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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을 최선으로 만드는 길

이사야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913 추천 수 0 2010.01.14 10: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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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60:1-3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john316.or.kr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는 길

< 새롭게 시작해보십시오 >

 교회에 잘 다니는 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친절하고 명랑하고 밝은 표정으로 장사해서 상가가 날로 번창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상가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왜 잘 믿는 저 사람 가게에 불이 났을까?” 그런데 불이 난 다음날 그 불탄 곳에 이런 벽보가 붙었습니다. “여러분! 이번 일로 실망하지 않고 새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 의지를 보고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금방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 어떤 사람은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초심(初心)이 필요합니다. 왜 삶에 위기가 찾아옵니까? 초심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위기 때에 초심을 회복하면 위기는 희망의 기회가 됩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초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면 하나님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가슴과 어깨를 펴고, 눈을 들어 멀리 보십시오.

 가장 안타까운 죄는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죄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일어나 열방의 빛이 되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삶을 추구하십시오. 생각만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뀝니다. 또한 생각한 후에는 구체적으로 인물이 되려고 준비하십시오. 준비가 없는 미래는 결코 희망이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그 바뀐 대로 준비해야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잡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계야화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어렸을 때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죽고 대신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친구 아들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 말이면 다 되는 당시에 소원만 말하면 되는데 그 아들이 평소에 꿈과 비전도 없었고 준비한 것도 없어서 우물쭈물 말을 못했습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한 그를 파출소에 취직시켜 주었습니다.

< 세상의 빛으로 사는 길 >

 준비가 없으면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큰 축복으로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축복의 장으로 이끄시고 기회를 주셔도 받을 준비를 못하면 그 기회가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축복의 기회를 잡고 예수 믿고 인물 되어 세상의 빛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런 말씀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정말 일어나 빛을 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일어나 빛을 발하는 것입니까? 아무 변화도 없이 마음만 붕 떠서 사는 것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일어나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믿는 사람답게 바르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바르게 되면 태도와 언어도 바르게 되고, 생각도 바르게 되고, 삶도 바르게 됩니다.

 지금 시대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믿음이 요구하는 바른 인간상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복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큰 것’보다 ‘바른 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또한 외면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것에 행복이 있고, 비본질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에 행복이 있습니다.

 요새 많은 성도들이 외적인 것, 큰 것, 비본질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얼마나 크냐? 자체 건물이냐? 교인 숫자가 많으냐? 자체 기도원을 가지고 있느냐? 높은 사람들이 많으냐?”를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살면서 ‘무엇을 얻기’보다 먼저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도 바른 것을 전제로 큰 것을 구하십시오.

 어느 날, 한 남편이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채워주소서!” 그때 옆에서 부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가져가소서!” 너무 이상해서 한 교우가 그 부인에게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자기 남편은 채워줘도 자기만 알기에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기도할 때 ‘무엇을 달라는 것’은 3순위입니다. 기도의 1순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고, 기도의 2순위는 ‘하나님의 뜻에 더 잘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문제해결 이전에 그런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왜 큰 축복을 구합니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좋은 사람을 키우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바른 목적을 가지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일전에 한 여성이 라디오 방송에서 나와 말했습니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한번도 파괴적인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결혼해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마음이 상해서 출근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회자가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이 상해서 나가면 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그럴 바에야 나 하나 속 썩는 것이 낫지!”라고 생각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생각입니까? 못난 남편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생활능력도 믿음의 능력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남편은 밖에서 무슨 큰일을 했다고 집에 와서 큰소리치면서 살림하는 아내를 종처럼 대하고 마음 상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요새 아이들이 그냥 큽니까? 바깥일이 힘들면 집안 살림도 힘든 일이고, 바깥일이 ‘큰일’이면 집안일도 ‘큰일’입니다. 자기만 큰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처럼 바른 믿음과 태도를 가지고 바른 길을 좇아야 축복도 받고, 축복 후의 부작용도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 건축공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 교회 목사님에게는 건축 회사를 잘 운영하는 친동생이 있었지만 그 동생에게 건축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맡기면 정당한 요구를 못하고 결국 교회에 누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동생도 그런 형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속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바른 믿음을 가진 형제들입니까? 그런 원칙이 흔들리면 교회도 힘들어지고 성도에게도 상처가 남습니다.

 무엇이든지 원칙에 충실하고, 정직하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좋은 것’을 얻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과 회의가 생깁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누구의 소유인지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버금가는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십시오. 성도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바로 이런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제가 나눔과 헌신의 의미를 아는 건강하고 정직하고 바른 성도가 되게 하소서!” 그런 성도가 세상의 빛 된 존재로 우뚝 설 것입니다.

2. 밝게 사십시오.

 본문에서 “빛을 발하라!”는 말은 “밝게 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습은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그때 축복도 다가옵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은 성내는 모습입니다. 그때 축복도 사라집니다. 성도는 생활능력도 있어야 하고, 자기조절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인물 되려면 감정과 표정과 언어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호감을 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잘 생기지 않아도 마음씀씀이에 따라 좋은 인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다가 주님 얼굴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성전 공사장에서 즐겁고 기쁘게 일하는 청년을 보고 그 밝은 얼굴을 모델로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또 고민이 생겼습니다. 가룟 유다의 얼굴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술에 취해 옆 사람에게 화를 벌컥 내는데 그 모습을 보자 영락없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모델로 가룟 유다를 그렸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가 바로 예수님 모델을 했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밝은 미소와 열린 마음을 가지십시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또 하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닫힌 마음을 가지면 고독과 교만으로 늘 절망감에 고민하지만 열린 마음을 가지면 겸손하게 말씀을 경청하고, 정당한 책망도 들을 줄 알기 때문에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듣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은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삼상 15:22).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는데 길옆에서 한 사람이 소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그를 불러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리고 계속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큰 대로에서 한 사람이 큰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공자가 그에게 불벼락을 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본척만척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은 더 잘못했는데 왜 그냥 지나치나요?” 그때 공자가 말했습니다. “저 인간은 야단 쳐도 들을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네.”

 책망도 들을만한 사람에게 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책망을 감사하십시오. 포기한 사람에게는 책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은 책망 받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책망 받을 때 정당한 그 책망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신앙은 내 맘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책망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은 잘 다듬어 세상의 빛으로 삼으십니다.

3.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성도에게 가장 성도다운 태도는 언제 나타납니까? 사랑할 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순수하게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환경을 따라 변하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닌 환경을 초월한 의지적인 사랑을 가지고 고통스런 환경까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고 복된 삶입니다.

 어떤 사모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소망은 빨리 시집가서 집을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어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보다 고통이 훨씬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신앙이 깊어져서 성령님이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출타하고 사모님이 잠깐 외출했을 때 시어머니가 냉장고에서 1000ml 우유를 꺼내 다 마시고 설사를 했습니다. 사모님이 집에 와 보니까 시어머니가 온통 오물에 범벅이 되어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모님의 입에서 짜증 대신에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그 찬송을 하며 하루 종일 오물 청소를 했습니다. 그때 몸은 힘들었지만 성령님이 시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실 믿음보다 사랑이 더욱 소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뭐라 물었습니까? “네가 나를 믿느냐?”고 묻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믿음도 소중하지만 더 깊은 믿음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왜 사랑의 의미가 이토록 퇴색되었습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가볍게 하고 사랑이란 이름을 빌려 잘못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된 사랑이 특히 많은 분야가 바로 ‘자식 사랑’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자녀가 겪어야 할 정당한 고난까지 면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부정입학까지 시도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이 때로 방황하고 실패해도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큰 테두리만 치고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고 이겨나가게 해야 합니다. 방황은 가슴 아프지만 방황의 여지까지 주지 않는 것은 구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도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가 방황하도록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냥 내버려줍니다. 그래서 혼자 깨닫고 혼자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모든 상황을 지켜봅니다. 그처럼 사랑이 ‘구속’이 되지 않도록 사랑하는 방법에서도 사려가 깊어야 합니다.

 어느 날, 개를 사랑한 주인이 우유가 좋다는 말을 듣고 개의 머리를 잡고 우유를 먹였습니다. 개가 싫다고 고개를 흔들어도 주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개의 머리를 더욱 꼭 붙잡고 우유를 먹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유 컵이 땅에 떨어져 우유가 사방에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보니까 개가 땅에 흩어진 우유를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개가 싫어했던 것은 ‘우유’가 아니라 ‘우유를 먹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랑해도 방법이 틀리면 구속이 됩니다. 부모의 사랑 중에는 그런 사랑이 많습니다. 이제 바르고 현명한 사랑법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이 있는 곳을 밝게 만드십시오. 그래야 세상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은 모두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도 달라졌고, 요한도 달라졌고, 세리와 창녀들도 다 달라졌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계셨던 나사렛도 달라졌고, 갈릴리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빛을 뿌리십시오. 지금 세상은 어둡고 원망할 것도 많지만 이때 필요한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2가지 일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 2가지 일이란 하나는 ‘사명’이고 또 하나는 ‘사랑’입니다. 원망과 불평만 하면 세상은 더욱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참여하면서 내 작은 빛을 밝히고, 자기를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면 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처럼 나의 작은 빛과 너의 작은 빛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밝아질 것입니다.

<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

 특별히 세상의 빛이 되고 예수 믿고 인물 되려면 무엇보다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이 있어야 어둔 세상에 사랑의 빛을 뿌려줄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힘과 능력과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 사랑이 있어야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는 추진력도 얻고, 인생 최악의 날을 최고의 날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든든한 격려자였던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인생 최악의 날을 경험했습니다(창 11:32). 그러나 그 최악의 날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전시켰습니다. 그래서 데라의 죽음을 언급한 구절 바로 다음에 나오는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꿈과 비전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연로한 아버지 데라의 건강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 데라가 죽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에 대한 거룩한 꿈과 비전을 새롭게 일깨워주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거룩한 꿈과 비전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결국 ‘존경하는 아버지 데라의 죽음’이란 최악의 날이 ‘가나안의 꿈과 비전을 향한 전진’이란 최고의 날로 바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처럼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최악의 날이 꿈과 비전을 향한 최고의 날로 연결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1984년에 저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삶의 뚜렷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앞길이 캄캄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인생의 어둠’인지 학생의 신분을 끝내고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을 때가 다가오니까 비로소 깨달아졌습니다. 그때가 저에게는 인생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최악의 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붙잡고 최선을 날을 향한 위대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때 겪었던 암담함이 저를 천년 영향력을 꿈꾸는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된 선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2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한 꿈과 비전을 잃지 않으면 최악의 날도 최고의 날로 변합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에게 기근이란 최악의 날이 펼쳐졌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갔지만 나중에 애굽에서 나올 때는 엄청난 거부가 되어 나왔습니다(창 13:1-2). 살다 보면 물질적인 기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교회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전보다 더욱 물질적인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언제나 ‘역전의 명수’로 나타나십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직장에서 강제 퇴직 당했습니다.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했고, 변함없이 교회봉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새로운 의욕과 창조적인 아디이어를 주셔서 IT 회사를 세우고 엄청난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 최악의 날이 인생 최고의 날로 변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무수하게 했습니다. 그 원리는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에게 최악의 날은 십자가를 지던 금요일입니다. 그러면 그 날을 ‘나쁜 금요일(Bad Friday)’이라고 해야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그 날을 ‘좋은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최악의 날이 인류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린 최고의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비전 안에 꾸준히 있기만 하면 최악의 날은 반드시 최고의 날이 됩니다.

 이제 최악의 날을 만나도 “죽으면 죽으리라!”고 각오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변함없이 꿈과 비전을 향해 기도하고 나가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은 최악의 날을 최고의 날로 만들어주시는 멋진 역전 드라마를 펼쳐주실 것입니다. 항상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감으로 2010년을 생애 최고의 해로 만드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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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5 창세기 이스마엘 창16:7-16  이정원 목사  2010-01-09 2676
2694 창세기 인간적인 방법 창16:1-6  이정원 목사  2010-01-09 1845
2693 요한계시 칭찬 받은 교회 계3:7-13  이정원 목사  2010-01-09 3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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