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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민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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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었는데,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므리바에서 혈기로 바위를 두 번 쳤기 때문이다. 행동보다 마음이 문제다. 모세의 마음에 들어있던 게 행동으로 나온 거다. 모세의 이 마음이 우리에게도 흔히 있을 수 있다. 이 마음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것은 모세의 뒤를 따라오는 백성들이 없었다고 하면 모세의 그 성질이 나왔겠느냐? 안 나온다. 그래서 이럴 때 ‘내 성질이 그렇게 나온 것은 너희들로 인해서다. 그래서 내가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것은 너희 때문이다’ 이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너희들은 나처럼 실수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게 있을 수 있는데, 두 말이 실수는 똑같은데 뭐가 다르냐? 같은 사건에서 어떤 눈을 가지면 생명과를 먹는 눈이 되고, 어떤 눈을 가지면 선악과를 먹는 눈이 되느냐?
또 하나는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내 속에 이런 성질이 들어있는 것을 모른 채 못된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갈 뻔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통해 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 주셨구나’라고 하면 감사가 나온다.
같은 사건에서 사람에 따라 세 가지 생각이 나오는데,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게 좋겠느냐? 세 번째다. 그런데 대부분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라고 한다. 즉 남 원망이 많다. 세상사람들 거의가 ‘너 때문에 내가 망했고,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고, 너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다’라고 한다. 이것은 마음이 할례받지 못한 거고, 회개하지 못한 거고, 그 부분에서 거듭나지 못한 거다. 그러면 세 가지 마음 중에 어떤 마음이 성령님이 거하실 수 있는 마음이냐? 세 번째 마음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디에서 덜커덕 걸렸을까? 첫 번째에서 걸렸는지, 두 번째에서 걸렸는지?
이걸 가져와서 예수님이 십자가 달려서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한 말씀을 놓고 생각해 봐라. 이 말씀을 죽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말이라고 일반적으로 풀면 해석이 안 된다. 일반적으로 풀면 예수님께서 영원 전서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하심이 다 무너진다. 이러면 구원도, 창조도, 우리의 존재도 없어진다. 당신을 위한 말이라면 아예 이 땅에 오실 이유도 없어진다.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일반사람들은 자기가 기준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를 못 고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를 고칠 줄 모르면 하나의 종교인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고쳐주려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 크고 작은 사건과 환경을 만들어서 주는 건데 남 쪽으로 원망이 가 있으면 이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사람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 못되어 놓으면 일을 하다가도 이 사람의 성질로 인해 그 일이 망가진다. 목사도 집사도 사모도 부족성이 많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건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이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이것은 없이 다른 사람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을 사겨도 상대로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사람,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을 사겨라. 그리고 진리를 가지고 상대를 죄에서 풀어내라. 차원을 올려라. 깨달음을 주지 않으면 사람의 차원을 올리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당신의 차원으로 올리려는 거다. 속성과 성품과 인격과 지식이 하나님처럼 만들어지게 하려는 거다. 이렇게 되는 게 잘 믿는 거다. 사건과 환경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지식의 차원이 올라가야 한다.
세상 학박사라고 해도, 자기 몸이 크고 경험이 많다고 해도 자기의 인격이 성장이 안 되면 하늘에 오를 게, 영생으로, 생명으로 될 게 없다. 이건 예수 믿는 게 아니다. 세상에 전쟁이 나서 무기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무기는 죄가 아니다. ‘무기를 어디에 쓰느냐?’ 하는 사람의 속이 문제다. 세상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과학과 문명이 발전되었다고 해도 인간에게 참 행복이 없다. 성경이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야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대로 통일이 된다. 통일이 되어야 화평이 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 조상 대대로 물려주고 흘러 내려온 게 진리생명이냐? 아니다. 맨 귀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고, 오늘날까지도 이러고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거고, 망하는 거고,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미련한 사람은 절구에 넣어 공이로 찧어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러니 좁디좁은 이 사람의 마음속에 넓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기겠느냐? 금 그릇 속에 더러운 것을 넣느냐. 귀한 것을 넣느냐?
우리의 몸은 주님이 거하는 성전인데 여기에 지상의 그 무엇을 담겠느냐?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담으면 말씀과 함께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역사하기 때문에 죽지 않는 마음, 썩지 않는 마음, 변질이 없는 마음, 영원히 신령천국으로 올려질 수 있는 마음이 된다. 이게 예수 믿는 신앙이고 교회에 다니는 보람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주님을 소개한다. 교회에서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 되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소개하는 거다. 마귀가 이런 짓을 한다. 목사가 성경에서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치 못하면 무슨 마음이겠느냐? 세상의 마음이다. 세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이 사람 속에서 얼마든지 역사한다. 귀신이 들어와서 장난질을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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