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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4:25-30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425-30: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25-27: 글자 그대로 보면 주님을 사랑하고 부모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고 했는데, 다 그렇게 하고 있느냐? ‘미워하다의 반대는 뭐냐? 사랑? 뭘 사랑해야 하느냐? 부모 형제 자매란 뭘 말하는 거냐? 육적 혈통을 말한다. 육적으로 흐르는 그 정신 그 사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이룰구원으로 부모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된 것이다. 이건 주님사랑이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혈통적인 것을 앞세우면 안 된다. 그러면 일반인이 돼버린다.

 

 

그리고 부모님을 섬기되 주 안에서 섬기라고 했다. 한 마디로 옳은 진리지식의 이치로 연관을 지어서 살면 그건 주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를 보지 말고 글자 속에는 무슨 뜻으로하는 의미가 들어있으니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27절 그 위의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되기가 참 힘들구나그런 느낌이 든다.

 

 

사람들을 보면 물질 때문에 부모 형제 처와 자매 이웃들이 다투고 법정다툼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다. 형제들끼리 속이고, 원수를 맺고, 미워하고, 서로 죽이고. 이런 것은 물질선 인정선 생명선을 초월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형제들끼리는 물질선을 초월해야 한다. 약하면 도와주고 없으면 주기도 해야 형제다. 그런데 형제라고 하면서 이게 없다면 그게 무슨 형제냐? 믿는 사람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형제가 집이 없어서 벌벌 떨면 여러 채 집을 가진 성도가 한 채를 줘야지. 그게 예수님의 형제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한 게 뭐냐? 그게 이 의미가 아니냐? 그런데 육신의 형제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내 돈 빌려갔으니 내놔라한다.

 

 

우리교회에서는 부모형제 간에도 받으려고 한다면 각서를 써라. 안 그러면 그냥 줘라. 물론 받는 사람은 안 주련다가 아니라 잘 되면 갚아야 하고. 그게 옳은 거다. 그런데 줄 수 있는데도 안준다면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어려울 때 딴 사람에게 받아서 썼는데 그 후에 잘 되면 줘야 한다. 상대방이 달라는데 줄 수 있는 형편인데도 안 주고 있다면 이게 뭐냐?

 

 

그러니까 내가 볼 때 다른 사람이 어려우면 주는 거다. 받을 마음으로 주는 게 아니고. 그러나 받을 마음이 들어있다면 각서를 써서 명확히 하고. 상대가 받을 마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 쪽에서 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주고. 이렇게 하면 물질 때문에 원수가 안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줬으면 받을 생각을 말고. 그런데 대기업의 형제들끼리 법정 앞에 서서 원수가 되고, 먹고 마시고 집도 충분한데 얼마를 갖고 갔네. 안 주네하며 재산다툼을 한다. 이게 뭐냐?

 

 

그리고 내가 빌려준 후에 달라. 달라해도 상대가 줄 수도 있는데도 안 주면 그건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을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감화 감동시켜서 역사가 돼서 주시면 받는 거고, 아니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안 기다리면 쳐 죽일 거냐? 물질로 인해서 사람을 원수로 만들지 말아라. 참으로 어리석다. 인정선 생명선을 초월하지 못한 데서 그런 게 나오는 거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까?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목사고 교인이고 간에 이방세상 사람들의 목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목회하는 목사가 있고 세상목적으로 믿는 교인도 있다. 또 세상 일반 도덕적 수준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흔하다. 그런 교회는 일반적으로 유식하거나 사람이 배운 멋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또 펄펄 뛰고, 날마다 예언 방언하고, ‘뭘 보았네하는 신비주의적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건 무슨 약을 먹은 사람 같다. 이건 일반적으로도 못 쓴다.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하며 미신적으로 나가는 사람은 감정과 흥분으로 들어간 고로 이성마비다.

 

 

그리고 일반 사회 도덕성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이건 자꾸 사회적으로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음이 풍부하다. 물론 이 사람도 바람이 불면 자기 욕심이 들어가는 거지만. 그리고 사회적으로 믿는 사람은 성경구절을 사회적으로 자꾸 갖다 붙인다.

 

 

신비주의적으로 믿는 사람이나 사회주의적으로 믿는 사람이나 그 질은 같은 세상의 질이지만 세상에서 어느 쪽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냐? 사회주의로 나가는 게 좀 나은 편이다. 신비주의에서 노는 사람은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없다. 둘 다 같은 세상의 질이로되 신비주의로 믿는 사람은 그 모양새가 더 더럽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성경얘기는 하지 않고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그것만 냅다 얘기한다.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참 신이 난다. 그런데 성경의 뜻을 얘기하는 데는 캄캄하다. 그러나 이거나 저거나 진리신앙으로는 못 들어간다.

 

 

그 다음에 보면 드물긴 하지만 물질선 인정선 생명선을 초월하고 예수 믿는 평신도나 목회자도 있다. 그러나 보기 힘들다. 예수를 믿고 깨달았다고 해도 목회하는 각자의 목사들의 소원성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기 양()이 따로 있다. 주님의 양이 따로 있고, 목사 자기 마음에 맞는 양이 따로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 십자가가 있느냐? 목사들만 십자가가 있는 거냐? 자기 죽는 게 십자가다. 그러면 의인이 죽는 거냐, 죄인이 죽는 거냐? 죄인이 죽는 거다. 죄를 지으면 매달린다. 매달리면 꼼짝을 못한다. 십자가에 못박히면 손발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이런 의미가 그 안에 들어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안 따른다면 십자가를 내버리면 되는 거고, 예수님을 선생 혹은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따를 때는 자기 죽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 주님의 제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자기 귀에 듣기 싫다고 마음에서 반감을 가지면 그는 제자가 안 되는 거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다. 사람의 말은 절대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울 때는 스승이 죽고 난 뒤에 자기가 연구를 하는 게 옳다. 스승을 모시고 배운다고 하면서 자기주장이 따로 있다면 제자가 아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며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면서 자기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 어떤 가치냐? 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소유적으로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냐? 그걸 알고 따라야 한다.

 

 

주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네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는데, 모든 물질이나 부모형제를 누가 만들었느냐? 주님 당신이 만들었다. 그럼에도 버리라는 표현 속에는 다 내버리고 죽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속에는 주고자 하는 약속이 많이 들어있다.

 

 

물질계도 당신의 것이고, 신령천국도 당신의 것이고. 그렇다면 주님께 육신의 부모형제를 드리는 것처럼 내 마음자세가 되어있다면 신령한 부모형제를 다시 받는 게 그 안에 들어있는 거다. 어디서 그런 걸 볼 수 있느냐? 어느 성경에는 주님께 드리면 몇 배로 받는다고 했다. 또 구약에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이 뭘 받았느냐? 이삭의 후손도 받고, 그 다음에 제일 귀한 거 나는 너의 상급이라.’ 바로 주님을 받았다. 즉 하나님 당신을 줬다. 우리가 말만 해서는 안 믿으니까 역사로 보여주는데 그걸 보고도 안 믿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버리라는 말씀에는 주시고자 하는 많은 것이 약속이 되어 있다. 그래서 임시성적인 것을 버리면 영원한 생명적인 것으로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구나.

 

 

두 번째는 날마다 죽는 여기에는 날마다 사는 영생이 들어있구나. 그러니까 날마다 죽는 게 좋으냐,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육성 옛사람 부패성이 사는 게 좋으냐?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말씀의 본질에 의해서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이 아닌 것은 버리는 게 죽는 거다. ‘이건 진짜가 아니다. 이건 가짜다하고 버리면 죽는 거다.

 

 

진짜 옳은 것으로 자꾸 들어가면 그만큼 빠져나가고, 빠져나간 그만큼 새 것이 들어가니 이것이 영생이요 생명이요 옳은 이치의 사람이다. 그게 빨리 돼 들어가면 그 사람은 높이 올라가고 앞서고, 왕이 되고, 머리가 된다.

 

 

사람의 성격 성질이 남달리 좋으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을 이끌게 돼 있다. 그러나 성격 성질이 고약하면 쫓겨난다. 받을 복도 못 받는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사는 거다.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있으면 왕따가 되는 거다. 왕따가 되면 자기 혼자 살게 되니 그것도 왕은 왕이다. 많은 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은 관계성을 지으며 살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너의 실력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고, 사랑도 받고, 수입이 많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가르침을 따를 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악과 먹고 나온 모든 기존적 지식을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것으로 100% 다 바꿔야 한다. 가치판단이 나오니까 바꿔라. 예수님의 것, 하늘의 것으로 바꾸지 못한 것은 죄와 사망이요 심판꺼리다. 이걸 못 바꾸면 너만 고통이고, 너만 슬픔이고, 너만 눈물을 흘린다.

 

 

예수님의 것으로 바꿔지지 못했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세상 그대로 들어있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세상의 제자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가르친다면 이는 거짓 종이요, 이단자요, 적그리스도도 되고, 마귀의 손에 붙들린 셈이다. 바꿔지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것을 크게 이룬 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속 성품이 진짜 참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바꿔진 사람을 알아준다. 참 사람을 알아준다. 당신의 말씀으로 바꿔진 사람을 알아준다. 그래야 예수님과 의사소통이 빠르다.

 

 

우리 이름을 날리세라고 한 니므롯의 바벨탑도 무너뜨렸다. 헤롯이 46년 간 지은 성전도 무너뜨렸다. 앞으로 음녀인 큰 성 바벨론도 불에 태워버릴 예정이다. 그러니 이걸 안다면 누가 그런 성을 자꾸 만들겠느냐? 그런데 바벨론 큰 성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질을 만드는지를 모르니까 자꾸 그러고 있는 것이다.

 

 

28: 집을 지을 때 그냥 무턱대고 짓지는 않는다. 집을 지으려면 집을 지을 때 들어갈 물건 값만 딱 준비하고 지어야 하느냐, 집 두 채 정도 지을 값을 준비해야 하느냐? 집을 짓다가 보면 더 들어가기도 한다. 준비를 충분히 한 후에 지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망대를 하나 세우려면 기초를 놓는데, ‘재료값이 얼마, 노임은 얼마등등의 준공하기까지의 공사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미리 공사비용을 계산하는 게 상식이다. 이건 특별한 게 아니고 상식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식이 하나 태어났으면 출생에서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 런지 걱정부터 한다. 그러니 자식을 더 가질 마음이 없어진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의례히 그런 계산을 한다.

 

 

그러면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계산이 없었느냐? 주시는 막 대로 낳고, 안 주시면 안 낳고 했느냐? 바로 왕이 태어나는 아이를 잡아 죽인다고 해도 막 낳았다. 자식을 낳으면 악어 밥을 만든다고 해도 막 나았다. 지금 사상이 보이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의 사람, 천국복음의 영능의 실력자로 만들어지기까지 무엇이 필요할 런지, 어떤 상황이 필요한 건지 다 알고 계실까? 무턱대고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냐, 예수님 당신의 계산이 다 있는 거냐? 예수님 당신을 따라오라고 해놓고 아무 생각도 없이 막연하게 계시는 거냐? 그런데 인간들은 따라오라고 해놓고 불리하면 싹 사라지기도 한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네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우리가 어떤 각오와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때에 살고자 하는 뜻으로 따라야 하느냐, 죽을 각오를 하고 따라야 하느냐? 죽을 각오를 하고 따르면 네가 죽을 각오가 됐으니 죽인다하고 진짜 죽이느냐?

 

 

평신도나 목사님들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기가 죽으려고 믿는 게 아니라 전부 자기 이해타산에 붙어있는 것을 많이 본다. 자기의 모든 소유는 숨겨놓은 채 세상살이를 편하도록만 구하고 있다면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정신이냐, 안 믿는 정신이냐?

 

 

29-30: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있다고 하면서 교회에 게으르게 나가면 되겠느냐? 그 다음에 진리생명의 말씀이다해 놓고서 그 말씀을 안 먹으면 되겠느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사람이 안 만들어지면 되겠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먹으면서 이치의 사람으로 성장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우리교회가 다른 교회와는 다르다고 하면서 다른 교인들과 비교를 하면 다르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전부 나 좋도록 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살아야 할 텐데 여전히 물질에 탐심을 부리고, 불탈 것으로 자랑하고 있다면 이방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얕잡아 보며 얼마나 비웃겠느냐?

 

 

예수님은 믿음을 건축할 수 있도록 기본 터를 잘 닦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집을 지으려고 기초만 닦아놓고 건설도 안 하고 풀만 잔뜩 나고 있다면 보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을 할까? 신앙 믿음이 바르게 자라고 싶다면 옳은 진리의 사람으로 끝장을 봐야 하는데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옳은 진리를 안 받는다면 그 사람은 흉물스럽다.

 

 

자기 재산이 많은데 교회에 갖다 바치기는 아깝고 해서 자기 자식을 목회자로 만들어서 그걸 밑천 삼아 예배당을 만들고 하는 목회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자기가 현재 옳은 교회에 다니고 있고, 그 교회가 진리란다면 그런 계산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면 하는 거다. 그런 데 정신을 쏟지 말고 배우고 듣고 따르며 모든 면에서 영능의 실력을 잘 키워라. 그리고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내놔라. 그 다음에 가령 목회를 할 때는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목회자가 영능의 실력이 먼저지 어디에 계산을 해 놓고 무슨 심보로 그러고 있느냐? 그건 아니다. 진리교회에 지붕에서 비가 샌다면 자기 재산이 있다면 그런 데 먼저 투자해야지. 그런데 그런 것은 무시해 버리고 자기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면 이건 순서가 틀렸다. 그 사람 안에 다른 게 들어있는 거다.

 

 

쉬운 예로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나를 따라다니며 잘 배워서 교회를 하라그랬느냐? ‘그 재산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그걸로 교회 하라했느냐? 이건 바르지 못하며 근본이 틀어진 것이다. 이건 남이 듣기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할지라도 성령님은 멀다. 주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의 목회상이 다 들어있다.

 

 

내가 예수 믿고 교회에 가는 것을 자타가 다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성장이 안 되고 있다면 얼마나 비웃음거리가 되겠느냐? 마귀가 가만있겠느냐? 귀신이 가만있겠느냐? 이룰구원이 없는 가르침, 수년을 믿어도 성장이 없는 신앙이 누구 보기에 합격이 되겠느냐?

 

 

예수 믿는 보람이 있어야지. 효력이 있어야지. 자기에게 효력이 있고, 그 효력을 남에게도 써먹을 줄도 알고. 안 그러면 뭐하려고 교회에 다니느냐? 예수를 안 믿더라도 사회의 어느 곳에 가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미움 받을 짓이나 사랑 받을 짓은 자기에게 달려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이치가 밝아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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