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건물에서 사람으로

2020년 예동 최용우............... 조회 수 201 추천 수 0 2020.08.20 08:00:09
.........

hb6730.jpg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730번째 쪽지!


□건물에서 사람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한국교회는 ‘건물에서 사람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상한 장유유서의 서열이 있습니다. 그 서열은 나이순서가 아니라 개척-월세-전세-지하-이층-이사-건축-재건축 순서대로 성공의 척도를 재는 ‘건물 서열’입니다.
한국교회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니면 일부러 뭔가 거룩하게 보이려고 알면서도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건물 성전을 분명히 폐기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결코 건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을 대신하는 교회입니다.(요2:19) 교회의 머리도 예수요(골1:18), 교회의 기초도 그리스도입니다.(마16:16-18)
구약의 이스라엘은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솔로몬, 스룹바벨, 헤롯 성전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장소, 공간, 건물로서의 성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화려하게 치장하면서 신앙생활은 개떡같이 하는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이스라엘을 보며 구토를 느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성전에서 끄집어내어 1500km나 떨어진 바벨론으로 쫓아버리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예루살렘 성전은 BC586년에 완전히 멸망하여 쪽제비와 승냥이가 노는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성전이 없어진 그들은 포로지에서 각 지역에 ‘회당’을 세워 서로 모여 자유롭게 교제하고 가르치는 곳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은 ‘성전’이 아니라 ‘회당’이어야 합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입니다.(고전3:16)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서로 모여야 합니다. 서로 모이는 그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 연대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세상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어 묶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은 사람들을 자기교회 안에만 묶어두는 담이 되고 있습니다. 그냥 자기 교회당만 키우려 하고, 자기 교인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개교회주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곳이 ‘교회’라는 말을 듣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구토가 나오시겠습니까?
코로나19 사태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당 안에만 모여 있지 말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메시지입니다. 그걸 종교탄압이니 하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는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빈 몸으로 1500km나 끌려간 것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하도 교회당 안에만 모여 있다 보니 교회 밖에 나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사람이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는 건물 지키려고 사람 버리지 말고, 건물은 버릴지언정 사람을 지켜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건물주’노릇만 하고 있다가는 망합니다. ⓒ최용우


♥2020.8.20. 나무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1'

최용우

2020.08.20 08:15:30

초대교회는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공사간의 문제들을 토론하고 법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정기적인 모임’도 에클레시아입니다. 결국 ‘에클레시아’는 ‘모임’입니다. 만약 “한국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어딘가에서 토론을 한다면 그것도 ‘에클레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61 2020년 예동 세계정복의 역사 [1] 최용우 2020-09-26 182
6760 2020년 예동 신자유주의와 민주공화국 [2] 최용우 2020-09-25 178
6759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일곱 번째 말 최용우 2020-09-24 110
6758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여섯 번째 말 최용우 2020-09-23 102
6757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다섯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22 112
6756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네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21 152
6755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세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9 166
6754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두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8 156
6753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첫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17 169
6752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일곱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6 145
6751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여섯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5 124
6750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다섯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4 127
6749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의 네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2 235
6748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세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1 251
6747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두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0 209
6746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첫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09 240
6745 2020년 예동 예수와 클라우디아 [2] 최용우 2020-09-07 285
6744 2020년 예동 예수와 채찍질 [1] 최용우 2020-09-05 224
6743 2020년 예동 예수냐 바라바냐 [1] 최용우 2020-09-04 221
6742 2020년 예동 예수와 안티파스(안디바) [1] 최용우 2020-09-03 180
6741 2020년 예동 예수의 왕권 [3] 최용우 2020-09-02 175
6740 2020년 예동 예수와 빌라도 최용우 2020-09-01 149
6739 2020년 예동 강요 최용우 2020-08-31 150
6738 2020년 예동 내가 후회하는 것 한 가지 [5] 최용우 2020-08-29 347
6737 2020년 예동 군중심리에 휩쓸려 file [2] 최용우 2020-08-28 468
6736 2020년 예동 불가능한 일이라고 [2] 최용우 2020-08-27 212
6735 2020년 예동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것을 최용우 2020-08-26 224
6734 2020년 예동 남을 깎아내린 것을 [4] 최용우 2020-08-25 226
6733 2020년 예동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최용우 2020-08-24 158
6732 2020년 예동 기독교와 구원 [3] 최용우 2020-08-22 276
6731 2020년 예동 속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4] 최용우 2020-08-21 255
» 2020년 예동 건물에서 사람으로 [1] 최용우 2020-08-20 201
6729 2020년 예동 교리에서 삶으로 [1] 최용우 2020-08-19 160
6728 2020년 예동 부분에서 전체로 [1] 최용우 2020-08-18 136
6727 2020년 예동 외식기도에서 골방기도로 [1] 최용우 2020-08-15 267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