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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창:의 '태초'와 요:의 태초.

창세기 궁극이............... 조회 수 34 추천 수 0 2022.05.02 09: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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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했고, 요: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했는데, 창:의 ‘태초’와, 요:의 ‘태초’는 글씨와 소리가 똑같은데, 글씨가 똑같다고 해서 같은 뜻이냐? 창:의 ‘태초’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물질은 시간 안에 들어 있는 거다. 그렇다면 물질세상을 연대적으로 언제 만드신 거냐? 몇 만 년 전에 만드신 거냐, 몇 억만 년 전에 만드신 거냐?

 

숫자를 셀 때 하나부터 시작해서 십만, 백만, 천만, 억으로 해서 경까지 올라가고, 더 올라가고 올라가서 인간이 셀 수가 없을 정도가 되면 이걸 그냥 ‘무한’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무한이면 시작이라는 시간이 없어지느냐? 그래도 있는 거다. 모든 물질은 시작이 있다. 그래서 천지만물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생겨진 시간이 있는 건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셨다고 한다.

 

요: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 밖에 이 말씀이 있다는 게 아니라 당신 속에 말씀이 있다는 건데, 다른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당신 자체가 말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의 말처럼 나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는 분명한 인격체로 나타날 말씀이다. 그래서 헬라어로 이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는데, 이는 인격체를 의미한다.

 

인격체라고 할 때는 주장, 결산, 이유가 다 들어 있는 거다. 그래서 당신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의중에는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들어 있는 거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했으니 당신의 의중 속에 말씀이 계신 거다. 인간이 사용하는 제한된 용어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우리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표현을 하자니 마치 시간 속에서 되어진 것처럼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했다고 해서 태초라는 그 시각부터 말씀이 계셨다는 게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셨다.

 

그래서 우리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는 말씀을 풀어 헤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은 인간이 타락을 했기 때문에 시작이 된 게 아니라 태초부터, 즉 영원 전서부터 당신의 의지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거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존재의 목적이나 믿음의 방향과 실력이 말씀에, 즉 구원에 적중으로 맞아 들어가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했으니 말씀은, 즉 그리스도는 시간적으로 존재적으로 의사적으로 하나님과 떨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사람과의 관계로 생각을 한다면 함께 산다고 하면 의사단일이 되어야 하고, 질적으로 본질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하는 게 무슨 뜻이냐? 그냥 간단히 ‘예수 그리스도시다’ 라고 해도 될 것을 ‘태초, 즉 당신의 의중 속에서부터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한 후에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냐?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했으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한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적으로 나타나고, 또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입어지는 게 있기 때문에 믿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고 말을 하는 거지 이게 없다면 우리에게 예수는 필요가 없는 거다. ‘너희들의 구원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거다’ 라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한 거다.

 

로고스인 말씀이 나에게 말씀을 하는 것은 영원 궁극적 결과적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셈이, 주장이, 이유와 동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 믿고 말씀을 깨닫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들어지는 게 들어 있는 거다. 그래서 이 주장성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하신 거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 원인으로 들어가서 결과를 보니 ‘이게 언제부터 된 거냐?’ 하게 되고, 이걸 알려니 다시 원인으로 들어가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걸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이건 어마어마한 거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어마어마한 거다. 그런데 늘 물질을 보고 접하며 사니 이런 것에는 무관심하고 물질에 절여지고, 자꾸 물질에 마음이 빼앗기니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어떻게 되겠느냐?

 

바로 이것을 깨닫게 하느라고 지진이 나고, 해가 뜨고 지고 하는 거다. 이걸 벗어난 해석은 있을 수가 없다. 나를 두고 이렇게 하시는 거다. 하나님은 나와 일대 일이다.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즉 그 나라에서 내 존재가 나타나는 게 있기 때문에 당신의 신실한 종들이 풀무불 속이나 사자 앞에서도 환난을 감당한 거다. 믿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에는 신경을 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된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니 이걸 믿게 하려고 자꾸 자극을 주는 거다. 이 자극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만물 안에는 우리를 당신처럼 만드시고자 하는 설계가 들어 있다는 거다. 얼마나 세세히 들어 있는가 하니 시대적으로 진보 발전하는 거나, 만물의 모든 움직임이나, 모든 자연이치는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된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다.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만 아니라 내가 예수님처럼 만들어지는 것도 구원이다. 그런데 속화된 교회는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만 구원으로 알고 있고, 사건적으로 어려운 데서 좋은 쪽으로 되어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처럼 만들어지는 것도 구원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이나 존재나 만물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에 필요한 거고, 이런 일에 쓰임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나, 깨달음이나, 지혜나, 도덕성을 자타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쪽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빨리 빨리 돌아간다. 이게 성령의 기름칠이다. 이런 건 없이 늘 물질적으로만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을 물질 이해타산으로만 따지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인인관계가 바로 되지 않는다. 이건 자기 축소다. 세상사람들은 다 그렇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지을 때 물질 이해타산이 먼저 들어가 있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으로 속화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인인관계나 물질관계가 인간창조의 목적과는 상관이 없이 밥 먹고 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게 된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고 사는 사람은 자기의 인격과 성품이 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산다. 온 만물이 그렇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그렇고, 신실한 종들의 외침이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입으라고 한다. 그러나 거짓 종들은 신앙의 목적이 물질위주, 일 위주, 사건위주로 들어가 있고, 그 재미로 산다.

 

물질위주로 믿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도 그런 물질적 사역적 업적과 이력을 남기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놓여지고 지옥에 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걸 기준으로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성품적 인격적으로 당신처럼 만드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보다 위에 있는 거고, 하나님의 심판은 그 아래에 있는 거다. 물질적인 사고방식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이하의 정신이니 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 그냥 노출이 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걱정 근심이 떠날 날이 없고, 환경에 노예가 되고, 환경의 소산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성경에서 이걸 말씀하고 있으니 교회에서 인도자의 책임이 제일 크다. 목사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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