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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도, 문제의 사람도 부르심이다

정원 목사............... 조회 수 2787 추천 수 0 2011.06.15 10:55:37
.........

001.jpg어제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들렀습니다. 은행에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우리는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리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얼마 후에 약간의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저씨 (할아버지라고 해야할 지..) 가 갑자기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지요. 그는 60은 넘었고 70은 안 되어 보였는데 은행원들에게 마구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빨리 일을 하지 않고 왜 기다리게 하느냐고 마구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의 옆자리에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녀는 남편의 행동으로 인하여 몹시 난처하고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제발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제지했지만 남편은 오히려 더 화를 냈습니다.

점심 시간이라 창구의 여섯 개 좌석에 세 자리는 비어 있었고 직원 세 명만이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잘 줄어들지 않으니 아저씨는 더 화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부지점장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분에게도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분도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을 못하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제발 좀 그만 해요.. 내 체면 좀 생각해줘요, 에이구.. 웬수야, 웬수..] 하고 있었고 아저씨는 [뭘 그만 해? 이것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바쁜 사람들을 데리고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불쾌한 표정으로 그 아저씨를 째려보았지만 항의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창구 직원들도 그 엄청나게 큰 욕설이 들리지 않을 리는 만무하고 그저 못들은 척하고 일을 계속 하고 있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소리가 작아지기는 했지만 아저씨의 강짜는 계속 되었고 아주머니의 탄식과 설득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저 분들도 다 바빠요.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래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갔는데, 아니 밥도 못 먹어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그걸 욕하면 어떡해요?]

 

아주머니의 말은 논리적이고 틀린 것이 없었지만 그녀의 설득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고 아저씨는 계속 투덜거렸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다행인 것은 아저씨에게 아주머니가 계속 설득을 하고 핀잔을 하는데 아저씨가 입으로만 화를 낼 뿐 폭력을 행사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요? 뭐 뻔하지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저의 책임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 아저씨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의 죄입니다..] 계속 그렇게 중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 띈 죄들은 다 나의 죄이며 내가 기도해야 하는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은행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욕설을 심하게 뱉으며 은행이 떠나가라 화를 내고 있었는데, 그 때는 결박 기도가 필요한 것 같아서 잠시 악한 영을 결박했더니 불과 2-3분 정도가 지났을까,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청년의 기분이 좋아져서 친구와 부드럽게 웃으면서 통화를 마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전의 그 청년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나쁜 영에 잡힌 것 같아서 잠시 그 영을 결박하면 될 것 같았으나 이 아저씨, 할아버지는 순간의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노는 그분의 인생 전체에서 형성된 것이며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설득하면서 연신 [아이구, 이 원수.. 내 팔자야..]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 생각만 해? 나 창피한 것은 생각 안 해?] 하고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핀잔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설득과 상관없이 계속 은행원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통하던 말든 아저씨에게 핀잔을 주는 일을 꾸준히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 핀잔을 주는 아주머니, 가끔씩 양념처럼 이 아저씨를 쏘아보는 여러 고객들.. 그 장면에서 나는 이상하게 갑자기 [부르심] 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명.. 사역.. 부르심.. 그런 언어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 아저씨는 하나의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환자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그에게는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환자를 치료해줄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행에서 이 아저씨를 많은 사람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저씨를 골치덩이라고만 여길 뿐 아무도 이 아저씨를 치유하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 아저씨의 평생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치유자가 있었으면 계속 저렇게 환자의 상태에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이 아저씨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아저씨는 부르심입니다. 치유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사랑으로 반응함으로써, 그를 불쌍히 여김으로써, 아저씨의 잘못을 내 죄라고 여기는 사람을 통해서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이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환자입니다. 그는 지금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데 사실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전혀 논리적으로 화가 날 상황이 아닌데도 그저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화를 폭발시켰습니다.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그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웬수야, 웬수..] 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을 것입니다.

 

이분에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은행원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부모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그를 학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호통을 쳤을 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오래 전에 연락을 끊어버린 아들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에게 분노가 쌓여져 있다는 것이며 그는 진정한 대화, 서로의 언어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일방적인 주장만 서로 주고 받으면서 살아왔겠지요.

 

어떤 일에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분노나 반응이 있을 때 그것은 지금의 현재 상황에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안에 전부터 있던 감정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그의 내면에서 찾아야지 현재 상황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을 밟혔다고 그의 발을 밟은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가 단순히 발이 밟힌 일 때문에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그럴 리는 없습니다. 발이 밟히기 전부터 그의 속에는 지독한 분노가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문제는 항상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나 다른 사람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의 분노의 시작은 어디에서 일까요? 그것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친절하고 따뜻한 자세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는 그것을 쏟아 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험상궂고 사나운 사람일수록 부드럽게 대해주면 마음을 열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중심을 털어놓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거칠고 사나운 사람을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아저씨가 부르심이라면, 그 부르심은 가장 먼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일까요? 물론 아저씨의 부인인 아주머니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전혀 불쌍해 보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당신이 소리를 지르니까 내가 창피하고 내 입장이 난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해결책도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적으로 상한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통할 리가 없습니다.

화가 난 사람에게는 화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심장에 에너지가 빠져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부드럽게 사랑의 에너지를 충전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속이 상했군요.. 그래요.. 참 힘들죠..?] 하고 부드럽게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화가 난 상태는 부드러운 에너지가 모자라서 배가 고픈 상태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음식을 먹이면 배가 채워져서 곧 분이 풀리게 됩니다. 하지만 화가 난 사람에게 화를 내면 그는 더 배가 고프게 되기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테크닉에 속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부르심이며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사랑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사람은 지혜를 얻게 되며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나 사람 앞에서 사랑으로 응답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앞에 다가오는 문제 앞에서, 사람 앞에서 투덜거립니다. [내 팔자야. 웬수야. 웬수..]

 

세상에 팔자가 좋게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고 자기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고 부르심과 도전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그 부르심에 대해서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에서 오지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거리와 고통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 사랑으로 응답할 때 비로소 영혼의 만족과 기쁨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천국에서 오는 만족이며 행복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직접 당해보세요. 그런 말이 나오나.. 사랑이 나오나..]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참 많이 당해보았다고..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일들, 상황들,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수 없이 겪어보았다고.. 하지만 그러한 부르심에 대하여 사랑으로 응답할 때 사람들이 변화되고 상황들이 바뀌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어떤 이들은 다시 말할 것입니다. [그거야 목사님이니까 되는 거죠. 저는 안 돼요. 저는 그 수준이 아니에요..]

저는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느냐고, 행복하시냐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며 거기에서 계속 머물러 있고 싶다면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고통스러우며,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제가 가르쳐주는 단순한 방법을 따르고 시도함으로써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이야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겪게 된 사람들을 많이 보았으니까요..

 

저는 신앙에 있어서 복잡한 이론이나 개념을 싫어하고 단순하고 적용하기가 쉬운 직접적인 실험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스스로 훈련하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가 직접 실험해보았을 때 좋은 결실을 얻었고 다른 이들에게 적용했는데 역시 비슷한 열매를 얻었다면 그것은 시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사랑으로 응답할 때 문제는 해결되고 사람은 변화됩니다. 골치덩이는 천사가 됩니다.

 

부르심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골치덩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그를 피해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의 문제 그의 죄를 내 죄로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저 사람이 저 때문에 악역을 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의 책임입니다.. 저의 죄입니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에 기쁨이 오기 시작합니다. 후련함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상하게 이치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속에서 행복감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남편이, 아이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에 응답한 결과입니다. 중보의 결과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실에서 자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내 팔자야.. 이 웬수야..]를 하면서 인생을 보냅니다. 무례한 사람을 째려보면서 속으로 짜증을 내고 뭐 저런 인간이 있나.. 정죄를 하면서 인생을 보냅니다. 자신이 당한 일은 오직 우연일 뿐이며 저런 인간을 만난 자신은 운이 없을 뿐이고, 그러한 사건들이 부르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 남편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못되었는지, 자기 아내 때문에 자기 인생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를 호소합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자기 속을 뒤집어 놓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불쌍히 여깁니다.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동조해주는 이를 찾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문제가 자기에게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일수록 자기 의에 빠져 있고 선민의식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질 못되고 툭하면 폭발 하고 돈 낭비하고 계획 없이 살고 개념 없고 바람 피고 나쁜 짓하는 남편이 문제지 기도에 힘쓰고 주님만을 사랑하며 전도에 힘쓰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속에 있는 악이 드러난 악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모릅니다.

 

이들은 [주님.. 저는 저 세리와 같지 않으며 큐티하고 전도하고 영성훈련 받고 제자 훈련반 졸업했으며 능력과 은사가 있으며 제 남편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한 기도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자기 만족의 기도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자기 신앙이 좋은 줄로 아는 영적 바리새인이 가장 무서운 죄라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며 자기에게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사실 많이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자기 신앙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곁의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른다면, 그의 외적인 신앙경력은 실체가 아닙니다. 외적인 신앙경력은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고 경력이 될 수 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것만으로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주님.. 뭐라고요? 제가 주님을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았다구요? 주님의 마음을 몰랐다구요?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하고 외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배우자를 변화시키고 자녀를 변화시키려고 많이 기도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변화되어야 할 사람은 오직 자신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변화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이지 환경이 아닙니다.

자신이 변화되면 환경과 상관없이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얼마 후면 주위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저씨를 보면서, 아주머니와의 언쟁을 보면서 그 아저씨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주머니와의 결혼 생활의 모습도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답답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내가 그 아저씨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내 죄를 회개하며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그 아주머니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그녀의 번호표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우리 것과 바꾸자고 했습니다. 우리 번호가 몇 번이 빨랐기 때문에 그들의 순서가 조금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번호표를 받았습니다. 물론 고맙다는 말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분도 역시 아픈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 부부는 일을 마치고 나갔습니다. 우리의 일도 곧 마쳤습니다. 우리는 은행을 나와서 가까운 약국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비타500을 한 통 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은행에 들어가 지점장으로 보이는 분에게 드렸습니다. 손님이 소리를 질러서 힘드셨을 텐데, 창구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드리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몹시 고마워했습니다. 나는 음료수 자체보다 그들의 수고에 고마워하고 이러한 일에 대신해서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동사무소나 관공서에서 일을 마치고 나면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음료수를 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이지만 사랑의 에너지를 퍼뜨리는 데에 약간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번은 은행에서 어느 여직원이 업무에 몹시 서툴러서 2-3분이면 끝날 업무를 1시간 가까이 헤매면서 우리를 지체하게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여직원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마음은 선한 데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가씨는 점점 더 긴장을 해서 나중에는 프린터가 망가지고 복사를 거꾸로 하는 등.. 이상한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복사를 하고 프린터를 사용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평범한 업무였는데 말입니다.

옆에서 여러 직원이 도와주어서 그녀가 간신히 업무를 해결한 후에 나는 약국에서 음료수를 한 박스 샀습니다. 그래서 그 여직원에게 격려하는 의미에서 주었지요.

 

하늘나라의 원리는 못하는 사람에게, 부족한 사람에게 더 큰 은혜와 상급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원리를 적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하는 사람보다는 못하고, 어리버리 하는 사람에게 애정과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죠.. 여직원은 그 때 몹시 놀랐는지, 그 이후에는 나를 볼 때마다 인사를 꼬박꼬박 하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들러도 그녀는 대기 좌석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분노하고 소리를 지르던 그 아저씨를 위해서 내가 중보하고 기도한 것, 아내가 번호표를 양보해준 것, 긴장하고 놀랬던 직원들에게 작은 음료수 하나씩을 선물한 것.. 그것은 상황의 개선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을 까요? 그것은 아주 작은 일이었고 그 효과는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나중에 많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그다지 변화를 경험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일이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일, 사람, 부르심에 대해서 조금씩 사랑으로 응답한다면, 꾸준하게 이렇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점차적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문제를 보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보고 [주님.. 죄송합니다. 저의 죄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계속 반응해간다면, 문제는 바뀔 것입니다. 문제의 사람은 변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문제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러한 일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입니다. 그것들은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피곤함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며 심판하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온 세상에 정죄하고 돌을 던지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짐을 지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사랑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고 그 짐을 즐겁게 짊어지고 간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어디에 있는지 천국의 빛을 공급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광명한 햇살이 비춰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부르심입니다. 문제의 사람은 부르심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속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완악함, 우리의 이기심, 이웃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우리의 사랑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종의 몽학선생과 같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사랑으로 응답하십시오. 중보로 응답하십시오. [주님..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주님.. 저의 잘못입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저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저것은 내 죄입니다. 제가 가장 악한 사람입니다..] 하고 고백하십시오.

 

그렇게 고백하고 그렇게 주님께 나아갈 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당신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기쁨, 놀라운 평화..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이 당신 안에서 점점 더 증가되는 것을 당신은 누리고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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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50 희망의 무지개 정종기 교수 2010-06-15 2782
32949 구조선 한태수 목사 2011-02-09 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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