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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1 추천 수 0 2022.11.27 13: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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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4:7-1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47-14: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11: 사람마다 낮은 자리를 좋아하느냐, 높은 자리를 좋아하느냐?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기를 올려주길 원하느냐, 낮춰주기를 원하느냐? 높여주기를 원한다. 우리 주님도 높여주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하겠다고 했다. ‘나중이 되지 말고 먼저 되라. 첫째가 되라고 했다.

 

세상 일반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주님의 생각도 일반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같으냐? 아니다. 세상 일반사람들은 선악과 따먹고 저주받고 타락 세상에서 첫째가 되고 먼저 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타락되고 저주받은 세상인고로 사망권 안이요, 불에 타질 세상이요, 썩어질 세상인데 첫째가 되면 뭐 하느냐?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영원한 곳에서 영원히, 뿐만 아니라 신령천국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신앙 믿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머리가 되고 먼저가 되길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예수 믿는 것은 본인들이 말씀대로만 만들어지고 순종을 하며 살면 자동적으로 머리가 되고 첫째가 되는 길이구나.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인도자들이나 교인들은 어디를 가든 아는 면이나 깨닫는 면이나 영적 성장 면이나 모든 면에서 머리가 돼야지 꼬리가 돼서는 안 된다. 첫째가 돼야지 뒤따라가면 안 된다.

 

이렇게 되려면 말씀이 늘 이치가 돼서 생각할수록 그게 성장이 되고 확장이 돼야 되겠다. 그래야 먼저도 되고, 첫째도 되고, 남 먼저 앞서고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가르치기도 최고의 좋은 것으로 가르쳐야 한다. 썩어질 세상 것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자기의 명예 영광을 얻을 수 있는 배경을 자기가 만드는 거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이력 경력을 많이 만들고, 세상 사람들이 돋보는 명예를 많이 만들어서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또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아주고 돋보고 부러워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속성을 만드시기를 사람이 영광스럽게 올라가면 기쁘고 즐거운 성분을 넣어 놨다. 내려가면 슬프고 고통스런 요소를 가진 자로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조건을 가진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처럼 알아주시는 하나님이시냐?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수준이 인간수준과 같아진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뭐 하려고 믿느냐? 하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예수님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알아주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 올리시듯 우리가 그런 진리의 사람이 되면 우리도 그렇게 높이 올리신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건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게 비참하게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불신자의 눈으로 보면 처참하고 비참한 것으로 보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아무나 그 사역을 할 수 없는 거다. 아무나 십자가에 매달려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 분이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 그 귀한 사역을 할 수 있는 분이다하고 높이 올리시는 거다.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높이 올리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인간 보기에 그냥 높이 올리는 것도 있지만 인간 보기에는 죄인처럼 보이지만 최고의 의인이라야 이 역사를 감당할 수 있다하고 높이 올리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날씨가 좋은 날 대낮에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비가 오는 날 캄캄한 밤에 심부름을 갖다 오는 건 아무나 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안다면서 이런 면에 대해 예수님께서 물으실 때에 유구무언이 돼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사람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자기를 실상화 인격화 자체화 시켜야 한다. 그런 겸손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이 성도를 올려줄까하고 신경을 쓰신다.

 

하나님께서 올려주실 때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사건이 있다. 욥도 보면 욥의 믿음이 아니면 그 사건을 감당할 수가 없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공격했는데, 그 친구들의 말을 보면 종교적인 이치에는 맞다. 그러나 욥을 공격하는 욥의 친구들이 욥처럼 사건을 당하면 그들은 욥처럼 이기지를 못하게 돼 있다. 그 사상이 그렇다.

 

욥의 친구들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종교적인 그런 면으로 공격을 한다. 신비주의 경험도 가지고 오고, 도덕성도 가지고 와서 공격을 한다. 그런데 욥에게 이룰구원의 성질로 그 사건들이 다가온 것인데 친구들은 물론이고 욥이 그 면을 알지를 못해서 마음속에 고뇌를 많이 한다.

 

이룰구원 차원에서는 나타난 종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씨름은 안 된다. ‘보았네. 꾸었네. 들었네하는 신비주의 그것을 갖다가도 안 된다. 이룰구원의 단수는 높은 것이다. 욥이 그 면을 몰라서 답답해하고 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다.

 

오늘날도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오면 기독교인들이 욥의 친구들처럼 의례히 너 죄 지었지하면서 공격을 한다. 그런데 사실 또 우리 자신을 욥과 비교해 보면 내가 욥만큼 되느냐? 안 된다. 그러니까 사건을 만나면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나하고 그 면으로 기대를 하고 기다리면서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이룰구원도 돼 나간다.

 

사건을 만났을 때 이룰구원이 안 돼 나가면 한 마디로 사단 마귀의 이용물이 되고, 세상의 이용물 되고, 자기 속에서 옛사람이 주격이 돼서 자기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자기를 비참하게 만든다. 그렇게 한 인생이 넘어가 버리는구나.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닮아갈 수도 있는데 모르면 그게 안 된다. 어쨌든 겸손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올리시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 성도에게 그만큼 신경을 쓰신다 그 말이다.

 

하나님께서 올리시는 걸 다른 사람이 끄집어 내리면 그 사람에게는 형벌이 아니면 죽는 거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이 들어간다. 불을 끄집어 내리면 누가 어두우냐? 자기가 어두워진다.

 

12-14: 우리가 본 절에서 의인들의 부활이 영적인 면에서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13절은 자동적으로 풀린다. 12절은 세상 물질적인 것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이지만, 13절은 물질적인 뜻의 말은 아니다. 12절은 물질적으로 일반 양심적으로 친구끼리 형제끼리 이웃끼리 모두 하고 있다.

 

13절을 물질적인 뜻으로 본다면 세상물질을 가지고 대접을 하느라고 특별히 불쌍한 사람이나 거지나 또는 장애인들을 불러서 대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흔한 일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에 구애를 받지 않는 큰 부자가 마음을 먹어야 될 일이다. 가난한 사람은 그게 안 된다.

 

물질적 구제사업은 교회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우상 종교단체들도 잘 하고 있는 일들이다. 이방인과 우상종교를 믿는 단체들은 성경을 몰라도 자기들의 교세확장이나 자기들의 양심의 판단으로 그런 일을 곧 잘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적 개념이 아니다.

 

13절이 물질적인 말이라면 하나님께서 의인들의 부활 시에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이방인들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똑같이 하나님께서 의인취급을 해 주셔야 된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의의 기준은 선악과 따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인간이 되고 만다. 이러면 의와 선의 기준이 틀려진다.

 

선악과 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우리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스스로 신령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예수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돼 있다. 이름 있는 큰 회사에서 정보가 새 나갈까봐 출입하는 사람들의 몸을 다 조사하고, ‘누구의 권세로 왔느냐하는 게 있다. 배경이 있어야 들어간다. 그런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예수님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권세로 들어가는 거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고생을 하고, 선행을 해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으로 닮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 오직 예수 그리스로만이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본질로 중생을 하고, 이거는 기본구원이고,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을 입어야 하는 거다.

 

성령님의 주된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히는 역사를 하는데, 그 면을 모르거나 약하거나 알지를 못해서 자꾸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해서는 안 된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면서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그게 인격이요 성품이다. 믿어갈수록 이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면 이 열매를 맺는 것은 세상의 물을 먹으면 열리는 거냐? 이것으로는 성령의 열매는 안 열린다. 죽는다. 생수라야 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라야 성령의 열매가 열리는 거다. 안 먹으면 안 열리고, 안 주면 안 열린다. 구별을 못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실상화 즉, 하나님 당신이 실상적인 존재이니 우리도 하나를 알아도 질적으로 하나님처럼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실상화로 된, 실상화를 입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모든 언행심사는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의와 선으로서, 이는 의인의 부활 때에 다 올라가는 거다. 하나님 앞에 타락되고 저주받은 일반세상은 이런 건 없다.

 

우리는 이걸 알고 13절을 영적으로 생각하면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진리이치 생명이치로 풍부한 사람은 영적인 면에서 가난하고 각종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서 영적인 말씀잔치를 열어서 얼마든지 대접을 할 수 있는 거다. 나에게 생명의 양식이 풍부하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수백만 사람이라도 다 대접이 된다. 그러니까 영적인 대접은 일반적인 것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서로 갚을 수 있는 대접은 아니다. 이것은 의인의 부활에 해당되는 거다.

 

물질적 가난이던 물질적 부자라도 영의 눈으로 보니 눈멀고 헐벗고 처참하고 비참하고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는 일반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지 말아라. 교훈을 들어보고 기도를 들어보면 저건 무슨 물을 먹고 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서 이걸 다 밝힌다. 교훈 면에서 사람 죽는 물, 쑥물, 독극물, 썩은 물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세상에서 생수도 파는 것이다.

 

12, 13절은 똑같은 의미의 말이 아닌데 가만 보면 기독자들이 그만 똑같이 물질적인 개념으로 보고 구제사업을 펼친다. 뿐만 아니라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떡과 고기를 먹이신 것을 역시 사회 구제사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성경은 역사계시요, 계시라 할 때는 우리의 구원이요, 구원이란 일이나 사업이 아닌 성품에 속한 것이다.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한다.

 

벳새다 광야에서 이적으로 떡과 고기를 먹이심은 일반적인 사회 구제사업의 해석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양식을 먹고 힘을 얻어 벳새다 광야에서 자기 집으로 가게 하는 즉, 하늘나라 고향에 들어가게 하는 계시가 들어있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 이적의 떡을 먹었다. ‘이적할 때는 하늘로부터 된 것. 하늘로부터 된 여기에는 구원을 깨닫게 해 주는 게 들어있다. 즉 이적의 떡을 먹여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계시가 들어있다. 그래서 시내산의 말씀성을 들은 자에게, 표면적으로 말씀을 들은 자에게 그 다음에는 하늘의 양식이 내려 오는구다.

 

이건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다. 다시 말하면 목사가 성경의 표면을 들어서 계시정신을 말하는 것은 듣는 성도로 하여금 조명적 각성적 영감으로 깨닫게 하고 밝혀주는 것이다. 목사로부터가 아닌 하늘로부터 되는 것이다. 이게 생명의 떡, 이적의 떡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다.

 

하늘의 만나는 인간이 주는 게 아니다. 영의 눈으로 영적으로 보면 진리이치를 들을 때 자기 속에서 이치적으로 깨달아 나가는 것, 이게 성령의 사람이요, 이게 참 사람이요, 실상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이 부활 때 하늘로 올라간다. 이게 아니란다면 생명의 떡이 뭐냐? 이적의 떡이 뭐냐? 그냥 예수 믿는 이게 생명의 떡이냐? 존재적으로는 예수를 믿어도 속사람이 세상으로 다 돼 있다면 그 사람 속에 마귀가 살고 있는 건데 그런 사람이 뭘 먹겠느냐?

 

이 세상에 귀신들의 역사가 있고 마귀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 속에서 각성케 해 주고 조명케 해 주는 성령님의 역사는 왜 못 믿느냐? 목사가 성령 받아라해서 되는 거냐? 그게 아니다. ‘성령 받아라안 해도 말씀의 이치대로 사람이 만들어져 들어가면 그건 받아지는 거다. 깨달음이 들어가면 벌써 그건 성령님의 역사다. 마귀는 이 일은 못한다. 마귀는 자꾸 사람의 정신을 빼앗아서 진리를 못 깨닫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를 먹여서, 이적의 떡을 먹여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걸 먹어야 자꾸 들어간다. 성품적으로 들어가고, 깨달음적으로도 들어가고. 그런 계시가 들어있는 거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뜻은 모르고 세상 사람도 다 할 줄 아는 구제사업의 뜻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우리의 영인성장을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목적으로 해석을 해 버리는 것이니 이는 곧, 사단 마귀가 하는 말이 되고 만다.

 

마귀도 성경구절을 쓴다. 그러나 세상을 향하도록 쓴다. 오늘날 거짓 종이 그렇고, 세상에 속한 교회가 그렇다. 이단자들이 그렇고, 사교들이 그렇다. 어떤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자기 일생이 좌우로 갈라지는 거다. 죽고 사는 문제가 들어있는 게 예수 믿는 거다. 그걸 알아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세상적 일반적인 생각으로 말을 한다면 이건 예수님을 욕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을 땅으로 끌어내려서 땅의 일을 했다하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거다. 성경에 하나님을 끌어내리지 말라고 했다.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 안 믿어도 부지런만 하면 부자가 되는데? 성경을 왜 일반차원으로 끄집어 내리느냐? 하나님을 목사가 끄집어 내리고, 자기가 끄집어 내리고 있다.

 

예수님을 땅의 일을 하는 분으로 끄집어 내리면 예수님을 타락된 인간차원으로 끄집어 내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천국복음으로 주장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영광이 되는 것은 사람이 실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에게 들어있다.

 

사람을 하나님 쪽으로 자꾸 받들어 올리는 그 일에, 천국의 일에, 그런 정신 사상을 갖는 자는 자기도 영광스럽게 올라간다. 왜냐? 영광스럽게 되는 일에 수종을 드니 그렇다. 예수님께서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게 바로 그런 뜻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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