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284 추천 수 0 2019.09.11 07:54:23
.........

hb6460.jpg

♣매일 아침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460번째 쪽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기를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엡5:18-19)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와 같은 신약교회는 지금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①시와, ②찬송과, ③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있습니까?
①시와 -현대인의성경에서는 ‘시편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詩란 ‘시편’을 말합니다. 신약교회에서는 예배 순서 가운데 시편을 낭독하는 ‘성시교독’ 시간이 있습니다.
②찬송과 -성경에 ‘찬송讚頌)’이라는 단어가 214회 나오는데 혀로(시66:17), 입술로(시63:5), 노래로(시28:7, 33:3) 즉 ‘내가 직접 소리를 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찬양(讚揚)’은 90회가 나오는데 마음으로(골3:16),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제금등 악기로(시149:3, 150:3~5), 손을 들고(시134:2), 춤추며(시149:3, 150:4) 이처럼 ‘찬양’은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른다’고 하고 ‘챤양을 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③신령한 노래로 -‘신령한 노래’를 앤섬(anthem)이라고 하며, ‘찬양대가 노래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찬양대’가 부르는 영가(靈歌), 천주교에서는 ‘성가대’가 부르는 성가(聖歌)입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찬양대’가 맞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단어인 ‘성가’는 일제침략시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했던 친일파 목사들이 일본어 ‘세이까다이(聖歌隊)’를  가져와 ‘성가대’라고 개명한 것이며 청산해야 될 잔재입니다. 
시골교회나 작은교회에서는 ‘찬양대’를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 영상으로 큰 교회의 찬양대 찬양을 상영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최용우


♥2019.9.11. 물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6481 2019년 하동 회개기도 [1] 최용우 2019-10-10 230
6480 2019년 하동 식사기도 [3] 최용우 2019-10-09 878
6479 2019년 하동 감각과 지성 최용우 2019-10-08 177
6478 2019년 하동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최용우 2019-10-07 317
6477 2019년 하동 구심점 [1] 최용우 2019-10-05 245
6476 2019년 하동 무너진 마음 [2] 최용우 2019-10-04 314
6475 2019년 하동 선지자들과 성경 [1] 최용우 2019-10-03 154
6474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설교 [3] 최용우 2019-10-02 202
6473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외침 [1] 최용우 2019-09-30 135
6472 2019년 하동 전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2] 최용우 2019-09-28 255
6471 2019년 하동 선지자로 부르심 [1] 최용우 2019-09-27 248
6470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백성들 최용우 2019-09-25 137
6469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목사 최용우 2019-09-24 184
6468 2019년 하동 선지자와 하나님 [1] 최용우 2019-09-23 161
6467 2019년 하동 잠언과 지혜 최용우 2019-09-21 250
6466 2019년 하동 뱀과 지혜 [1] 최용우 2019-09-20 485
6465 2019년 하동 지혜의 말씀 최용우 2019-09-19 379
6464 2019년 하동 지혜와 윤리도덕 [1] 최용우 2019-09-18 130
6463 2019년 하동 지혜와 계시 최용우 2019-09-17 125
6462 2019년 하동 지혜와 지식 최용우 2019-09-16 210
6461 2019년 하동 시편과 희노애락(喜怒哀樂) [1] 최용우 2019-09-12 233
» 2019년 하동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최용우 2019-09-11 284
6459 2019년 하동 시편기도 최용우 2019-09-10 215
6458 2019년 하동 시편 찬양 최용우 2019-09-09 248
6457 2019년 하동 고난과 성숙 최용우 2019-09-07 271
6456 2019년 하동 고난과 침묵 [2] 최용우 2019-09-06 196
6455 2019년 하동 고난의 신비 [1] 최용우 2019-09-05 227
6454 2019년 하동 고난의 유익 최용우 2019-09-04 250
6453 2019년 하동 고난과 나 최용우 2019-09-03 177
6452 2019년 하동 고난과 하나님 [1] 최용우 2019-09-02 220
6451 2019년 하동 나는 조국을 사랑합니다 [2] 최용우 2019-08-30 389
6450 2019년 하동 있고 없고 최용우 2019-08-29 238
6449 2019년 하동 손해와 이익 [2] 최용우 2019-08-28 241
6448 2019년 하동 그냥 믿어짐 [4] 최용우 2019-08-27 206
6447 2019년 하동 한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4 331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