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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틱낫한 /이현주 옮김 /불광출판사 사진 50x72

 

따듯한 일화로 만나는 틱낫한 스님의 삶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

우리 내면의 영혼을 깨우는 틱낫한 스님의 북소리!

틱낫한 스님의 묘비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 빛나는 지혜들

 틱낫한 스님은 종교를 떠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주는, 존경 받는 스승 중의 한 분이다. 70년 동안 전 세계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참여불교와 예술과 마음챙김을 가르쳐온 그는, 1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펴내고 여러 언어로 번역, 수백만 권이 팔렸다. 쉽고 친절한 말로 불교를 풀어쓰는 데 노력한 스님은 불교의 중심 가르침인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멈추고 깊이 보라’는 말로 표현하고, ‘마음챙김(mindfulness)’을 처음으로 퍼트렸다. 자두마을 등 그가 세운 공동체에서 따르도록 한 가르침 역시 ‘열린 마음, 견해에 집착하지 않기, 자유로운 사고, 고통을 알아차림, 단순하고 건강한 삶, 화 다스리기, 이 순간 행복하기, 공동체와 의사소통, 진실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하기, 승가공동체의 보호, 바른 생계활동, 생명에 대한 경의, 관용, 바른 행위’ 등, 누구나 알아듣기 쉽고 실천하기 쉬운 덕목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르침의 기원이 되는 스님의 일화들이 가득하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장에서 사다 준 과자를 30분에 걸쳐서 아껴 먹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스님은 말한다. “어린 시절에 내가 과자를 먹듯이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즐기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이 어린 시절에 먹던 과자를 지금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 그것이 여전히 당신 가슴속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모든 게 거기 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면 그게 보일 것이다.”

 또 화장실이 없어 풀숲에서 바나나 잎으로 휴지를 대신해야 했던 사미승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청소할 변소가 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자기에게 행복할 조건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누구나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 하나 더, 베트남 전쟁 당시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던 스님은 같은 마을을 세 번이나 복구한 뒤 다시 공격을 받자, 다시 복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 번째라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언제고 전쟁은 끝나게 돼 있어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행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오직 친절한 마음과 연민하는 마음으로써 스스로 빛난 틱낫한 스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진리와 깨달음’은 가장 단순한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을 조정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들이 우리의 인생을 조정한다. 조용하게 나를 움직이는 삶의 원칙들은 무엇인가, 스님의 삶이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법

 “나는 이르렀다, 나는 집에 있다.” 이 말은 자두마을의 법인(法印, 가르침) 중 하나이다. 스님은 ‘나의 수행의 모든 것이 이 말에 담겨 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내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표현하고, 이는 또 내 수행의 본질이다.’라고 말한다. 망명인으로 유배 생활을 시작하던 해, 스님은 힘든 나날을 보냈다. 불교 수행에 대하여 근사한 강의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밤중에 깨어 일어났는데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 그러다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가톨릭 사제, 개신교 목사, 랍비, 이맘 등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구로 사귀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지금 여기를 살면서 매일의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놀라움을 접해 보려고 노력했다. ‘매 순간 마음챙기기’, 스님이 살아남은 건 그 수련 덕분이었다.

 이 책에서 스님은 호흡, 걷기, 앉기, 듣기, 차, 게송, 껴안기 명상 등 다양한 마음챙김 명상을 소개한다. 마음챙김은 현재 순간에 있으면서 모든 것, 우리 안팎에 있는 온갖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긍정적인 것은 배양하고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고 껴안고 바꿔 놓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마음챙김 수련이 무엇을 얻거나 무엇을 이루려는 게 아님을 스님은 강조한다. 수련 자체가 큰 기쁨이고 우리가 찾는 평화인 것이다. 수련은 곧 목적(destination)이며, 이는 우리 모두 현재 순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의 진짜 고향집은 지금 이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분별이 없고 미움이 없는 곳이다. 우리가 더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더 무엇을 갈망하지 않고, 더 무엇을 후회하지 않는 곳이다. 마음챙김 에너지를 가지고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로 돌아올 때 우리의 진짜 고향집을 지금 이 순간에 마련할 수 있다. 당신의 진짜 고향집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서 창조하는 무엇이다. 자기 몸과 평화로이 지내고, 자기 몸을 돌보고, 자기 몸의 긴장을 풀어줄 때, 그때 우리 몸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집이 된다. 자기의 감정들을 보살필 줄 알 때, 기쁨과 행복을 낳고 아픈 감정들을 다룰 줄 알 때, 그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한 고향집을 세우고 회복할 수 있다.” -틱낫한

 

‘한 늙은 수도승의 소박한 뜻’

세속 나이 아흔을 넘긴 틱낫한 스님은 지난해 10월 고향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했다. 제자에게 쓴 편지에서 스님은 “이제 내 생의 수레바퀴가 멈추어 간다. 남은 나날을 스승과 제자들과 함께 보낼 때가 왔다.”고 밝혔다. ‘한 늙은 수도승의 소박한 뜻’이었다. 열여섯 살에 출가한 투 히에우 사원에 머물고 있는 스님은 짐작컨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르침이 되고 있지 않을까. 스님은 이 책에서 묘비에 대한 뜻을 제자에게 밝히면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일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따듯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스승이 죽으면 재를 묻은 탑을 쌓겠다는 제자, ‘사랑하는 스승 여기 잠들다’라는 묘비를 세우겠다는 제자에게 스님은 타이른다. 나를 위해 절 땅을 낭비하지 말며, 재는 나무들이 자라는 데 뿌려주라고. 그래도 묘비를 쓰겠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다. 당신이 숨 쉬고 걷는 데서 나를 볼 수 있으리라.”고 쓰라고 청한다.

인간은 파도이면서 바다이며, 한 그루 나무이면서 이파리이다. 파도가 사그라져도 바다는 그대로이고, 이파리 한 잎 떨어져도 나무는 꿋꿋하다. 구름은 비가 되고 눈이 될 뿐, 구름이 죽는 건 불가능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인간의 몸은 해체되지만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스님은 평생 “일상에서 연속되는 나를 보는 수련”을 해왔다. 자비로이 걷는 누군가를 볼 때 그가 스님의 연장延長인 것을 알아본다. 이미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미래 세대들 안에서, 스님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날은 우리가 다른 모양들로 이어지는 날이다. 이 진실에 닿는 것이 깊은 수행이고, 그것이 우리를 가장 깊은 두려움에서 건져 내어 안심으로 데려간다. 니르바나는 소멸消滅, 태어남과 죽음, 있음과 없음, 옴과 감에 대한 개념을 포함하여 온갖 개념과 관념들의 소멸을 의미한다. 삶의 궁극 차원, 서늘하고 평화롭고 기쁜 상태가 니르바나다. 죽어서 얻게 되는 상태가 아니다. 바로 지금 당신은 마음 챙겨 숨 쉬기, 걷기, 차 마시기로 니르바나에 들 수 있다.” -틱낫한

 

<책에서 몇 부분> 

 

 벚나무에 꽃이 필 무렵

 옛날 베트남에서는 벚나무 축제를 벌였다. 간혹 날씨가 추워서 예측한 날에 벚꽃이 활짝 피지 않으면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에서 북을 두드리며 나무에게 기운차려 꽃을 피우라고 격려해 주었다. 94년간의 발걸음,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스스로 가슴속에서 깨어나도록 응원하는 따듯한 북소리이다. 스님의 이 책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북소리를 몇 가지 소개한다.

 

 내 삶의 일분일초가 기적이다 

 설거지가 즐겁지 않다는 생각은 그것을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일단 싱크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더운 물에 손을 담그면 설거지가 정말 즐거운 일로 된다. 스님은 접시와 물과 손의 움직임에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 접시 하나하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만약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다른 일을 하려고 서두른다면, 그릇 닦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일분일초가 하나의 기적임을 기억하라. 접시들이 거기 있고 내가 그것들을 닦는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평화이다 

 젊고 창의적인 구글 직원들을 위한 스님의 가르침이다. 성공을 위해 어떻게든 ‘넘버원’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아 부으며 자신의 몸, 느낌,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를 돌볼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어쩌다 시간이 있어도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서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스님은 구글의 젊은이들과 앉기 명상, 걷기 명상, 마음 챙겨 식사하기, 온전한 휴식까지 함께했다. 고요와 정적을 즐기는 동안 이들은 시간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시간은 평화임을 알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인생을 깊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사랑에 대한 이해 

 스님은 두리안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두리안을 스님에게 선물한다면 스님은 어떻게 할까.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물러날 것이라고 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내가 두리안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은 이해 없는 사랑이다. 참 사랑은 깊고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호흡을 놓치지 마라 

 스님은 한 이탈리아 시골 농부가 낫질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 농부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낫질을 했는데 그 움직임이 호흡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낫질을 호흡에 맞추고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챙겨 서두르지 않으면 힘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

 

 몸을 돌보라 

 많은 사람이 자기 몸한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지나친 일로 자기 몸을 혹사하고 자기 몸을 잊어버린다. 컴퓨터로 일하는 두 시간 동안 자기한테 몸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우리 몸은 외롭고 긴장하고 그래서 늘 아프다. 당신 마음이 당신 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당신은 실제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 몸과 함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참으로 살아 있는 거다.

 

 불안에게 말 거는 법

 현대인은 외로움, 아픔, 절망을 덮으려고 무언가를 찾는다. 이메일을 체크하고,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듣고 내면의 외로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뭐든지 한다. 우리 몸은 쉴 줄 모르고 마음도 쉴 줄 모르고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쉴 줄 모르는 불안 에너지가 드러날 때 스님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안절부절못하는 불안아, 네가 거기 있는 걸 내가 안다. 내가 널 돌봐주마.” 그러고는 마음챙김으로 숨 쉬며 우리 마음을 몸으로 데려온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에 접속되고 내면의 느낌들을 돌봐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스님은 말한다. “당신이 나를 ‘존경하는 낫한’이라고 부를 때 내가 ‘예’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겁탈당한 소녀 이름을 부를 때도 내가 ‘예’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해적의 이름을 부를 때도 내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대포와 기관총 만드는 사람들 이름을 불러도 내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따라서 나는 소녀일 수도 있고 해적일 수도 무기를 파는 상인이 될 수도 있다. 그 모두가 ‘나’라는 진실을 깨치면 내 속의 증오는 사라지고 전쟁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서,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다.”

 

 과거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 

 베트남 전쟁 퇴역 군인들을 위한 수련 모임에서 스님은 다섯 아이를 죽인 퇴역군인을 만났다. 스님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다섯 아이를 죽인 건 사실이오.” 다시 또 말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이 다섯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말을 들은 뒤 퇴역 군인은 아이들 돕는 일에 남은 삶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들어감으로써 당신은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 다른 무엇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