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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보았다!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481 추천 수 0 2015.06.05 23: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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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ttp://dabia.net/xe/809074 

jys.jpg“내가 주를 보았다!”

요20:1-18, 부활 주일, 2015년 4월5일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저는 오늘 여행사 가이드처럼 여러분들을 2천 년 전의 한 공동묘지로 안내하겠습니다. 거기서 벌어진 사건은 너무 신기해서 어떤 사람은 쉽게 믿지 못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이를 통해서 영혼의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공동묘지로 안내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정보를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직접 가기 전에 거기에 얽힌 정보를 알아두는 게 여행을 알차게 하는데 필요한 준비인 것과 같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온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당하고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그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뤄보려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들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몇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수고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자기 선생을 배신했고,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기에 바빴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이 주모자로 되어 있는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신세를 망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절망감, 자책감, 무력감이 제자들의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을 겁니다. 만사가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제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여론이 어떻게 될지 좀 기다려보겠다는 제자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의 가족묘지에 안장했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입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그렇게 무덤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시체 도난설

오늘 설교 본문은 안식일 다음 날부터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의 요일 계산으로 하면 일요일입니다. 요 20:1절에 따르면 어둠이 걷히기 전 새벽녘에 막달라 출신의 여자 마리아는 예수가 묻힌 가족 묘지에 왔다고 합니다. 당시 가족 묘지는 동굴로 되어 있었습니다. 동굴 입구는 돌로 막아놓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무덤에 왜 왔는지에 대해서 요한복음은 설명이 없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녀가 예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의 무덤에 안장할 때는 안식일 법 문제로 인해 적절한 장례의식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자들이 합법적으로 그런 일을 처리하려고 무덤에 간 겁니다. 공관복음서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함께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갔다고 했으며,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여자를 언급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러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을 제외한 모든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이로 미뤄보면 무덤에 처음으로 찾아간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중심인물이었다는 게 확실해보입니다.

 

요한복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옵시다.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보니 묘지 동굴 입구를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이게 마리아에게는 예상외의 상황입니다. 장례를 치루는 시간이 아니라면 동굴 입구는 늘 닫혀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치운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예수 시체 도난설은 마태복음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마 27:62-66절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의 시체가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안장된 다음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다른 데로 옮기고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질지 모르니, 무덤을 사흘 동안 단단히 지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일에 더 관계되는 게 잃어서 당신들에게도 경비병이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로 그 요구를 피합니다. 이어서 마 28:11-15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 후에 대제사장들은 경비병들을 매수해서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해 갔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난처한 상황을 혼자 판단하거나 해결할 수 없어서 급히 베드로에게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다른 제자가 한 사람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황당했겠지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막아내지도 못한 마당에 시체마저 분실한다면 정말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달리기 경주를 하듯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이 먼저 도착해서 동굴 안의 이상한 모습을 보긴 했지만 먼저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곧 도착한 베드로는 동굴 묘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체를 놓아두었던 석판 위에 시체의 머리를 쌌던 수건과 몸을 쌌던 세마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는 뒤따라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하고,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제자는 일단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의 예수 경험

무덤 앞에 혼자 남은 마리아는 답답한 마음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바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사라진 겁니다. 베드로를 통해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무덤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흰 옷 입는 두 천사가 시체를 올려놓았던 석상의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놀랄 법도 한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찾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던 탓인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왜 우는가?’ 하고 묻습니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했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다 옮겼는지 알 수 없어서 갑갑하다고 말입니다(13절). 바로 그 순간에 마리아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인 줄 몰라봤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천사들과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지금 이 이야기는 공동묘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때라면 마리아는 무서워서 도망쳤을 겁니다. 공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지금 막달라 마리아도 역시 속으로는 무서워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누군지에 대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이 여자를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라고 했습니다(막 16:9, 눅 8:2). 귀신은 여러 모양과 행태로 삶을 파괴하는 악한 힘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서,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그 악한 힘으로부터 벗어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극에 달한 상실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통 때 겪게 되는 두려움을 넘어서게 합니다. 그럴 때 어떤 근원적인 사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불쌍한 막달라 마리아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말하자면 공동묘지 관리인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시체를 옮겼으면 어디에 두었는지 알려주세요. 그러면 내가 그분의 장례를 잘 치르려고 합니다. 이게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마음이 어떠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리아의 눈이 뜨여 자기 이름을 부르는 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랍오니!’ 하고 대꾸했습니다. 그 단어는 히브리말로 선생님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손이었을까요? 옷자락이었을까요? 뭔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습니다. 오죽 반가웠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해서 죽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였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17절).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제자들에게로 갔습니다. 앞에서 동굴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갈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달려갔겠지요. 그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말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을 보았다.’는 마리아의 말을 제자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곧이들었을까요? ‘그건 말도 안 돼.’ 하고 코웃음을 쳤을까요? 제자들에 따라서 반응이 달랐을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빈무덤에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사실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믿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도마 같은 제자는 자기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한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다른 이의 말을 듣고서는 믿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사건이니까 다른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현대인들도 대체로는 믿지 못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말로만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 실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짧다거나 신앙이 깊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활 사건 자체가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를 보았습니까? 이런 질문이 불편하게 들릴 겁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 못 보았다고 대답하기는 부끄럽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 있게 ‘보았다.’고 대답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설교자인 저에게 ‘당신은 주를 보았소?’ 하고 반문하고 싶은 분은 안 계신가요? 제가 대답을 하긴 하겠지만, 그 전에 예수부활 사건에 대해서 먼저 몇 가지 정리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마리아를 비롯한 제자들,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차원에서의 부활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의 승천 이후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하는 마리아의 이 진술은 예수의 승천 이전에나 가능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경험을 똑같이 공유한 이들의 목록이 오늘 제2독서로 읽은 고전 15장에 나옵니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 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부활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을 뿐입니다. 그 증언을 통해서 예수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나이가 좀더 들면 목회 현장에서 은퇴할 것이고, 좀더 세월이 흐르면 죽을 겁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죽을 분들도 좀 계시고, 먼저 가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보다 젊은 대다수는 나중에 죽겠지요.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 우리 교회에 들어온 후대 교인들은 정용섭 목사를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남아 있는 저에 관한 이야기나, 또는 지금 아주 어린 친구들로서 50년 후에도 교회에 남아 신앙생활을 할 이들의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의 주님에 대한 마리아의 경험을 다시 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간접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부활의 리얼리티

복음서는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말만 하지 부활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의 막달라 마리아가 경험한 부활의 주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걸 전제하면 살아있을 때의 그 모습인 것처럼 보입니다. 눅 24:13 이하에 따르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서 동행했는데도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부활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은 문을 닫아 두었는데도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빛과 소리로 부활의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신약성경의 부활에 대한 설명에는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승의 과정에서 신화적인 성격도 끼어들었습니다. 천사가 등장하는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복음서가 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근거로 부활 현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부활 경험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 아니냐, 헛 거를 본 거 아니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런 주장들이 초기 기독교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환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환영으로 보듯이 말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제자들이 환영(ghost)과 실체(reality)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교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리게 하기 위해서 부활 경험을 각본에 따라서 세련되고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심장이 다시 뛰고, 숨을 쉬고, 눈을 껌뻑이다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한 것처럼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한이 있어도 자신들의 경험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 앞에서 무조건 순종했을 뿐입니다.

 

합리적인 세상의 논리와 실증에 근거하지 않으면, 즉 자기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지 않으면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부활에 대한 성서기자들의 경험을 진리로 받아들일 때만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설교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진정성 있게 대하지만 부활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드립니다. 예수 부활에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여러 가지 논리에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시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전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까지 전해 듣고 배우고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와 운명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총합보다 저에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운명과의 일치에서만 종말론적 하나님의 구원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제가 믿고,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과 희망 안에서 저는 마리아와 똑같은 심정으로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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