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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구원의 지혜와 능력

고린도전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165 추천 수 0 2012.12.14 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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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24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8-01-16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성육신, 구원의 지혜와 능력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1:24)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많이 찾았고, 헬라인들은 철학적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진정한 능력, 진정한 지혜는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발견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며 또한 지혜가 될 수 있습니까?

 

I.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A. 창조에서
하나님은 지존하고 지엄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또한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창조세계를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기 전에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으로 오직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계를 창조하셨으나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창조세계 속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비롯한 이 모든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만들어졌지만, 누구도 창조의 세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온 세계가 맺고 있던 관계는 끊어지고 본래 가지고 있었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영광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B. 구원에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창조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진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으로서 창조하셨지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셔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셔야만 했고, 한편으로는 용서하고자 하는 대상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 인간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고 창조의 과정에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지만 구원의 과정을 통해서는 그리스도를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창조세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졌지만,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을 통해서 만나지 않는다면 창조세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성육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것이 바로 참 인간의 성품과 참 하나님의 성품이 함께 만난 장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Ⅱ. 성육신, 인성과 신성의 만남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사물들의 질서를 잡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능력으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지혜로 그 모든 것들을 배치하시고 자기에게 고유한 작용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존재와 작용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창조세계가 아름다운 질서를 갖게끔 만드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소산입니다. 그래서 창조세계를 통해서 지금도 이 창조세계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구원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비하면 아주 약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나타난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구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보다 더 옅게 흩어져 있는 창조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조세계에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나있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을 구원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에 자연의 세계를 펼쳐 보면 너무나 신기합니다. 꽃잎파리 하나, 발아래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그려진 무늬 하나도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쏟아지는 하얀 눈을 까만 벙어리장갑에 올려놓고 육각형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감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분의 능력과 지혜를 이 땅에서 실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뛰어난 탁월성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특별히 그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찬란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죄가 그렇게 처참한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셨으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타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영광이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온 것은 과정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어도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하는 계획은 오히려 더 찬란히 빛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태양빛이 내리쬐는 낮하늘에서는 불꽃놀이를 해도 그 불꽃이 보이지 않지만 밤하늘에서는 찬란하게 빛나듯이 말입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찬란하게 드러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까? 죄를 용서받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죄를 용서 받은 것입니다. 그 죄는 나쁜 것이지만 그 죄에서 돌이켜 회개를 한다면 지금 큰 죄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기회를 갖기 위해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이 가슴 저미도록 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가슴이 저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녹는 마음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에게도 이것은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담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음, 그분의 십자가 사랑 앞에 녹아내리는 마음이 아담에게는 없었습니다. 이런 건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의존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녹는 것과 같은 의존의 마음을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구원의 전개 과정을 통해서 인간들이 발견하는 것입니다.

 

환하게 밝은 세상에서 인간이 죄를 짓게 되자 영적으로 캄캄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자비, 용서, 사랑, 은혜 등이 아주 뚜렷한 빛줄기로 어둠을 가르면서 온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그 어두움을 배경으로 해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아름다움은 아담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이 그렇게 죄를 짓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망가뜨렸는데도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커다란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이 세상에 어두움의 빛줄기로 드러내셔서 죄가 없던 시대에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자비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이 세계 안에 선명한 혜성의 빛줄기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뻗어 나왔습니다. 바로 하나님으로서의 본질과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함께 가진 예수님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냥 완전하신 사람이기만 했다면 그분이 보여주신 빛은 성인처럼 잘 살다가 죽은 빛줄기를 능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하나님으로만 오셨다면 빛줄기를 그렇게 남기셨어도 인간이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인격 안에 가지심으로 인해 찬란한 빛을 그으실 수 있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게끔 그릴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A. 영광과 겸비

 

첫째로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도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의 합창소리가 들렸는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눅 2:14)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영광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이것이 겸비함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에 그분 자체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이기에 인간들에게 그분을 존경하고 경배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지극히 낮아지셨고, 겸손함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를 먹이시고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는 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스러운 분이었지만 겸비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찬란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빛줄기를 어두운 세상에 그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만나는 신비입니다.

 

B. 위엄과 온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에 위엄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귀신들린 자도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빌 정도로 탁월한 권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풍랑이 이는 바다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수많은 기적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위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위엄을 드러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는 거룩한 위엄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분은 스스로 당신의 마음이 온유하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위엄을 가지고 계신데도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변에 모여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본질로는 위엄을 나타내셨고, 사람의 본질로는 온유하셨기 때문에 어두운 밤하늘 같은 죄악 속에서 찬란한 빛을 그으며 나타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C. 통치와 섬김

 

예수님은 통치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정복한 사람이 없는데 죽은 사람을 살리셔서 당신이 죽음을 정복하고 통치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처럼 좌정하셔서 수많은 사람을 통치하시는 대신에 오히려 종처럼 낮아지셔서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들이 찬란하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D. 자족과 의존

 

예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부족함을 느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기도로 사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이신데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과 탄식 속에서 기도하며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셨습니다. 그러한 자족하는 예수님의 신적본질과 의존하는 인간본질이 만나는 성육신의 삶을 보면서 캄캄한 하늘에서 찬란한 혜성처럼 긋고 지나가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자비와 용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기만 했다 하더라도, 또 사람이시기만 했더라도 이것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송하는 이유이고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에 대해 믿음의 선조들이 감격했던 이유입니다.

 

III. 구원의 근거가 되심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이 구원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없었을 것이고,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더라면 부활하실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우리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천년 전 나사렛 땅에 잠시 사셨다가 돌아가셨는데도 그 예수를 그렇게 사랑하고 그분의 생애를 기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목말라하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알기만 하면 거기에서 끝이 나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더욱더 알고 싶고 또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0-14)고 한 것입니다.

 

A. 용서를 위한 속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은 용서를 위한 하나님의 속전(贖錢)이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시대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노예들은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예가 자식을 낳아도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그런 제도 속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바로 노예였습니다.

 

가족 전체가 노예시장에 내놓아져서 자신들을 사 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유일한 소원은 가족 모두가 같은 집에 팔려가서 뿔뿔이 흩어짐을 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상인이 날이 어둑어둑해져도 팔리지 않으니까 한 명씩이라도 팔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아이들은 자지러지듯이 우는 겁니다. 그때에 한 부자가 지나가면서 그 모습이 너무 가엾고 불쌍해서 자신은 필요가 없는데도 가족 노예를 다 사서 옵니다. 집으로 데리고 와 깨끗이 씻기고 새 옷을 입혀주고 따뜻한 밥을 먹여준 후 “나는 노예가 많아서 너희들이 필요 없지만 너희들이 너무 불쌍해서 사온 것이다. 이제 우리 집에 있을 필요는 없고 가서 자유롭게 살아라”하며 노예해방 문서를 쓰고 도장을 찍어줍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문서였는데 이것이 바로 속량입니다. 그리고 속전은 이렇게 팔린 노예를 사기 위해 이 사람이 지불했던 돈을 말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속전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 2:6). 우리 모두가 죄 때문에 팔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되고 나면 신자되기 전보다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는 분이라는 강한 끌림을 갖게 됩니다. 세계를 창조하신 그리스도도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지만 그것이 가슴에 다가오기 위해서는 그분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다가와야 합니다.

 

B. 생명과 사랑의 전달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맨 처음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을 때 참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 영혼을 향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계속 부어 주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과 생명을 힘입어서 육체적으로도 생명을 가질 뿐만 아니라 영혼도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놀라운 지적인 능력과 감정의 능력, 의지를 주셨어도 그걸 움직이고 작용하게 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힘이 계속 부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셔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인간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영혼만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에서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부어주셔야 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3일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으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다가 하늘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셨던 것처럼 성령님이 오셔서 그런 역할을 하시고, 예수님이 가난하고 병들고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을 돕고 위로하신 것처럼 성령님께서 그렇게 오시고, 무지한 자들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르치셨던 것처럼 성령님이 하나님을 믿는 신자 속에 들어가셔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입니다.

 

IV. 그리스도께 돌아오라

 

여러분에게 남이 알지 못하는 큰 죄가 있어도 하나님이 죄 가운데 멸망하지 않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탁월성을 보여 주셨지 않습니까? 그분께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죄 가운데 있는 이 좌절과 고통은 캄캄한 배경이 될 뿐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용서를 받고 은혜를 경험하면 한 줄기 찬란한 빛이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한계, 눈을 감으면 다시 뜨고 싶지 않게 하는 인생의 고달픈 시련,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랑의 주인을 만나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빛이 여러분의 인생의 어두움을 배경으로 하여 찬란하게 그려지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왜 곤고하고 기쁨이 없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빈 잔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 오십시오. 빈 잔은 그분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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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6 마태복음 맛을 잃은 소금 같은 우리 한국교회 마5:13-16  김동호 목사  2012-12-13 1836
7805 마태복음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마16:13-20  김동호 목사  2012-12-13 2192
7804 시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23:1-6  김동호 목사  2012-12-13 2746
7803 히브리서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 히11:1-4  김동호 목사  2012-12-13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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