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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3 추천 수 0 2023.11.26 0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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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1:9-1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19-19: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라. 난리의 그 소문을 들을 때에 끝은 아직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끝이라 하는 모양이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릴 때 이게 끝은 아니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걸 가지고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지방이나 지역이나 나라마다의 전쟁과 싸움이 일어나는 그 난리를 보고 끝이 가까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건 시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일 이전에 교회에서 생기는 일을 먼저 말씀을 하신다.

 

 

오늘날 목사님들의 세계에서 어떤 전쟁을 기준 삼아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말세를 말할 때 세계적인 화학전이나 무기전을 들어서 말세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가 돌아가는 현상을 보고 세상 끝이 됐구나하고 봐야 한다. ‘저 사람 못 쓰겠구나할 때 그 사람의 정신에서 나오는 삶의 상태를 보고 그렇게 말을 해야지 단순히 사회가 어지럽다고 해서 저 사람 못쓰겠구나하지 않는다.

 

 

교회는 세상의 소유격이 아니다. 이방세상이 주인이고 교회가 종처럼 돼 있는 게 아니고 교회가 세상의 주격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놓고 지키고 다스리라고 했는데, 생명과를 먹는 성도들을 향해서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라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느니만큼 그 사람은 환경의 소산이 된다. 지배를 받는 자가 된다. 돈이 지배를 하고, 이방 불신적 정신이 지배를 하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의 주격이 아닌 소유격이 된다. 소유격으로 돼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교회는 한 마디로 타락된 것이다. 세상 속화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들에게 생명과를 먹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다. 그런데 생명과는 먹지 않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저주 받고 타락이 됐다. 그렇게 되니 그 차원의 정신 사상 지혜 도덕성을 가지고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 그 증거가 제각기 다스린다고 하지만 서로가 그게 틀렸다고 하며 싸우는 거다. 제각각 주격이다. 자기가 기준이 돼버렸다. 그런데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대립성이 없다. 하나님과의 화평 화목 평화다.

 

 

우리가 신앙의 이치를 모르면 그만 세상을 따라가서 세상 밑에서 종노릇을 하게 된다. 교회가 그렇게 되면 세상이 그 교회를 향해서 좋다고 한다. 이건 세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교회가 믿는 사람들의 정신 사상이 돼버린 것이다. 안 믿는 사상으로 색깔이 돼버렸다. 이런 사람들도 예수를 부르기는 하는데 부르는 그 예수는 뭐냐? 자기들의 목적대로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데 있어서의 하나의 매개물이 됐다. 자기들의 목적에 이용물이 됐다. 하나님의 온전을 닮는 게 아닌 충성봉사 일 하자주의로 나가버렸다. 그러니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언제 온전케 되고, 언제 머리 같은 사람이 되겠느냐? 이건 세상을 따라가는 꼬리밖에 안 된다.

 

 

우리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 뭘 생각을 해야 하겠느냐? 난리가 나는 것은 각자가 의사단일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주장을 하니 난리가 나는 거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된다면 대립은 없는 거다. 의사단일이 아니면 대립이 된다. 이치가 그렇다. 이치를 어기면 예수 바로 못 믿는다.

 

 

하나님의 의사성은 하시하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간 자기를 하나님 당신처럼 만들어 주고 싶어 하심이다. 따라서 자기가 속성적으로 하나님처럼 만들어지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라. 지식적인 면에서나 지혜적인 면서나 도덕성적인 면에서 한 뜻 한 뜻 자꾸 따르다 보면 하나님처럼 닮아지고, 닮아지면 하나님처럼 고상하게 고차원적으로 올라간다.

 

 

세상은 선악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고 타락된 세상이기 때문에 항상 무질서요, 항상 혼합이요 혼란이요 혼돈 혼성이다. 그래서 세상은 항상 내란이요 환난이요 폭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사단 마귀나 귀신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따라서 자기를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 넣지 않으면, 거룩하고 깨끗하고 차원 높은 최고의 지식, 최고의 도덕성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의 옳음을 갖지 않으면 그만 세상화 된다. 인간은 그런 인간으로 되어있다.

 

 

예수를 믿어도,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가지고 영의 눈으로 성령의 눈으로 구별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는 구별이 안 되고 분별이 안 되니 그 자기는 성격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거룩하게 구별이 안 된다. 혼합이 된다. 이게 오늘날 교회의 현상이다. 이건 믿는다고 해도 자기 식이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뭐 하러 교회에 나오느냐? 선악과 따먹은 차원에서 말하는 일반적으로 좋은 말, 철학, 도덕성 이런 걸 들으러 나온다. 이런 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늘의 뜻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져서 조만간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천국으로 올라갈 자들이다. 창조의 목적이 그렇게 돼 있다. 이게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이런 걸 우리가 성경에서 알게 되는 거지 유교나 불교나 이방종교에서는 이런 걸 볼 수가 없다. 불교의 윤회성은 허무맹랑이다. 사단의 짓이다.

 

 

교회가 선악과 먹은 사고방식의 신앙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처럼 평안하고 안일하고 사랑하고 행복을 찾는다면 그 발상 자체가 생명과를 먹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과 평안과 화목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온 식구가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밖에서 폭동이 일어나도 환난이 일어나도 그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식구라도 하나님의 의사단일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세상이 들어있기 때문에 세상이 난리가 나면 그만 거기에 휘말려 버린다. 어떻게 보면 가정에 세상난리를 끌고 들어와서 난리법석을 쳐버린다. 그러니 그게 사람 꼴이 되겠느냐? 밖에서 피해를 본 것을 집안에 들어와서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우리 가정 좀 평화롭게 해 주십시오. 마귀가 들어서 이 난리를 칩니다. 조용하게 만들어 주십시오한다. 그러나 그 기도는 틀린 기도다. 환경이 평탄해지기 전에 먼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교정이 돼야 한다.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그 마음 소원 목적이 하나님 앞에 교정이 돼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이 없는 거다. 있어봐야 세상 경험적 기준, 남의 소리를 들은 기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기준은 절대 정확한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한 상태는 혼성이요 혼잡이요 혼란이 되는 거다. 성경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가지라고 준 것이다.

 

 

의사단일이 아닌 상태는 항상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 전제하고 있다. 주머니에 돈 떨어지고 직장 놓치고 사회적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마음이 누구 하나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고자 하는 것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교회는 확장을 목적을 하고 충성봉사만 강요할 게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사단일이 돼야 한다.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항상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싸우고 있으니, 즉 하나님의 뜻을 찾는 마음이 있고 세상으로 나가서 자기 소원대로 하고픈 마음이 있다. 항상 그 두 마음이 싸우고 있다. 그런데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영육 구분이 빨리 돼서 육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되겠다하는 결심도 생기고,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도 있는 건데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린다. 이건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

 

 

이방인들은 모든 게 육의 생각이요, 눈에 보이는 것, 육체위주 목적이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의 소원 목적이나 미래에 대한 꿈이 항상 이 세상에 내려져 있다. 이건 육의 생각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선악과 따먹은 차원에서 살면 그 소원 목적이 항상 세상으로 돼 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생각이냐?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그 분이 우리 마음 가운데 하늘의 뜻을 심어주러 오신 거냐, 세상 물을 많이 먹고 싶어서 내려온 거냐? 하늘의 뜻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 속에 심어주려고 오신 것이다. 따라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고방식 이해타산 평가성 도덕성 지혜지식성을 자기 속에 넣어서 새사람으로 성장이 되어야 한다. 이게 영 주격의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현재 우리 속에는 영의 생각이 있고 육의 생각이 있는 건데,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옛사람이 있고 새사람이 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것을 밝혀주고 있다. 이방종교는 이런 게 없다. 사람을 알려면 성경대로 자기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사고방식이 육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의사성과는 항상 대립이다. 예수님은 바른 것을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자꾸 강대국 로마사상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시험을 한다. 이 바리새교인들은 성경구절을 잘 외우면 그걸 믿음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꿔놓는 것을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목사가 아무리 외형적으로 교회를 확장시켰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이 아닌 세상적인 비진리, 세상적인 소원 목적 그 이질성으로 되어있다면 이건 계:에서도 보지만 하나님 앞에 큰 음녀 바벨론이다. 바벨론 사상은 혼탁 혼합 혼성이다. 하나님과의 단일성으로 건설된 게 아니고 세상에 있는 모든 잡된 것으로 건설해 놓은 게 바벨론 건설이다.

 

 

오늘날 교회도 보면 메시지가 세상과 천국이 분리가 안 된다. 사람 속에 각자 품고 있는 그게 분리가 안 된다. 그러니까 혼합된 정신 사상을 가지고 교회를 한답시고 큰 종교적 사업을 부흥을 시키는 것이다. 그게 큰 성 바벨론이다. 음녀다. 음녀가 뭐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정조를 팔았다 그 말이다. 신앙의 정조관념이 없다 그 말이다.

 

 

교회는 항상 거룩성으로 보존해야 한다. 우리 속에 잡된 생각이 말씀으로 구별 분별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그래서 거룩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룩성은 기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 드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깨달음에서 들어가는 거다.

 

 

말씀을 깨달아서 자기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것은 빨리 빨리 바꿔라.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그 지식은 이 세상에 국한된 거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신령천국에까지 영원히 쓸모 있는 내가 효력성을 볼 수 있는 지식이다. 아무렴 내 것보다 하나님의 것이 더 좋다.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큰 음녀 바벨론 건설을 한다면 이것은 위장된 귀신의 집이요 마귀의 집이다. :에서 이걸 다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마지막 시대라고 하면서도 오늘날 마지막 교회들의 정신 사상이 무엇에 감화되어 움직이고 있는지를 전혀 말을 해 주지 않고 있다.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이미 2천 년 전에 기록을 해 주셨는데도 2천 년이 지나도록 계:를 손도 안 대는 목사도 있다.

 

 

왜 그럴까? 내가 볼 때는 자기 부하인 거짓 목사를 통해 마귀 자기가 들통 날까 싶어서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이다. 설령 계:을 건드렸다 해도 그 속을 까야 하는데 겉만 슬슬 보여주며 지나가니까 마지막 시대에 역사하는 마귀가 탄로가 안 난다. 여기 있는 분들은 자기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말씀에 비춰서 들통 나야 한다. 그게 말씀을 바로 보는 거다. 안 그러면 다 같이 예수이름을 부르니까 다 교인이거니 하게 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말씀을 볼 때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춘다. 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볼 때 소원성은 진리를 좋아하는데 도덕성 면에서 결함이 있기도 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면에서 결함이 있기도 하고,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성격을 못 고쳐서 자꾸 은혜를 뒤집어엎는 것도 있다. 말씀대로 바로 되어지지 못한 게 참 많다.

 

 

진리를 좋아한다면 진리대로 성격도 고치고 성질도 고쳐서 규례대로 해야 하겠는데 물에 물 탄듯하니 사람이 힘이 없고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를 안 하는 거다. 성령님께서 자꾸 역사를 하려고 해도 내 스스로가 원수를 보자마자 나 죽었소하고 먼저 넘어져 버린다.

 

 

성령님도 마귀도 사람을 잡고 역사하는 거다. 그 사람의 성격 성질을 잡고 역사를 한다. 그런데 자기가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 안에서 일어나고, 또한 자기로 통해서 외부적으로 가정적으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봐야 하겠는데 맨날 두루뭉실이다. 왜 두루뭉실이냐? ‘쫓겨나면 어쩔까, 헤어지면 어쩔까, 누구하고 살까, 어디 가서 밥 먹을까맨 이런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렇게 그냥 살련다하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나님은 억압과 강압으로 하지를 않는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이름으로 위장된 마귀의 집이 되었는데 교인들이 이것을 보는 눈이 없다. 성령님의 눈이 없다. 영의 눈이 없다. 그러니 신앙의 질은 생각을 못하고 육의 눈으로만 보고 교회가 어떻다하고 따져 들어가고, 사람을 봐도 껍데기만 보고 따져 들어간다.

 

 

한 집안 식구라도, 부모형제 처와 자식 남편이라도 소원과 목적과 사상과 이념이 다르면 그 자정은 내란이 일어난다. 한 마음이 아니다. 신앙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의사단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이 아닌 그 가정에서 자기가 그걸 바로 잡지 못한다면 자기로서는 어느 한쪽의 인정정실이나 물질이 자꾸 연결이 되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언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죽겠느냐?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역사를 한 번이라도 보고 죽어야 할 텐데.

 

 

두 번째는 민족이 민족을, 또 나라와 나라끼리 대적을 한다.’ 난리와 난리가 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세계 각 나라에서 각 나라마다 일어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이제는 민족과 민족이 대립이다. 더 확대가 됐다. 그러니까 민족끼리 싸우다가 이제는 서로 다른 나라와 나라끼리로 점점 확대가 된다.

 

 

확대성 이걸 알아야 한다. 의사단일성이 아니니까 비단일성으로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으로 자꾸 확대가 된다. 의사단일성 안 되면 그게 그만 무리화 된다. 구별 분별이 없는 무리화 돼버린다.

 

 

한국에서도 직장관계나 정치관계로 폭동이 일어난다. 이건 난리다. 각 무리가 의사단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각각이다. 그러니 각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무리에 자꾸 편승이 된다. 말하자면 가난해서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데 나라에서 안 지어주면 그걸 매개물로 해서 다른 어떤 사상이 거기에 편승을 해 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모인 무리들의 의사가 똑같은 게 아니다. 다 같이 폭동을 일으켜도 다른 것이 편승을 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게 있다. 그렇게 편승을 해도 우리 편인가한다.

 

 

아닌 말로 어느 한 교회에서 소동이 일어나면 그 때에 어떤 정신을 가진 자들이 소동이 일어난 그 교회에 편승을 할까? 이단자들이다. 이단자들이 들어와서 들쑤시면 그 교회 교인들은 그게 자기편인가하고 그 쪽으로 간다. 그러면 또 속는다. 왜 속느냐? 하나님의 본질로 의사단일이 안 돼서 구별 분별할 수 있는 사상도 없고 그 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단자들에게 편승을 해 버린다. 그래서 이용을 당한다. 이걸 심각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성공되고 존귀 영광자가 될 그 자기가 완전히 깡그리 망한다. 하나님 앞에 영적 성공은커녕 완전히 심판거리로 망한다.

 

 

그렇게 예수를 잘못 믿어서 실컷 이용당하고 또 딴 교회로 도망을 간다고 할지라도 거기서도 분별이 없으니 또 실컷 이용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 안에 뭐만 잔뜩 들어있을까? 참 한심하다. 불쌍하다. 예수 믿은 효력이 없다. 충성봉사 한 효력이 없다. 수 년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다는 게 효력이 없다. 이건 사람 망한 거다. 사업 망하고 집안 망한 그게 아니라 먼저 사람이 망했다. 그런 교인은 쓸모가 없다. 어설프게 그을려져서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의사단일성으로 안 되면 교회와 교회끼리도 신앙사상이 다르다. 종교적으로도 주장성이 다르고. 그러니 교회들끼리 대립과 마찰과 충돌이 일어난다.

 

 

가족끼리 싸우는 건 왜 싸우느냐? 돈이 없어서 그러냐, 밥이 없어서 그러냐? 서로 다른 주장을 하니까 싸우는 거냐, 의사단일이 안 되니 그런 거냐? ‘예수 믿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늘 보고 깨달아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맞추자는 것이다.

 

 

교회가 서로 대립이 되는 것은 왜 그런 거냐? 주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단 교파별로 주장이 각기 다른데 하나가 되자? 안 된다.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이질끼리도 그 주장성이 각기 다르면 절대로 하나가 안 된다. 교단 교파가 다른데 하나가 되겠느냐? 장감성이 갈라진 건 구원론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로 되느냐? 이것도 중세기 시대 때의 얘기지 지금은 그것도 저것도 없다. 그러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종교적으로도 주장성이 다르고, 족속적으로도 다르고, 국가적으로 다르고, 민족성이 다르고, 국가관이 다르고, 법도 다르고, 통치적으로도 다르다 보니 각처에서 난리와 분쟁이 나기 때문에 아무리 유엔에서 세계평화를 부르짖어도 평화는 안 된다. 세계 각국이 평화를 부르짖어도 각 나라마다 그 의견이 다르다. 유엔에서 부르짖는 세계평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의사단일의 평화는 아니다. 이건 우리에게 성경을 깨닫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각 개인의 주장과 각 교파의 주장이 있는 한 하나님과의 의사단일성은 안 된다. 선악과 먹은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든 교회를 키워서 자기 교회로 흡수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 발상 자체가 하나님의 의사단일성과는 거리가 먼 이질적이요 옛사람 부패성적이다. 마귀의 성질이다. 그러니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이건 심각한 것이다. 세계 각 교회 안에 이런 사상이 염병처럼 퍼져 있다. 그러니 분쟁이요 난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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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 누가복음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눅21:5-9  김경형목사  2023-11-12 85
18031 요한복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6:28-29  김경형목사  2023-11-12 129
18030 말라기 예배가 귀찮은 백성 말1:10-14  강승호목사  2023-11-08 171
18029 누가복음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눅21:1-6  김경형목사  2023-11-05 40
18028 요한복음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8:22-29  김경형목사  2023-11-05 36
18027 잠언 복 있는 자가 되라 잠3:21-26  강승호목사  2023-11-04 201
18026 마태복음 십자가 예수 마27:45-50  강승호목사  2023-10-31 115
18025 누가복음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21:1-4  김경형목사  2023-10-29 93
18024 요한복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6:27  김경형목사  2023-10-29 89
18023 사무엘상 (계시보기)먼저 신을 벗어야 죽은고기를 살리는 운동을 할수 있다 마4:19  김경형목사  2023-10-27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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