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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창조하라

마가복음 한태완 목사............... 조회 수 1948 추천 수 0 2009.07.19 2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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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46-5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사람에게는 누구나 태어날 때는 운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즉 국가나 부모를 자신이 선택하여 태어나지 않고, 남자 여자를 선택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몇 해전에 SBS 방송에서 서세원 씨가 진행한 좋은 세상 만들기 프로가 있었습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오는 프로입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단어 알아 맞추기 게임을 합니다. 서세원 씨가 할아버지에게만 이런 단어를 주었습니다. "천생연분" 그것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설명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웬수" 할아버지가 다시 설명합니다. "아니 두자 말고 넉자" 할머니는 대답합니다. "평생웬수"
천생연분이란 당신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혼하기로 숙명적으로 맺어진 부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숙명적 운명관이라고 합니다. 운명이란 내가 만들어나가고 개척하기 나름이다 라고 생각하는 운명관을 창조적 운명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운명관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까?
일반적으로 ‘운명’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 곧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길흉화복을 말합니다. 동양철학에 의하면 운명은 소위 사주팔자를 말하며 천(天)운 지(地)운 인(人)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역술원과 무속인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운명상담을 합니다.
왜 이런 운명론이 생겼는가. 한 마디로 이것은 이 세상풍속이요, 공중 권세잡은 자(엡 2:2)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에덴에서 쫓겨났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은 자로서 한동안 세상을 어두움으로 다스리는 세상임금(요 12:31)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도 세상을 지배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질서와 법칙을 소유했을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그 질서와 법칙을 가지고 불순종의 아들들 속에서 이 세상풍속(엡 2:2)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운명론은 이 세상풍속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은 것이 소위 역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영매와 신술이 전통화되어 온 것을 무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운명의 법칙이 그리스도인을 지배할 수 있는가? 그런 운명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세상 초등학문이요, 저급한 원시종교인 샤머니즘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사탄의 세계, 어두움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명의 법칙은 그리스도인을 절대로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에겐 성령께서 양자의 영(롬 8:15)으로 내주하였고 성도의 삶을 친히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으로서 사탄의 모든 궤계와 저주의 법칙을 짓밟아버리시고 우리를 참된 만족과 행복과 승리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그 어떤 저주스런 운명의 사슬도 박살내버리시고 우리를 참된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운명의 법칙이란 성도에겐 있을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의 근원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집트에서 활동하는 어느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명론'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인샬라'라는 것이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굉장한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핑계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나해도 그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합니다. 약속 시간보다 서너 시간 늦게 나오면서도 '인샬라' 곧 '하나님의 뜻'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배제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는 신앙심이 깊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쉽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극단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그 결과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야 합니다.
미국의 해리 트루만 대통령은 자기 집무실 명패에 특이한 글귀를 적어 놓았습니다. "모든 일의 책임은 내가 진다." 트루만의 당당한 자신감은 그가 흘리는 땀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 속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이 일을 잘 못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지만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땀샘이 활성화될수록 행복의 샘도 활성화됩니다. 땀이 없이 자리만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은 '기복주의'입니다. 운명론과 예정론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운명론은 '미래의 확정된 삶을 감지하고 그것 때문에 땀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예정론은 '미래의 약속된 삶을 감지하고 그것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못해 뒤따라가는 패잔병이 되지 말고 무엇이든 앞서 이끄는 선봉장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땀을 흘리는 만큼 얻어집니다.
본문은 기구한 운명에 처했지만 비관하지 않고 새롭게 운명을 창조한 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바디메오라는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입니다. 아버지가 소경이며 거지인지라 이 아들도 숙명적으로 소경거지가 되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소경거지로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며,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한다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운집하여 예수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쳐 예수를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디선가 들리는 이 소리에 예수님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소경 거지 바디메오를 부릅니다. 이때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겉옷을 내어버리고 일어나 뛰어 예수께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소경 바디메오가 보게되었습니다. 거지의 운명이 비전 있는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자신의 운명을 바꾼 기적의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운명을 놀랍게 창조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운명을 놀랍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47절을 보면,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칩니다. 바디메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도전했습니다. 장애를 넘어서 운명을 바꾸겠다는 용기 있는 도전정신이 있었습니다.
소경과 거지의 신세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바디메오, 그러나 바디메오는 이대로만 살수는 없어, 나도 내 운명을 바꾸고야 말거야, 이런 용기를 가지고 운명을 창조하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중세기 유럽의 한 나라가 영토전쟁으로 백성들이 용기도 없이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일으키기 위해서 내기를 했습니다. 왕은 예쁜 공주가 있었는데 백성 중에서 용기있는 사람에게 공주를 주고 사위로 맞이하겠다고 했습니다. 조건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웅덩이를 헤엄쳐 건너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주를 얻고자 탐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악어웅덩이로 뛰어드는 자가 없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를 때 한 젊은이가 웅덩이로 뛰어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저 청년은 왕비를 차지하려다가 악어의 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한 일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악어의 밥이 되지 않고 무사히 악어웅덩이를 건너왔습니다. 마침내 왕비를 차지하고 왕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왕은 웅덩이를 건너온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악어가 있는 이 웅덩이를 건너올 용기를 가지게 되었는가? 이 청년은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매서운 눈초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나를 밀어 넣었어?"(웃음). 이 젊은이는 말합니다. 기왕 악어 밥이 될 바에야 죽을힘을 대해 용기를 내어 건너왔습니다.
왕은 말하기를 "사실 그 웅덩이에는 악어가 없었다네. 나는 온 나라 젊은이들이 용기를 가지기를 원해서 이런 시험을 했다네, 자네에게 왕비를 주고 이제부터 청년을 나의 왕자로 임명하네"
성도 여러분, 용기 있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자만이 놀라운 운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성공은 주어진 환경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용기 있는 도전정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장애를 탓하지 마십시오. 장애는 나약한 사람에게는 가혹합니다. 그러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의 자극제가 될 뿐입니다. 젊었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삶에 도전하십시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그리하여 놀라운 운명을 창조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운명을 놀랍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디메오가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예수께 나아갈 때 4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허다한 무리가 바디메오에게 "시끄럽다 잠잠하라 저리 가라 무슨 소경이 다 나와서 이런 소란이야!" 하면서 꾸짖습니다.
그 때 바디메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48절에 보면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더욱 소리질러 예수를 부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노력하지 않는 자는 어떤 운명관에 더 가깝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숙명론적 운명관에 가깝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자는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한 부잣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과 재물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그 집 식구들은 울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멀리서 거지 부자, 아버지와 아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불구경을 하던 거지 아들이 "아버지 저 사람들 참 안됐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거지 아버지는 "그것 봐라. 우리에게 불로 타 없어질 집이 없으니 무슨 걱정이 있니? 이게 다 애비를 잘 만난 덕인 줄 알아라"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이 거지 인생입니다. 거지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운명을 창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삶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전할 때 항상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은 자신에게로부터 오는 것도 있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것도 있습니다. 바디메오의 자신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장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멸시, 잠잠하라는 무시, 꾸짖는 책망, 이런 장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애들이 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바디메오는 이런 내적인 외적인 모든 장애를 극복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인간의 운명을 바꿉니다. 처칠 수상의 모교 고등학교에서 처칠 수상을 초청해서 연설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몇 번 찾아와 요청해서 수락했습니다. 처칠 수상은 단 30초 연설을 하고 내려 왔습니다. 그의 연설이 유명합니다. 단 세 문장입니다. 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은 당신의 운명을 놀랍게 창조할 것입니다.
두 형제는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최소한 안일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살자"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한 김용수(32)씨의 고백입니다. 형 양수(34)씨도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형제는 공교롭게도 열일곱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안마사로 나설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경에 순응하는 삶이 싫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건강한 청각신경이 남아있다." 형제는 녹음강의를 귀에 물집이 잡히도록 들었고 점자서적은 책장이 닳아 없어질 만큼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 결과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의 이공계 박사학위자가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능력 없음을 한탄 할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한탄하십시오.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성취될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 때는 꿈꾸고 있는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노력함으로 당신의 운명을 놀랍게 창조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운명을 놀랍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운명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51절에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때 예수께서 52절에 말씀하시되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자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할렐루야! (아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소경거지 바디메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메시야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 분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야요 구원자라고 믿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운명은 새롭게 창조되기 시작합니다. 거지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운명을 창조하는 길은 용기있는 도전정신, 포기하지 않는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인간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운명을 놀랍게 창조하기 위하여 도전하고 노력을 다한 후 운명을 새롭게 창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경거지 바디메오가 "다윗의 자소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외침은 기도입니다. 신앙은 나의 부족을 느끼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소년이 엄청나게 큰돌을 옮기려고 갖은 애를 다 써 보았지만, 그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것을 보고 있던 소년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애야, 너는 모든 힘을 다 동원해 보려무나." 소년은 다시 있는 힘을 다 사용해 보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 모든 힘을 다 사용하였니?" 소년이 그렇다고 대답했을 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네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사용하지 않았어. 넌 아직까지 이 아빠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단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당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인생의 짐들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운명을 창조하기 위하여 용기 있는 도전정신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운명을 창조하기 위하여 인내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한 후에 더욱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최선을 다한 다음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는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인간 최고의 겸손입니다. 신 앞에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자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운명을 놀랍게 창조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구에게 맡기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우리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분,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분, 기도하는 데로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경의 아버지는 아직도 소경이요 그대로 거지였습니다. 그러나 소경의 아들 바디메오는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볼 수 있는 비전 있는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모가 거지니까 내가 거지가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부모가 교수니까 내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인생은 내가 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주셨습니다. 멋진 인생을 장식하는 것을 우리의 책임입니다. 당신은 이 운명을 어떻게 창조해 가시렵니까? 그저 될 대로 되지 하는 무책임한 삶을 사시렵니까? 아니면 이 땅에 아름다운 흔적이 남는 운명을 창조해 가시렵니까?
우리의 운명을 창조해 가는데 많은 장애물이 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홀로 우리 인생을 창조하며 아름답게 장식하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지만 작심삼일 때가 많습니다. 노력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보면서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생을 창조해 가는 데 연약함을 느끼거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도 남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쓰러지려고 할 때 우리를 다시 달리게 하는 용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며 삶에 도전하십시오. 여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찬연히 빛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밝고 아름답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놀라운 운명을 창조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 잘못된 운명론, 숙명론을 갖지 말게 하시고 주께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이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인생을 놀랍게 창조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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