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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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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황종선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6.7.2주일설교 |
제목: 진정한 승리
본문: 누가복음 24:1-6
설교: 황종선 형제 (새길교회 2006.7.2주일설교)
저는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것을 기억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우리 삶의 주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끊임없는 전쟁(싸움)의 연속과 다양한 싸움들이 있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말싸움에서부터 최신무기를 사용하여 한 나라를 초토화 시키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무시무시한 전쟁도 있습니다. 어쨌든 전쟁의 결과는 정말 고통스럽고 슬픈 일만 남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마약과의 전쟁, 폭력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심지어 출근 전쟁, 입시 전쟁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말에 별로 두려워하지도 걱정스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서두에 전쟁이야기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제가 호주에 머무는 동안에 6.25를 맞이했고, 한국전을 생각하면서 전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그 참혹한 전쟁을 종식시킬 수는 없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야기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라크전쟁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있지만 지금도 자식을 잃고 남편과 아내를 잃고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이 전쟁은 어느 정도 종결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미국일까요? 이라크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미국이 승자인 것 같지만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쉽게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이긴 자와 진 자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슬픔에 젖은 어머니들이 아직도 미군철수를 외치며 전쟁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전쟁의 결과는 항상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과 괴로움과 크나큰 물질의 손실이 남을 뿐입니다. 세계 1차,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결과에 대해 깨닫고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국제연합을 창설하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당사국 간의 분쟁을 조절하고 협의하여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을 보면 국제연합의 의견을 무시하고 막강한 화력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정권은 국제연합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횡포입니다.
전쟁이야기 하면 성경의 전쟁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 성경을 읽는데, 구약을 읽어보니 전쟁이야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전쟁이야기들, 주위의 이민족들과의 끊임없는 전쟁들. 암몬, 모압, 블레셋, 가나안 등등….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백전백승,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백전백패.
저는 그 전쟁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쟁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그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라크전쟁이 하나님께서 그곳의 이슬람을 몰아내고 기독교를 세우시려는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한국기독교인들이 꽤나 많이 있다는 사실에 저는 무척 슬펐습니다. 문자주의로 설교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철석같이 믿는, 또 그렇게 믿는 믿음이 천국 갈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저는 두렵습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호주에 머물면서 몇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그중에〈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은 막강한 정치권력을 뒤에 엎고 교육가라는 것을 내세워 폭력배를 조정하고 살인 폭력 협박을 일삼는 위선자를 공공의 적이라 규정하고 외롭게, 그러나 정의감으로 싸워나가는 검사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공공의 적과의 싸움. 이런 싸움이야말로 사회를 정화시키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싸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한국에는 공공의 적이 도처에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또 한 가지 아름다운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망들과의 싸움. 이것이 신앙인이 끝까지 싸워야 할 아름다운 싸움이 아닐까요?
모든 병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병에 걸려 병원에 가면 대부분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줄여주는 치료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가 없을뿐더러 완치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전쟁도 원인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무슨 협정, 무슨 협약서를 주고받으면서 전쟁을 끝낸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쟁의 근본 원인을 끌어내서 치유나 협의, 화해, 배려를 통한 협정을 한다면 좋겠지만 일방적인 협정, 협약은 일시적으로는 평화로울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의 욕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2천 년 전 유대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그들의 신앙을 앞세워 유대민족을 속이고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로마권력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빌붙어서 동족을 수탈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절망 속에서 그들을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30세의 청년 예수! 그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존재(하나님의 아들)를 깨닫고 자기가 가야할, 하나님이 가라시는 그 길을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병든 사회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리고 또 그들에게 전쟁터와 같은 병든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약을 나누어 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진리, 평화, 사랑, 생명, 겸손입니다. 악을 악으로 치료할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사장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날로 늘어가는 예수의 추종자들과 집회 때마다 보이는 수천 명의 군중들을 보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습니다. 누가복음 24:13~21에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통해서 그 때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슬픈 빛을 띠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는 말과 행동에 능했는데, 그래서 우리를 틀림없이 구원해 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한다고 했는데, 삼일이 지났는데도 예수는 아직 부활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크나큰 절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서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미련한 자를 들어서 똑똑한 자를, 작은 자를 들어서 큰 자를 가난한 자를 들어서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해서 미련해서, 작아서, 가난해서 부끄럽습니다. 저는 새길교회에 온지 얼마 안 되서 한완상 형제님의 말씀증거시간에 나의 마음을 비워서 상대편을 채워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법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폭력에 맞서지 아니하고 악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십자가 사건, 원수를 사랑으로 용서하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따르미로 거듭나기 원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마음 가운데 영으로 부활하셔서 예수님의 말씀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우리들의 삶이 흔들릴 때마다 붙들어주시고 우리들의 갈 길을 보여주시면 격려해주시는 예수. 그 예수야말로 영원한 그리고 진정한 승리자인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본문: 누가복음 24:1-6
설교: 황종선 형제 (새길교회 2006.7.2주일설교)
저는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것을 기억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우리 삶의 주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끊임없는 전쟁(싸움)의 연속과 다양한 싸움들이 있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말싸움에서부터 최신무기를 사용하여 한 나라를 초토화 시키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무시무시한 전쟁도 있습니다. 어쨌든 전쟁의 결과는 정말 고통스럽고 슬픈 일만 남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마약과의 전쟁, 폭력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심지어 출근 전쟁, 입시 전쟁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말에 별로 두려워하지도 걱정스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서두에 전쟁이야기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제가 호주에 머무는 동안에 6.25를 맞이했고, 한국전을 생각하면서 전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그 참혹한 전쟁을 종식시킬 수는 없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야기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라크전쟁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있지만 지금도 자식을 잃고 남편과 아내를 잃고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이 전쟁은 어느 정도 종결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미국일까요? 이라크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미국이 승자인 것 같지만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쉽게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이긴 자와 진 자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슬픔에 젖은 어머니들이 아직도 미군철수를 외치며 전쟁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전쟁의 결과는 항상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과 괴로움과 크나큰 물질의 손실이 남을 뿐입니다. 세계 1차,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결과에 대해 깨닫고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국제연합을 창설하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당사국 간의 분쟁을 조절하고 협의하여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을 보면 국제연합의 의견을 무시하고 막강한 화력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정권은 국제연합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횡포입니다.
전쟁이야기 하면 성경의 전쟁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 성경을 읽는데, 구약을 읽어보니 전쟁이야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전쟁이야기들, 주위의 이민족들과의 끊임없는 전쟁들. 암몬, 모압, 블레셋, 가나안 등등….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백전백승,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백전백패.
저는 그 전쟁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쟁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그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라크전쟁이 하나님께서 그곳의 이슬람을 몰아내고 기독교를 세우시려는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한국기독교인들이 꽤나 많이 있다는 사실에 저는 무척 슬펐습니다. 문자주의로 설교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철석같이 믿는, 또 그렇게 믿는 믿음이 천국 갈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저는 두렵습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호주에 머물면서 몇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그중에〈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은 막강한 정치권력을 뒤에 엎고 교육가라는 것을 내세워 폭력배를 조정하고 살인 폭력 협박을 일삼는 위선자를 공공의 적이라 규정하고 외롭게, 그러나 정의감으로 싸워나가는 검사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공공의 적과의 싸움. 이런 싸움이야말로 사회를 정화시키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싸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한국에는 공공의 적이 도처에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또 한 가지 아름다운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망들과의 싸움. 이것이 신앙인이 끝까지 싸워야 할 아름다운 싸움이 아닐까요?
모든 병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병에 걸려 병원에 가면 대부분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줄여주는 치료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가 없을뿐더러 완치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전쟁도 원인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무슨 협정, 무슨 협약서를 주고받으면서 전쟁을 끝낸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쟁의 근본 원인을 끌어내서 치유나 협의, 화해, 배려를 통한 협정을 한다면 좋겠지만 일방적인 협정, 협약은 일시적으로는 평화로울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의 욕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2천 년 전 유대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그들의 신앙을 앞세워 유대민족을 속이고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로마권력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빌붙어서 동족을 수탈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절망 속에서 그들을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30세의 청년 예수! 그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존재(하나님의 아들)를 깨닫고 자기가 가야할, 하나님이 가라시는 그 길을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병든 사회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리고 또 그들에게 전쟁터와 같은 병든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약을 나누어 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진리, 평화, 사랑, 생명, 겸손입니다. 악을 악으로 치료할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사장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날로 늘어가는 예수의 추종자들과 집회 때마다 보이는 수천 명의 군중들을 보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습니다. 누가복음 24:13~21에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통해서 그 때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슬픈 빛을 띠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는 말과 행동에 능했는데, 그래서 우리를 틀림없이 구원해 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한다고 했는데, 삼일이 지났는데도 예수는 아직 부활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크나큰 절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서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미련한 자를 들어서 똑똑한 자를, 작은 자를 들어서 큰 자를 가난한 자를 들어서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해서 미련해서, 작아서, 가난해서 부끄럽습니다. 저는 새길교회에 온지 얼마 안 되서 한완상 형제님의 말씀증거시간에 나의 마음을 비워서 상대편을 채워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법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폭력에 맞서지 아니하고 악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십자가 사건, 원수를 사랑으로 용서하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따르미로 거듭나기 원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마음 가운데 영으로 부활하셔서 예수님의 말씀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우리들의 삶이 흔들릴 때마다 붙들어주시고 우리들의 갈 길을 보여주시면 격려해주시는 예수. 그 예수야말로 영원한 그리고 진정한 승리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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