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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토저 시리즈24)

A.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240쪽 13,000원 규장 2017

구입링크 https://gpf.kr/wARcy

 

1부 진정, 듣고자 하는가

 

1장 살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언장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이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다면,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분이 그분의 세상에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2장 ‘부재자 하나님’의 시대

성경은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시다는 교리를 아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금 이 시대는 ‘부재자 하나님’의 시대이다. 아기가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만족할 수 없듯이, 태양이 없으면 지구상의 삶이 가능하지 않듯이,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만족하거나 건강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다면, 그 집회가 형편없는 모임으로 전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3장 우리의 눈물을 찾으신다.

성경은 눈물로 쓰였기 때문에 최고의 보물을 눈물에게 선사한다. 세상을 흔들어놓은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슬픔의 사람이었다. 선지자들은 슬픔과 괴로움 가운데 글을 썼다. 하나님은 회개와 겸손과 눈물을 찾으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회개와 겸손과 눈물을 다시 찾는 일이다. 

 

4장 가만히 있어야 알 수 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46:10). 이것이 우리 조상의 믿음이었고, 성경의 가르침이다. 또한 우리의 내적 확신도 ‘가만히 있음’에서 나오기에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어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내면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5장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

복음주의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와 속량의 모든 부분은 그분의 영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사역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성육신의 신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이 ‘생명의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원한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나무나 짚”(고전3:12)일 뿐이다. 

 

6장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모든 것이 서로 모순되어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다. 모든 진리들이 가장 큰 진리 안에서 만나 조화를 이루고 그 가장 큰 진리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요8:32).

 

2부 믿음 있는자 귀를 열어라.

 

7장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가치

성경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통해 거하시는 곳’이라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해 아래에서 가장 중요한 유기적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모인 소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의지하고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세상과 육신을 끊으면 그곳이 교회가 된다. 

8장 조직화: 그 필요성과 위험성

‘조직화’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체의 몇몇 부분들을 잘 짜 맞추는 것이다. 조직화가 없다면 학문, 정부, 가족, 예술, 음악, 문학, 그리고 온갖 종류의 창조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생명도 조직화를 필요로 한다. 교회의 고동치는 심장은 ‘생명’이다. 오늘날 교회가 복잡한 조직화로 달려가고 있다. 첫째원인은 ‘자연스러운, 그러나 육신적인 욕망’ 때문이다. 둘째는 두려움이다. 

 

9장 교회가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기독교가 본래의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되면 성경적 권위가 전혀 없는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나타나 교회를 분열시킨다. 기독교의 세 가지 주요 요소는 영적 생명과 도덕적 실천과 공동체 조직이다. 첫 번째 것은 ‘절대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고, 나머지 둘은 ‘당위적 입장에서 볼 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그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전혀 관계가 없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기독교가 아닌 순수한 기독교는 실제로 세상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났을 때 교회는 세상의 거센 물결을 거슬러 사회에 영향을 끼침으로 사회를 깨끗하게 했다. 

 

10장 교회에 들어온 실용주의

교회 안에 들어온 실용주의를 깨뜨리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의 활동을 지배할 권리를 갖고 계시다고 인정하면 된다.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무엇을 행해야 할지, 또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이 신약성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교훈들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성경대로 행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11장 처음 신앙의 향기를 간직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추구할 때에만 비로소 영적 열정의 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다. 오직 그분만이 새로움과 신기함을 우리의 마음에 계속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몰입하는 것만이 우리의 처음 체험의 아름다운 향기를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샘에서 끌어온 물로 계속 채워 주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작은 실개천은 틀림없이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새로 회심한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주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할 때, 우리의 믿음이 줄어들지 않고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12장 지도자에게 따르는 책임

오늘날 교회들의 상태가 이토록 형편없어지게 된 것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직접적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적 지도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다. 첫째, 두려움이다. 둘째, 경제적 압박이다. 셋째, 야망이다. 넷째, 지적 자만심이다. 다섯째, 진정한 영적 체험의 부재이다. 여섯째, 불충분한 준비이다. 

 

13장 연설가인가, 선지자인가

연설가와 선지자의 차이점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연설가는 자기를 위해 말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위해 말한다는 것이다. 연설가는 자기의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전한다. 참된 설교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이 땅에 전하는 하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목자를 부르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진짜 목회자는 자기 스스로 목회자가 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따라 사명을 받은 자이다.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라는 부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라는 부름은 성령의 은사와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14. 목회자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들

목회자는 가장 위험스런 직업 중 하나이다. 마귀는 성령충만한 목회자를 미워한다. 그리스도 다음으로 미워한다. 목회자에게 치명적인 위험들이 있다. 1. 특권의식: 목회자가 자신을 특권층에 속한 사람으로 여기게 될 위험이 있다. 2. 열의 없는 태도: 주님의 일을 대충대충 겉치레로 하는 습관에 빠지는 것이다. 3 비현실에 갇힘: 그의 정신이 일반 사라들의 세계에서 유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동정심을 잃게 됨: 목회자가 동정심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지식을 자랑함: 성도와 죄인이 아닌, 종교적, 철학적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 게으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선 농부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나 과학자처럼 고된 생활을 스스로 실행하는 것이다. 7.지나친 융통성과 지나친 엄격함 8.우쭐함과 낙심함: 하나는 성공해서 우쭐하는 것이고, 하나는 실패해서 낙심하는 것이다. 

 

3부 여전히 좁은 길을 걷는가

 

15. 속이는 자와의 전쟁

속이는 것은 언제나 효과적인 무기였는데, 이것이 종교의 영역에서 사용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에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라고 경고하셨다. 사도 바울은 “망령되고 헛된 말”(딤전6:20)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 예로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을 들었다. 바울에 의하면,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고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린다(딤후2:17).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었는가?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정신적 부활을 가르친 것이다. 

 

16. 지혜롭고 용기 있는 분열

혼란에 빠진 양 떼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갈 때, 그 속에 있는 한 마리 양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양 떼에서 이탈하는 것뿐이다. 잘못된 연합은 모두의 멸망을 초래한다. 자신의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양은 전체에서 이탈한다. 동질적인 것들은 연합하고 이질적인 것들은 서로 나뉠 때 힘이 생긴다. 오늘날 기독교 단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합의 증가’가 아니라 ‘지혜롭고 용기 있는 분열’인지도 모른다.

 

17. 인위적 분열은 해악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연합은 우리가 성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악이다.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가 없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유익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교회의 분열은 악이다.(행2:44, 엡4:3, 4:4~6) 어떤 이유 때문이든, 개교회의 교인들을 몇몇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18. 세상에 바쳤던 충성을 거둬들이라

사도 바울이 성령에 감동되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인류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봤자 인류의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 정죄가 내려질 뿐이다. 세상에게 바치는 충성을 완전히 철회하는 길 밖에 없다. 인류의 형제 관계는 기정사실이지만, 그 기정사실은 인류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정죄 받은 옛 형제 관계에서 빠져나와 그분께 오라고 부르신다. 이유는 그분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19. 하나님은 진솔한 기도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정말로 그분을 생각하면서 그분께 말씀드린다면, 그분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이든지 하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간사한 속임수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그가 무지 중에 경솔한 기도를 드리는 잘못을 실제로 범했다 할지라도 사랑하신다. 그분은 무지를 고쳐주실 수 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한 자를 고치는 약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20. 가장 좋은 것은 가장 얻기 어렵다.

설교의 결실을 풍성히 거두려는 목회자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는 그가 감당해야 할 일들 중 가장 힘든 일이 될 것이며, 그 역시 인간인지라 다른 어떤 것들보다 기도를 적게 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그럴 때는 기도로써 승리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그의 육신부터 이겨야 한다. 기도를 언제나 방해하는 것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다면 청중 앞에 서서는 안된다. 설교단에 한 시간 서려면 그 전에 하나님과 여러 시간 동안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설교자는 대중 앞에 마련된 설교단보다 기도의 골방을 더 친숙하게 느껴야 한다. 기도는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설교는 때때로 하는 것이다. 

 

21.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다.

시편 150편의 시가 들어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모두 보물같이 귀한 것이고 예배자에게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지만, 시편에서 반복되는 부분을 모두 제거하면 남는 것은 5-6편으로 압축되고 말 것이다. 

 

4장 신앙은 오늘의 선택이다.

 

22. 세상 나라와 그것의 영광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제까지 교회가 세상 나라들과 그것들의 영광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세상을 가지라’는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셨지만, 지금 그 세상은 그분을 따르며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교활한 계략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정통적 신앙을 가진 신자들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의 진짜 위험은 그들이 세상의 가치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참된 부흥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23. 생명의 원천을 가졌는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이 기독교의 본래 목적이다. 설교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라. 그러면 설교 때문에 에너지가 고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공적인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 지혜의 샘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성령을 모셔 들이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는 것들 때문에 지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과 사귀는 시간보다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을 늘리면, 굶주린 자들에게 줄 양식이 늘 풍족할 것이다.

 

24. 가식은 영혼의 질병이다

성경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설교단에 선 사람은 누구나 성경 자체의 분명한 권위를 어느 정도 자기의 것으로 삼고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성경은 최고의 사랑의 책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책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불친절하거나 무례하지 않으며, 예외 없이 정직하고 온전히 성실하다. 종교적 가식은 단순히 이런저런 잡다한 문제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인간적 및 정신적 문제 때문에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혼의 질병이기 때문에 ‘영혼의 의사’에 의해서만 치료될 수 있다. 가식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쁨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25. 복음주의에 나타나는 속물적 우월의식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많은 지식을 가진 자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거의 없고,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다. 성경에서 지식은 일종의 체험이며, 지혜는 도덕적 내용을 갖는다. 겸손 없는 지식은 헛된 것이다. 종교적 우월의식 환자에게는 진리가 없다. 속물적 우월의식과 진리는 양립할 수 없다. 

 

26. 한여름의 광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심판의 시대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토록 자주 자기의 십자가를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하다. 죽기까지 헌신하는 부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되면 자신의 희생을 개의치 않을 것이고, 한낮의 뜨거움과 부담을 이겨내며 십자가를 지는 것을 특권으로 여길 것이다. 

 

27. 겸손, 그 진실과 거짓

참된 겸손은 건강한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에 대한 진실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타락한 본성 안에는 선한 것이 전혀 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거짓겸손은 겉모양만 다를 뿐 사실은 교만이다. 

 

28. 침묵의 죄를 깨뜨리자

침묵과 행하지 않음이 죄라는 것은 단지 학문적인 얘기가 아니다. 이 죄는 아주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때에라도 또한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침묵을 깨고 말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의가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도덕적 원리가 즉시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 말없이 꼼짝 않고 있는 것은 실제로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29. 올바른 헌금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을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 체계적으로(규칙적으로)헌금해야 한다. 둘째, 올바른 동기에서 드려야 한다. 마음이 담긴 헌금을 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경제적 능력에 비례해 충분히 드려야 한다. 넷째, 올바른 곳에 헌금해야 한다. 우리가 했던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해 장차 주님 앞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드린 무든 무익한 헌금에 대해서도 역시 해명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30. 진정한 자유에는 울타리가 있다

어떤 한계 안에 머무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다. 참된 기독교적 자유는 우리의 정욕대로 마음껏 살거나 우리의 타락한 욕망들을 추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지나친 자유는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연의 법에 복종할 때 비로소 밀이 익을 수 있다.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까? 하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주어진 자유를 육신의 정욕을 위해 악용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낙타처럼 무릎을 굽혀 자발적으로 짐을 지는 것이다.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진해서 남들을 섬긴다. 이 길이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다. 

 

5장 사랑할수록 더 깊이 닮아간다

 

31. 선언하고 선포하고 증언하라

교회의 사명은 선언하고 선포하고 증건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 땅 위에 남겨진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들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말해주지 않으면 세상은 이 진리들을 도저히 알 수 없다. 교회는 시사평론이다 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신다는 메시지. 둘째,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그분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복음전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며, 그분을 믿고 또 최종적이고 완전한 헌신을 통해 그분과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32. 선함과 위대함

안개가 다 걷히고 모든 것이 올바른 빛 가운데 드러날 때 명확히 밝혀질 한 가지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선함’과 ‘위대함’이 동의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위대하게 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은 어린양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존재가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33. 용기와 절제

용기와 절제를 조화시키지 못해 교회 안에서 악한 일이 일어난 경우들도 여러 해 동안 있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조화에 실패했을 때에는 그 피해가 더욱 컷다. 하나님은 용기와 절제 사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사람들을 사용하셨고, 또 앞으로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자신의 용기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이런 용기는 내주하시는 성령에게서 매 순간 힘을 얻으며, 자아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이런 용기는 인내심을 발휘할 것이며, 양쪽 극단에 빠지지 않고, 적절히 균형을 잡을 것이다. 

 

34.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닮아간다

인간들의 본성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의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행하심이지만, 그 다음은 사랑이다. 잘못된 대상들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치명타를 입힌다. 올바른 대상들을 사랑할 때에만 우리가 올바른 존재가 된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 모든 도덕적 피조물들의 최고의 목표이며, 또 마땅히 모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창조 목적인 그분을 닮는 것이다. 이 목적을 떠나서는 그들의 존재의미가 없다.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째로 들어 올려 더 높은 단계로 올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거듭남의 신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 

 

-정리: 이재익 목사(일본 니가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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