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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김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625 추천 수 0 2015.09.12 22: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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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4:1-1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5.1.25 주일 설교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김                          

창14:1-16

 

당신은 선택할 때마다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절대적인 주권으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때로는 믿음으로 선택할 때 손해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저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손해와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과 손해를 감수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능력과 기적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평생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오직 믿음으로 선택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사건에 개입시키는 단서가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이 믿음으로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이기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있었던 큰 전쟁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쟁이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전쟁을 겪어왔습니다. 심지어는 전쟁으로 나라가 완전히 없어질 위험에 봉착할 때도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 임금이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는 치욕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6.25 사변 때는 공산당에게 나라를 완전히 빼앗길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쟁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불행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요즘에도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국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언제나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오늘 우리는 북한과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중동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단순히 두 나라가 맞붙은 전쟁이 아니라, 무려 이홉 나라가 한 데 뒤엉켜 싸운 대규모 전쟁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일어나기 전, 그곳에는 엘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의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공을 바친 지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돌라오멜의 군사력에 눌려 할 수 없이 조공을 바치던 소돔은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그돌라오멜을 배반했습니다. 그러자 그돌라오멜은 주위의 세 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소돔 동맹군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을 맹주로 하는 네 나라와, 소돔을 비롯한 다섯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소돔 동맹군은 미리 이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중동 지역은 석유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역청, 즉 아스팔트 구덩이들이 많았습니다. 소돔 동맹군은 이 아스팔트 구덩이를 이용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함정에 빠뜨릴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아스팔트 구덩이를 흙으로 덮어서 위장을 해놓고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유인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은 역청 구덩이가 있는 쪽으로 쳐들어오지 않고 다른 쪽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소돔 동맹군을 몰아붙였습니다. 소돔 동맹군은 오히려 자신들이 준비해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게 밀리던 소돔 동맹군은 역청 구덩이에 빠져죽고,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10절)
 

이렇게 해서 이 전쟁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소돔에 살고 있던 롯도 포로로 잡아가고, 그의 모든 재산도 노략해갔습니다.


롯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성경이 이 전쟁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단순히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소돔 동맹군 사이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롯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12절) 롯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아브라함과도 관계가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 백성과 관련된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자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관계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하여 우리는 롯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롯은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그야말로 목축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롯은 정말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살기 좋고 생활수준도 높은 소돔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선택이었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으며, 믿음을 계산에 넣지 않고 선택했습니다. 당시 소돔은 죄가 가득 차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곳이었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13) 롯은 멸망이 임박한 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이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롯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가 를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 소돔을 선택한 롯은 이렇게 파멸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소돔 동맹군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맞아 싸울 때 인간의 지혜를 사용했습니다.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적군을 물리칠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그들은 역청 구덩이를 흙으로 덮어 위장해 놓고, 적들이 거기 빠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적들이 다른 길을 통해 쳐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자기들이 그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계산대로 되었더라면 훌륭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면서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있는데, 그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롯이 인간적인 지혜로 좋은 땅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큰 실패로 끝났습니다. 소돔 동맹군들이 인간의 지혜를 짜서 좋은 작전을 세웠지만, 그들은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은 비옥한 땅이었고,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돔 동맹군들이 지혜를 짜서 세운 작전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했기 때문에 소돔은 멸망을 당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그돌라오멜에게 붙여서 일차적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땅이 비옥하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간의 지혜를 짜서 작전을 세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책임지는 사랑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이 소돔 동맹군을 대파하고 그들의 모든 재물을 약탈해갔으며, 롯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재산을 빼앗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12-13상)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삼촌을 배신하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떠나간 롯이 그런 어려움을 당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를 떠나간 조카 롯이 큰 어려움 당한 것을 고소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가 평소에 준비해둔 사람들을 데리고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좇아가서”(14절)
 

이런 아브라함의 행동은 대단히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다섯 나라의 동맹군을 완파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318명을 데리고 가서 그돌라오멜과 싸운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습니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 싸움은 매우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왜 그렇게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었을까요?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한 말을 기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조카를 찾아가 “우리는 한 친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만 한 친족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조카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자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러 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정작 형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형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는 형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랑과 고백에는 책임있는 행동이 따라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입술의 고백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술의 고백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책임지는 사랑에는 큰 희생과 위험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형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자기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부담스럽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해서 입술의 고백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거짓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조카 롯이 파멸당한 것을 보고 잘 되었다고 고소해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힘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진실된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승리를 주신 하나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계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염려스럽습니다. 요즘 똑똑하고 영리한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계산에 밝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이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많습니다. 물론 믿음은 이성을 완전히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믿음의 길이라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물을 주시기 위해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하셨습니다. 이성과 상식으로 따져볼 때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반석에서 생수가 솟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면 강이 갈라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성과 상식으로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가자, 강이 갈라졌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때,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돌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했을 때, 그렇게 견고했던 여리고성은 화살한 발 쏘지 않고, 돌 하나 던지지 않았는데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믿음은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기적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을 쫓아간 것은 이성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다섯 나라의 동맹군도 당하지 못했던 그돌라오멜의 군대를 318명을 가지고 어떻게 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을 쳐서 이기고 조카를 구해낸 것입니다(15-16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과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그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승리를 주십니다.


믿음 -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단서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 개입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전쟁에 개입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행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일에 개입하시게 만드는 단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에 개입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와서 가만히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마태는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9:22) 마태는 계속해서 예수님께 나아온 맹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9:28-30상)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했습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막6:5-6)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생명과 미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오직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어려움과 큰 손해가 있다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해야 할 때, 이성과 상식에 지나치게 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당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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