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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 (Who are you?)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331 추천 수 0 2020.12.14 06: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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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9-28 
설교자 : 최용우 전도 
참고 : 2020.12.3.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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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 Who are you?
요한복음1:19-28 
2020.12.3.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또 묻되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1.너는 누구냐?
 2.나는 아니다.
 3.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다.
 4.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다.
 5.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다.
 6.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자다.
 7.결론, 기도


 1.너는 누구냐?
 구약성경은 암울한 역사 속에서 속히 메시아가 나타나서 민족을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는 염원으로 말라기에서 끝납니다. 이후 예수 탄생까지 400-500년 ‘신구약 중간사’는 그야말로 새벽을 기다리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이 중간사 기간에 이스라엘은 정치적·문화적·사상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다가 -헬라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언어도 원래 히브리어였는데 아람어-헬라어-라틴어로 바뀌게 됩니다. 본래 그들의 문화는 히브리의 헤브라이즘이었는데 알렉산더가 세계를 점령하면서 헬라문화의 헬레니즘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중간사 시대에 유대교가 생겼고 유대교 안에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분파가 생겼습니다. 회당제도가 정착되면서 학자계층인 서기관들과 성직자인 랍비들이 생겼습니다. 또한 헬라통치에 반기를 들고 민족의 자주권을 찾으려는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첼롯당(헤롯당)’이 탄생합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의 이스라엘 역사적 상황은 정치적 혼란, 문화적 혼돈, 신앙적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욱 간절하게 메시아를 대망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아가 와서 로마를 물리치고 자신들을 구원하여 이 모든 혼란을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가뭄의 와중에서 단비를 기다리듯이, 모든 역사적 정황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요단강 강가에 짐승 털옷을 입고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회개하라” 외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엄청난 사람들이 따라다닌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혹시 그가 우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닌가? 하여 알아보려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단강 가에  보내  그 사람을 만나 “너는 누구냐?” 하고 물어보게 했습니다.


2.나는 아니다.
 “너는 누구냐? 네가 혹시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인가?” 구약 전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332회가 나오는데 그중에 이사야서7,8,9장은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한 예언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땅과 가장 강한 힘을 가졌던 왕이 ‘다윗왕’이었는데, 그리스도는 바로 ‘다윗 왕’처럼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그 질문에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엘리야입니까?”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라기4장 5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러니까 여호와가 나타나는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예언자 엘리야를 앞서 너희에게 보낸다고 했는데 혹시 그 엘리야 인지 아닌지를 묻습니다. 요한은 “나는 엘리야가 아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또 물었습니다. “그런 당신은 장차 오시기로 한 그 예언자입니까?” 유대인들이 언젠가 이사야나 에레미야가 선지자로서 다시 오리라 믿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어다.”(신18:15) 요한은 “아니다.”
 그러자 그들이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면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고해야 합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3.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다.
 요한은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 하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입니다.” 메시아가 올 때 사람들이 준비하고 맞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곧게 하고 외치는 사명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는 메시아가 오셔서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터를 닦고 사람들을 일깨워 준비시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요한은 메시아가 오셔서 마음껏 일하실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일, 즉 준비하는 일이 자기의 사명이며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사역하는 모든 목회 사역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정체성입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예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위하여 수고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는 진지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심히 혼미하고 어지러운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형식적인 신자로 붐비고, 신자들의 마음은 세상을 향한 사랑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 마음 밭을 부지런히 경작하는 목회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을 보세요.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을 향해 “회개하지 않는 이 독사의 새끼들아! 누가 너희들을 교회에 오라고 했느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리라.” 아마 오늘날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소리치면 남아있을 신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책망하고 영혼을 중생케 했던 위대한 복음의 능력은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4.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다.
 이 시대 한국 기독교는 한 마디로 ‘강남 기독교’라고 합니다. 그 장소와 교회의 크기를 떠나서 우리나라 모든 교회들은 강남에 있는 교회들처럼 따라하기 때문에 ‘강남 기독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강남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종교 권력자들인 대제사장들 레위인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든 중심이 강남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강남은 참으로 특이한 곳입니다. 오죽하면 ‘강남 공화국’이라고까지 할까요.
 사람들이 죄다 성공하기 위해 강남으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빠져나가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에 자기들이 찾는 진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세례 요한이 있는 광야로 갔습니다.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세리들도, 용병으로 징집되었던 포악한 군인들까지도 광야로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왜 광야입니까?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나, 역사상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 심지어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광야로 나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아무도 없는 외로운 시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독대를 통해서 그 사명과 그것을 행할 능력까지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광야는 ‘기도원’ 같은 곳인데, 지금 기도원은 찾는 사람들이 없으니 운영을 할 수 없어서 대부분 문을 닫고 몇 개 안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루살렘에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혹독하게 꾸짖었고 그들의 불륜과 불법을 폭로하다가 그들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5.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다.
 보냄을 받은 유대 사람들중에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까?”
 바리새인들은 그 특성이 우리나라 보수 장로교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격이 없으면 세례를 줄 수도 없고, 설교를 해도 안 되고, 병자들을 고쳐도 안 되고, 기적을 일으켜도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남자’들만 목사가 되어야 하고, 목사들만 설교권, 축복권이 있고, 제사장은 정년이 없었다며 목사의 정년을 80세까지 늘리려고 하는 한 교단이 바로 바리새교단의 교리와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26절) 요한이 베푼 세례는 다른 종교를 믿다가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준 정결 예식의 세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세례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구약의 정결예식이었던 물세례가 요한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부터는 예수님께서 ‘불(성령)’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요한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례는 회개를 위한 세례(마3:5), 의를 이루기 위한 세례(마3:15), 예수님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세례 (눅12:50), 성령 세례(행1:5)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세워진 후 약 30년이 지나서 바울은 “세례는 하나다”(엡4:5)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오늘날 세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0-21)


 6.나는 그의 신발 끈 풀 자격도 없는 자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요1:27) 랍비들에게는 한 가지 ‘금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자기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자도 자기 스승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승의 신들메를 묶거나 푸는 일이었다.>
 제자가 하늘 같은 스승에게도 하지 않던 일이 바로 신들메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들메를 묶고 푸는 일은 전적으로 노예가 주인에게나 하는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비천한 종들이 하는 신들메 푸는 일조차도 자기는 감히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 그분은 만물이 지음을 받을 때,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히1:2-3) 광활한 우주를 만드신 분, 우리의 지식으로 도저히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잠시 후에 오실 메시아를 예고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무지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심판자로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시대를 바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사실은 장로의 유전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정작 메시아가 나타나자 그를 배척하고 율법의 파괴자로 몰아세워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습니다. 그들은 시대를 분별할 능력이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가게 했습니다.


7.결론, 기도
 세례 요한의 등장은 초라하였고, 외모는 볼품없었고, 그에게는 학위도 없었고, 목사 안수도 없었고, 유명한 사람의 추천서도 없었고, 길목 좋은 목회지도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루살렘 거리나 회당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의 광장이나 길목이 아니라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도 구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의 선포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듣기에 기분 나쁜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두드리는 강한 설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 질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례 요한은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다.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자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우리도 나를 소개할 때 오직 주님만 드러내는 소개를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용우(재배포 대환영!)


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김남준<하늘로부터 온 사람/솔로몬>
3.김남준<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설교자/생명의말씀사>
4.아이언사이드<요한복음>p.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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