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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널 끝에서

이사야 신실............... 조회 수 912 추천 수 0 2015.07.05 16: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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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29:17-24 
설교자 : 이영화 목사 
참고 :  

인생의 터널 끝에서

이사야 29 ; 17 - 24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20.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21.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라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라

                                                         

도로를 달리거나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터널 구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짧은 구간도 있지만 때로는 긴구간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제가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최장 터널은 경부고속철 구간에 있는 금정터널로 그 길이가 자그마치 20.3km 라고 합니다.


터널의 특징은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터널 내부는 외부로부터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터널 안은 언제나 캄캄하다는 것입니다.불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그래서 이왕이면 사람들은 캄캄한 터널보다 환한 곳을 달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터널이 존재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터널을 만들까요?

물론 외부로 길을 만들어 갈 수도 있지만 높은 산을 오르거나 때로는 먼 거리를 돌아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대한 거리를 단축하여 지름길을 만들기 위해서 산을 관통하고 땅을 깊게 파서 터널을 만들어 빨리 갈 수 있도록 하더라는 것입니다.다시말해 터널 안은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터널을 지나는 것은 지름길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터널을 지나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터널을 지나는 순간은 캄캄합니다.

그리고 특히 수십 km의 긴 터널을 지날 때에 그 순간은 정말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터널을 지날 때에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터널이든지 비록 터널이 캄캄하고 어둡기는 하지만 반드시 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아무리 긴 터널이라 하더라도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은 환한 빛이 가득한 곳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터널’ 로 비유하곤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캄캄하고 어떠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에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두렵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어떠한 길보다 가장 빠른 지름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어두움은 끝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터널을 지날 때에는 환한 빛이 저와 여러분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함께 보신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둡고 긴 터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지냈던 어둠의 시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20-21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

강포한 자가 있었으며, 오만한 자가 있었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에게 당하고 억울한 재판으로 인하여 고통 받았던 세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를 암흑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어진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그런데 당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것도, 선지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지만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선지자들의 외침을 외면했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고 힘껏 외쳤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지만 외면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그러한 어두움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어두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는 그 순간 하늘도 빛을 잃었던 것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 이후에도 죄악이 가득한 암흑의 시대를 지났으며 중세 시대 역시 타락의 극치를 이루었는데 그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교회가 시대를 이끌어 가고 빛을 발하며 빛으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어두움으로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오늘날 이 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영적으로 너무나 어두움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시대적으로 어두움의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어두움의 터널 같은 시절은 각 개인에게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더라도 자신이 계획하던 대로 모든 것이 다 무너지며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죽음을 생각하였던 어두움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 가운데 혹 그러한 어두움의 긴 터널을 지금 내가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인생의 터널이 길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터널은 끝이 나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긴 터널을 벗어나게 해 주실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기다리던 이가 당신이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바로 예수님께서 절망과 실패와 고통 가운데 놓인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친히 밝혀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8-19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할렐루야!

이 날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 긴 터널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 긴 고통의 세월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문제는 물론이고 우리 육신의 모든 문제까지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기만 하면 우리의 긴 터널과 같은 캄캄하고 답답했던 문제들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다시 회복되어지고 영적으로 건강해졌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2절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라고 말합니다.

이제 다시는 야곱에게 부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씀은 당당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이제는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제는 당당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이로서의 당당함을 이제는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주님이 계속해서 축복해 주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와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은 부모가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던지 그 부모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가운데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철들기 전에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부모가 부끄럽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이 들고나면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더 이상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숨기지 마시고 당당하게 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주님이 주신 축복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23절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룩하다 한다면 섬기는 방법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온갖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떨쳐버리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삶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리의 관심에서 떠나고 오직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살고 싶어 하는 모습,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 할 수 있는 모습, 이것이 주님을 거룩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막연함과 괴로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터널을 우리로 하여금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인생의 지름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시말해 그 터널이 우리에게는 괴로움의 시간이고 고통의 시간 인만큼 우리의 신앙은 더욱 그만큼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더 빠른 시간에,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일이 잘되고 어려움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발전도 없고, 주님과의 거리는 늘 멀찌기 늘 그 모양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인 다윗도 ‘환난 당함이 내게 유익이라’ 고 하였습니다.

환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주님을 멀리했는데 환난이 주님 앞에 나오게 만들고, 환난이 기도하게 만들고, 환난이 부르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긴 터널은 우리에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지름길이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터널을 통과한 인생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해져 있을 것입니다.

터널을 통과한 인생은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셔도 겸손한 마음으로 ‘아멘’ 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져 있을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 인생의 터널을 지나시고 마침내 빛 가운데 이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5. 6. 28.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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