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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84 추천 수 0 2022.12.04 13: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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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4:13-20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413-20: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13-14: 성경을 볼 때 문자대로만 보게 되면 인간 자기 생각대로 나가기 쉽다. 말하자면 삭개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올라가고자 했는지 올라가고자 한 그 마음이 있는 거다. 뽕나무 열매를 따먹으러 올라갔는지? 개가 쫓아와서 안 물리려고 올라간 건지? 올라가서 누굴 보려고 올라간 건지?

 

성경에서 산으로 갔다할 때는 무슨 마음으로가 있는 거다. 무슨 마음으로 갔는지 그 다음에 그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걸 무시하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했을 때 왜 올라갔는지하는 삭개오의 마음을 모른 채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건방지다하면 안 된다.

 

그리고 또한 삭개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으니 우리도 삭개오처럼 올라가는 신앙이 되자하면 이것도 이상하다. 앞뒤의 문맥과 사건에 말이 꼬이는 거다. ‘무슨 마음으로 올라갔는지하는 그 뜻이 나와야 되겠는데, 그 마음은 주님의 마음과 맞아 들어가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시의 뜻이 되는 거다. 그런데 이건 없이 그냥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좋은 것으로 보고 우리도 올라가는 신앙이 되자하고 말을 하게 되면 이건 성경의 뜻이 안 된다. 이건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런 식으로 풀게 되면 성경에 올라가는 건 죄다 끌어다 그렇게 말을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해당구절의 앞뒤로 보면서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움직였는데 무슨 역사가 일어났구나하는 걸 봐야 한다. 그 역사가 일어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서 그렇게 된 거다. 그런 걸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첫째는, 하나님의 본질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하는 이 본질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생각을 해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길은 뭐냐? 길은 사람이 가는 길. 예수 믿는 길. 사는 길.

 

진리요하는 것은 성도가 사는 길은 진리다.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가는 길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명이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사람으로 되는 것. 진리가 아니면 이렇게 안 만들어진다. 또 정신 사상 소원 목적적으로 주님의 길이 아니면 생명으로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그 노선으로 가야 하고, 또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이치가 나와야 하고, 그러면 그걸 먹다보면 예수님처럼 인격화 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했으니 즉, 예수화 되는 거다. ‘예수다하는 것은 예수=구원이니 구원이 이뤄지는 거다. 구원과 예수는 같다 그 말이다. 질이 같이 들어가는 거다. 이게 천국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것은 그리로 들어가 있다. ‘내가 온전한즉 너희들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온전으로 딱 들어가 있는 거다.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구원이다. 그러니까 어떤 성경을 보더라도, 어떤 사건을 보더라도,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전부는 여기에 맞춰져 있다. 이걸 떠난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밥 먹고 사는 것, 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안 만들질 것 같으면 예수 믿는 효력이 뭐냐?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우리의 온전인데 이 온전을 떠난 목적은 안 된다. 그러니까 이 면을 두고 성경의 부분적이고 전체적인 면에서 이치적으로 캐고 따져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데 손해 보지 말아라.

 

예수님은 우리로 머리 되고, 첫째 되고, 존귀 영광스럽게 들어가 있는데 왜 예수 믿으면서 이용당하고, 마귀소리 듣고, 심판 받고 하느냐? 그런 예수 믿으면 안 된다. 그런 교회 다니면 안 된다. 그런 소리 들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네가 죽는 거고, 네가 형벌 받고, 네가 바보 멍청이가 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절대로 손해 보지 말아라.

 

그래서 우리가 이치적으로 따져보자. 그래야 사람이 손해를 덜 본다.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라고 하신 것이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보고 물질 구제사업을 하라는 것이란다면 우리들에게 그 일을 하라고 하는 것보다 예수 당신이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모두 물질부자로 만들어주면 될 것이 아닌가? 이치가 그렇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영적인 면에서 가난하고 온갖 병든 자들에게 대접을 하라는 것이니, 우리가 성령의 눈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보면 병들어 있고 비뚤어져 있고 냄새나고 가난하고 모자란 데가 많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인간의 성격과 성질 면을 보면 많이 배웠는데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정신면에, 또는 이성 면에, 또는 심성 면에, 또는 정서적인 면에 사람이 못 만들어진 구석이 많다.

 

그래서 온갖 병든 자들에게 대접을 하라는 것은 주는 자들을 의인의 반열에 끼어들게 하려고. 그러면 뭘 주니 의인의 반열에 드는 거냐? 의를 주니까 의인의 반열에 드는 거다. 생명을 내대고 순교를 했다면 무슨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아까는 대접을 하는 자들에게는 의인의 대열에, 대접을 받는 자들은 영적 면에서 부요자로 또는 건강한 온전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소원하는 말씀이다.

 

15: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끝에 이 말이 나왔느냐? 14절의 대접을 하려면 가난 자들과 각종 병자들에게 하라고 말씀하신 후다. 부자들이나 있는 사람에게 대접을 하면 도로 갚음이 되지만 그러나 어려운 자들에게 대접을 하면 의인들의 부활 때 갚음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15절의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바리새인으로 보이는데, 바리새인 자기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대접을 했기 때문에 이 대접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자기들이 받는다는 의미로써 자랑스럽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신령천국은 물질적으로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물질의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하는 듯하다.

 

인간이 보는 눈은 껍데기 표면적으로만 보인다. 그래서 바리새인 자기들이 예수님을 초청을 해서 대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실은 예수님은 신령계와 물질계를 통틀어서 주인이시다. 따라서 인간이 보기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좀 와주시오해서 예수님을 이렇게 저렇게 대접을 하고 하는 것 같으나 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주인이요 주격이다. 그러니까 그곳에 가셔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따로 있는 거다. 그 일 때문에 가시는 것이다. 단순히 먹으러 오라고 하니까 가서 먹는 게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당신의 일은 딴 데 있는 것이다.

 

인간들을 주님께서 일반은혜로 먹여 살리신다. 또 영적 특수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믿는 우리의 영을 먹이시는 분이기도 하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일반은혜, 영에 속한 것은 특수은혜. 하늘의 이치를 가지고 먹이는 것은 특수은혜. 일반은혜를 주시는 것은 특수은혜를 잘 받으라고 주시는 거다. 그럼에도 특수은혜는 안 받고 일반은혜만 받는 것은 짐승이 사는 것과 같다. 특히 예수 믿는 우리는 특수은혜다.

 

그러면 일반은혜가 영원히 가는 거냐, 특수은혜가 영원히 가는 거냐? 특수은혜가 영원히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은혜를 위해서 어느 은혜를 사용해야 하느냐? 특수은혜를 위해서 일반은혜를 사용하는 거다. 특수은혜를 받는 사람은 영인성장이 되고, 주님 닮는 사람이요, 참 고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이 땅에서도 고상한 사람이다. 신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일반사람들은 특수은혜를 못 받고 일반은혜만 받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영인성장도 모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맨 먹고 마시고 누리고 사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게 인간의 가치가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영을 먹이시는 주님이시니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바리새인들이 도로 갚아주지 못할 대접을 하시는구나. 그런데 그들은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무슨 대접을 받고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더라. 예수님 쪽에서는 특수은혜, 하늘의 은혜를 대접을 하는데 그들은 겉만 보는 것만 알지, 물질 점심을 같이 먹는 대접만 알지 영적인 면에서 모른다.

 

의인의 부활 시에 갚음이 된다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본질의 것을 대접을 할 때 그 대접을 받는 사람은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이 자기 실상화 되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 참 사람으로, 주님과 똑같은 사람으로 실상화 되는 것이니 의인들의 부활 때에 실상화 된 것만큼 의로써 효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그 의행은 실상화 된 것으로 첫째 부활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아주 존귀하고 귀중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가치 있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모르면 펄펄 뛰며 능력이나 달라고 하게 된다.

 

16: ‘잔치하면 구약에 아하수에로 왕이 벌인 잔치가 6개월 동안의 잔치였다. 반 년 동안이나 잔치를 했다. 당대 세계 최대 강국에서 개최한 잔치에 각 나라의 문무백관 귀빈들을 다 초청해서 6개월 동안 잔치를 하니까 이 잔치에 소비되는 짐승 채소 곡식 등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잔치를 준비하고 심부름하는 종들도 수를 셀 수 없을 것이다.

 

이걸 영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영적 잔치를 벌인 것으로 보면 이 6개월을 죽 잡아 늘어뜨리면 6천년도 될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세상 끝 날까지 영적인 잔치를 벌이는구나하는 이것이 확대되어 보인다. 그 잔치에 세계 각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숫자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잔치는 그보다 더 크다. ? 주님의 잔치요, 이건 대 우주적인 잔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작은 잔치 큰 잔치가 많다. 백일잔치, 생일잔치, 결혼잔치, 육순잔치, 칠순잔치, 사회의 뭘 창설했다고 하는 잔치, 교회창립 기념일, 교회시무 기념일, 개국기념일, 어린이날 기념잔치, 어버이날 기념일 등 참으로 많다. 여기 본문은 이런 세상에 속한 잔치를 말함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신령계와 물질계의 주인으로서 천국에 관한 말씀잔치를 의미하고, 더 나아가서 천국의 혼인잔치의 계시가 들어있다. 이중삼중으로 계시가 들어있다.

 

성경의 역사를 좁혀서 보면 한 개인의 일생으로도 보이고, 어떤 역사의 한 토막을 잘라서 보면 개인도 보이고, 온 인류도 보이고 한다. 성경 안에는 많은 이치가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이치가 바꿔질 적마다 깨달음이 달라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동원이 되면 여기에는 조직 사상이 들어가고, 그걸 개체적으로 하나로 보면 옛사람 새사람이 보이는 거다. 전쟁을 할 때 나쁜 놈은 옛사람 덩어리냐, 새사람 덩어리냐? 옛사람 덩어리다. 그러니까 성질적으로도 따지고, 성격적으로 따지고, 성분적으로도 따지고. 정확해야 한다. 안 그러면 거짓도 찾지 못하고, 이단도 찾지 못하고, 예수 믿으면서도 얻어맞고, 성경을 배운다고 하면서 성경에 까막눈이 된다.

 

본문에 큰 잔치에 많은 사람을 청한 것에서 청한 그 분의 부귀와 존귀와 영광과 권세를 느낄 수 있다. 이 잔치는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잔치가 아니다. 이 잔치에 참여할 자들에게 미리 연락을 취했다. 잔치에서 먹을 음식도 육지에서 사는 것, 바다에서 사는 것, 강에서 사는 것, 시골에서 사는 것, 겨울에만 나는 것, 여름철에만 나는 것, 봄에만 나는 것, 가을에만 나는 것 등 온통 다 갖춰 놨다.

 

또한 식성에 따라서 체질에 따라서 각자 알아서 마음껏 먹으라고 찬 것도 있고, 뜨거운 것도 있고, 신 것도 있고, 고소한 것도 있고, 매운 것도 있고, 혈압이 떨어지는 음식도 있고, 올리는 음식도 있고, 당뇨를 떨어뜨리는 음식도 있고, 추위를 안 타는 음식도 있고, 열을 내리는 음식도 있고, 변비가 풀어지는 음식도 있고, 성질이 풀어지는 음식도 있고,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음식도 있고, 키가 크게 하는 음식도 있고, 정력에 좋은 음식, 비빔으로 먹는 음식, 곰탕으로 먹든지, 잘라 먹든지, 길게 먹든지, 참새 한 마리를 먹건, 소 한 마리를 먹건 와서 마음껏 먹어라. 와서 먹어라. 그러나 갖다 주지는 않는다. 영적인 면으로 보면 성경에 이런 맛이 다 들어있다.

 

17-20: 종들을 보내어 오소서하니까 서로가 가지 말자고 의논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 세 사람의 말은 참석을 안 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적 계시적인 말이다. 이 속에 주님의 잔치자리에 부를 때 오지 않는 온 세상 사람들의 변명이 다 들어있다.

 

공동묘지에 가서 왜 죽었느냐고 묻는다면 죽은 사람들이 대답을 한다면 무슨 대답을 할까? ‘숨이 끊어져서 죽었다. 병이 들어서 죽었다.’ 어쨌든 제일 큰 것은 숨이 끊어져서 죽은 거다.

 

이 세 사람만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을 초청을 했는데 이 세 사람의 말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세 사람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또 주인이 분이 난 것은 세 사람의 말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미리 청한 그 많은 사람들이 안 오겠다고 하는 것이 이 세 사람이 말한 정신 사상에 다 포함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람, ‘밭을 샀으니 불가불 밭에 나가봐야 한다.’ 밭이 도망을 가느냐? 밭이 그 날 안 나가면 없어지느냐? 잔치에 참석해서 맛을 보고 가도 될 것을. 그러면 이 사람이 밭을 살 때는 그 밭을 미리 가 보지도 않고 파는 사람의 말소리만 듣고 샀느냐?

 

밭을 샀다는 말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땅 위에 여러 채의 집을 지을 수도 있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세를 내 줄 수도 있고, 그러니 이제 나는 부자다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기초적인 부요를 닦았다는 말이다. ‘이 밭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나를 구원해 줄 것이다라는 것이다. ‘나를 용납하라는 말은 나는 이것을 붙잡고 살다가 죽을 것이니 나를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야 한다.’ 그 소 다섯 겨리가 자기의 전 재산이다. 그러니까 이제 이 소들이 일만 잘 하면 부자로 된다는 것이다. 소가 자기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가 자기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나를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20절에 세 번째 사람이 장가를 들었으니 못 간다.’ 장가를 들면 하나님의 잔치에 참석을 못하는 거냐? :24:5결혼을 했으면 군대에 보내지 말고 1년 동안 한가히 보내며 아내를 즐겁게 해 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잔치자리에 참여다.

 

아내를 즐겁게 해 주려면 먼저 말씀의 진수를 맛보게 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사람의 변화를 말한다. 그래야 그게 순서가 바로 된 것이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에 불참하고 신혼여행을 간들 그 행복 얼마나 갈까?

 

진정 참 행복을 알면 진정 참 불행을 알게 된다. 행불행을 진리정신의 세계에서 찾고 느껴져야지 세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행복을 느끼려면 그것은 얼마 못 간다.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부부를 만드신 이유를 알아야 한다. 모르면서 물질 소원적 목적적 세상요소에서 부부의 행복을 찾는다면 더 큰 불행을 맞게 된다.

 

땅도 주님의 것이고, 소도 주님의 것이고, 인간 남녀를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으로 만드심이니 자기의 행불행이 주님의 주권섭리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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