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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의사

임형수............... 조회 수 1642 추천 수 0 2004.03.18 16: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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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처음 온 지 얼마 안되어 심하게 감기를 앓은 적이 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의사와 어설픈 영어로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워 할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한국인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한국 같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방(?)이면 끝날 감기를 달고 며칠을 버티다 중환자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고 배를 눌러 보는 등 몇 가지 점검을 하면서 딱딱한 질문 몇 개를 던지고는 죽을병은 아니라는 진찰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죽을 것 같아 찾아온 내게 죽을병은 아니라는 진단이 그리 반가운 답변만은 아닙니다.
하루종일 죽겠다는 사람만 봐서 그런지 그 일을 하는 의사의 표정이 너무도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질문을 하면 우는 소리만 하는 환자들, 별것도 아닌 병을 가지고 와서 죽을병처럼 행세하는 사람들, 의사보다 병을 더 잘 아는 듯이 잘난 체 하는 사람들, 병이 낫지 않는다며 의사에게 불신과 불평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병이 낫도록 도움을 주어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앞에 그의 표정은 아무래도 사랑을 주기에 힘겨움을 느끼는 듯 싶습니다. 밝은 색의 담장과 의사의 하얀 가운, 깨끗한 병원 시설들을 지나오는 길은 깊고 어둔 터널을 빠져 나오는 것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게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영적 의사로서 목사된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좀더 깨끗하게 살고 싶어서, 좀더 따뜻한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목회의 길이 때로 시련과 시험, 불만과 좌절로 얼룩지기도 합니다. 광야처럼 힘겹고 거친 삶 속에서 뜻이 어긋나기도 하고, 중환자처럼 쓰러지고 지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소리 없는 기도와 목마른 간구가 허공 속에 묻힌다는 느낌조차 들기도 합니다. 어느덧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지 못하고 짐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삶은 그 땀방울 속에서 더 의미가 있는 듯 싶습니다. 해산의 고통으로 소리소리 지르던 아내가 둘째를 낳았던 병원에서, 피 범벅된 손과 피로 얼룩진 수술복을 입고서도 환한 웃음과 기쁨으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던 또 다른 의사를 기억합니다.
영적 생명을 치유하는 거룩한 의복을 입은 목자된 내가 선 자리를 봅니다. 오늘 하루 생명을 죽이는 목자였나, 생명을 살리고 있는 목자인가? 목회자 또한 고난과 시련의 땀방울 가운데 하나님을 더 자주 만납니다. 거룩한 의복과 깨끗한 가운이 아니더라도 얼룩진 땀과 거친 눈물이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주를 향해 조용히 모은 두 손과 고난 속에 드려진 찬양과 낡고 헤진 성경책 위로 벤쿠버의 영적인 생명들이 자라가길 기도합니다.
- 임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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