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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935 추천 수 0 2009.07.15 22:42:32
.........
성경본문 : 고후5: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9월 18일 주일 3부설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습니다. 저들의 가난과 후진적 사회상을 보고 가슴이 저며 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저들 개인이나 국가를 잘 살게 할 수 있는 길이 아득하게 멀어만 보였습니다. 언제 아프리카도 잘 살 수 있을까? 마음속에 무거운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들에게 일시적 생필품의 원조로 잘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의 신분을 변화시켜 주어야만 저들이 잘 살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신분의 변화는 교육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신분상 변화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많은 돈을 들여 교육에 힘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같이 다인종 사회에서 소수민족의 생활향상은 교육을 통하여 신분을 상승시켜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고 온 세계에 흩어져 2천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들이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계, 교육계, 과학계를 주름잡는 상층신분을 갖고 사는 이유는 훌륭한 자녀교육 덕택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결사적으로 자녀들의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로 유대인 자녀들은 사회에서 높은 신분을 얻게 되고 신분에 따라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 예수님 안에서 자기 신분을 깨달아 알아야만 합니다. 자기 신분을 모르면 모래위에 지은 집 같아서 시험과 바람과 창수가 부딪혀 오면 그냥 무너지고 쓰러져 버립니다. 굳건한 믿음은 확실한 신분에 대한 이해의 토대위에서 가질 수가 있습니다.

<본론>

1. 인간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

그러면 첫째로, 우리가 오늘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신분이 인간의 신분으로 왜 오셨는가?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처음 신분은 고상한 신분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씀대로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형상을 쫓아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동물들과 다릅니다. 천사와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그 고상함은 말로표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지상 만물의 지배자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스리는 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죽지 않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는 자로 만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첫 아담의 신분은 정말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첫째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그들은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타락한 첫 아담의 두 번째 신분은 죽음의 신분입니다. 사망의 세력에 잡힌 종의 신분입니다. 죄와 마귀의 종 된 삶을 사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망을 당한 신분에 형벌을 받은 신분입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결국은 병들어 죽고 죄와 마귀의 종이 되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생하며 사는 이유는 그 비천한 신분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그 신분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고상한 신분은 고상한 삶을 살게 되고 고귀한 신분은 고귀하게 살게 되고 비천한 신분은 비천하게 살게 되어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우리의 운명과 환경은 신분을 따라 변화되어 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고상한 신분,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졌을 때는 에덴의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 신분에 합당한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타락하여 죄와 마귀와 죽음의 종이 되었을 때는 그 신분에 합당하게 비천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저주받고 병들고 고통당하고 가난하고 죽는 비극적인 신분을 소유하게 되고 그 결과로써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간의 비극적인 신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분을 저버리고 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야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시고 인간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서 죄인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시고 죄인의 신분을 덮어쓰신 것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청산하기 위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절로 4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인데 죄인의 신분으로 오셔서 죄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죄를 이기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죄 있는 우리들의 죄를 다 책임지고 죄가 되셔서 심판을 받으시고 죄를 다 청산하시므로 예수믿고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영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려고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이 없으시면서 병든 인간의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병들 수도 없고 병을 알지도 못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는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말할 수 없는 신음을 하신 것입니다. 병 없는 그분이 병 있는 인간의 신분을 책임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다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심으로 병을 청산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저주받지 않은 신분이었으나 인간의 저주와 하나됨으로 저주받은 신분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원천이요,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신 것인데 그분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셔서 인간의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저주를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신데 인간의 죽음을 죽으신 주님은 죽는 인간의 신분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 값으로 죽는데 그 인간의 신분을 덮어 쓰시고 인간의 죄를 책임지시고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덤에 들어가셔서 죄를 다 청산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죄를 청산해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부활하셔서 우리는 용서와 의와 영광을 값없이 누리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부활한 우리의 신분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셨은즉 이제는 예수님의 신분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청산하시고 다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리해서 나타나셨는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 승리의 신분에 함께 참여하는 신분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로 5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죽음 내 죽음, 예수무덤 내 무덤, 예수부활 내 부활, 예수승천 내 승천, 예수승리 내 승리. 우리는 이와같이 그리스도와 연합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오셔서 죄인된 우리와 연합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이제 승리하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한 신분에 연합해서 함께 값없이 승리와 영광을 선물로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의롭게 영광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석하는 여유롭게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의롭고 영광된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던 처녀가 서울 대가집에 시집을 오면 신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신분이 달라집니다. 옷 입는 것이 달라지고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신분이 달라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우리가 용서받은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더럽고 추하고 세상과 마귀의 노예 된 신분을 가지고 끌려 다녔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신분을 선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이런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신분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후사가 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얼마나 신분적인 변화를 얻었는지 어지러울 정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에 성령충만, 거룩한 신분을 얻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료받고 병에서 해방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병의 노예요, 병들고 고통당하고 괴로움 당하고 죽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료받고 병에서 해방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은 우리 병을 청산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병든 인간의 신분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아서 병을 다 청산하셨으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우리는 값없이 치료받고 건강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죄에 끌려가는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죄를 이기는 신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죄의 종, 질병의 종이 된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질병을 이기는 신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보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나를 떠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병과 우리의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병을 이긴 신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신분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에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써 저주받은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이 저주받았으니 우리도 조상따라 저주받은 신분을 가지고 태어나서 우리의 삶 전체가 저주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을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신분이 저주받은 신분이기 때문에 환경이 언제나 저주받은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신분을 덮어쓰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의 모든 값을 청산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가난을 짊어지시고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청산하시므로 이제는 우리는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월등한 신분상승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는 복 받은 신분입니다. 형통을 얻는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자기신분을 알아야 자기 운명을 주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난을 향하여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주를 향하여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는 물러가라! 나는 신분이 달라졌으니 나의 환경도 달라져야 된다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옥은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부자가 지옥에 들어가서 너무나 뜨겁고 괴로우니까 아브라함에게 기도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어서 냉수 한 방울만 묻혀서 이 혀를 축여 주십시오.’ 냉수 한 그릇도 아닙니다. 냉수 한 방울이 얼마나 귀한지 냉수 한 방울 만이라도 내 불타는 혀를 시원케 해주시옵소서. 그만큼 지옥은 영과 혼이 불타는 곳입니다. 그런 지옥에 가야 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부활하신 은총을 힘입어 값없이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하고 귀한 자녀라는 신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에 앉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분이 고상하게 되었습니까? 육신의 신분이 하늘에 앉은 하나님의 천상의 신분으로 변화되고 지옥에 내려갈 자가 천국 영광의 시민권을 얻은 신분이 되었으니 얼마나 신분상 변화가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달라진 신분으로 살아가는 신앙자세

그러므로 셋째로, 우리는 달라진 신분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신분이 달라졌는데 달라진 신분을 따라 살지 못하면 너무나 큰 비극이 아닙니까? 제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한 고아가 미국으로 양부모를 따라 갔는데 큰 부자집 양자가 되었습니다. 항상 다리밑에 거적대기를 덮어쓰고 깡통에서 얻은 음식을 먹던 그가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양자로 선택받아서 미국의 큰 부호집에 양자가 되었는데 그곳에 가자마자 좋은 옷을 입혀 주고 좋은 밥상에서 밥을 먹고 그 양부모의 환영을 받고 첫날 저녁에 자기 방에 들어가니 침대가 기가막히게 푹신푹신하고 닭털 베개가 푹신푹신한데 그곳에 눕혀주고 양어머니가 이불을 덮어 주며 다독거리고 내일 아침까지 편안히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부모가 나가고 난 다음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니야 내 팔자 이런 팔자 아닌데 뭐가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되지 않았다. 이것 절대로 내가 이렇게 할 수 없다.’ 그는 그 침대에서 내려와서 침대밑에 기어 들어가서 새우처럼 구부리고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양부모가 양자를 보려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니 애가 없다 말입니다. 이것 야단났다. 찾아보니까 침대밑에 강아지처럼 쪼그리고 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끌어냈습니다. “야~ 너 왜 침대밑에서 강아지처럼 구부리고 자느냐? 너 이제는 거지가 아니란 말이야. 너는 미국 시민이 되었어. 부자집 양자가 되었어. 신분이 달라졌어.”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으니까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양부모님이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이 있으면 오셔서 우리 아들에게 신분이 달라진 것을 좀 설명을 해주십시오. 이제는 한국의 거지가 아니라 미국 부잣집 양자가 되었으며 다리밑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서 푹신푹신하게 자며 얻어먹을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 있는 기름진 양식으로 먹고 산다는 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렇게 광고가 나왔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 신분이 달라진 것을 모릅니다. 법적으로 신분이 확실히 달라졌는데도 마음에는 아직 거지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달라지기 전에는 법적 신분이 달라져도 누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법적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것이 되었는데도 예수 믿으면서 법적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담의 후손으로써 죄의 종이요, 세상의 종이요, 병의 종이요, 저주의 종이요, 사망의 종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용서받고 의인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세상에 종살이하고 살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사도바울 선생이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우리는 새로운 신분의 자유와 해방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진 신분으로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생각이 나는 죄인이라고 늘 생각하면 이것 도저히 달라진 신분으로 살수 없어요. 내 생각이 ‘나는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달라진 신분으로 살수 없습니다. 늘 생각이 ‘나는 병들어 죽지.’ 그 사람 어떻게 합니까? ‘나는 늘 가난하다. 헐벗고 굶주린다. 낭패와 실망을 당한다.’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고는 그 사람은 새로운 신분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옥 갈 것이다’라고 하면 그 사람을 어떻게 건질 수 있어요. 달라진 신분대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침례교 목사였던 로버트 로우리씨는 남북전쟁이 터지자 전사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위하여 전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더미 속에 보니까 아직 죽지 않고 앓고 있는 군인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로우리 목사는 장례식보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려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이 일에 집중하고 수고를 하고 애를 쓰고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고 노력했든지 그도 그만 기진맥진해서 시체더미 속에 쓰러져서 같이 신음하고 죽게 된 것입니다. 일어날 기력도 다 잃어버리고 이제는 죽게 되었는데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귀에 들렸습니다. ‘로우리 목사야~ 내가 살아있다. 나는 어두움을 이기고 살아났다. 지금 내가 부활의 능력으로 네 속에 살아있다. 너는 죽지 않는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주님이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주님이 내 속에 부활의 능력으로 있으니 나는 죽지 않는다.’라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 의지해서 그는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아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이 찬송을 훗날에 지었습니다.
♬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이 사신 예수님이 너와 함께 계시고 너 안에 있다는 주의 음성을 로우리 목사가 듣고 난 다음 기진맥진하여 시체 가운데 쓰러져 숨이 끊어지려고 하다가 살아났던 것입니다. 이 부활한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음과 지옥에서 벗어나 부활과 영생과 천국신분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으로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시키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꿈이나 자화상을 변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를 보고 삽니다. 자기가 못났다. 능력이 없다. 실패자라는 열등의식과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승리한다. 성공한다. 복 받았다. 희망차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소수고 대게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이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화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자화상이 달라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삼대재앙에서 우리를 건져내서 삼중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영원히 죽었습니다. 그의 생활이 저주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납니다. 육체가 병들어 죽어 멸망받겠다고 선언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서 죽은 영혼을 살려 주시고 저주를 청산하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부활시켜서 영생 얻게 하셨으니 삼중축복이 우리의 것이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자화상으로 바꿔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모든 병을 고치시며 여러분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사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내 자화상을 갈아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모터는 37살까지 캐비넷 제조공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혀 의미가 없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자화상으로 37살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살다가 갈 것이냐 나는 못났다. 교육도 못 받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패배자’라고 생각해서 비참한 자화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느 겨울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에 들어갔는데 마침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에드워드 모터의 마음에는 ‘나도 거듭나야 되겠다.’ 이런 강렬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음 문을 열고 ‘주님, 이 생활을 청산하고 거듭나서 새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부르짖다가 예수님이 들어와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모터의 마음에는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넘쳐나고 주님을 의지하고 긍정적인 자화상이 생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나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자화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도 즐거움으로 했습니다. 고객이 오면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고 일을 정성껏 잘해주었으므로 점점 고객은 늘어가고 수입은 많아져서 나중에는 자기가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 소유가 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했던 제조공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되고 성공적인 자화상을 가지게 되자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너무나 감동해서 예수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찬송가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온 세상에 알려지고 불려지는 불후의 명작이 된 것입니다. 찬송가 539장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낭패와 실망을 당한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거듭나자 자화상이 달라지고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고 그는 아름다운 찬송을 지어 봉헌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납니다. 가난과 저주와 원망과 불평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이어받은 신분이 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신분이 달라졌으니까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낭패할 것을 믿고 가난해 질 것을 믿고 패배할 것을 믿고 저주받을 것을 믿으면 이것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많이 믿어요.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신분이 달라졌으므로 긍정적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마음에 믿음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라고 말했으며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뭡니까? 어두울 때 빛이 있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 평안이 올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가시밭길을 걸어갈 때 평탄한 길이 올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내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아르헨티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그 성회를 실바소 목사님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나를 찾아와 이런 간증을 했는데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원래 실바소 목사님은 은행원이었는데 갑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마비되는 멀티플 세르로시스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점점 얼굴이 마비되더니 나중에는 목으로 내려가서 목이 마비되어 씹지도 못하고 음식도 넘기지 못합니다. 그것이 폐까지 내려오면 횡경막이 마비되어 숨을 못 쉬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차를 타고 교회를 가는데 갑자기 자동차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더랍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재단 앞에 엎드렸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지금 상처 입은 것은 마귀가 너를 죽이려는 것이다. 네가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니까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일선에서 적군의 총탄에 맞아 부상당하듯이 너는 지금 마귀에게 부상을 당했다. 마귀는 너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네가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면 마귀는 쫓겨나갈 것이다. 지금 나의 천사들은 너를 두고 공중에서 마귀와 싸우고 있다. 마치 다니엘이 21일 동안 기도할 때 공중에 있는 천사들이 마귀를 이기고 내려온 것처럼 지금 나의 사자들이 너를 위해서 공중에서 마귀와 싸우고 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믿고 기도하라!’ 실바소 목사님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낙심하지 않고 ‘나는 이미 치료받았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나는 해방되었다.’ 이렇게 믿음으로 선포하고 기도하며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은 절대로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일 년 동안 일진일퇴를 하면서 그는 목숨이 붙어 있었는데 일년이 지나고 난 다음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벌떡 일어나보니 병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마비증세는 다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신분, 치료받고 병에서 해방된 신분을 주장하며 기도하고 나아가자 병이 완전히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신분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마귀에게 종노릇한 필요가 없습니다. 영생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신 신분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신분을 알면 내가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내 신분을 모르면 정체불명의 사람입니다. 정체불명의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분명히 알면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을 바꿔야 됩니다. 자기 신분에 맞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양반이 쌍놈처럼 말할 수도 없고 쌍놈이 양반처럼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신분에 따라 말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강한 믿음을 가지고 말을 하면 말은 씨가 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했고
잠언서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했으며
잠언서 21장 23절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잘 못하면 큰 불행이 다가오고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르게 하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콘돌리사 라이스 장관이 옛날에는 안보담당 보좌관이었지만 지금은 외무장관 국무장관입니다. 그가 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일할 때 미국 잡지 포고스는 콘돌리사 라이스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 꼽았고 또한 2002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콘돌리사 라이스는 백악관으로 들어간 흑인으로는 콜린파월 이후 두 번째이고 여성흑인으로는 최초입니다. 그녀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곳으로 유명한 엘라바마주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콘돌리사 라이스는 예수님 안에서 확실한 정체성과 신분의식을 가진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나는 비록 피부가 검지만 백인들은 우리를 인종차별 하지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나를 차별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실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10살 때 부모님과 복음전파 교육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최종목적지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였습니다. 백악관 구경을 갔는데 백인들은 다 백악관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데 흑인은 백악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철창사이로 보았습니다. 그때 콘돌리사 라이스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제가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것은 내 피부색이 검기 때문이지요? 두고 보세요. 내가 반드시 저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10살 때 그는 백악관에 들어갈 것이라고 굳세게 믿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나를 백악관에 못 들어오게 했지만 나는 백악관에 꼭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25년 후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백악관에 들어간 것입니다. 2001년에 국가안보보좌관이 되고 2004년에는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백악관에 들어간 흑인 여성이라는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일지라도 단지 신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저는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앙으로 바라보고 내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그런 것으로 인생을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신분이 됩니다. 마땅히 우리는 믿음과 말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진 신분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흑인도 백인도 서양 사람도 동양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열등의식이나 좌절감이나 구겨진 자기의 셀프 이미지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뇌 학자들은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뇌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의 오장육부, 사지백체가 말하는 것 따라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지백체뿐 아니라 우리 환경도 우리가 말하는 대로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부활하신 신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그에 합당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사용하도록 늘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종종 우리나라에 역사극을 보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양반과 상놈 제도가 있었고 주인과 종의 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제도가 없지만 그러나 옛날에 양반과 상놈의 제도가 있을 때의 사극을 보면 양반과 노비의 말투가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게 양반은 “여봐라~ 이리 오너라!” 그러면 문을 열고 또 “물 가져오너라!” 그렇게 명령을 합니다. 노비는 정반대입니다. “예~ 주인님! 소인 대령했습니다. 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양반이 노비를 보고 “어서 오십시오. 물 가져오시옵소서.” 그렇게 한다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신분에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 노비가 양반에게 “수고했으니 자네는 가보게!”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왜 신분에 맞지 않습니다. 이들의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말도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용서받은 의인의 신분입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입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신분입니다.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신분입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받은 신분입니다. 그렇다면 신분에 합당한 말을 해야지요. 마귀의 종 된 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전인구원을 받은 신분에 합당한 말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 아담 자손, 죄의 노예, 세상과 마귀의 종, 질병의 노예, 저주의 노예, 사망의 노예가 된 그러한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저주 받았다. 나는 패배했다는 저주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종의 신분에서 이제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변화되어서 신분이 달라졌으므로 달라진 말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이후 불확실한 신분으로는 세계여행도 숙박도 할 수 없습니다. 정체불명의 사람은 비행기도 못 탑니다. 또 비행장에 내려도 다른 나라에 못 들어가요. 신분이 불확실하고 정체불명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된 자기 신분을 확실히 모르면 결코 승리적이고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처처에 가시와 엉겅퀴가 있고 돌밭이 있고 철책이 있고 험한 산 깊은 계곡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 이런 것이 첩첩이 맞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의 신분을 확실히 모르면 이런 것에 걸려서 좌우로 우왕좌왕하고 뒤로 물러가고 두려워하고 떨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통곡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알고 내가 다스리는 사람이 된 줄 알면 강하고 담대하게 여봐라! 길 치워라! 사탄은 물러가라! 마귀야 떠나라! 질병은 떠나가라! 저주는 길을 치워라! 사망아 물러가라! 승리의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신분에 합당한 생각을 바꾸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꿈과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원수들은 꽉 차있습니다.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분을 알고 정체성이 확립되면 거기에 서서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강하고 담대하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꿈과 자화상, 새로운 믿음, 새로운 말의 선언을 가지고 나아가 승리를 쟁취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났고 저주의 멍에를 짊어지고 허둥대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종의 멍에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이를 다 꺾어 버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부활의 신분에 연합하게 만들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았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신분이 변하면 운명도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신분이 변화되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도 운명과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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