사람은 땅의 떡을 먹고 산다. 그러면 믿는 자기는 자기의 참 양식을 먹고 뒤로 나오는 것으로 삼고 있는 건지, 몸은 늙고 죽어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영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 건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놓고 코에 하나님의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인간아,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기식으로 사는 존재다이 뜻이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양식을 먹고 살고, 땅의 사람은 땅의 양식을 먹고 사는데,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땅의 음식을 안 먹느냐? 이 말을 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 어느 것을 너의 참 양식으로 삼고 있느냐?’ 하는 걸 묻는 거다.

 

밥 먹고 숨 쉬는 생명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생명이다. 이 생명이 끊어지면 송장이다. 영의 생명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데, 이 생명이 하나님과 끊어지면 그대로 사망이다. 예수 믿는 자기는 하늘의 양식을 먹으면서 하늘에 뜻을 두고 살라고 만드셨다. 땅에 뜻을 두고 살라고 만든 게 아니다. 그런데 무엇을 자기의 참 양식으로 삼고 사느냐? 짐승은 인격도 하나님의 형상도 없기 때문에 물질의 먹을 것만 있으면 되지 영의 양식은 없다. 그러나 인간 자기는 둘 다 있는데, 영의 양식을 주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왜 짐승처럼 땅의 양식에 소원 목적을 두고 사느냐?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인간 자기에게 하늘의 참 떡을 먹게 해서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거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온전자로 만들려고 하늘에서 오신 거다. 그런데 왜 예수 믿으면서 썩고 불탈 것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땅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신의 감화 감동을 따라 살면 주님과 같은 하늘의 영능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신령한 성품의 사람이 된다. 예수를 믿어도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세상 소원 목적, 땅의 감화 감동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이건 질이 완전히 다른 거다. 세상의 감화 감동으로 살면 세상이라는 바람이 불면 같이 날아가 버린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면 신앙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루 이틀 넘어가는 사이에 죽음이 네 코앞에 다가온다.

 

예수 믿으면서 영의 양식을 자기의 주격적인 양식으로 삼고 살면 영능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이러면 자기의 몸을 의의 병기로 쓰게 된다. 이런 사람은 영을 주격으로 하고 육신을 영을 위한 소유격으로 활용을 한다. 믿는 우리는 영인이 잘 되는 게 주격이고, 내 속의 영이 자기의 주격이다. 물질을 먹는 것은 자타의 구원을 위한 이용성이다. 세상에 속화된 신앙자들은 이와는 반대의 정신으로 산다.

 

예수님께서 당신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 왜냐? 목수 요셉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가 자신들과 같이 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하느냐는 거다. 우리가 이들의 말을 들을 때 이들의 말이 옳으냐, 예수님의 말이 옳으냐? 예수님의 말이 옳은 이유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33년의 삶이 육 주격이 아닌 영 주격으로 사셨고, 세상이 좋도록 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가 좋도록 사셨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진리본질을 가지고 이치적으로 구별 분별을 하지 못하면 예수님에 대해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인데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 라고 하면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보게 되고, 예수님을 잡아 죽이게 된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질적으로 에 도달이 되어야 한다. 참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믿음도 환경과 시간에 따라 변질이 되면 안 된다. 믿음의 질이 세상으로 변질이 되면 거짓된 믿음이다. 금과 소금은 어디에 있어도 변질이 안 된다. 미국으로 가면 미국소금으로 변질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의 정신이 변질이 되느냐?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을 어떻게 믿어주시겠느냐? 지금 자기는 예수님께서 믿어주시는 건지,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 건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귀신얘기나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는 황당한 얘기인데도 이런 것은 은근히 믿으면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 실물인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도 안 믿는다. 왜 안 믿어질까? 믿어지는 게 이상한 거냐, 안 믿어지는 게 이상한 거냐? 전설의 고향 얘기가 믿어지는 게 이상한 거냐, 안 믿어지는 게 이상한 거냐?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유대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당신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말을 듣고 마치 하늘에서 물건이 뚝 떨어지듯이 한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하는 말로 이해를 해서 이 말을 하는 거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편으로 오실 수도 있으시지만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오신 것은 우리의 신앙 믿음이 진리와 성령으로 되었으면 마리아 속에서 구원의 예수가 잉태된 것과 질이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거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뜻을 모르니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라고 하는 거다.

 

이 시간에도 자기의 믿음이 진리와 생명으로 태동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이 자기 속에서 믿음적으로 자라고 있는 거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신앙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거다.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서 예수의 정신이 아니라 세상정신을 따른다면 이게 어떻게 믿음이냐? :의 족보는 그냥 족보가 아니라 마리아의 신앙 믿음의 정신이 믿음의 족보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만나고 다윗의 신앙을 만나는 거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은 자기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보통 사람인데도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만일 늘 보던 이웃사람이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면 그 말을 믿겠느냐? 안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본 눈으로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이웃사람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도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지도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 거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지금의 자신에게 적용을 하면 믿는 사람이 성령을 따라 산다면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산다면 몸은 누구 집의 아들이고, 불에 타지지만 속사람은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안 타진다. 이게 예수 믿는 효력이다. 내가 죽더라도 불에 안 타지는 사람으로 된 게 자기의 참 실상이다. 이런 것이 믿어진다면 자기 속에서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는 거고, 이 믿음은 얼마 안 가서 열매로 나오게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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