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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

사도행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108 추천 수 0 2009.12.13 15:16:12
.........
성경본문 : 행12:17-2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1
신앙적으로 볼 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입니다. 신자는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위를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아래를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신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보이는 것만 보는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은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 불신자의 모습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라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모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을 통하여 몇가지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1.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은 우리 생의 모든 것을 주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17-18).
1)본문: 결과에 대한 반대 되는 관점(17-18)
(1)기독교인(17)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원해 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주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하셨다. 주께서 하셨다. 하나님이 이루셨다." 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사라집니다. 자신도 모르는 것을 억지를 붙여 가며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하셨다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2)비기독교인(18, 22-23)
그러나 비 기독교인들, 이 땅만 바라보고,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똑같이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군병들을 보십시오. 알지 못합니다.
헤롯을 보십시오. 헤롯이 두로와 시돈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는 식량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연설합니다. 21절의 효유라는 말은 "백성들을 알아듣게 타이른다"는 말입니다. 무슨 연설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백성들이 아부를 합니다.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헤롯이 얼마나 흐뭇했겠습니까? 자존심이 무너질 때로 무너졌는데 이 사람들이 자신을 높여 줍니다. 하나님처럼 대해 줍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유대인인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 내가 대단한 사람이다. 내 권력은 영원한 거야" 권력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말씀할 때 "위해서 주지 아니하였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으리니"(요19:11)라고 말씀하였습니다.

2)하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되어진 일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땅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루어 진일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왜 물질이 주어졌는지 왜 권력이 주어졌는지, 왜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지, 왜 내 자녀가 출세하였는지, 왜 내가 질병에 걸렸는지, 왜 내가 출세하여 부자가 되었는지, 왜 나에게 인기와 명예와 지식이 주어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잘나서 된 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관여할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였다" 사실을 확실하게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하였는지 잘 알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를 위해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기와 명예와 부와 권력과 행복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헤롯은 이방인 로마인들처럼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을 좋아했지만 베드로를 보십시오.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나와 발앞에 무릎꿇고 절하자 뭐라고 합니까?
(행10:26)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보십시오. 앉은 뱅이를 기적적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때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쓰스와 허메라고 합니다.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행 14:14-15)"
이게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 많은 일을 하였지만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지난 주 어느날 아침 밥을 먹는데 아침마당에 조영남이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을 잠깐 보았습니다. 자신은 여복과 재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권사님인데 새벽 기도갔다 오면 꿀을 만드는데 가짜 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찬송하는데 "내주는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라"라는 찬양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예수님을 말하며 자신의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아주 자랑하듯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사진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여인이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산다고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방청객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저는 조금 머리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그만큼 공부한 것도 목사님께서 그를 미국에 보내어 유학시켜준 덕분입니다. 완전히 은혜를 망각하고 예수님 삿바잡았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땅만 바라보고 하늘 나라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결국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1)본문(19-25) 반대되는 결과
(1)땅만 보는 비 기독교인들(19-23)
①베드로를 지키던 군병들- 죽음(18-19)
수비병들은 찾을 길이 없으니까 당황합니다. 결국 자신들이 충성스럽게 섬겼던 헤롯으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로마법 중대한 죄수를 지키지 못하면 파수병을 대신 형을 받게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이 빠져 나왔을 때 간수가 자결하려고 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②헤롯-교만 죽음(21-23)
결국 권력을 자랑하며 부귀 영화를 누리며 야고보를 죽이고 백성들의 인기를 얻던 헤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끝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충이 먹어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세프스는 복통으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카비서에는 배에서 벌레가 나고 그로 인해 악취가 날 정도록 몸이 썩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2)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인들(24)-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장
그러나 박해를 받던 신앙인의 모임은 어떻게 됩니까? 교회는 금방 쓰러질 것같았습니다. 죽음을 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끝이 날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신앙인들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승리하십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쓰러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 대단한 것 아닙니다. 언젠가 다 무너질 때가 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망하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우뚝 서게 되어 있습니다.

2)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 권력에 무릎 꿇거나 타협하지 말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땅이 망할 때 그것과 함께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새하늘과 새땅이 임할 때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이 날 날이 있습니다. 모든 생성된 것은 다 소멸될 날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
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4-25)"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잠시 사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상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승리의 찬가를 부를 하늘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재계 2위였던 대우도 쓸어졌습니다. 리비아 공사를 수주 받았다고 축하던 기업도 쓰러졌습니다. 항우 장사도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인생은 꿈꾸는 것과 같이 잠깐이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결론은 승리입니다.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였답니다. 두 아이가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뒤에서 호랑이가 달려 왔습니다. 위기를 당하였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니라는 것였습니다.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또 한 아이가 말합니다.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또 한 아이가 말합니다. "친구보다 빨리 달려 갑니다." 왜 호랑이가 달아난다고 못잡겠니 하니까 "친구 잡아 먹으면 배불러 나는 잡아 먹지 않으니까?" 선생님은 "모두 다 틀렸다."라고 말하며 답은 "꿈깨면 된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의 것이 전부라고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은 행복이 있고 즐거움과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보다 더 좋은 세상은 저 천국이라고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데반처럼 죽어가면서도 기쁨으로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 성가에 이런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죄 많은 이 세상은 내집 아니네 저 천국 없으면 나 어떻하라고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야 "
이런 신앙을 가지면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세상을 하늘 나라처럼 살수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495장 1절)" 믿습니까?
생의 고달픔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삶의 공포가 있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라는 말씀을 믿습니까? 결론은 버킹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주님 앞에 갈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3. 하늘을 바라보는 사는 신앙인들은 어떤 환경일 지라도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25).
1) 본문: 위기를 만났을 때의 태도
(1) 땅만 바라보는 비 기독교인(18, 19, 20)
① 경비병들(18)
당황합니다. 소동하였습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② 헤롯(19)
경비병을 심문합니다. 분노합니다. 낭패감에 졌습니다. 정치적 계획은 차질이 생겼습니다.(1,3) 두로와 시돈에 가서 화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2)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인(25)
①시험을 받았을지라도 성취(25)
그들은 핍박이 있을 지라도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5절은 11:30절과 연결됩니다.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가믐으로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 도와 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다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사역을 왕성하게 해 나갔습니다.
②환경을 고려치 않고 비전 가짐(25)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께서 택한 청년 마가를 가르치고 격려하는데 자신들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안디옥에 돌아 올 때도 마가를 데리고 왓습니다. 나중에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은 환경이 어떻게 변한다하여고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쩔 줄을 모릅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하여도 사명감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 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이루기 위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삶입니다. 과거 중심이 아닙니다. 미래 지향적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봅니다. 경험 중심이 아닙니다. 말씀중심입니다. 자기 공로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심입니다. 이웃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에 만족합니다. 노력하면 성취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야 성취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창조적으로 설계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은 어떤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인생 내가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확신 하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설립자는 존 하버드입니다. 목사님입니다. 이 사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제일 먼저 “이 황무지 같은 땅에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졌습니다. 어렵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지금 학교를 세울 때가 아니고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보스턴의 한 구석에 대학을 세웠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세울 당시 돈이라고는 기부금 7백 파운드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책 2백 권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세운 후 1년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명은 이루어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이 된 것입니다. 미국을 움직이는 인재, 세계를 움직이는 인재를 양성한 것입니다. 돈 7백 파운드와 책 2백 권이 그의 사명감에 어울어지니까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시 20: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이 말씀을 믿습니까? 내 인생 내가 산다고 하니까 쉽게 사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저의 아내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하니까 피아노를 치지 않고 빈둥거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단을 치며 피아노 칠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 때 아이가 하는 말이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엄마가 왜 야단이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한편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게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금요 심야 기도시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한 학생이 모자를 쓰고 앉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자꾸 거슬려 모자를 벗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통령 앞에 가서도 모자를 못쓸텐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감히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목사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계속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다행인 것은 목사님이 모자를 벗으라는 말을 했는데 나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자를 벗는 것도 아니고 예배가 끝날 때까지 모자를 쓰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그 학생에게 왜 모자를 벗지 않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학생이 목사님에게 반문하기를 "목사님은 왜 안경을 쓰고 계시느냐"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나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 있다"고 하자 학생은 "저는 머리가 나빠서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개성시대라고 합니다. 개성이 개같은 성질인지 자기만의 독특한 성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대로 인생을 사는 것같습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누가 시비하냐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준으로 볼 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인생은 내 인생 내가 산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내 인생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산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이 문제가 아니고 각자 저마다 나만의 "내가 복음"이 있고 나대로의 신앙 방식이 있고 나대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만 다닐 따름이지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믿음의 선배가 무엇을 말하든 목회자가 무엇을 말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모자를 벗으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대로 신앙에 목사가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분이 좋습니다. 또 한 종류의 인생은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같지만 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고 고백하면서 사는 인생입니다. 찬송가 204장에 나오는 것처럼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보이도다 이것이 나의간증이요 이것이 나의찬송일세 나사는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204장 3절)"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생활 방식과 나의 고정관념과 나의 인생관에는 맞지 않는다 하여도 주님이 원하시면 모든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 가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라는 삶의 방식입니까? 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고백입니까? (찬양) 이 찬양이 우리 성도님들의 찬양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슬픈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 절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내 인생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사신다는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인생을 삽시다.
1.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은 우리 생의 모든 것을 주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17-18).
2.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결국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3. 하늘을 바라보는 사는 신앙인들은 어떤 환경일 지라도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25).

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행12:17-25/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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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0 사도행전 한 시대의 순교자 행12: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025
15619 사도행전 인간의 불가능 속에 계시는 하나님 행12:1-17  김필곤 목사  2009-12-13 2554
» 사도행전 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 행12:17-25/  김필곤 목사  2009-12-13 3108
15617 사도행전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 행13: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680
15616 마태복음 화평과 검으로 오신 예수 마10:34-39  강종수 목사  2009-12-13 1841
15615 고린도후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고후4:11  조용기 목사  2009-12-14 1779
15614 마가복음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막15:12  조용기 목사  2009-12-14 1727
15613 시편 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100:4~5  조용기 목사  2009-12-14 2997
15612 열왕기하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 왕하6:14~17  조용기 목사  2009-12-14 2237
15611 빌립보서 삶의 푯대와 인생 빌3:13~14  조용기 목사  2009-12-14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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