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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 밑천

사무엘상 김창인 목사............... 조회 수 2150 추천 수 0 2010.10.29 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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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12:19-25 
설교자 : 김창인 목사 
참고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2설교집 -천국의배달부/모퉁이돌 에서 
「여호와께서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2-24>

우리들에게는 밑천이 많습니다. 건강도 하나의 삶의 밑천 일 수도 있고, 배운 지식도, 우리가 그 동안 땀흘려 벌어 놓은 재산, 우리가 익힌 재능, 또 우리에게 주신 가정도 큰 밑천이 됩니다. 그것은 모두가 삶의 밑천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 즉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의 밑천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업을 하든지 혹은 장사를 하든지 밑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있어야 되는 밑천이 있습니다. 이것이 떨어졌다 하면 이미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택함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밑천은 꼭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민의 밑천"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I. 선민 의식이 밑천입니다(19-21절)

 

첫째로 선민의식이라는 것이 하나의 밑천입니다. 선민의식, 즉 나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이라 하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이런 의식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의식"하게 되면 무엇인가 생각하고 깨닫고 판단하는 이런 모든 것을 합해서 의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을 잃어 버렸습니다. 전혀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몰라봅니다. 그런데 며칠만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전부 알아봅니다. 이를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찾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의식을 잃거나 의식이 없다 하면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어도 사람 구실은 못합니다. 사람의 의식이 정확할 때에 그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정말 신자로서의 당연히 가져야 할 신자의식, 선민의식을 가질 때 그 사람이 신자라는 이름과 함께 신자 구실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선민의식, 즉 나는 택함을 받았다 하는 이 의식이 우리들에게는 큰 재산이라 하는 뜻입니다. 이 선민의식에 대하여 본문에서 살펴보면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문제의식(19절)

첫째로 문제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에게 문제가 부딪혀 왔습니다. 그 문제를 정확히 보고 판단하고 말 할 수 있을 때 "의식이 있다"하겠습니다. 즉 문제의식입니다.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야곱이라는 사람은 장자의 축복 문제로 형이 죽이려고 할 때 밤에 도망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 20년 동안에 장가들고 재산도 크게 모았습니다.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얍복 강가까지 왔을 때 그 동안 형님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사람을 미리 보내어 형님을 태도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형님이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든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도망갈 수도 없었고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 야곱은 삼일 밤을 엎드려서 그 자리에서 밤을 세워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야곱은 문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할 문제는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하루는 장막을 치고 있는데 천사 셋이 나타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조카 롯이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이 있어도 같이 멸망시킬 것입니까?"물었습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내려왔습니다. 벌써 천사는 아브라함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소돔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할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했습니다. 기도해 주는 아브라함, 그의 중보기도는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본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시대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직접 하나님의 통치해 왔는데 하나님의 통치는 싫고 왕을 세워 왕의 통치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노여우셨겠습니까? 이스라엘에서 밀을 베는 때는 비가 한 방울도 땅에 내리지 않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 날에 번개치고 벼락이 떨어질 것 같더니 폭우가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백성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고 사무엘에게 부탁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즉 이것은 기도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 라고 생각되어지면 기되 외에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 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할 문제라 하면 기도해야 된다는 이 문제의식, 이것을 바로 가질 때 이것이 우리에게 큰 밑천이 됩니다.

2) 신자의식(20상반절)

둘째는 신자의식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라는 말씀을 보면 두 번째 나는 죽어도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예수 안 믿으면 못 산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는 선다"는 신자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한번 실수하여 죄 지었다고 해서 실망하고 낙심하여 교회생활 혹은 믿음생활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보면 네가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실제적으로 말하면 비록 첩살이를 할지라도 교회에는 나오라는 것입니다. 첩살이를 할지라도 예수는 믿으라는 그런 말입니다. 죄를 다 해결한 후에 예수를 믿으려면 죽을 때까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다시 다른 말로 바꾸면 도둑질을 했을 지라도 교회에는 나오라는 것입니다. 도둑질을 했다 하여도 예수 믿는 일은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둑질을 했다고 해서 교회도 안 나오고 믿음 생활을 포기해 버리면 언제 그 사람이 회개하고 제대로 되겠습니까? 죄를 다 끊어 버리고 해결한 후에 예수를 믿어야 한다면 죽을 때까지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부족해서 이런 일 저런 일 다 당하고 이런 죄 저런 죄 다 지었을지라도 예수 안 믿고는 못 산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죄를 끊어버리고 믿음을 얻고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교회 안 나오고 예수 안 믿고는 못 산다는 이 신자의식,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 즉 선민에게는 큰 자본이요, 밑천이 됩니다.

3) 봉사의식(20하반절-21절)

세 번째는 봉사의식입니다.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할 때 "다하여"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과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이란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마음만 있으면 천리 만리 이국 땅,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밤낮 그리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너무 사모할 때는 눈을 감으면 환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몽땅 털어 주면서도 아쉬워서 더 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것은 마음이 다 그에게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없는 사람은 따라오는 것도 귀찮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줘도 싫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그리고 못 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섬기는 일에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에 미쳐버린 학생은 책과 더불어 씨름하는데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면서도 책을 들고 갑니다. 너무 공부에 열중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병이 날까 염려스러워 잠자기를 권면하면 "예"라고 대답하고 누워서 자는 척 하다가 어머니가 자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 불을 켜고 책을 봅니다. 이것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 그러는 것입니다. 오로지 공부하는데 마음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데 미쳐 버린 사람은 뭐가 되어도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도 화끈하게 아주 미쳐 버리고, 운동을 해도 미쳐 버리면 성공합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고 세계 일인자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미쳐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에 마음을 다하라는 말씀은 미쳐 버리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말을 쉽게 말씀드리면 저 사람이 미쳤나 할 정도로 하나님께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봉사의식이 우리에게 큰 밑천이 됩니다. 이런 봉사의식이 없으면 10년 동안 교회생활을 하고도 봉사는 전혀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믿음은 우리들에게 밑천 되지 못합니다. 철저한 봉사 의식이 하나님이 귀하게 보는 가장 큰 밑천 중의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선민의식은 세 가지로서 문제의식, 신자의식, 봉사의식입니다.

 

II. 선민의 기쁨이 밑천입니다(22절-23절)

 

둘째는 선민의 기쁨입니다. 이 말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믿는 사람만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기쁨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기쁨이 우리게에 밑천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권세 높은 사람이 권세를 부리면서 기뻐하는 기쁨과는 전혀 다른 기쁨, 믿는 사람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는데 그것이 신자에게는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쁨은 무엇입니까?

1) 백성된 기쁨(22절)

첫째로는 하나님의 "백성 된 기쁨"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이요" 전에 어느 성도의 집에 심방을 간 일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그 분이 "목사님 이럴 때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용인즉 자기 남편이 참 멋있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자기로서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 정말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합니다.

부부가 살아가는 데서는 종종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토닥거림이 없다면 한편에서 참고 살아 주는 것뿐입니다. 하나가 된 것은 아닙니다. 두 인격이 하나가 되는데 왜 토닥거림이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부가 토닥거린다고 큰 문제가 야기된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의견충돌이 있으면 자기남편의 버릇인지 진실인지 모르지만 그 때 마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한답니다. 그 말이 죽기보다 싫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그것은 버리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제일 멋진 사람의 아내가 됐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데 걸핏하면 "나가라"는 말은 농담일지라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를 내 백성 삼은 것을 내가 기뻐한다. 내가 너희를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못된 짓을 했어도, 징계를 할지언정 버리지 않겠다고 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백성 안 된 것을 감사합시다. 공자의 백성 안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것이 우리에게는 참 기쁨이요, 이 기쁨이 바로 우리의 재산 혹은 밑천이 된다는 사실을 알야아 합니다.

2) 기도의 기쁨(23상반절)

그 다음은 "기도의 기쁨"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 하고"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기도 열심히 하겠다는 혹은 꾸준히 기도 생활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나는 기도 없이는 못 산다는 그 말입니다. 결론은 기도하지 않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학생에게서 공부를 빼 놓으면 이미 학생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이 공부 안 하면 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이 기도 안 하면 죄라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 없이 못 살고 또 죽을 때까지 기도하다가 죽을 생각을 할 정도로 기도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렇게 기도를 기뻐했던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어머니에게서 배웠고, 어머니에게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너무나 유명한 한나가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입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나 성태치 못했습니다. 그 결과 대적 브닌나가 격동시켰습니다. 기도할 문제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기도로 낳았고 또 기도로써 키운 아들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기도에 재미를 붙이고 또 기뻐하는 것을 눈으로 항상 목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기도생활은 어머니에게서 그대로 받은 것이요, 어머니에게서 보고 배운 것입니다.

결론으로 이야기하면 기도가 기도를 가르칩니다. 어머니는 기도 안 하면서 자녀에게만 하라고 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란 말 안해도 어머니가 기도생활만 바보 하면 자녀가 보고 배웁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기도를 낳는 것입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믿음이 믿음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은 시시하게 믿음생활 하면서 자녀만 잘 믿으라고 하면 자녀가 잘 믿을 수 없습니다. 부모가 제대로 믿어 보십시오. 옆에서 자녀가 지켜봅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운 대로 잘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대를 이어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기도의 기쁨, 기도의 재미는 어머니에게서 이어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 기도의 기쁨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에게 기도의 기쁨을 유산으로 주는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 가르치는 기쁨(23하반절)

그 다음은 "가르치는 기쁨"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사무엘이 백성들을 모아 놓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백성들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에게는 가르치는 기쁨, 또 백성들에게는 배우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웠습니까? "선하고 의로운 도"는 바로 성경입니다. 즉 성경을 가르쳐 주고 성경을 배우는 기쁨, 이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 시간의 설교로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체계있게 조목조목 가르칠 수 없습니다. 오늘 이런 내용, 내일은 저런 내용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구원론"을 공부하는 경우 우리가 왜 구원을 받아야 되느냐, 구원은 어떻게 받느냐, 구원을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등을 차근차근 가르치고 또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론"을 배울 때는 성령은 누구냐? 성령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또 성령과 우리가 관계를 맺으면 어떻게 되느냐 등등을 배우게 되고, "교회론"의 경우에는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체계있게 가르치고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체계있게 성경을 배우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 재미도 없고 믿음도 자라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하나 배워가게 되면 재미있고 믿음도 바로 자라게 됩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이 성경공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하는 재미, 거기서 얻는 기쁨,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는 큰 밑천입니다.

 

III. 선민의 일감이 밑천입니다(24-25절)

 

그 다음에 큰 세 번째는 선민의 일감입니다. 남자들에게서 일감을 빼앗아 보십시오. 일감을 빼앗아 실직자가 되게 하면 그것은 사실상 남성을 빼앗는 것입니다. 남자는 일감이 없으면 못 삽니다. 일감이 주어질 때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거기서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일감을 빼앗으면 남자는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감을 주어서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은 큰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큰 일감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은 큰 밑천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택함 받은 백성은 나름대로의 할 일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는 큰 밑천이라는 말입니다. 밑천이 될 정도의 일감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외하는 일(24상반절)

첫째로는 "경외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여기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그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경외하라는 말은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는데 그 일을 생각하고 감사할 일이지 왜 두려워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먼저 큰 일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상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에서 좀 거슬러 올라가서 12장 16절에서 18절까지를 보면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밀 베는 때에 하나님께서 큰비와 우레를 발하신 것이 바로 큰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밀을 베는 때는 이스라엘 땅에 비가 별로 오지 아니하는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구하여 세운 일이 하나님을 몹시 노엽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계시다가 그 후에 사무엘이 기도하였을 때 비가 안 오는 계절에 큰 폭우가 막 쏟아지게 했습니다. 이 때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이제는 똑똑히 보았으니 이 큰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즉 하나님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경외했다고 하는 말씀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경외했다고 하는 말씀을 읽기는 했었지만 그냥 넘겨 버렸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라는 말씀을 유의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산으로 가는 데는 3일이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거기에 기서 제단을 쌓아 놓고, 그 아들이 지고 온 장작을 제단 위에 벌려 놓고, 아들을 결박해서 나무 위에 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잡는 것하고 죽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가령 닭을 죽이는 것과 닭을 잡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번제를 드릴 때는 번제물 된 양을 먼저 죽입니다. 죽인 다음 통째로 태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그리고 내장을 들어 낸 다음 물로 깨끗이 씻어서 태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바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자가 너무 급하여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불렀습니다. "이제야 네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알았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돈을 주면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면 했겠습니까? 안 합니다 총칼을 갖다 대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해도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니 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무엇을 주어도 안 합니다. 총칼을 갖다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나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우리의 밑천입니다.

2) 섬기는 일(24하반절)

그 다음에는 "섬기는 일"입니다. 섬기되 "진실로" 섬겨야 합니다. "너희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마음을 다해서 진실히 섬기라는 이 진실봉사가 참으로 귀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백낙준 박사의 자서전 비슷한 것을 구해서 읽었는데 참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평안북도 정주 사람입니다. 아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4형제 중에서 다른 형제들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어려서 다 죽었습니다. 또한 자기 어머니는 여덟 살 때, 아버지는 열 두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상의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집을 전부 조사해 봤더니 자기가 여덟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다음에 장가 밑천 하라고 베를 짜서 몇 필을 감추어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한 것입니다. 그것을 팔아서 선천에 나와 신성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거기서 고학을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마침 교장으로 있던 윤산온 박사가 학교의 심부름을 시키면서 장학금도 주었고 기숙사비도 주었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근로장학생이었습니다. 윤산온 선교사가 일을 시켜보니 다른 학생들은 시키면 잔소리를 많이 해야 되었고 두 번 손질해야 되는데 백낙준 이라는 학생에게는 시키기만 하면 두 번 손질 할 것이 없었습니다. 또 참견해서 잔소리할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 일을 잘하였고 하나를 시키면 벌써 알아도 둘을 했습니다. 진실히 봉사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학생은 키우면 크게 될 사람이라 하여 윤선교사가 예일대학에 추천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문교부장관도 지내고 참의원도 의장도 역임했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장의 눈에 진실한 학생으로 보였고 또 일을 해도 진실하게 하므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진실 그리고 진실한 봉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길 때 진실히 섬기는 섬김은 밑천이 됩니다.

3) 깨닫는 일(25절)

마지막으로 "깨닫는 일"입니다.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과 그들의 왕이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의 악이 나를 망친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의 표준은 사람의 표준과는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제구실"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제구실을 하지 아니하면 성경은 그 사람이 악하다 하고 제구실을 잘 감당하면 선하다고 합니다. 즉 신자가 신자 구실을 하면 선하고 신자가 제구실을 안 하면 악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곳에 부자가 있어서 종을 불러 놓고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멀리 외국에 가 오랜 후에 돌아왔습니다. 계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를 맡았던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갖고 와서 계산을 했고, 두 달란트를 맡은 종도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를 더 남겨 가지고 와서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 때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제구실을 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수건에 싸서 땅에 묻었다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다 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가져왔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았던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즉 악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맡았던 사람이 살인강도질한 일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달란트를 축내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를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왜 제구실을 안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종은 결국 다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이처럼 제구실을 안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가 아버지 구실을 안 하는 그 집안은 망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시는 주의 말씀은 집사가 집사 구실을 안 하면 악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 망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복됩니다. 이 깨달음이 우리에게는 큰 밑천이라는 말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면 택함을 받았다는 철저한 선민의식과, 택함 받은 자만이 갖는 선민의 기쁨과, 택함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감(사명)이 우리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밑천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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