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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1 추천 수 0 2023.02.26 10: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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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3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439. (참고 요4:6-30)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여자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 고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그러면 여자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기에 여자를 믿고 따라 나왔을까? 전도하는 사람이 내가 어느 교회에 가서 누구의 안수를 받고 병이 나았다이러는 사람이 있고, ‘꿈을 꾸고 천국에 갔다 왔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건 제 믿음이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의 믿음이 아니다. 이런 믿음은 주님이 알아주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은 정신과 소원과 목적이 전부가 하늘나라의 것이니 믿는 나도 주님의 그 정신과 소원 목적을 가져서 인격과 성품적으로 주님과 단일이 되는 거다. 하늘나라의 것을 내가 받아들이고 따라가면서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입는 거다. 이렇게 되면 지혜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이 하나님의 성품화로 인격화로 만들어지면서 일반적인 성격과 성질이 고쳐지고, 마음 씀씀이가 넓어지고,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다. 그리고 사람이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으니 자기를 잘 다스려 나간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고칠 게 많다. 고친다는 것은 일반 사회 윤리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자기의 성격과 성질을 하늘의 인격과 성품으로 바꾸는 거다. 일반 사회 윤리 도덕에 맞추려고 하면 이 사람에게는 말씀의 역사가 안 된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의 인격과 성품이 말씀화로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안 된 채 세상 윤리 도덕에 맞추려고 하면 아무리 행동을 일반적으로 바로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성품과는 관계가 없고,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도 않는다. 정확한 이치가 항상 마음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잡는 거다.

 

세상사람들은 소원 목적이 다 땅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은 다 하늘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의 것으로 교훈하고 가르치신 후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다.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로 깨닫게 해서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는데 마지막 날에는 어떻게 예수를 믿었건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와 예수 믿고 죽어서 땅에 묻힌 성도를 다 변화 부활시켜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시는데, 하늘나라에 가면 성도 각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주님을 닮은 대로의 영광에 격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 누가 가장 잘 만들어졌느냐?’ 하는 게 말하자면 천국의 잔치다.

 

여자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따라 나왔을까? 여자가 그들에게 하는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라고 하니까 그 말을 듣고 따라 나왔다. 이 말을 지금의 나에게로 끌고 오면 하나님을 믿고 있던 사마리아 여자의 지나간 과거의 생활과 믿음의 정신과 사상이 지금의 내가 살아온 것과 같지는 않은지?

 

무슨 말이냐? 사마리아 여자가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의 과거가 말씀 앞에 다 드러나게 된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와 예수 믿고 있는 현재는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가 말씀의 판단에 의해 드러난다. 또한 내가 지금 이런 정신으로 살면 미래적으로 어떻게 살겠고, 그렇게 살다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심판이 가해지겠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야 현재에서 고치고 바로 만들어질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맨날 얻어맞으며 살겠느냐?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있고 짐을 가볍게 해 주겠다는 건데 예수 믿으면서 이런 맛이 없다면 이 사람은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때가 되면 물을 길어서 가족들에게 밥을 해 주는 등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남편 여섯뿐이다. 그것도 지금은 한 명의 남편밖에 안 남았다. 이걸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여자의 신앙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게 드러나는 거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야곱의 우물물을 먹으면서 야곱의 물질축복 정신과 남편을, 즉 자기를 즐겁게 할 것을 자꾸 갈아치우면서 평생을 살았다. 여자의 이 정신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 봐라. 우리로 이것을 깨달으라고 성경에 이 사마리아 여자에 대해 기록을 해서 우리로 읽게 하는 거다. 자기 자신을 안 고칠 바에야 뭐 하러 성경을 보느냐?

 

예수를 믿는다면 아무리 못 고쳐도 최소한 한 가지는 고치고 가야 할 게 아니겠느냐? 사실 한 가지만 고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잘못된 게 한 가지뿐이겠느냐? 우리는 고치고 갈 것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땅을 사서 바치겠느냐, 집을 사서 바치겠느냐, 예배당을 지어서 바치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건 안 받으신다. 예수 믿으면서 바른 것을 깨달아서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받으신다.

 

사마리아 여자는 자기의 약점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를 깨닫고 고쳤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를 좋게 말을 하면 좋아하지만 나쁘게 말을 하면 원수로 여긴다. 자기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언제 그랬느냐? 나도 나쁘지만 너는 더 나쁘다. 그러니 너나 잘 하라라고 한다. 만일 주님이 여자에게 말씀을 하실 때 여자의 태도가 당신이나 잘 하시오라고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물에 대해 말씀을 하시다가 뜬금없이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했는데, 이 말을 인간적으로 들으면 큰 실례가 되는 말이다. 그래서 여자의 말이 내가 남편이 있던 없던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여자는 그러지 않고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나는 남편이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는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으니까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한 여자의 말을 일반적인 생각으로 들으면 주님을 속인 거짓말이 되는 거지만 주님께서는 이 여자를 영의 눈으로 보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돌려서 생각을 해야 한다.

 

앞에서 생수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마찬가지이니, 여자가 물질의 물을 말하는 것을 영적으로 돌려서 생각을 하면 여자가 참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거고,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영생수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신 거다. 그래서 여자의 말을 표면적으로만 들으면 순 육덩이 소리이지만 영적으로 들으면 주님의 말에 딱딱 맞아 들어가는 거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남편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신앙 사상적으로 보면 생수에 대한 말을 한 후에는 반드시 남편문제가 나와야 하는 거다. 신앙의 원리가 그렇다. 무슨 말이냐?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으며 산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야곱의 물질축복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니 이런 신앙을 가지면 남편이 여섯만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거다. 왜냐? 물질로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믿는 사람은 세상의 이것도 구하고 저것도 구하게 되니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자기의 만족을 채워주는 남편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이치로도 결혼한 사람이 부부간에 만족이 없으면 늘 싸움이 나는데, 이는 부부가 의사단일이 아니라서 서로가 자기의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면이 주 안에서 만족이 되어야 한다. 햇빛이 땅을 비추니 땅에 사는 사람은 그 혜택을 받게 되는데 햇빛을 안 받으려고 모자를 쓰고 몸에 뭘 바르고 한다면 이 사람은 햇빛으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여러 가지 병이 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영적인 혜택을 보고 가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어떤 말씀을 먹느냐에 따라 남편이 생기게도 되고, 안 생기게도 된다. 즉 잘못된 말씀을 먹으면 예수님을 남편으로 두지 않고 자기의 세상적인 만족을 채우기 위해 자꾸 세상의 것을 자기의 남편으로 세우게 된다. 세상의 것은 전부가 불타고 썩고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영원한 참 만족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을 자기 남편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자꾸 세상의 다른 것으로 바꾸며 살게 된다. 갈아 치운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만족이 없다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하늘로부터 오신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 하늘의 이치가 열린다. 이건 영적이다. 반대로 예수 믿으면서 물질축복 축복하게 되면 땅의 것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하늘의 것은 캄캄하다.

 

생수문제 다음에는 반드시 남편문제가 나오게 된다. 야곱의 우물을 먹는, 즉 물질축복의 정신을 먹게 되면 이 사람은 정신과 소원과 목적이 세상을 구하고 세상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니 세상 것은 모두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서 인간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갈아 치우게 된다. ‘이것인가?’ 하고 가졌더니 이것도 아니구나하게 되고, ‘저것인가?’ 하고 가졌더니 이것도 아니구나하게 된다. 그래서 여자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라고 하신 거다.

 

예수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라고 하신 것은 네가 참 의지할 자가 없다고 하는 말이 옳도다이 말이다. 이 말씀을 여자가 남편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춰낸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여자는 점점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도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시점까지 들어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계속 듣다보니 , 그 말이 바로 이 뜻이었구나하고 깨닫게 된 거다. 그래서 여자는 자기의 잘못된 신앙상태를 인정하면서 마음이 점점 기뻐진다. 사람은 모르면 기쁘지를 않다. 아이들은 먹는 것을 주면 기뻐하고, 물질을 구하는 교인들은 물질을 주면 기뻐하는데, 말씀을 깨닫고 기뻐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고상한 거다.

 

예수 믿으면서 요행만 바라는 것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사람들의 신앙이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니 먼저 빠지는 사람은 낫더라라고 하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면 병자를 낫게 한다고 하는 집회는 소란스럽고 요란하다. 즉 육신을 위해 믿는 사람의 마음은 늘 소란스럽고 요란해서 안정이 되지 않고 불안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런 것에서 해방이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언행심사가 바로 들어가고 마음이 기뻐진다.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사마리아 여자를 세상적으로 문란한 여자로 취급하면 안 된다. 사마리아 동네사람들이 여자의 말을 믿고 따라 나온 것을 봐도 바람둥이 여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옳은 것을 찾지 않고 몸을 더럽히는 여자였다면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찾아오시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걸 통해서 이룰구원 면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이 찾아오시는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성령님께서 찾아와서 은혜를 주실 수 있도록 어느 환경 처소에서건 옳은 신앙의 이치를 찾아 가져라.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가신 예수님을 보면 이룰구원 차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찾아오시는구나하는 게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기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오도록 살아야 한다. 이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는 믿음이 되는 거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이치가 기록되어 있다.

 

동네사람들이 여자의 말을 믿고 예수님께로 나온 것은 적중성으로 찾아 나온 거다. 그러니까 여자는 하나님의 본질로 전도를 한 거다. 전도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적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여자의 말을 믿고 곧바로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은 이들도 그 전부터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떤 자를 찾고, 무엇 때문에 오셨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나에게 무엇을 주려고 오셨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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