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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비진리는 신앙이 아니다.

빌립보서 궁극이............... 조회 수 41 추천 수 0 2023.09.09 20: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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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2:1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토요 교역자 대상 신학 및 성경공부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을 다스리고 누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장차 그 천국을 주님과 함께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건데,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격화 성품화 실상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처럼 온전케 만들기 위해 각색의 존재물을 만들었고, 우리 인간도 만들었고, 역사의 진행 속에 크고 작은 사건과 환경을 주셨으니 믿는 우리가 세상만물을 보면서 성경의 신앙의 이치를 발견해서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게 된다.

 

사람이 영양가가 없는 음식을 먹으면 몸에 이상이 오듯이 우리가 이단성이나 거짓성의 설교를 들으면 영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생명적인 진리이치를 먹지 못하면 자기는 그만큼 깨달음에 명철하지 못하고 명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 것도 힘들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은 자기 신체를 건강하게 해서 자기 몸을 세상을 사는 데 쓰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리를 먹는 것은 영의 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먹는다면 어떻게 영의 일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이건 죄다. 비진리를 양육하면 죄다.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는 것은 사창가 여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세상 소원 목적으로 살면 화가 있다는 거다. 즉 교회에게 하는 말이요 목회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교회라고 할 때는 먼저 목사가 들어가는 거다.

 

무엇이 비진리냐? 진리는 천국복음이요, 하늘나라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인데, 이게 아니면서 인 것처럼 하는 게 비진리다. 한마디로 성경을 들고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하고 이루라고 하는 가르침은 전부가 비진리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방인들의 소원 목적을 가지는 것은 전부가 비진리다. 성경은 알맹이, 즉 문자 속에 들어있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건데 이 알맹이는 주지 않고 껍데기만 주는 게 비진리다. 생명이 없는 것을 주는 게 비진리다. 진리가 아니면서 진리 행세를 하는 게 비진리요, 신앙 같으나 신앙이 아닌 게 비진리다.

 

이방 종교인들이 믿는 게 신앙이냐, 신앙이 아니냐? 신앙이 아니면서 종교다. 인간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요, 우리의 믿음은 진리본질에 적중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뿐이다. 이게 신앙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믿으면 일반인들은 이들에게 신앙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리본질로 나가는 사람이 볼 때는 신앙인이 아니다. 이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이룰구원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붙들고 살면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안 믿는 사람이 산 결과나, 이방 종교인들이 자기의 신을 믿고 산 결과가 같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서 공부를 안 한 사람이나,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를 안 해서 실력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못한다는 면에서 결과가 같다. 이럴 때 누가 나쁜 거냐? 자기를 학교에 보낸 부모님의 골을 빼먹고 공부를 못하는 자식이 더 나쁘다.

 

성경은 특별계시로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우리의 구원을 말하고, 천국을 말한다. 그런데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사역목적에, 눈에 보이는 것에, 육이 좋은 것에, 세상이 좋도록 말하는 것은 전부가 비진리다. 이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구절을 이용해서 세상을 가지라고 한 수법과 같다. 이런 교회일수록 예배의식과 순서가 거창하고 찬란하다. 예배당을 무당집처럼 알게 달게 꾸민 교회일수록 그 교회 인도자의 마음에 세상이 들어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교인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거다.

 

예수를 믿는다면 자기의 전 삶이 말씀으로 중복적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례를 줄 때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은 삶 전체가 거듭나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성령으로 목욕해야 한다.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렸다. 이때 예배순서도 없었고, 헌금도 없었고, 대표기도도 없었는데 주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고 한 거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감화성을 받고 예수님처럼 바꿔지는 게 신령과 진정의 예배다.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사마리아 여자와 몇 마디 대화하고서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니라라고 할 때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그 뜻을 알아들었을까? 오늘날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어디서 찾느냐? 예배의식에서 찾느냐, 우물가에서 찾느냐? 예배의식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우물가에서 찾아야 한다.

 

조상 야곱이 준 우물은 백날 먹어도 목이 마르다.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한 사상은 아무리 퍼먹어도 목이 마르다. 세상의 물질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계속 목이 마르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영생수는 야곱의 우물에서 나오는 거냐, 주님의 심령 가운데서 나오는 거냐? 주님의 심령 가운데서 나온다. 그러니 목이 마르지 않는다. 예배의식과 순서와 절차를 잘 지키더라도 물질적 사고방식과 이해타산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물을 먹는 것이라서 이 물을 백날 먹어도 목이 마르다.

 

사마리아 여자는 어떻게 하면 목이 덜 마를까?’ 해서 이런 신랑도 얻어보고 저런 신랑도 얻어보면서 여섯 명의 남편을 갈아치웠지만 여전히 목이 말랐다. 목사님이 이렇게 해도 교회가 부흥이 안 되고, 저런 방법을 써도 교회가 부흥이 안 되니 목이 타서 계속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는다면 이게 사마리아 여자요 야곱의 사상이다. 이렇게 하면 계속해서 목이 마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요,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도 죄다. 인간이 하나님의 의사성을, 뜻을 모르면 인간 자기의 뜻대로 하게 되는데, 이게 다 죄다. 이런 죄인에게 주님의 인격과 속 성품을 닮으라고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입힌 거고, 기본구원을 얻은 우리의 인격이 주님의 성품으로 성장하고 자라라고 진리의 말씀을 주셨고, 장소도 환경도 존재도 주셨고, 일반은총도 주셨고, 성경도 주신 거다. 그런데 오늘날 말세교회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말은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속셈이 물질적인 계산에 붙어있으면 이룰구원이 안 되니 이것은 자기의 일생 전부가 사망권으로 탕진이 된 셈이다. :의 집 나간 탕자 아들을 멀리서 찾지 말아라. 자기 속에 이 탕자가 들어있다. 탕자가 아버지의 것을 어디에 썼느냐?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허비했는데, 이게 탕진이다. 이렇게 산 것은 다 사망으로 흘러간 거다. 이것은 이룰구원의 삶이 아니다. 또 한 면으로는 세상을 목적하고 사는 것은 세상과 간음한 것이니 신앙정조를 팔아먹은 음녀다.

 

:에 아브람이 가나안에 있다가 애굽의 남방으로 내려간 것도 신앙정조를 팔고 세상과 간음한 거다. 이곳에서 바로 왕이 아브람의 아내를 데려갔는데, 이것은 아브람이 아내를 팔아먹은 셈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려고 바로 왕이 아브람의 아내를 데려가게 한 거다. 이로 인해 아브람의 인격의 수치감이 말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것을 바로 왕으로 알게 해서 바로가 사래와 함께 그 모든 소유를 아브람에게 보냈다. 아브람이 신앙정조를 팔고 부자가 되었으니 잘된 거냐?

 

목사님들, 목회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느냐? 그래서 신앙정조를 몇 번이나 팔아먹었느냐? 이왕 신앙정조를 팔아먹었으니 한 번쯤 애굽에 내려갔다가 올라와 봐라. 그런데 문제는 다시 올라올 때 축복을 받아서 올라올는지, 쫄딱 망해서 발발 기며 올라올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브라함이 부자가 되어서 벧엘로 올라왔는데, 만일 쫄딱 망해서 올라온다면 사래가 자신을 바로 왕에게 판 셈인 아브람을 따라붙겠느냐? 부자가 되어서 올라오니까 따라붙은 게 아닐까? 그리고 부자가 되어서 벧엘로 올라올 때 아브람이 곧 벌어질 롯과 헤어지는 일을 미리 생각했다면 눈앞이 캄캄했을 거다. 우리도 말씀을 깨닫고 바로 살려고 하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뭔가가 온다.

 

남편이 죽으면 남은 아내에게 뭐가 오느냐? 남자의 시험이 온다. 이 시험을 못 이기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느냐?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 일 다음에 이게 오고, 이것 다음에 이것이 반드시 온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에게 가난이 왔을 때 앞으로 부요가 오더라도 물질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미리 장만해야 한다. 가난을 그냥 흘려보내면, 자기의 현실을 그냥 떠내려 보내면 다음에 오는 시험에서 넘어진다. 자기가 물질이 풍부해졌을 때 마음까지 세상성으로 커진다면 이것은 앙화요 저주다. 영능의 실력이 있는 사람은 물질이 풍부할 때 이것을 자타의 구원을 위해 쓴다.

 

이룰구원 성화구원에서 성령님의 역사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구별케 해서 사람을 냉철하고 명철하게 만든다.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시키고, 이스라엘의 존재 속에 들어있는 애굽성의 소원도 목적도 취미도 추구성도 지향성도 구별케 한다. 애굽사람의 소원과 목적은 전부가 임시성에 속하는 거고, 하나님의 백성이 구하는 것은 영원성, 영원한 것, 영원히 가는 거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광야생활을 할 때 백성들 속에 여전히 애굽성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며 모세를 반역했다. 모세를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거다. 이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들어있으면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달려갈 텐데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 가지고 있었던 세상성, 임시성의 마음을 가지고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러면 현재적으로 신앙 믿음이 살지 못하고 죽는다. 반면에 광야생활을 하면서 영능이 실력을 닦은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실력대로 정복하게 된다.

 

거짓 인도자나 거짓 왕이나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 것을 혼합시킨다. 이게 마귀의 수법이다. 성경의 역사를 액면적으로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그 역사만 말하는 것은 그 개념이 물질성적이라서 이룰구원이 없다. 즉 사람의 속이 하나님의 성정으로 바뀌지 않는다.

 

여로보암 왕이 북조 이스라엘의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는데, 이것은 백성들이 안식일에 남조 유다로 예배드리러 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가 자기 교회 교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쓰는 거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사를 위해 다윗 왕에게 갈 때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해서 아버지께로 가지 못하게 한 것과 같은 거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주님은 성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데 베드로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위해 한 말이지만 알고 보면 예수님의 이 마음을 돌려서 성도를 위한 구원의 성업을 실패하게 만드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이 사단이 베드로의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가룟유다에게 처음부터 마귀라고 했듯이 베드로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거냐, 아니면 베드로는 처음부터 사단이 아니라 중간에서 사단이 되었다는 거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의 발을 씻기실 때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고, 이에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놈아,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려고 사단의 짓을 했지?’라는 생각을 하셨을까, 아니면 너는 앞으로 더는 사단의 생각을 가지지 말아라라는 생각을 하셨을까?

 

 

믿는 우리가 자기의 신앙지식이 비뚤어져 있거나 모르는 게 죄다. 양심이 비뚤어져 있고 비진리로 충만 되어 있는 게 죄다. 진리 생명과로 충만치 못한 게 죄다. 자기의 소원 목적과 취미와 감정과 오각의 오감성 정서 등 모든 게 주님의 것과 맞지 않는 것은 전부가 죄다. 이런 상태에서 주여, 주여하고 부르짖는 것은 신앙 믿음이 아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게 믿을만한 거냐, 주님이 나를 사랑해야 나의 믿음이 확실한 거냐?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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