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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71 추천 수 0 2022.09.18 11: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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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1-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1-3: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1-2: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의 밤에 속한 지식은 선악과 먹고 나온 지식이요, 이런 지식을 가지면 일이나 사건을 보고 하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이라고 하는 그 중심이 사건에 있고, 일에 있고, 이런 것에 대해 응답을 해 달라는 식이라면 이는 밤의 지식이다.

 

자기가 밤의 지식을 가지고 이적 기사가 나타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알아주고 믿는다면 이것은 주님을 외모로 취하는 거다. 주님을 외모로 취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 간사성이다. 즉 마귀의 말과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해서 세상길로 몰고 간다. 그런가 하면 성도가 무슨 말을 하건 영원 궁극적인 면에 이해타산을 두고 야단도 하고, 칭찬도 하고, 일상생활도 하게 되면 이 정신 사상은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거라서 간사한 게 아니다.

 

니고데모는 눈으로 보는 것을 기준해서 주님을 알아준다고 하는 것이니, 눈으로 보는 것은 사물이고, 세상 것이고, 세상에 속하는 거고, 물질이고, 물질에 속한 모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다 시간에 따라 썩어지고 없어지고 무너진다. 이런 것을 기준으로 주님을 알아주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해도 이 신앙의 지식은 밤의 지식이다.

 

영적 이치는 하나님의 본질을 기준으로 두고 펼쳐는 거다. 다시 말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확산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믿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신앙하는 중심의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는 여기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식이고, 변질되고, 불타는 거다. 신앙을 가지는 것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는 것에 이해타산을 두고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면 하나님의 절대 정확한 지식을 가지게 되니 이 지식을 가지는 사람은 매사에 하나님의 가치판단 평가성으로 나오기 때문에 거짓 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신앙인은 세상과 세상 것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천국의 이해타산을 놓고 이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마귀가 영광의 천사처럼 나타나듯이 거짓된 자들은 사람을 어떤 말로 꾀여도 천국의 이해타산이 없으니 이런 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 그 결과는 형벌로 나온다. 그래서 생활을 하면서 신앙 면에 틀어지는 일에는 목숨을 거는 거다. 이럴 때 순교가 되는 거다.

 

성도의 말에는 영원 궁극적인 이해타산이 걸려 있다. 그래서 모든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이 계산이 아닌 현상세계, 없어질 세상에 가치판단 평가를 놓고 말을 하면 안 된다. 목사가 성경을 들고 말을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인데, 성경을 들고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을 가지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간사한 말이 된다. 교인들이 이걸 모르고 세상을 가르치는 말에 아멘을 하고 군중심으로 돌아간다면 거짓 종들이 얼마나 등쳐먹기가 좋겠느냐?

 

말씀의 이치의 깨달음은 없이 충성봉사하면 복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마귀의 수법인데, 목사가 이런 말을 하면 하나님 앞에 간사다. 이런 식으로 사역을 하면 외식이다. 이 중심으로 신앙 믿음을 따지는 것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거다. 주님은 진리 따르는 중심을 보시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당신의 일을 맡기기도 하고,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가기도 하신다.

 

우리가 사마리아 여자를 문란한 여자로 말하면 일반해석이 된다. 마귀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한다. 이러면 일반적인 죄인을 회개시켜서 천국에 데려간다고 하게 되니 계시가 안 나오고 진리이치가 안 나온다. 이런 교훈으로는 중생된 영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반 도덕성의 교훈이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신적인 도덕성이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붙는 거다. 세상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공자도 천국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이방종교인 중에는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길을 가다가 개미를 얼마나 많이 죽이는지? 이러면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가겠느냐?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아니다. 당신의 모든 언행심사와 33년의 사역은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아니다. 그래서 모양 껍데기 학벌 재산 재물 배경을 보고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죄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러 오셨다. 그러면 뭐가 죄냐? 일반 선악과를 먹은 지식의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 행복 사랑을 기준으로 가지고 있다면 이건 하나님 앞에 죄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이런 것들을 죄라고 하는 거냐? 생명과를 기준으로 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건 다 죄가 된다. 즉 생명과를 안 먹는 것은 다 죄다.

 

사람은 생명과를 안 먹으면 선악과를 먹게 되고, 생명과를 먹으면 선악과를 안 먹게 된다.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못한다. 이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또 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성경을 볼 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성경에 집중해서 봐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분이라서 성경 66권을 동시적으로 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성경을 동시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신약성경에 사건이나 활동한 것을 계시적으로 보면 이런 사건이나 활동의 사상이 이미 구약에서도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구약에 있던 이세벨이나 발람이 계:에도 나오는 거다. 이것은 이 사상으로 흐르니 결과가 어떻게 되는구나하는 걸 말해주는 거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맞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의 성장 면도, 깨닫는 것도,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도 당신의 온전으로 들어가 있다. 이게 성령님의 역사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외모를 기준으로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왜 외형 외모로 사람을 취하느냐? 이건 외식이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외식으로 나가게 되고, 외식으로 나가면 사람을 외모 외형으로 취하게 된다. 이건 창조의 목적관에서 비뚤어진 거다.

 

예수님은 죄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러 오셨다. 기본구원에서만이 아니라 이룰구원에서 선악과 먹은 사고방식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인데, 이 죄에서 자유케 하기 위해 정신 사상 소원 목적 취미성 추구성 지향성을 통째로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는 역사를 하신다. 이렇게 되어야 생명과 먹은 지식으로 하나 둘 생각하게 된다. 선악과 먹은 지식으로 생각을 하면 절대로 죄에서 탈출이 안 된다.

 

예수를 믿더라도 세상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사람의 정신은 세상 밑에 들어가 있는 거다. 하나님 다음에 인간 나인데, 이게 아닌 인간 내가 물질 밑에 들어가 있으면, 즉 물질을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살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죄의 노예다. 물질 밑에 들어가 있는 인간을 하나님 다음에 집어넣어야 바로 되는 거다. 순서적 존귀적으로 하나님-->인간-->물질의 순서로 되어야 사람이 바로 선 거다.

 

사람을 이렇게 바로 세우려면 먼저 지식적으로 바로 깨닫게 해야 한다. 저질적인 가치판단으로 사는 것을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이해타산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이러면 , 내가 죄의 노예로 살았구나. 내가 앉은뱅이로구나하는 것을 깨달아서 그곳에서 탈출을 하게 된다. 이래야 자유가 된다.

 

예를 들면 백성들의 수준이 낮아서 외부세력에게 정복을 당했는데 다른 어떤 나라가 와서 자기 나라를 해방시켜준다고 하면 해방이 된 나라가 그 해방을 누리느냐? 못 누린다. 질이 낮아서 다른 나라에 정복을 당했고 노예가 되었다가 같은 수준인 채로 해방이 되면 스스로 수준이 낮기 때문에 또 다른 면으로 정복을 당하게 된다. 죄에서 탈출을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자기가 기본구원을 입고 지옥에 갈 죄는 다 사함을 받았을지라도 차원 높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않으면 속되고 마귀적이고 옛사람 부패성적인 세상성과 이질성에서 탈출을 못 한다. 죄에서 탈출을 못 한다. 여기에서 탈출을 하려면 수준을 올려야 한다.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주님의 성품을 자기 자체화 인격화 시키는 게 믿음이다. 이게 신앙이 성장되는 거다.

 

종교적인 일을 많이 하고 충성봉사를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라고 하는 말에 속지 말아라. 이런 걸 하는 자체가 믿음이 좋은 거라면 충성봉사를 하려면 시간이 남아돌아야 하고, 몸이 건강해야 하고, 물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건데 이런 게 충족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런 걸 하지 못하게 되니 주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고 보시겠느냐? 우리 주님은 이런 외모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믿음을 따지지도 않고, 심판을 하지도 않으신다.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온전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 충성봉사를 한 양이나 예배당을 몇 개나 지었나?’ 하는 것을 기준으로 심판을 하신다면 주님 당신부터 심판을 받아야 한다. 왜냐? 주님께서 미리 예언하신 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이방군대를 불러서 예루살렘 성전을 부숴버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 성전을 부숴뜨린 것은 사람의 손에 부숴지는 눈에 보이는 건물 중심으로 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속의 성전을 건설하라는 건데 오늘날 그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좁혀서 말을 하면 자기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성전인데 물질적 사고방식의 행복성, 그 영광성, 그 누림성이 들어 있으면 주님께서 이 몸을 어떻게 처리하시겠느냐? 주님께서 천국의 이해타산을 가지고 움직이라고 우리의 몸을 당신의 피로 사셨는데 자기의 몸을 세상지식의 개념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어도 신앙은 안 된다. 창조의 목적대로 정확하게 놓여지지를 않는다.

 

세상 일반적인 생각이나 가견적 종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느 직장에 다니고, 지위가 얼마나 높고, 재산이 얼마나 많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 하는 것을 기준해서 사람을 취하게 된다. 이건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거다. 없어질 것을 기준 삼아서 사람을 판단하는 거다. 주님은 진리 따르는 중심을 보고 판단하신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기사를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다가 어디로부터 왜 오셨는지를 모르는 신앙이다. 니고데모처럼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자기 속에서 자꾸 거리낌이 생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생각하는 자기부터가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 죄에서 탈출이 안 된 지식이라서 그렇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라는 말은 어떤 신앙을 가진 자의 말을 듣고 하는 대답이냐?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외식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의 말을 듣고 하시는 대답이다. 오늘날 자기도 눈에 보이는 외모 외형으로 취하는 신앙을 가졌다면 주님께서 내가 대답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외식신앙을 가진 너희에게 말하노니 네가 거듭났느냐?’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다. 니고데모와 같은 신앙을 가진, 즉 사람을 외모 외형으로 취하는 자들에게 네가 거듭났느냐? 네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났느냐?’ 하고 묻는 거다. 거듭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 한 마디 말을 해도 사람의 속을 알고 바로 깨우쳐서 바른 지식으로 사람을 바로 세우고 자유자로 만든다. 이게 교훈이고, 사람 사귐이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니고데모가 아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런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났느냐?’ 라고 묻는 것은 기본구원에 대해 묻는 거냐, 이룰구원 면으로 묻는 거냐?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영이 중생되는 기본구원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이룰구원 면으로 묻는 거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독권적으로 하시는 일인데 니고데모에게 기본구원의 개념으로 네가 거듭났느냐?’ 라고 묻는다면 니고데모 스스로 어떻게 자기의 죽은 영을 살려서 거듭날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영이 중생이 되어서 거듭나는 기본구원을 얻은 것은 전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주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이룰구원 면에서 거듭났느냐고 묻는 거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네가 이방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으니 이 면에서 네가 거듭난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고 묻는 거다.

 

기본구원에는 기본부활이 들어 있고,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지금 죽어도, 믿음이 없어도 천국에 들어간다. 이게 기분구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영능의 실력적으로 주님처럼 성장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일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를 아직까지 세상에 두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나를 아직까지 세상에 두고 있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살자 그 말이다. 우리의 삶은 말씀실행이요 말씀준행이다. 이를 위해 정복자로, 돌격자로, 개척자로 살아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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